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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 심광현 ,유진화
  • |
  • 희망읽기
  • |
  • 2020-11-28 출간
  • |
  • 738페이지
  • |
  • 153 X 225 X 38 mm /1043g
  • |
  • ISBN 979119720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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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인공지능혁명+자본주의〉 VS 〈인간혁명+대안 사회〉

세계는 지금 가장 심대한 문명사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인류 및 지구 생태계의 종말을 야기할 ‘인류세-자본세’의 자연환경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폭발한 세계공황이라는 사회 환경의 거대한 위기가 중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동안 지체되고 있던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혁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자본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덮쳐 오고 있는 것이다. 이 기술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생산수단의 사유화)의 구조적 변화(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없다면 3차 산업혁명/정보혁명보다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와 자산/소득/문화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강한 인공지능에 의해 양극화가 극심해질 2020년대 후반까지 생산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SF영화들이 예고해 온 디스토피아적 이중세계화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랫동안 예술/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지식들의 통섭/순환을 연구하고, 실천해 온 경험을 토대로 8년에 걸쳐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를 집필한 심광현 교수는 오늘의 다중위기를 이겨낼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기술혁명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혁명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결합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혁명에 대한 찬반 논란을 넘어서 기술혁명과 대안적 생산관계의 새로운 결합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공진화가 가능한 대안적 생산관계를 구성하려면 변화의 주체인 사회구성원들이 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잠재적 역량을 창조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각자의 잠재적 역량은 환경 변화와 몸의 변화를 매개하는 뇌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사회적 뇌)에 내재해 있다. 이 신경과학적 발견을 철학적 지혜와 연결해 인간을 원자적 개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파악해 온 낡은 인간관을 〈개인-사회-자연의 동적 관계의 창조적 변형 과정〉이라는 혁명적 인간관으로 대체하면서(인간혁명) 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으로서 각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해 협력할 때 대안적 생산양식/통치양식/생활양식/주체양식의 구성(사회혁명)이 가능하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인간관의 이런 혁명적 변화를 〈인간혁명〉이라고 정의하면서, 2030년 전후의 임계점까지 주어진 십여 년간 〈인공지능혁명+자본주의〉를 극복할 〈인간혁명+대안 사회〉의 과학적·철학적·일상적·사회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다. 담대하지만 시의적절한 이 책은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 이라는 부제를 통해 그 청사진을 일상 속에서 구체화하는 실천의 길도 명확하게 열어 준다. 지식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가 오랜 시간 협력하며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을 구성해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주장하며 혼돈의 시기를 다함께 이겨낼 ‘나비 효과’를 향해 나아간다. 분리되어 있는 제반 지식들의 통섭은 물론 지식인들의 전문적 형식지와 대중들의 일상적 암묵지 간의 적극적 순환으로 문명 전환의 경로를 탐색한 전례 없는 사고 실험의 복잡한 여정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술혁명 대 인간혁명
▶ 현재 다중위기에 대한 다층적인 분석과 대안을 모색하는 담론과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어느 경우든 환경의 변화가 인간에게 미칠 영향만 강조할 뿐, 인간 활동의 변화가 환경에 미칠 영향, 즉 환경과 인간 활동의 복잡한 상호작용에는 주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생명체의 적응만이 아니라 생명체의 변이에 따른 환경의 변화가 진화의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었듯이, 인류사에서도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만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변화가 환경을 다시 변화시키는 과정이 문명 전환의 주요 계기였다. 자연사에서 전자의 변화는 〈돌연변이〉, 인류사에서 후자의 변화는 〈혁명〉이라고 불리어 왔다. 인공지능혁명이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도 ‘혁명’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초점은 스마트한 기술혁명에 있을 뿐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런 초점 이동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활동의 혁명적 변화의 중요성을 시야에서 지워 버린다.
▶ 이제까지의 혁명도 오직 사회 환경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인간 활동의 혁명적 변화 없이 사회 환경(제도)만을 변화시키려 했던 20세기 사회혁명들이 실패로 끝난 이유도 이런 일면적 혁명관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다시 도래한 세계사적 이행기에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회 환경의 혁명적 변화(사회혁명)만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혁명적 변화(인간혁명)가 필수적이다. 또 양자의 일치와 동시에 개인, 사회, 자연의 악순환 관계를 선순환 관계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저자가 〈인간혁명〉을 〈개인, 사회, 자연의 동적 관계가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를 추구하는 혁명적 실천〉이라고 정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혁명관의 새로운 성격은 대상의 변화만이 아니라 관찰자(측정 행위)의 변화가 대상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함으로써 원자 이하의 미시 세계를 과학적으로 해명한 양자역학의 혁명적 과학관에 비유할 수 있다. 기존의 혁명관이 고전역학처럼 관찰자의 측정 행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회 환경과 제도(대상)의 변화, 즉 사회혁명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 달리 사회혁명과 인간혁명의 상호작용 속에서 양자의 선순환 경로를 발견하려는 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혁명관은 혁명의 패러다임 자체를 양자역학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도 같다.

2. 인간혁명의 과학적 근거
▶ 지구 전체가 물적-인적-정보적 교류의 연결망으로 뒤덮이고, 특히 뇌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 뇌의 뉴런 연결망의 복잡한 회로가 전체적으로 밝혀진 오늘날에는 그동안 불가능했던 인간역량에 관한 제반 지식들의 통섭과 순환의 얼개를 짜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과 인간 활동 및 자기 변화의 잠재력과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낡은 지식들 사이에 벌어졌던 커다란 격차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새로운 디딤돌이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지식인들과 대중들 간의 소통과 협력의 기회도 크게 열리고 있음에 주목한다.
▶ 저자는 뇌신경과학에 의해 해명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그동안 축적된 철학적 통찰로 재해석해 〈뇌의 신체지도〉에 상응하는 〈마음의 항해 지도〉로 약도화한다면 위로부터 과학기술의 발전과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의 발전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좁힐 수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가 제반 지식들의 통섭을 통해 발견한 이 약도는 좁은 지리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유년기의 협소한 마음과 질풍노도의 사춘기라는 혼돈에 찬 마음의 지도를 지구적 교류에 적합한 〈성년기의 확장된 마음의 지도〉로 재구성하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 현재 초국적 거대자본이 주도하는 인공지능혁명은 외부 환경의 비자기 정보를 포착하고 분석해 행동을 설계하는 인간지능을 〈역설계〉하여 기계지능을 구성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몸 내부 자기의 가치 평가를 조율하면서 타자(인간과 자연)와 공감하며 역동적 연결망을 창조하는 뇌의 다른 역량들은 아직 사회적 개인들의 온전한 몫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 차이가 자본이 주도하는 〈위로부터 인공지능혁명〉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아래로부터 인간혁명〉의 문화정치적 토대임을 강조한다. 인공지능기술이 개발 중인 약 6가지 역량(오성, 시각, 청각, 촉각, 판단력과 감정의 일부)의 조합 수(26)에 비해 개인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에 잠재된 13가지 역량(앞의 6가지에 더해 체성감각, 정동, 충동, 욕망, 이성, 상상력, 직관)의 조합 수(213)는 더없이 크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사회적 뇌(거울뉴런과 뇌섬엽의 방추뉴런)를 매개로 연결되면 전체 네트워크는 2ⁿ의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수직적인 경쟁과 분업과 분열을 강제하는 자본주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내재한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동력으로 소통과 협력과 연대의 연결망을 만들어 낸다면 〈인공지능혁명+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승산은 우리에게 있음을 저자는 확인시킨다. 역사상 처음으로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새로운 문명 창조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자본순환의 폐쇄회로/기술적 통섭 대 지식순환의 개방회로/수평적 통섭
▶ 과학적 지식들의 〈통섭(consilience, 通涉)〉의 중요성은 GNR혁명에 의해 이미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들의 〈기술적 통섭〉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본의 〈수직적 지배〉라는 특수한 목적에 예속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 변화를 일치시키는〉 데 기여할 지식들의 〈수평적 통섭〉을 시도하고, 이렇게 통섭된 명시적 지식들이 다시 일상적 경험의 암묵적 지식들과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복잡한 회로를 규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문명 전환을 위한 이 회로의 발견이 책의 부제에 함축된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의 핵심 과제다.
▶ 저자에 의하면 18세기까지는 동서를 막론하고 (1)세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통섭하고 순환시켜 (2)삶의 지혜를 강화시키는 〈자기-변형적 실천〉이 철학적 실천의 고유한 과제였다. 칸트나 후기 푸코가 강조했듯이 철학의 진정한 과제는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주체적인 삶의 변형을 위한 실천적 지혜〉의 결합에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지닌 세계관(외부 환경 변화의 지도)과 인생관(내면 변화의 지도)을 사회변동에 따른 지식의 확장과 경험의 다양화에 비춰 교정하면서 보다 넓은 세계관과 깊은 인생관을 형성해 양자가 선순환하도록 성찰하는 것이 그것이다.
▶ 저자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이원론적 실체로 분리하는 대신 능산적 자연이라는 하나의 실체에 내재된 두 가지 속성(사유와 연장)의 특수한 결합 양태로 파악한 17세기 스피노자, 학교 개념으로서의 이론 철학과 세계 개념으로서 실천 철학의 통합을 요구한 18세기 칸트, 혁명적 실천을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로 정의한 19세기 맑스, 분화된 이론적 지식들과 실천적 지식들을 매개하는 세계통합운동을 과제로 제시한 20세기 후반의 시몽동을 연결해서 철학적 실천의 고유한 과제 해결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한다. 저자는 지금의 문명사적 이행기를 맞아 그동안 지식의 전문화/분과화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 과제를 방기해 왔던 철학이 〈지식의 통섭과 순환을 통한 삶의 주체적 변형〉이라는 고유한 과제를 다시 환기하고 새롭게 실천할 때라고 역설한다. 최근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절실해진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 그러나 이제까지 학문들은 환경의 변화에만 주목해 왔고, 철학은 추상적 사변에 머물러 왔을 뿐이다. 특히 포스트휴머니즘, 트랜스휴머니즘, 사변적 실재론이나 객체지향 존재론과 같은 최신 철학들은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비인간, 초인간, 객체의 문제로 대체해 버리면서 환경을 변화시킬 책임 있는 주체에 대한 관심을 희석화한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후자에 대한 전자의 지배를 정당화해 온 기존의 인간중심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듯이, 인간을 비인간 객체들의 1/n로 환원하려는 새로운 철학들 역시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희석화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이 책에서는 이에 맞서 인간을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역동적 신진대사의 과정과 개인(자아)-자연(이드)-사회(초자아)의 동적 관계의 창조적 과정이 교차하는 역동적 다중지능 네트워크〉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로써 각 개인을 자본주의가 유발한 개인-사회-자연의 악순환 관계에서 선순환 관계로 전환시킬 문명 전환의 책임 있는 주역으로 재설정하고 있다.

4. 인간혁명의 이론: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과 주체양식의 혁명
▶ 저자는 인간에 대한 이 새로운 관점을 1)뇌신경과학적 지식들과 21세기의 인지생태학,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규명해 온 철학적 통찰(스피노자, 칸트, 그람시, 벤야민, 시몽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여러 성과들과 연결해 순환시키는 정교한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2)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라는 맑스의 테제와 연결하여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이라는 일종의 통일장 이론을 제안한다. 이 프레임에 입각해 보면, 자연의 일부이면서 노동을 매개로 한 자연과의 신진대사 속에서 환경 변화에 적응/동화하면서 자기 변화를 만들고 다시 자기 변화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켜 온 인간 존재는 4가지 실존양식(생산양식-통치양식과 생활양식-주체양식)이 중첩되어 변화하는 역동적 매트릭스로 파악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개인구성체-사회구성체-자연구성체의 다층적 신진대사 과정과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사회구성체와 자연구성체를 개인구성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정치적 근거가 마련된다.
▶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너 자신을 알라’는 정언명령은 개인구성체의 주체양식과 생활양식의 구조와 작동 기제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해명을 통해서만 답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전후뇌-좌우뇌-삼부뇌의 입체적인 구조와 어포던스-미메시스-오토포이에시스의 순환 루프로 이루어진 뇌의 인지생태학적 모형과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해명해 온 철학적 탐구를 연결하여 〈주체양식〉의 구조와 기능 변화를 해명한다. 2부에서는 마이클 폴라니의 형식지와 암묵지의 구별을 적용해 자본주의적 경쟁과 위계의 틀에 갇힌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 구조를 비자본주의적 협력과 평등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 구조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생활양식〉의 구조와 기능 변화를 규명한다.

5. 인간혁명의 실천: 생활양식의 혁명
▶ 현재 지식인들은 물론 대중들의 일상적인 암묵지는 자본주의적 경쟁과 반생태적 생활양식에 의해 철저히 파편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이라는 새로운 형식지를 만들어도 비자본주의적인 협력과 민주적이고 생태문화적인 생활양식을 구성할 새로운 암묵지와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역설한다.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철학적 모형에 대한 형식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생활양식의 일상적 변혁이라는 암묵적이고 주체적인 실천의 문제와 연결되는 전대미문의 방법을 천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모든 혁명의 토대라고 할 생활양식의 혁명적 재구성(앙리 르페브르)이 일상적으로 실천 가능한 과학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듯이, 시간은 비가역성과 순환성이라는 모순적인 얼굴을 지닌다. 이런 이중성은 분자 운동과 세포 분열이 일어나는 미시계에도 있다. 세포의 수명은 세포 분열의 회수로 결정된다. 시간의 화살이 일정한 길이로 전진하는 동안 자기 복제하는 세포 분열의 순환적 시간이 몇 차례 포함되는가에 따라 수명이 늘거나 준다. 중간계인 일상생활의 시간 역시 양면적이다. 시간의 화살이라는 측면에서 하루하루는 수명이 단축되는 허망한 순간들이지만, 순환하는 시간의 측면에서 하루하루는 생명력의 자기 조직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빛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일상생활의 혁명적 재구성이 가능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과학적인 근거가 여기에 있다.”

▶ 저자에 따르면 사회시스템의 모든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에 의해 준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체계의 안정기〉는 자연력과 노동력을 기계적 시간 안에 가두어 소진시키는 동시에 기술혁신을 통해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도모하는 〈자본순환의 시간〉이다. 이 속에서 민중의 일상생활은 생산도구와 자연과 생산물로부터, 나아가 자기 자신의 자연적 잠재력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의 비가역적인 시간의 화살, 즉 시계적 시간의 기계적인 리듬에 지배된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의 모든 심급들이 요동치는 비평형상태의 〈체계의 이행기〉에는 공백들이 발생하고 재생산의 위기가 커지는 동시에 생명력의 자기 조직화를 위한 〈창조적인 시간의 순환〉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자연과의 교감으로부터 분리된 소외된 노동으로 소진되고 상품 소비로 탕진되는 기계적 시간의 정태적인 박자-반복(동일성의 반복)의 화살 대신에 자연 및 타인들과 교감하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자기 조직적인 시간의 역동적인 리듬-반복(차이의 반복)의 순환이 그것이다. 저자는 전자의 관성을 깨고 후자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일상혁명’임을 강조한다.
▶ 2부 저자 유진화는 자기 조직적인 시간의 역동적인 리듬-반복이 몸-공간-관계-마음의 장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4개 장의 50개 이야기로 풀어낸다: 각자의 몸에 내재하지만 평소에 잊고 지내던 자연적 인력과 척력의 변증법을 활성화해 굳어 있는 몸의 탄력성을 높이고(기: 1장 몸의 자유), 도시의 회색빛 공간의 배치를 바꿔 생명의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장소로 변화시키며(승: 2장 공간의 감정), 소원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역동적 흥의 네트워크를 짜 나가면서(전: 3장 관계의 흥), 흩어진 마음의 능력들을 연결해 새롭게 펼치는 과정(결: 4장 마음의 축제).

6. 인간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혁명의 전망
▶ 각자가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깨닫고 발휘하여 서로 협력해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간다면 자연력과 노동력과 젠더 간 공진화를 촉진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지구적 공유), 생산력의 생태문화적 재구성, 그리고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전반의 민주화를 통해 각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세계화〉라는 코즈모폴리턴 문명의 새 지평이 열릴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저자는 이 청사진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디딤돌이 〈민주주의〉임을 역설한다. 국내외적으로 포퓰리즘 국면이 거세지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만연하고 있지만 이를 이행기의 정치가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파악하는 저자는 차제에 시효를 다한 엘리트주의적 대의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협소한 틀을 넘어서 직접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넓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주목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타협을 만들었던 서구 사회에서 포퓰리즘이 확대되는 것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혹은 ‘그림자’나 ‘증상’)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포퓰리즘(좌파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의 협소한 틀에 가려 있던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를 표출하는 긍정적 계기를 포함한다는 것이다(2016~17년 촛불항쟁 당시 ‘광장의 정치’처럼).
▶ 이행기에는 불완전한 타협물인 대의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해체되면서 더 나쁜 과거(배타적 국수주의나 전체주의)로 퇴행할 위험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기회가 공존한다. 저자는 위험들을 억제하고 새로운 기회를 살리려면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동시에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의 모든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의 생태적 재구성을 위한 입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확장, 혹은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민주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럴 경우에만 과거의 혁명에서처럼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저지하려는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폭력과 이에 맞선 혁명세력의 대항폭력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자가 세계사적인 보편적 개인으로 성장한 성년기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유형의 폭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심화시키면서 이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주권자로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여 이미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전유한다면, 발리바르가 말한 〈반폭력〉의 관점에서 〈혁명을 문명화〉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7. 인간혁명을 통한 〈혁명의 문명화〉
▶ 저자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확장이 반폭력적인 혁명의 문명화의 열쇠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혁명에서는 전위적 혁명정당이 수직적 방식으로 대중들을 지휘하고 동원하면서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상부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에 필요한 복잡한 지식생산을 〈독점〉 관리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강제력과 대중들의 동의 및 자발적 참여가 선순환하는 현실적인 고리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헤게모니 없이(혹은 출발 시에만 짧게 유지되었다가) 오직 강제력만을 행사하는 제한된 조건(전쟁 상황) 속에서만 혁명이 유지되다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되었다. 이런 실패는 〈아래로부터 대중들의 적극적인 민주적 참여를 통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제반 폭력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과정의 민주화를 함께 성취하는 혁명적 헤게모니의 확대 재생산 과정〉이라고 할 〈혁명의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정치적-이데올로기적-문화적 상부구조의 운영에서 배제되어 온 대중들이 어떻게 변혁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생산과 문화정치적 시스템 관리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경제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만이 아니라 〈지적-문화적 생산수단 일반의 사회화를 위한 협력교육〉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1)지식인들은 전문적인 지식생산에만 매달리는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해 대중적 이해가 용이한 방식으로 명시적 지식들을 통섭하고 사회화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창안하고, 대중들이 새롭게 통섭된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학습해 암묵지로 한정된 자신들의 세계 지식을 넓히도록 교육해야 한다. 2)반면 대중들은 협력교육 과정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구체적인 암묵지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새롭게 발견해 자기 교정 및 확장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렇게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유기적 협력교육을 통한 전문적인 형식지와 일상적인 암묵지의 선순환이 지적-문화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촉진하는 실효적 방법이라는 가정은 이 책이 지식들의 복잡한 정글을 헤치고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8. 책의 구성과 핵심 줄거리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
▶ 1장: 2020년대 본격화될 인공지능자본주의에 따른 디스토피아적인 경향을 억제하면서 새로운 문명 전환을 촉진하려면 〈과학기술과 자본의 결연 관계〉를 〈과학기술과 민주적 대중정치의 공진화〉 방향으로 역전시켜야 한다. 이 역전의 동력을 각자에게 잠재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적인 인간역량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인간에 관한 제반 논의들은 〈휴머니즘?/포스트휴머니즘?/트랜스휴머니즘 논쟁〉의 추상적인 덫에 사로잡혀 있다. 그 덫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역량)〉 개념을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변화하는 사회적 개인들’의 상호작용의 역사 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 2장: 맑스의 자본순환 공식 〈M(화폐)--〉C(상품)--〉M´(더 많은 화폐)〉을 〈실물팽창 국면〉(M--〉C)과 〈금융팽창 국면〉(C--〉M´)으로 구분해 역사 과정에서 거시적 주기를 발견한 조반니 아리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500여 년의 역사적 환경 변화는 네 차례 축적 체제의 헤게모니가 반복?, 확장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순환의 지리적 이동에 대한 분석을 더해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지리적 변화와 그에 따른 인지생태학적 위기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방법들을 토대로 저자는 환경(사회구성체)의 변화(사회혁명)와 인간 활동(개인구성체)의 변화(인간혁명)의 일치(및 불일치) 경로를 탐구할 수 있는 지식순환의 새로운 모형으로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분석〉을 제시한다. 또 그람시의 개념(개인·사회·자연의 역동적 관계라는 인간관의 혁명적 전환)을 출발점으로 삼고 맑스, 알튀세르, 푸코의 통찰을 연결해 〈사회구성체(생산양식·통치양식)〉와 〈개인구성체(생활양식·주체양식)〉가 교차된 형태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 개념〉의 복잡계 모형을 도출하고 있다.
▶ 3장: 개인구성체의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주체양식〉의 구조와 작용 기제를 인지생태학적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마음의 생물학적 토대인 뇌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깊이 〈하강〉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야콥 폰 윅스퀼, 로돌포 이나스, 제럴드 에덜먼 및 현대 뇌신경과학의 여러 연구 성과들을 결합해 뇌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인지생태학적 모형인 〈전후뇌·좌우뇌·삼부뇌의 다차원적인 기능적 순환 구조〉를 구성하고 있다. 이 모형은 비언어적 1차의식과 언어적 고차의식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뇌가 환경과 몸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매개하는지와 더불어,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정동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
▶ 4장: 이 장의 기본 과제는 3장에서 구성한 〈뇌 기능의 인지생태학적 모형〉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마음의 능력들(감각, 감정, 욕망, 오성, 이성, 판단력, 상상력 등)〉 사이의 큰 간격을 메우는 것이다. 시몽동 철학을 매개로 칸트와 스피노자 철학을 인지생태학적으로 재해석해 연결한 〈주체양식의 철학적 모형〉이 그 간격을 메워 줄 것이다. 또 이 모형은 그간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된 스피노자와 칸트의 철학을 연결해 주고, 맑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구성에 필수적인 윤리적·정치적 역량 강화(의 실천적 매뉴얼)의 개념적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체양식의 철학적 모형은 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끄는 거시적인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개인구성체의 현실적 변화는 오직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적 형식지들의 연결과 순환이 일상 속에서 형성되는 개인적 암묵지의 풍부함과 역동성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
▶ 삶 속에서 획득되는 개인적 암묵지는 사회적 형식지로부터 〈연역〉될 수 없다. 마이클 폴라니가 강조했듯이 오직 각 개인의 〈실존적 분투〉를 통해서만 발견되고 창안되는 것이다. 〈2부〉에서는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려는 개인들의 실존적 분투를 〈가상의 이야기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예시한다. 인지생태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과거 기억, 현재 장면, 미래 예측을 이미지와 언어로 연결해 사람·사건·시공간적 배치의 결합 방식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시뮬레이션해 보는 일종의 자동적인 〈스토리텔링 장치〉다. 제도적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뇌 속에서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을 밤낮으로 하고 있다. 의식적 주의를 기울여 이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제도와 장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몸과 마음의 잠재력을 활성화시켜 다양한 이야기 형식으로 일상생활의 변화를 탐색할 수 있다.
▶ 2부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3개 장은 각 장마다 14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며, 마지막 1개 장은 8개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각 장에는 각각의 이야기들에 함축된 암묵적 지식에 대한 1, 3부 저자의 철학적 탐구가 포함된다). 〈1장 몸의 자유〉, 〈2장 공간의 감정〉, 〈3장 관계의 흥〉은 일곱 세대 남녀노소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짝수 갈래 이야기와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화답하는 철학적 에세이 형태의 홀수 갈래 이야기를 교차시켜 일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4장 마음의 축제〉는 1부에서 형식지로 체계화한 마음의 능력들을 개인적 암묵지로 재해석한 이야기다. 각자가 마음의 능력들을 자유롭게 사용해 일상생활의 재미와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곧 일상혁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50번째 이야기는 인공지능로봇을 자식으로 키우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삶의 자세와 인격에 따라 미래의 〈강한 인공지능〉과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가늠해 보고 있다.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 1장: 이 장에서는 형식적인 지식순환의 철학과 암묵적인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일상적으로 체화하기 위한 방법론적 매뉴얼을 구성했다. 1절의 초점은 마음의 역량들의 정태적 모형과 역동적 모형을 네 가지 실존양식의 좌표 위에 겹쳐서 다성적 대화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운영 방법에 있다. 2절에서는 이 방법을 뇌의 무의식적인 스토리텔링 장치에 적용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기술적 활동과 다성적 대화를 연결해 각자의 삶을 새롭게 시뮬레이션하는 스토리텔링의 일반 모형〉을 구성한다. 3절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시공간 매트릭스에 위치시켜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을 연결하는 경로의 큰 윤곽을 제시한다.
▶ 2장: 여기서는 그간 사회혁명들에서 제기되었으나 미결로 남은 과제들과 인간혁명의 항해술을 연결해 혁명적 실천의 구체적 경로를 설계했다. 19세기와 달리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른 오늘의 상황에서는 당면한 모순들과 대결하는 현실운동(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모든 차원에서(페미니즘을 포함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운동,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극복하기 위한 생태적 실천들)과 대안세계로의 이행(생산수단의 사회화에 기반한 개인적 소유의 재건과 생태적 문화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대한 청사진의 설계는 분리 불가능하게 맞물려 있다. 저자는 이미 두 세기 동안 다양한 경로로 제기되었지만 환원주의의 장벽에 가로막혀 충돌해 온 혁명적이고 개혁적인 과제들을 비환원주의적인 지식의 통섭과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연결하면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선순환 경로 구성의 청사진을 충분히 그릴 수 있다고 밝힌다. 이 청사진을 통해 오랫동안 대립해 온 혁명/개혁/아나키즘, 적(노동)/녹(생태)/보라(여성) 사이의 장벽을 넘어서는 문명 전환의 새 지평을 전망할 수 있다.

9. 이 책의 새로운 형식적 특징

1) 사회적 형식지와 개인적 암묵지의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
▶ 〈1부〉가 사회적 형식지에서 개인적 암묵지의 방향으로 〈하향〉하는 구조를 취한다면, 〈2부〉는 반대 방향의 〈상향〉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개인적인 암묵지의 변화를 통해 수동적이고 경쟁적이고 예속적인 주체양식과 생활양식을 능동적이고 협력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양식과 생활양식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구체화하는 〈상향〉 구조가 그것이다. 〈3부〉에서는 개인적 암묵지가 사회적 형식지로 확장되고 사회적 형식지가 개인적 암묵지로 스며들어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이 선순환하는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 이 책은 이런 방법으로 세계관(환경 변화에 대한 지식)과 인생관(자기 변화에 대한 지혜)의 연결과 순환을 실천하는 것이 철학적 실천의 고유한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2) 몸통(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좌우 날개(1부 인간혁명과 3부 사회혁명) 구조:
▶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이 인간혁명의 몸통이라면 1부 역사지리-인지생태학/주체양식 모형과 3부 사회혁명의 청사진은 좌우 날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적 암묵지의 실천적 변화 없이는 사회적 형식지의 발전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 지난 두 세기 동안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과 문화연구-인지과학의 순으로 방대한 학문적 지식들이 생산되고 축적되었음에도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랜 질문에 온전히 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삶이 괴리되어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의 대립이 반복해서 격화되고 있는 이유 등을 설명해 준다. 마치 몸통이 바뀌지 않은 채 좌우 날개만 커질 경우 혈관의 순환 장애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식인과 대중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하루하루 자신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공간, 대상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실천의 과정, 절차, 방법들을 홀수와 짝수의 이야기로 다채롭게 그리고 있다.
▶ 2부의 짝수 이야기가 일상혁명의 과정에 대한 문학적 구성이라면, 홀수 이야기들은 일상생활의 문학적 형상화에 스며 있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와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2부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문학적 에피소드와 철학적 에세이의 교차 방식으로 탐구한 새로운 글쓰기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3) 지식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의 공저 형식
▶ 이 책은 인간혁명을 통한 혁명의 문명화를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1) 자연과학-사회과학-예술/인문학-인지과학에 이르는 제반 지식들의 비환원주의적인 지식순환의 모형을 통한 인간혁명의 항해지도 구성 2)일상혁명을 위한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의 창조적 실험 3)양자를 융합하는 일상적인 연습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과제를 온전히 수행하려면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을 감당할 지식인들과 일상 속에서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을 연습할 대중들 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부부가 8년간에 걸친 공동 작업을 통해서 이런 과제를 일상적으로 직접 실천했다는 데 있다: 지식인 남편이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과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를 쓰고,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에서는 전업주부 아내가 50개 이야기를 만들고, 1부와 3부 저자가 여기에 철학적 해석을 덧붙인 공동 저작 형식으로 새로운 협력의 타당성을 실험한 것이다.
▶ 그동안 국내외의 여러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이 학문적 지식의 통섭과 순환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일상생활의 변화가 가진 중요성에 주목한 지식인들이나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분리된 채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의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어 순환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없었다. 양자는 발생과 체화의 절차와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연결하려면 지식인과 대중이 밤낮으로 부단히 대화하고 서로의 문제점을 교정하면서 형식지와 암묵지의 특별한 장점을 발전시키는 실험을 공동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부부가 아니고는 행하기 어려운 바, 8년간 지속된 이런 형태의 부부 공동 작업은 국내외 어느 경우에도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

4) 과학적 시각화와 철학적 시각화:
▶ 역사지리적-인지생태학적-철학적 분석들이 교차되는 이 복잡한 작업 과정에서 독자들은 물론 저자 자신도 길을 잃지 않도록 다층적인 개념적 관계들을 도표로 압축하고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하고자 했다. 환경과 몸과 뇌와 마음 간의 다층적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적 시각화〉 방법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지식들 간의 통섭과 순환 및 그 철학적 함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철학적 시각화〉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된 오늘의 세계는 정보와 지식의 부족이 아닌 과잉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통시적인 문자 텍스트와 공시적인 이미지를 대립적으로 간주하는 관행은 이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갈등,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소통 부재를 지속시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과학적/?철학적 시각화 방법은 이런 난점들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에 발표된 서평]

2-1. 한겨레 2020년 11월 27일 게재

자연-사회 환경의 복합 위기 극복하려면

김진철 기자

기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발생했다. 이미 양극화와 노동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던 터다.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복합 위기는 가장 심대한 문명사적 위기라 할 만하다. 는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며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에 따른 ‘인공지능자본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닥쳐올 것을 우려한다. 이는 더욱 극심한 자본주의의 폐해로 이어지고 ‘디스토피아적 이중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이론)는 “기술혁명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혁명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결합이 근본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혁명에 대한 찬반 논란을 넘어서 기술혁명과 대안적 생산관계의 새로운 결합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선 변화의 주체인 사회구성원(생산자/주권자/생활인/자유인)의 잠재적 역량이 창조적으로 발휘되어야하는데, 뇌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철학적 지혜를 연결함으로써, 원자적 개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파악해온 기존 인간관을 혁명적 인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심 교수의 주장이다. 이것이 곧 ‘인간혁명’이며 이를 통해서만 ‘사회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은 이런 문제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구성됐다.
1부에서는 인간혁명 시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선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역사지리학과 인지생태학은 물론 마르크스와 알튀세르, 푸코가 동원된다. 2부가 특히 독특하다. 개인의 실존적 분투를 직접 책 안에서 행한다는 차원에서, 50가지 가상의 이야기(스토리텔링)를 도입한다. 일상생활의 변화를 탐색하는, 즉 일상혁명의 이야기 꾸러미는 심 교수의 전업주부 아내인 유진화씨가 지었다. 여기에 심 교수는 철학적 해석을 덧붙였다. 3부는 인간혁명이 사회혁명으로 연결되는 경로를 제시하고, 사회혁명의 미결 과제와 혁명적 실천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2-2. 참세상 2020년 12월 2일

자연의봉기에무력한인간,혁명의지도를다시그리자
[새책] 심광현·유진화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서평

이득재(대구카톨릭 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심광현 선생이 얼마 전 모 회의에서 새 책이 나올 거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심광현 선생으로부터 서평 부탁을 이메일로 받고 나서 메일을 읽지 않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아마도 이 방대한 책에 대한 서평을 필자에게 부탁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심광현 선생의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희망읽기, 2020)인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말대로 8년여에 걸친 작업의 결과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난 시절 계간지 〈문화과학〉이 창간된 1991년부터 이루어진 사고의 중첩의 최종판인 것처럼 보였다. 선생의 저작을 다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1999년에 나온 『문화사회를 위하여』를 위시하여 『프랙탈』,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흥한민국』,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등의 저작에 대한 선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왜 지금 나올 책 제목이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일 수밖에 없는지 일반인들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마르크스의 『지본론』만 하더라도 그 책의 분량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6배 이상이라고 하지만 심광현 선생이 그동안 지었던 책의 분량 또한 그에 버금가거나 초과할 듯하다. 따라서 당초부터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에 대한 서평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원고지 10매 내외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서평 부탁에 대하여 필자가 과문하다거나 하면서 핑계를 대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응했을 뿐이니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뿐이다.
지나고 보니 선생이 『지배양식과 주체형식』(백의 1994)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본서는 그 연장선 위에 있을 듯하다. 부제가 ‘주체양식과 생산양식의 변증법’으로 되어 있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문화과학사 2014)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 계열에 씨줄로 연결된 책들을 보면 선생이 끊임없이 ‘이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나올 책에서는 그 공백들이 촘촘하게 메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형식이 주체양식으로 더 나아가 개인구성체로 변화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선생의 본서에는 〈문화과학〉에서 제기했던 ‘생태적인 문화사회’ 담론이 날줄로 배선되어 있고 이 또한 자유로운(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개인들의 연합론으로 변화 발전해 있다. 결론적으로 본서는 각각 많은 노드들(본서에 나오는 많은 철학자 혹은 이론가들)이 배치된 채 씨줄과 날줄이 조우하면서 생산양식 - 주체양식 - 통치양식 - 생활양식의 네트워크에 의한 미래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종합적으로 드러낸 책이다. {개인, 사회, 자연}의 집합 구성에서 한국 사회는 그동안 이 삼자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사회구성체 논의는 집합의 두 원소를 배제한 채 이루어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사회구성체에 다소 낯설 수 있는 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을 구성하여 종합하려고 한 것이다. 개인구성체 또한 선생이 〈문화과학〉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할 때 강조하던 ‘자기통치성의 철학’과 맥락이 닿아 있다. 이것을 선생은 인지과학적인 논의와 연결된 1부만이 아니라 2, 3부에서도 반복적 차이 방식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선생이 이 책에서 보여주려고 한 핵심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만 갇힌 채 인간혁명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이제껏 실패하고 만 변혁/혁명이론에 대한 반성이고 그 반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기왕의 생산양식론에 통치양식, 주체양식과 생활양식(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개념들을 네트워크화여 대안사회론의 전모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의 전문과 서론에서 지적되듯이 오늘날 인류가 꿈꾸었던 혁명은 인간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실현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압할 수는 있겠으나 ‘자본주의의 독’에 맞서 결연히 일어난 ‘자연의 봉기’ 앞에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인간주체는 무력하기만 했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차를 정지시킨 것은 인간도 이념도 아니었다. 인류가 노동의 문제, 페미니즘의 문제, 생태문제 앞에서, 착취/수탈과 억압과 차별을 목도하면서도 변혁의 일격을 가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이 먼저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생의 말대로 인류는 아직 성인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혁명적 봉기가 실패하고 자본주의와 종교가 강화되면 다시 새로운 혁명적 봉기가 일어났지만 인류는 악순환에 갇힌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20세기에 일어난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에 그 원인이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과학적 방법인 하향법에 익숙해 상향법에 전혀 주목하지 못한 탓이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선생이 말하고 있듯이 1부, 3부가 하향의 구조를 취한다면 2부는 생활양식,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혁명이 사회혁명으로 상승 조우하는 상향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방법과 경제학을 필두로 하는 사회과학의 방법이 동일하게 하향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전면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마르크스가 초기에 주목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인간혁명론으로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서술방식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한 걸음씩 나가는 상향법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상향법 식으로 2부부터 읽으면 좋다. 비교적 단순하고 쉬우며 스토리텔링처럼 몸으로 즉각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부분부터 읽는 것이 책 읽기 요령 아니던가. 게다가 이 책만이 아니라 선생의 다른 책들에서도 나타나는 많은 다이어그램들에 주목하면 좋을 듯하다. 가령 본서 630 쪽에 나오는 다이어그램은 상향과 하향을 아우르는 선생의 종합적 사고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본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며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서평을 마치자. 본서에 문명 전환을 위한 과제가 제시되어 있지만, 과연 인류는 문명 전환을 위한 항해에 나설 수 있는가? 그리하여 과연 인류는 성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자본의 창세기가 시작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자본은 윤회 전생해 오던 중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났다. 당신은 혁명의 지도를 찾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리고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중인가?
2-3. 프레시안 2020년 12월 3일

21세기 문명전환의열쇠, 인간혁명
프레시안books서평〈인간혁명에서사회혁명까지〉

홍세화(장발장은행장)

“오늘날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간의 간격은 인공지능-GNR 혁명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늘의 인류는, 생산관계의 전면적 조정이 없을 경우 마치 자본 주도의 과학기술혁명에 사회시스템과 인간을 꿰어 맞추는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놓이는 것과 같은 새로운 폭력적 재조정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은 경제적 팽창과 과학기술 발전의 환한 불빛에 가려진 어두운 사각지대에 내재한 이런 문제상황의 심각성을 조명하고자 했다. 1부는 인간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통섭하고 순환시켜 〈주체양식〉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철학적 항해 지도를 제시했다. 2부는 〈생활양식〉의 재구성을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만들어 나가는 일상혁명의 실천적 항해술을 일곱 세대와 네티즌들이 만드는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제시했다. 이제부터는(마지막 3부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반폭력적 재조정〉의 방식으로 과학기술혁명과 인간혁명, 일상혁명과 사회혁명 간의 선순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탐색하려 한다.“(597쪽)

누구였던가, “노예들의 반란은 성공하기 어려운데, 설령 성공하더라도 주인만 바뀔 뿐 노예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 이가. 여기 ‘노예’의 자리에 ‘인민’이라고 써도 인간의 역사는 틀리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인민은 아직 지배와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인 사회는 아직 이상에 머물러있다. 가령 ‘반지배주의자’를 뜻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모두 패배했다. ‘인류의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태어났기 때문일까,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마오쩌둥)”의 강력한 힘 앞에서 아나키스트들의 ‘반지배’ ‘반폭력’ ‘평화’는 무기력했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거칠게 은유컨대, 오른손에 칼을 쥔 자와 왼 손에 칼을 쥔 자 사이에서 스스로 칼을 내던진 자의 운명과도 같았다. 국가폭력에 맞선 ‘대항폭력’은, 성공했던 실패했든 과정에서 결과까지 폭력을 수반하여 폭력의 악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나오미 울프).”는 말은 아직까지 인민혁명에도 적용되지 않았다.

“인간혁명 없는 사회혁명은 맹목적이고 사회혁명 없는 인간혁명은 공허하다.”(10쪽)

“과거 혁명에서는 전위적 혁명정당이 수직적 방식으로 대중들을 지휘하고 동원하면서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상부구조의 해체와 재구성에 필요한 복잡한 지식생산을 〈독점〉 관리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강제력과 대중들의 동의 및 자발적 참여가 선순환하는 현실적인 고리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헤게모니 없이(혹은 출발 시에만 짧게 유지되었다가) 오직 강제력만을 행사하는 제한된 조건(전쟁 상황) 속에서만 혁명이 유지되다가 그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되었다.”(89쪽)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간에게서보다 차라리 자연에게서 희망의 단초를 보아왔다. 인간에게서 지배, 착취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은 거의 실패하는데, 설령 성공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지배와 착취가 자리를 잡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비관적 전망을 갖고 있었던 반면에,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앞에서는 탐욕적이고 오만한 인간도 결국 두 손을 들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배와 착취에 맞서 저항하는 인간에게 생명과 안락함에 대한 협박을 통해 굴종과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왔고 성공해왔다. 자연은 그런 협박에 굴종하는 대신 죽음으로써 인간에게 응답한다. 만약 지배, 착취당하는 인간이 자연처럼 생명 위협에 굴종하는 대신 생명을 스스로 버린다고 가정하면 지배와 착취는 설자리가 없다. 지배, 착취의 대상이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자연에게서 희망을 근거를 보는 것은 이 점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비관적 희망이었다. 지금까지 자연을 마음껏 정복, 지배, 착취해왔지만, 온갖 재주를 부리는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은 결코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소리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다. 그리하여, 기후 위기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고, 사스, 메르스를 거쳐 코비드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자연의 반격, 곧 자연의 죽음은 곧 인간 모두의 죽음이니, 탐욕과 오만의 지배자, 정복자, 착취자들도 결국 두 손을 들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였다. 마침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그 모순을 전가할 지역을 지구상에서는 모두 소진시킨 세계체제라고 한다면, 막다른 길에 마주친 인간이 지금까지의 탐욕과 오만을 뛰어넘는 성찰과 모색, 그리고 실천을 통하여 자연에 자발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생태 공동체의 길을 가지 않을까 라는...

하지만 나는 역시 슈퍼 부자를 알지 못하는, 평생 가난하게 산 자였다. 〈특이점이 온다〉! 인공지능기술의 선두 주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15년 전에 쓴 책에서 21세기의 새로운 기술 변화와 맞물린 삶의 변화의 장기 추세를 이렇게 예측했다.

“특이점을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몸과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다.”(53쪽)

이른바 GNR 혁명이다. “유전공학--〉나노기술--〉로봇공학 순으로 발전하다가 세 가지 융복합이 가속화돼 2040년 즈음 인간 통제를 벗어난 특이점에 이른다”(53쪽)는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어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면, 자연의 역습 정도는 쉽게 극복하리라고 자신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도 질문을 던진다.

1) 사회적 노동의 대부분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경우 대중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2) 신체적-정신적 역량이 고도로 증강되고 수명이 크게 연장된 〈초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다움의 의미와 가치를 훌쩍 뛰어넘은 〈증강인간〉의 등장이 예고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트랜스 휴먼이 호모사피엔스와 공존하게 되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3) 커즈와일이 2040년 전후로 예측한 〈특이점〉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0년이다. GNR 기술에 대한 민주적인 사회적 통제 시스템을 확립할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여지는 특이점이 가까워질수록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2020년과 2040년의 중간지점인 2030년 전후를 〈임계점〉으로 잡는 것이 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53~54쪽)

마침내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가 소설 속 얘기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인간이 극소수 슈퍼 엘리트와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소마’를 배급받아 생명을 이어갈 뿐인 하류인간들로 나누어진다는 유발 하라리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를 비롯한 대자연의 위엄 또는 위험 앞에서 결국 겸손해지고 성찰함으로써 생태공동체의 길을 모색하리라는 나의 어설픈 기대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오만 앞에서 다시 물음표를 찍게 되었다. 과연 누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진단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2020년 봄 〈코로나19 팬데믹〉은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지체되고 있던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혁명을 사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극적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생산수단의 사유화)의 구조적 변화(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없다면 이 기술혁명은 20세기 후반의 정보혁명보다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와 자산/소득/문화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극소수 부자에게는 부와 권력과 영생(트랜스휴먼)을 제공하는 유토피아, 대다수 민중에게는 좀비와 같은 삶을 강제하는 디스토피아로 분기하는 이중세계화의 길이 전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11쪽)

‘자연의 역습’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실상 그것이 인간다운 길이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설령 자연이 우리의 우군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관건은 민주주의 역량에 있다고 할 때, 19세기 반동적 보수주의자 조제프 드 매스트르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는 말에 담긴 ‘수준’을 높이기에는 남은 시간은 절망적으로 짧은 게 아닐까. 저자의 “경제적 토대와 문화정치적 상부구조 전체를 구조적으로 변혁하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사회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혁명의 지속은 물론 그 본격적인 시작을 위해서도 대중들의 주체적 역량의 혁명적 변화, 바로 인간혁명이 요구된다”(11쪽)는 말을 승인할 때 더욱 그렇다. 아무리 “이행기의 나비 효과”(43쪽)를 기대한다고 해도, 이 짧은 시간에 그람시가 강조했고 이 책의 저자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가령 인민들의 정신 속에 ‘가짜 의식’을 주입할 목적을 가진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들인 학교, 정당, 교회, 매스 미디어 등을 능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우리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저자가 갖지 않았을 리 없다. 읽기에 버거울 만큼 두툼한 책 가득 담긴 저자의 지적 탐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알랭 바디우의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의 끝없는 정진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변혁의 가능성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는다. 2016-17년의 촛불시위를 ‘촛불항쟁’이라고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과거 사회혁명들을 삼켜버렸던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의 문명화(에티엔 발리바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세계혁명을 위해서는 ‘모든 낡은 찌꺼기를 떨쳐버리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할 능력을 몸에 갖출 수 있는’ 광범위한 인간변혁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바가 그것이다. 150여 년 전에 예견했던 이런 변혁이 이제야 가능하게 된 것은 그동안 ‘생산력의 세계적 발전과 함께 비로소 인간의 보편적 교류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12~13쪽)

그리하여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한테서 물질적 무기를 찾고,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정신적 무기를 찾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오늘 적용한 것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이다. 분리되어 있는 제반 지식들의 통섭은 물론 지식인들의 전문적 ‘형식지’와 대중들의 일상적 ‘암묵지’ 간의 적극적 순환으로 문명 전환의 경로를 탐색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장점으로 일상혁명 스토리텔링(2부)을 꼽을 수 있는데, 지식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가 솔선수범한 전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 사이의 순환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이끌어가자는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경쟁과 소외로 인한 자기 연민과 한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대신, 일상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친절하게 일깨우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서 하루하루 명랑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배려이다.”( 282쪽)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책 제목이 스스로 말하듯 이 책은 담대하다. 비록 “우리 부부는 이런 작업을 할 만하다고 공인 받은 권위 있는 사상가나 전문적인 뇌신경과학자가 아니며 검증된 스토리텔러도 아니”(44쪽)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교육의 전면적 개혁의 필요성은 물론, 진보정당의 구성원 다수가 〈비상근 정치인〉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등 책 곳곳에서 세력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에 나선 저자의 지적 탐험과 스토리텔링에 많은 이들이 귀기울여 이 도저한 혁명의 여정에 동참하기 바란다.

“이렇게 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생활인이자 철학자로, 교육자이자 정치가로 거듭나는 과정만이 위로부터의 인공지능혁명을 반폭력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최초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혁명적 실천의 행위자-주체로 우뚝 서는 성년기 인류의 당당한 모습이다. 힘들더라도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유년기로 퇴행하거나 사춘기에 머물 것인가 그 선택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각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각자의 오늘의 선택이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내일을 결정할 것임을 잊지 말자.”(667쪽)

(덧붙임 :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좀 더 쉽게 쓰고 분량을 줄인 책을 출판해 줄 것을 저자와 출판사에게 기대한다. 출판사 〈희망읽기〉가 스스로 표방하고 있듯이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를 순환시킴으로써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적극적 소통과 협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2-4. 레디앙 2020년 12월 6일 서평

박영균(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단 HK교수, 철학)

오늘날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기술-산업적인 변화와 도시-문화적인 변화는 급속하게 일어나는 반면 그런 변화가 향하는 방향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네 삶에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수행할 수 있는 참조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인류세-자본세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양산되는 담론 자체가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기도 벅찬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대학이 그만큼 파편화되고 상품화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유는 현실에 관한 지식-정보들만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보는, 일정한 머무름과 천착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정보의 홍수에 휘말리면 사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많은 정보 속에서도 거리를 두고, 사유의 ‘고독한’ 자리를 고수하면서 물길의 맥과 흐름을 집고 그것이 보여주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심광현 · 유진화)은 바로 그런 사유를 하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참조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고 쉽게 현재의 상태 및 미래의 변화를 추적하고 자신의 판단 및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유가 어려운 것은 우리네 삶이 어렵기 때문이며 글이 어려운 것은 사유의 참조지점을 제공하는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글은 그것을 이끌어가는 생각이 짧고 우리네 복잡한 삶을 재단하고 일면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도 읽기 쉽거나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그것은 삶과 사유 모두에서 극도의 충실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도 그만큼의 충실성을 견지해야 하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라는 텍스트는 두 가지 충실성의 산물처럼 보인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예술-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사이에서의 통섭과 순환을 연구해 온 저자 자신의 지적 성실성과 『문화/과학』, ‘문화연대’, ‘맑스코뮤날레’ 등에서의 지적 소통 및 ‘지식순환협동조합’에서 대중적인 지식 순환과 교육 실험을 몸소 실천해 온 실천적 성실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을 함께 온 부부가 지난 8년 동안 공동 작업을 통해서 학문적 형식지와 일상적 암묵지 사이의 긴장과 갈등, 상호 소통을 통해 만든 사랑의 충실성이다.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과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는 지식인 남편이 쓰고,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은 전업주부인 아내가 썼다. 1부에서 남편이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추상과 개념들로부터 개인의 암묵지로 하강해 내려오며 2부에서 아내는 50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몸의 자유로부터 시작해 관계의 역동적 흥을 연결함으로써 흩어진 마음의 능력들을 연결하는 시간-리듬분석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상승하며 3부에서는 이들 개인적 암묵지를 사회적 형식지로, 지식 순환을 만들어감으로써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라는 철학적 실천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렇기에 1-2-3부로 이어지는 글의 여정 또한, 이런 두 사람의 독특성을 따라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둘’이 여전히 하나가 아니라 둘로 존재하면서도 ‘공통의 무엇(encommun)’을 만들어가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오히려 진리의 공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랑을 ‘최소한의 코뮤니즘’이라고 정의한 알랭 바디우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뮤니즘(communism)은 ‘코뮌(commune)’+‘이즘(ism)’으로, ‘코뮌’이라는 이름 위에 존재하는 이념적 형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코뮌은 몸(body)과 몸 사이에서 나누는 정동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세기 동안 코뮤니즘을 대표했던 맑스주의조차 여기서 다시 길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맑스의 이름으로, 2년마다 열리는 학술문화의 장이자 축제이고자 했던 ‘맑스코뮤날레’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책의 필자를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지만 나 또한 길을 잃었고 사람들은 각자 암중모색했다. ‘맑스’라는 거대담론은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무너졌고, ‘탈’ 또는 ‘후기’란 뜻을 가진 ‘포스트(post)’의 다원성과 해체의 시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오류와 실패가 있었고 더딘 걸음이었지만 한국 맑스주의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이런 진전을 대표하는 성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의 맑스주의자들이 암중모색을 하면서 사유의 참조대상이 되었던 것은 알뛰세, 그람시뿐만 아니라 발리바르나 네그리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스피노자-맑스주의였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도 이런 사유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들 사유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이들의 철학적 사유를 단순히 소개하고 텍스트를 ‘정전(connon)’으로 만들거나 이를 가지고 현실을 해석하는데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이들의 사유 궤적에서 “생산양식-주체양식-통치양식-생활양식의 선순환 회로”라는 길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아니다. 이 책의 성과는 맑스가 이미 예견한 경로를 따라 ‘인공지능+자본주의’를 ‘인간혁명+대안사회’의 물질적 조건의 창출로 규정하고,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반폭력적인 문명 전환 과정’에 관한 과학적·철학적·일상적·사회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뇌신경과학과 21세기의 인지생태학, 자유-평등-연대의 가치를 규명해 온 철학적 통찰(스피노자, 칸트, 그람시, 벤야민, 시몽동)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연결함으로써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라는 맑스의 테제를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으로 발전시킨다.
둘째, 이 책은 뇌신경과학에 의해 해명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뇌의 신체지도’에 상응하는 ‘마음의 항해 지도’로 약도화하고, “자본순환의 폐쇄회로/기술적 통섭”에 맞서 “지식순환의 개방회로/수평적 통섭”을 제시함으로써 위로부터의 과학기술 발전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로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역동적 신진대사의 과정”과 “개인(자아)-자연(이드)-사회(초자아)의 동적 관계의 창조적 과정이 교차하는 역동적 다중지능 네트워크”라는 문명 전환의 주체화 양식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 인간혁명의 이론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인간학과 주체양식의 혁명”으로, 인간혁명의 실천을 “생활양식의 혁명”으로 정의함으로써 오늘날 르페브르가 열어놓은 공간학적 사유를 흡수해 거시와 미시세계를 통합하고, 이를 다시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는 확장이라는 관점 속에서 적-녹-보라 연대 및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맑스주의적 전망을 놓치지 않고 “자연-노동-젠더 간의 공진화”를 촉진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지구적 공유)”, “생산력의 생태문화적 재구성”,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전반의 민주화”를 통해 “각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세계화〉”라는 코뮤니즘으로의 이행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는 지구적이면서 총체적이고 거시-미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철학만이 아니라 인지심리학, 뇌신경학, 지리학, 정치학, 미학 등 인문-사회-예술-자연과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지식-정보의 홍수에 빠져 있는 듯이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들이 그러하듯이 지식-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사유의 고독한 자리를 잃지 않는다면 이 책은 독자들이 현재 일어나는 변화 및 현상들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사유하는 데 충분한 참조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이라는 창을 들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몰려오는 자본의 물결에 희망을 잃고, ‘냉소적 태도’를 자신의 지적-정신적 우월감처럼 내보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함께 미로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문득 웃음이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웃음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은 출구를 향해 나아가니까요. 그들은 다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희망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미로를 빠져나갔죠. 인간에게는 더러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요?”(396쪽)

2-5. 문화과학 104호(2020년 겨울호, 12월 1일 발간)

혁명적 실천의 항해술:
: 심광현·유진화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하승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듯, 21세기 들어 인수공통감염병의 발병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코로나19를 초래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해 기존의 동물 서식지가 무분별하게 침탈당했고, 그 결과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는 기회와 빈도가 증가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여 인수공통감염병의 출현을 초래한 것이다. 이에 우리의 미래 세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에 감염되거나,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사생결단의 투쟁을 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측면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어쩌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우리를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생태 및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발생시킨 결과이므로, 자본주의야말로 신종 감염병 출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코로나19는 재난자본주의의 성격이 그러하듯 인공지능 자본주의를 촉진한다. 곧 재난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코로나19를 바라볼 때, 국가와 자본은 이전의 질서에서 자유롭게 밀어붙일 수 없었던 일들을 감염병이 도래된 상황을 통해 보다 과감하게 시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심각한 노동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가 초래될 공산이 매우 커졌다. 이러한 문명사적 위기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청된다. 심광현과 유진화가 공동 저술한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 문명 전환을 위한 지식순환의 철학과 일상혁명 스토리텔링』(이하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은 오늘날의 ‘인류세-자본세’의 위기 및 노동의 위기를 초래한 인공지능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해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혁명”으로 전환시켜나가는 문명 전환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내용은 현존하는 인공지능 자본주의 체계를 넘어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생산적인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심광현이 저술한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과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는 과학과 철학 개념을 주로 다루며, 유진화가 저술한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은 유진화가 50개의 이야기를 만들고 1부와 3부의 저자가 철학적 해석과 설명을 덧붙인다. 특히 2부는 일상의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에세이를 교차시킴으로써 일상생활의 변혁을 도모하는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책의 주된 문제제기를 집중해서 부각하고자 한다.

인간혁명=사회혁명

저자들은 우리가 지금껏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만 주목했을 뿐, 인간의 활동이 어떻게 자연과 환경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인간 활동의 변혁을 ‘인간혁명’으로 명명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 명칭은, 19세기 맑스와 20세기 그람시로부터 그 의미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들은 ‘인간혁명’ 개념을 “개인과 사회와 자연의 동적 관계가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를 추구하는 혁명적 실천”(9)으로 정의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의 환경적 변화(사회혁명) 못지않게 인간 활동의 혁명적 변화(인간혁명) 역시 중요해진다. 지금까지의 혁명은 오직 사회적 환경 변화에만 집중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20세기에 발생했던 사회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이 책은 맑스의 「포이에르바흐 테제 3」에 기대어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의 일치를 추구한다. 동시에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 변화의 일치를 지식의 ‘수평적 통섭’을 통해 모색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 질서에 바탕한 대안사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산포되어 있는 지식들을 통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통섭된 명시적 지식들이 다시 일상적 경험의 암묵적 지식들과 연결되어 선순환하는 복잡한 회로를 규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회로의 모색이 바로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100-101)이 된다.
환경 변화와 인간 활동 변화의 일치와 더불어 저자는 세계가 물적-인적-정보적 교류의 복잡한 그물망으로 구성되고 특히 뇌신경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 두뇌의 뉴런 연결망의 복잡다단한 회로가 밝혀진 오늘날에 이르러 인간혁명=사회혁명을 실천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고,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개인-사회-자연이 선순환하는 새로운 문명 질서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지구가 처한 위기가 자연 생태계의 위기, 사회 생태계의 위기, 인간생태계의 위기로 특징지어진다면, 이러한 3중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곧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생산과정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자연과의 공진화,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포함한 인간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한 것이다. 이에 새로운 문명질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지구적 공유), 생산력의 생태문화적 재구성, 그리고 사회생활과 일상생활 전반의 민주화를 통해 각자의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세계화’라는 코즈모폴리턴 문명”(13)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사회-자연의 선순환 고리

코로나19 팬데믹을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로 규정하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 등의 생태 및 환경 위기가 지구 환경의 ‘물리적 교란’을 지시하는 반면,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증가 및 확산은 ‘생태적 교란’을 증거한다. 이러한 교란 상황이 초래된 것은 그동안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을 소수가 독점 및 사유화하고 이를 ‘수직적인 사회적 관계’로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19세기 이래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개인적·사회적 면역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계 환경을 착취와 수탈의 방향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폐쇄적 순환회로를 멈추고,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의 공진화를 촉진할 생태문화사회적인 개방회로로 대체하는 광범위한 혁명적 변화”(17)를 제시한다. 이에 덧붙여 사회적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작업이 중요한 까닭은, 20세기의 혁명이 보여주듯이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폭력과 이에 저항하는 혁명세력의 대항폭력 사이에 벌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저자는 발리바르에 기대어 모든 종류의 폭력을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반폭력’의 관점에서 ‘혁명의 문명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혁명의 문명화’는 “대중들의 광범위한 동의와 능동적 참여를 통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제반 폭력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과정의 민주화를 함께 성취하는 혁명적 헤게모니의 확대 재생산 과정”(89-90)으로 이해된다. 곧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경제적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의미할 뿐 아니라 생산과정의 민주화와도 긴밀히 연동된다. 덧붙여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문화적 생산수단 일반의 사회화를 위한 협력교육”(90)이라는 관점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그동안 형성된 지식인과 대중의 분열과 간극을 넘어 지식인과 대중의 협력교육을 통한 전문적인 ‘형식지’와 일상적인 ‘암묵지’의 선순환 고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자연 생태계와 더불어 저자는 사회 생태계의 문제를 탐색하는데, 500여 년 동안 지속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인공지능의 도래와 함께 전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1부 1장). 이는 문명의 전환에 상응할 정도로 큰 변화에 해당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전환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지속되는’ 디스토피아의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대안적 생산관계로 전환’하는 유토피아의 측면이다. 인공지능과 ‘축출’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는 ‘지대’가 초과이윤의 원천이 되는 특징을 띤다(59-60). 인공지능과 자본주의의 결합이 촉진될수록 봉건적 생산양식과 같은 이전 시대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과학과 자본의 결연관계’”를 벗어나 “‘과학기술과 민주적 대중정치의 공진화’”(33)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변환은 개인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역량을 활성화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지식순환의 유형도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자본의 축적과 순환을 조장하고 촉진하는 “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폐쇄회로”와 “비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개방회로”(23)가 바로 그것이다. 비환원주의적 지식순환의 개방회로를 해법으로 추구하는 이 책은, 17세기의 스피노자, 18세기의 칸트, 19세기의 맑스, 그리고 20세기의 시몽동을 끌어들이면서 대안적 지식순환의 철학적 모형을 찾는다.
지금까지 자연 생태계와 사회 생태계의 문제를 일별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의 문제를 살펴볼 차례다. 1부 1장 2절에서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이 문제를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는 인간을 본질적 속성으로 정의하는 대신,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되고 보존되는 다양한 역량들이 환경의 변화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역량들이 맑스가 말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 어떻게 접속될 것인지 탐색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이 문제를 상론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단적으로 이러한 담론들은 ‘사회적 관계’를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단지 네트워크나 창발성 같은 수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급진적인 이론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시급한 과제는 (비)인간/자연의 연결망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와 접속하고 또 탈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이 주도하는 수직적 사회로부터 사회적 협력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사회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을 외재적 관계로만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 간의 신진대사 과정으로 살펴보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개인을 개인-사회-자연의 선순환 과정으로 변혁시킬 행위주체로 재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설정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이원론적 구도로 파악하지 않고 능산적 자연이라는 하나의 실체에 내속한 두 가지 속성(사유와 연장)의 특정한 연결방식으로 파악한 스피노자와, 환경 변화와 자기 변화의 일치가 혁명적 실천임을 강조한 맑스의 관점(「포이에르바흐 테제 3」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개인은 사회와 유리된 파편화되고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개인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게 되는 “멱집합적인 역동적 존재”로 이해된다. 개인의 잠재력과 사회적 변혁이 선순환하면,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경우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인간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혁명”의 가능성이다.

뇌 기능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

이 책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인-사회-자연의 동적 관계를 뇌과학의 문제틀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책이 다른 연구들과 전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개인의 신체와 환경 간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복잡계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이는 뒤에서 살펴볼 ‘주체 양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현대 뇌과학의 여러 성과들을 결합하여 뇌 기능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 구조의 모형’을 제시하고(1부 3장), 특히 비언어적 1차 의식과 고차 의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규명함으로써, 뇌가 인간-사회-자연의 역동적 그물망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저자는 뇌를 매개로 한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작용이 다윈의 진화론과 원리가 동일하다는 에덜먼의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다윈은 ‘자연 선택’과 ‘변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 작용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식물은 ‘체성 선택’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다종다양한 물질과 에너지를 흡수, 변형, 배설해오면서 진화해왔다. 동물은 여기에 뇌의 ‘뉴런 집단 선택’을 추가하면서 감각 운동 고리를 증진시켜왔다. 특히 인간은 손과 입술을 발전시켜서 ‘도구 제작의 기술적 선택’과 ‘언어 선택’의 범위를 넓혀왔다. 요약하면, 인간의 뇌는 ‘체성 선택’ ‘뉴런 집단 선택’ ‘도구 제작의 기술적 선택’ ‘언어 선택’이라는 다차원적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온 셈이다(1부 3장 7절).
덧붙여 ‘다중 스케일’의 관점에서 뇌 기능의 회로는 다음의 세 가지 스케일로 구성된다. “① 미시 스케일: 천 억 개가 넘는 뉴런(신경세포)들의 복잡한 연결망으로 구성된 신경생리학적 회로, ② 중간 스케일: 지각-행동 고리의 일반적 회로, ③ 거시 스케일: 어포던스(affodance)-미메시스(mimesis)-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의 순환”이며, 우리가 일상적인 차원에서 경험하는 인지생태학적 발달회로”(163) . 이 중 거시 스케일을 풀어 설명하면, 어포던스는 제임스 제롬 깁슨이 만든 신조어로 외부 환경이 안겨다 주는 행동 유도 기회를 말하는데 긍정적 어포던스와 부정적 어포던스로 나뉜다. 물, 공기, 대지 등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환경 자원들이 긍정적 어포던스이고, 환경오염 등이 부정적 어포던스에 해당한다. 어포던스에는 자연적 어포던스 뿐만 아니라 사물과 같은 인공적 어포던스도 포함한다. 오토포이에시스는 “자기 생산의 역량의 총체”를 뜻하는데, 스피노자의 “욕망=코나투스(contatus, 자기 보존을 위한 노력)”에 상응한다. 마지막으로 미메시스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몸의 변화의 상호 작용을 매개하는 일련의 능력들을 지시한다(165-166). 이렇듯 인간의 두뇌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방식으로 다종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두뇌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환경이 제공하는 정보를 추상적 패턴화 작업을 통해 정리하며, 동일한 이유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뇌가 그리는 추상적 패턴을 좀 더 일상적인 언어로 번역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자는 뇌 기능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철학적 실천과 연결 짓는다. 여기서 철학적 실천이란 “‘뇌의 신체 지도’와 상응하는 ‘정신적 항해 지도’”를 그리는 실천이고, 이를 통해 “다층적인 환경의 변화와 상호 작용 하는 자기변혁의 실천적 테크놀로지”(196)를 의미한다.
이렇듯 저자의 주된 초점은 뇌 구조에 관한 생리학적 이해를 향하기보다는, 뇌 기능의 이해를 통한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주조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이런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스피노자, 칸트, 맑스, 프로이트, 벤야민, 시몽동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환경의 변화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규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므로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가시화하는 작업은 이러한 철학적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 문제는 1부의 4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규명된다. 1부 4장은 3장에서 제시한 ‘뇌 기능의 인지생태학적 모형’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사용하는 마음의 능력들(감각, 욕구, 감정, 욕망, 오성, 이성, 판단력, 상상력 등)과 연계하여 분석한다. 이 중에서도 칸트는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데, 저자는 자기, 타자, 자연의 선순환 고리를 사유했던 칸트의 질문이 동시대 뇌과학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칸트가 제기했던 문제를 ‘피드포워드(상행) 과정’과 ‘피드백(하행) 과정’의 문제로 재구성한다. 피드포워드 과정은 “미시적 뉴런 집단들이 만드는 국지적인(로컬한) 카오스적 진동들이 합쳐지면서 거시적이고 전체적인(글로벌한) 연결망”으로 조직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피드백 과정은 이러한 “거시적 연결망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미시적인 뉴런 집단들의 활동 패턴을 다스리는”(233) 과정이다.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전후뇌·좌우뇌·삼부뇌의 기능들이 미시와 거시를 지속적으로 왕복하며 순환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있다. 이어서 저자는 주체 양식의 철학적 모형을 ‘생활양식의 일상적 변혁’과 연동시킨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지식의 생산은 ‘분절화된 형식적 지식’과 ‘비분절화된 암묵적 지식’의 결합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은 이러한 결합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이라는 것은 기존의 결합양식과 차별화된 ‘형식지’와 ‘암묵지’의 새로운 결합 메커니즘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중심 주제인 인간혁명과 사회혁명 간의 선순환 고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형식지의 유형과 배치를 변화시키는 일”과 “기존의 암묵지를 대안적 암묵지로 바꾸는 일”(278)이 동시에 실천되어야만 한다.

네 가지 실존양식: 생산양식, 통치양식, 주체 양식, 생활양식

저자는 1부 2장 5절에서 생산양식, 통치양식, 주체 양식, 생활양식 등의 기본 범주를 제시한다. 주지하듯, 생산양식이 생산력(생산수단+노동력)과 생산수단(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과정의 통제 방식)의 결합양식을 지시한다면, 생활양식은 “생활력(사회적 생산력에 조응하는 개인적 생활력)과 생활관계(생활수단의 소유와 생활과정의 통제 방식)의 결합양식”(131-132)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 통치양식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결합양식을 뜻한다면, 주체 양식은 “마음의 습관(억압적 국가장치의 생산양식의 재생산과 통치 기능에 조응하는 개인적 마음의 패턴)과 마음의 능력(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이데올로기적 재생산과 통치 기능에 조응하는 개인적 마음의 재생산과 통치 방식)의 결합양식”(132)으로 정의된다. 이처럼 책에서는 이 네 가지 실존양식이 인간과 환경의 (불)일치의 경로와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기본 범주로 제시된다.
저자는 네 가지 실존양식을 개인 구성체, 사회 구성체, 자연 구성체와 중첩하고 교차시킨다. 우선 사회 구성체와 개인 구성체 개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와 알튀세르가 ‘사회 구성체’를 정치, 경제, 문화, 법, 이데올로기 실천의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으로 파악하였듯, 개인 역시 일관된 통일체가 아닌 “무의식과 의식, 몸과 마음의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에 의해 갈등하는 가변적인 ‘개인 구성체’”(130)로 파악된다. 이는 단지 욕망하는 주체라는 측면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여러 심급들의 관계적 차원에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 구성체가 생산양식과 통치양식으로 구성된다면, 개인 구성체는 주체 양식과 생활양식을 포함한다. 이 범주들은 서로가 서로를 조건 짓고 또 제약한다. 이를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생산양식은 통치양식에 “물질적 토대와 한계”를 제공하고, 통치양식은 생산양식에 대해 “재생산을 보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생활양식은 주체 양식에 “물질적 토대와 한계”를 부여하고, 주체 양식은 생활양식에 “재생산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131).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자연 구성체 개념도 새롭게 정식화한다. 기존의 자연 개념은 우주나 신의 섭리처럼 다소간 신비주의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거나 고정된 불변의 실체인 주어진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저자는 개인과 사회를 개인 구성체와 사회 구성체로 개념화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자연을 복잡하고 상이한 여러 심급들 간의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에 의해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자연 구성체로 파악한다.
이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을 전개하기 위한 기본 범주들에 해당한다. 저자는 맑스, 아리기, 하비의 이론에 기대어 노동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이 불러일으키는 공간 변화가 역사적 궤적과 연결되는 방식, 즉 “환경의 역사적·지리적 변화의 구조적 리듬을 종합적으로 파악”(102)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 설정이 ‘역사지리’에 관련된다면, 그동안 쌓인 뇌신경 과학의 성과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모순적 상호 작용을 파악하는 과정이 ‘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에 연관된다. 가속화된 자본 축적의 역사지리적 리듬은 인지생태학적 위기와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책에서 제시하는 환경 개념은 각별한 주의를 요청하는데, 그것은 역사지리와 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이 결합된 개념이다. 즉 환경은 이미 주어진 어떤 대상이기는커녕, “사회적 노동을 매개로 한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의 역사지리적 변화의 복잡한 과정”(114)으로 받아들여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 분석’은 기존의 비판적 사회과학 및 인지과학과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첫째, 오늘날의 비판적 사회과학은 공간 변화 리듬과 역사 변화 리듬을 교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뇌과학의 문제를 다루지 않음으로써 인간-사회-자연의 역동적 순환관계를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주류 인지과학은 연구 대상을 기술적인 차원에 국한함으로써, 뇌가 인간, 도구, 대상, 환경이 결합하는 전체 회로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분석하는 것을 간과한다(115).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혁명=사회혁명이라는 이 책의 중심 테제, 즉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의 일치”(맑스)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를 ‘우발성의 유물론’에 입각해 마주치게 하고, 이러한 마주침을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혹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일상혁명

일관되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강조한 저자들의 입장으로부터 큰 무리 없이 유추할 수 있듯, 스토리텔링에서도 저자들이 방점을 찍는 부분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단지 이야기(story)를 말하는 것(telling)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사회-자연의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직면한 대중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시할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알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풀어감으로써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경험 및 정서적 공감마저 견인해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은 인간-사회-자연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서 일종의 지도를 그리는 행위와도 같다.
저자는 리쾨르의『시간과 이야기』 3부작(1982~85)을 열쇳말 삼아,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의 일반 모형’을 설계한다. 리쾨르가 설명한 ‘삼중의 미메시스’에 따르면, ‘미메시스 1’은 “현실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벌이는 복잡한 행위들 중에서 윤리적·정치적으로 모방할 가치가 있는 행위의 선택”(588)이다. ‘미메시스 2’는 미메시스 1을 바탕으로 작가가 변형해낸 인공적인 텍스트를 뜻한다. ‘미메시스 3’은 미메시스 2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을 가리키며, 텍스트와 수용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뜻한다. 여기서 미메시스 2는 미메시스 3과의 관계 속에서 두 가지 갈래(미메시스 3-1과 미메시스 3-2)로 나뉜다. 미메시스 3-1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에 기초한 감정의 카타르시스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체의 특정한 모순과 갈등을 봉합한다면, 미메시스 3-2는 “미메시스 1을 감싼 이데올로기 내부에 일정한 내적 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데올로기를 ‘보고, 지각하고, 느끼게’하는 방식으로 미메시스 2라는 허구적 텍스트를 생산”하고, 그럼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기존의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맥락에서 2부에서는 일상을 변혁시키려는 대중의 실존적 투쟁을 ‘가상의 스토리텔링’이라는 형식을 통해 예시한다. 2부에서는 일상의 이야기 50가지가 펼쳐지는데,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유진화가 이야기를 만들고 1부와 3부의 저자인 심광현이 여기에 철학적 해석을 덧붙인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삶의 문제를 풀어내는 7명의 남녀노소는 7세 나나(여), 17세 오푸름(남), 27세 길유(여), 37세 한태양(남), 47세 남우누리(여), 57세 박범(남), 67세 양지애(여)이다. 2부 1장은 ‘몸의 자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와 싸워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지속적인 학교 폭력을 당하기만 하던 오푸름이 자유를 쟁취해나가는 과정(ST. 4), 갱년기 여성 남우누리가 자신의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삶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해나가는 과정(ST. 10), 몸이 아파 꼼짝없이 이틀 동안 누워 있다 우연히 경험하게 된 유토피아의 순간(ST. 11),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방황을 거듭하던 박범이 ‘비움과 채움의 반복’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ST. 12) 등이 바로 그것이다.
2부 2장부터는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예컨대 사기를 당해 여섯 식구의 터전이었던 42평 아파트를 잃고 21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된 상황(ST. 18)이 펼쳐진다.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2부 2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기예’를 실천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아파트 옥상을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하거나(ST. 20), 필요 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더러는 일일 장터에서 팔기도 하면서, 아파트를 싹 비우는가 하면(ST. 22), 베란다에 공중전화 부스를 만들고 텃발을 만들어 일구기 시작한다(ST. 24). 아내와 사별한 후, 자식들과 연을 끊고 살아가는 박범은 가족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짓고(ST. 26), 양지애 할머니는 고독한 지리산 산중에서 한글을 깨치고 노래를 부른다(ST. 28). ‘공간의 감정’이라는 제목이 붙은 2부 2장의 이야기들은 처음에는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기예’를 실천하다가, 점점 ‘인간의 자연’과 ‘비인간의 자연’ 간에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음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인간과 주어진 자연 간의 외재적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생산하는 인간이 더 큰 생산자인 자연과 일치를 이루는 과정이다.
2부 3장은 사람들의 관계를 다룬다. 무인도에 표류한 인물들이 처음에 느꼈던 강렬한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고 협력과 연대를 실천하는 모습을 담은「세대」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세대관계를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만드는 우화로 이해될 수 있다(ST. 34). 이는 또한 필연과 우연의 렌즈를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기존의 필연적 질서를 쪼개어 새로운 우연들을 드러내고, 그러한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발명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는 ‘대화적 언어’를 필요로 한다. 대화적 언어는 쉽게 말해 각자의 고유한 내면의 세계를 타자들과 연결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ST. 38; ST. 40).「성찰」은 ‘대화적 언어’를 예시한 경우로서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알려준다(ST. 39). 그것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대립을 넘어서,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공존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지 일깨워주고, 그러한 과정이 ‘성찰’을 매개한 과정이라는 점을 밝힌다. ‘성찰’이라는 렌즈를 통해 모방 개념을 살펴보면, 이때의 모방은 외부적 환경을 모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환경과 마주하는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모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자연은 내 앞에 높인 외적 자연이 아니라,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자연이 된다(ST. 42).
2부 4장은 인지생태학의 관점에서 칸트의 이론을 예시화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1부에서 설명했던 인지생태학적 이론을 보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풀어낸다. 칸트가 말했던 여섯 가지 마음의 능력들(감각, 감정, 욕망, 오성, 이성, 판단력) 각각의 기능과 그 능력들의 관계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인지생태학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를 해명한다. 즉 저자는 인지생태학의 관점에서 칸트가 규명했던 능력들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감각, 감정, 욕망이 감성(비언어적 1차의식)을 구성한다면, 오성, 판단력, 이성이 지성(언어적 고차 의식)을 구성한다. 감각-오성의 조합이 외부의 비자기(어포던스)를 인식하고, 욕망-이성의 조합이 내부의 자기(오토포이에시스)를 함양한다면, 감정-판단력의 조합은 미메시스 능력을 증진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마음의 능력들 중에서 이성이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자본의 축적 및 순환이 확산되면서, 전체를 사고하는 우뇌의 기능이 축소되고 부분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좌뇌의 기능이 확대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지 좌뇌에 바탕한 오성의 사용을 우뇌가 주도하는 이성의 사용으로 ‘대체’할 것이 아니라, 오성을 “이성의 관심 속에 ‘재배치’”(514)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상황이 그렇다면 외부 세계로부터 어포던스를 획득하는 것은 곧바로 자신의 오토포이에시스를 확장하는 수단이 되고, 같은 이유에서 오토포이에시스의 증가는 “자기 자신의 자유와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와 행복의 증진을 함께 삶의 목적으로 삼는 윤리적 노력, 즉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521)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어포던스와 오토포이에시스의 선순환 관계가 중요한데, 저자는 삶의 인지생태학적 조건들이 파괴되는 오늘날과 같은 이행기에서는 개인 주체 스스로 오토포이에시스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마음의 능력들 사이에는 위계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마음은 중앙 집중적 위계 없이도, “각 요소들이 ‘목적이면서 교호적으로 수단이 되는’ 일종의 ‘자기조직적인 체계’”(537)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고 교류하게 하는 매개로서 판단력과 감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실천이성과 사변이성을 구별하듯, 판단력 역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으로 구별된다. 규정적 판단력이 기존의 좌표 내에 사례를 위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반성적 판단력은 좌표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그 좌표 속에 대상을 위치지우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을 구성하는 각각의 능력들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능력들 모두가 최적화된 연결을 이루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성찰”(542)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한 “이행기의 격랑을 헤쳐 나갈 인간혁명의 방법론(항해술)”(552)이 의미하는 바다.

나가며

3부는 지금까지 언급했던 모든 개념과 범주를 바탕으로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선순환’의 경로와 궤적을 찾는다. 생산양식과 주체 양식을 접합한 ‘수평축’이 있는가 하면, 생활양식과 통치양식을 접합한 ‘수직축’이 다른 한편에 놓인다. 이처럼 수평축과 수직축이 교차되는 가운데, 저자는 “혁명적 실천의 새로운 지도”(604)를 그리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제도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어왔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미시정치의 슬로건도 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미시정치의 구호가 인간, 비인간, 사회, 자연, 환경이 맺고 있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로서 사회적 개인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시야에서 지워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와 비자기의 역동적 연결망을 확장하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자기와 비자기의 연결망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정치주체로서의 개인이 4분면에 위치한 이미 정해진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4분면 전체를 넘나들며 자기와 비자기의 역동적 결합을 조절해나가는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적인 존재”(653)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미 정해진 주체가 존재하고 그러한 주체들이 외재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비자기의 동적 관계를 선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구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저자가 힘주어 강조했던 네 가지 실존양식과 각 좌표면에 위치한 ‘대안사회’의 요소들은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표와 다이어그램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역사지리, 인지생태학, 철학적 분석들이 교차하는 복잡한 지식순환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각화’의 방법을 사용한다. 동시에 이 책의 전체 구성이 학문적·사회적 형식지와 개인적 암묵지의 선순환 구조에 조응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1부가 학문적·사회적 형식지에서 개인적 암묵지의 방향으로 하강한다면, 2부는 1부와 달리 개인적 암묵지에서 학문적·사회적 형식지로 상승하는 구조를 취한다. 3부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서로 스며들어 인간혁명=사회혁명이 선순환하는 청사진을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이는 전술했던 어포던스-미메시스-오토포이에시스의 순환 구조와 상응한다.
이 책은 인간혁명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기 위해 기존의 과학, 철학, 역사, 인문ㆍ사회과학 지식을 총망라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수많은 범주와 개념이 등장한다. 저자는 맑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전의 범주를 변형, 교차, 확장하면서 논의를 확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네 가지 실존양식은 개인 구성체, 사회 구성체, 자연 구성체와 겹쳐지고 교차되면서 유의미하게 재구성된다. 저자의 방대한 이론적 사유 앞에서 주눅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이 책을 살펴보면 이 책의 내용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풀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의 인내심을 갖고 이 책을 살펴보면 저자가 설명한 철학적 매뉴얼과 청사진을 뒤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복잡한 개념들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저자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저자는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여러 안내판을 세심하게 설치해놓았다. 다양한 다이어그램과 표를 동원하여 ‘시각화’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읽은 후, 기존의 협소한 지식 생산의 틀을 넘어 지식의 선순환 구조가 제시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구성하는 각 장과 절마다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사유 행위를 통해 저자가 제시한 토픽들과 마주하고 씨름할 수 있도록 촘촘한 바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정치·경제적 수준에서의 ‘다중 스케일 네트워크’의 우연하고도 복잡한 ‘마주침’을 역사지리/인지생태학/철학적 분석의 방법론을 통해 살펴보는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까지』는 새로운 문명 질서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 최적의 항해 지도를 제공할 것이다.


목차


전문: 21세기 문명 전환의 열쇠, 인간혁명

서론: 전 지구적 다중위기와 이행기의 나비 효과

1부 인간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식순환의 철학적 실천

1장 인공지능자본주의의 역설과 성년기 인류의 과제

1절 인공지능자본주의의 역설과 내파
2절 사회 발전의 두 모형과 인간 개념의 표류
3절 다중위기 속의 기회, 성년기 인류의 과제

2장 역사지리-인지생태학과 인간혁명의 시대
4절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리듬분석
5절 인간혁명의 개념 정의
6절 사회구성체, 개인구성체, 자연구성체

3장 뇌 기능의 인지생태학적 모형
7절 뇌 기능의 다중스케일 네트워크
8절 뇌 기능의 시공간적 다중스케일 분석
9절 뇌의 다기능적 원환의 철학적 함의
10절 의식의 탄생과 무의식의 역할

4장 주체양식의 철학적 모형
11절 시몽동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해석
12절 칸트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해석
13절 스피노자 철학과 칸트 철학의 인지생태학적 연결
14절 자유?평등?연대의 철학적?인지생태학적 순환 모형
15절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

2부 일상혁명 스토리텔링과 철학적 탐구의 순환

전문: 협력의 네트워크 ‘빛나는 날’

1장 몸의 자유
ST1. 신호 101. 수직적인 최고의 삶에서 수평적인 최적의 삶으로 ST2. 용기 102. 몸에 내재한 타나토스 일깨우기 ST3. 빛 ST4. 반전 ST5. 다름 103. 우연한 마주침과 반전의 마법 ST6. 생명력 ST7. 연관 104. 상품들의 연관에서 생명의 연관으로 ST8. 협력 105. 진화의 제3 원리 ST9. 역경 ST10. 변화 106. 생명의 역동적 균형 ST11. 유토피아 ST12. 충전 107. 비움과 채움의 반복과 무의식적 선택 ST13. 대상 ST14. 이치 108. 의식적 선택과 자연의 윤리

2장 공간의 감정
ST15. 부러움 109. 협력의 가치 ST16. 영원 ST17. 생존 110. 욕구의 피라미드를 타원의 상호작용으로 ST18. 전환 ST19. 연상 111. 물리적-정신적 시공간의 재배치 ST20. 여행 ST21. 연기 112. 소원성취라는 ‘가족적 유사성’ ST22. 비움 ST23. 시간표 113. 공간의 패러다임 전환과 시간의 경제 ST24. 생동 ST25. 환상 114. 생태문화도시를 향한 고차의식의 레비 비행 ST26. 기다림 ST27. 웃음 115. 민주적 협력가족과 웃음의 네트워크 ST28. 자연 116. 공감과 반감의 역동적 네트워크

3장 관계의 흥
ST29. 애정 ST30. 거울 117. 사랑의 재입력 고리와 에로스의 성장통 ST31. 평등 ST32. 창조 ST33. 활동 118. 다차원적 미메시스와 지각-행동 고리의 재충전 ST34. 세대 119. 수직적?적대적 세대 관계에서 수평적?협력적 세대 관계로 ST35. 우연 ST36. 언어 120. 필연의 담론에서 우연한 마주침의 대화로 ST37. 노력 ST38. 기쁨 121. 반성적 취미로 확장된 기쁨의 회로 ST39. 성찰 ST40. 인격 122. 성찰적 인격으로 매개된 간주관적 자유의 네트워크 ST41. 모방 ST42. 감동 123. 미메시스로 퍼져나가는 감동의 동심원

4장 마음의 축제
ST43. 마음 124. 마음의 능력들의 전방위 네트워크 ST44. 감각 125. 특수감각과 내장감각을 매개하는 체성감각 ST45. 오성 126. 개념을 통한 보편성의 사고 ST46. 욕망 127. 요구와 욕구의 변증법 ST47.이성 128.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실천이성 ST48. 감정 129. 자기와 비자기의 상호작용의 감성적 균형 조절?경보 장치 ST49. 판단력 130. 마음의 능력들 전체의 역동적 균형 ST50. 이야기

3부 인간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1장 인간혁명의 항해술
1절 주체양식의 복잡계 네트워크
2절 통섭적-대화적 스토리텔링의 일반 모형
3절 시공간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재배치

2장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선순환 경로 찾기
4절 사회구성체의 다중스케일 분석과 이행 과정 설계
5절 생산양식?주체양식?통치양식?생활양식의 선순환 회로
6절 지식순환 협력교육, 일상생활의 실험, 어소시에이션의 정치

결론: 인공지능 매트릭스 대 인간혁명의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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