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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기 의병장 73인의 기록 세트 (전5권)

일제침략기 의병장 73인의 기록 세트 (전5권)

  • 이태룡 엮음
  • |
  • 광문각
  • |
  • 2022-08-15 출간
  • |
  • 1420페이지
  • |
  • 152x225x80mm/2698g
  • |
  • ISBN 978897093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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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일제침략기 의병장 73인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책!

 

1894년 7월 23일(음력 6월 21일) 일본군 육군 소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가 혼성여단 5천여 명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쳐들어와서 조선 국왕을 겁박하는 가운데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는 그 앞잡이들에게 내각을 꾸리게 하여 갑오왜란(甲午倭亂)을 일으켰다. 일제는 그 앞잡이 내각과 ‘조선은 일본군의 진퇴와 그 양식 준비 편의를 도모해 줄 것’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조일공수동맹(朝日攻守同盟)’을 비밀리 체결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켜서 승리한 후 이듬해 그들의 침략에 방해되던 조선 왕비를 참살하였다.

이에 배달겨레는 ‘국수보복(國讐報復, 나라의 원수를 갚자, 국모의 원수를 갚자)’을 기치로 의병을 일으키니 일제침략기(1894~1910) 전기의병이었다.

 

1903년 10월부터 일제는 그 앞잡이들을 내세워 비밀동맹을 체결하여 러일전쟁이 일어나면 인적ㆍ물적 자원을 제공하도록 획책하였는데, 광무황제는 이를 재가하지 않고, 비밀리 이용익(李容翊) 일행을 청국 지푸(芝罘)로 보내어 ‘만약 러일전쟁이 일어난다면 엄정중립을 지키겠다’라고 선언하였다. 일제는 이용익을 일본으로 납치하고, 다른 사람들은 감금한 후 황제의 재가가 필요한 ‘조약’ 대신, ‘의논(議論)해서 정(定)한 문서(文書)’라는 의미의 ‘의정서(議定書)’를 만들어 일본공사와 일제로부터 비밀리 거액의 뇌물(1만원, 당시 쌀 1만석 가격)을 받은 외부대신 임시서리 이지용과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에 국권회복(國權恢復)을 위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경술국치 전후까지 7년 동안 줄기차게 일본 군경을 상대로 싸웠던 의병이 후기의병이었다.

 

일제는 의병진압을 위해 군사령부를 용산에 두고, 남부수비관구에 보병 2ㆍ14ㆍ47연대, 한국파견기병대, 중포병대대를, 북부수비관구에 보병 13ㆍ23ㆍ27ㆍ45ㆍ64연대, 기병 6연대, 야포병 6연대, 공병 6대대를 배치했고, 1909년 6월에는 14연대 대신 보병 12여단과 보병 3연대를 영남에, 보병 1연대를 호남에 배치했으며, 경기ㆍ황해도 앞바다는 군함과 수뢰정을, 전남 앞바다는 수뢰정을 운용하였고, 전국에 헌병분대ㆍ분견소, 경찰서ㆍ주재소를 두고 헌병ㆍ경찰 5만여 명을 동원했으니, 일제가 러일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견한 일본 군경 수보다 더 많았다.

일본 군경의 기록에 따르면, 1907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일본 경찰이 간여한 의병진압 횟수는 1,976회, 의병수 82,767명, 순국자 5,721명이고, 1907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의병이 13,445명이었다.

이는 전기의병과 을사늑약 전후부터 의병이 가장 거세게 일어났던 1907년 여름과 가을, 1908년 5월 이후부터 경술국치 전후까지 의병투쟁 통계가 나온 것이 아니기에 이를 보태면 일제침략기 의병 순국자와 부상자는 10만여 명, 투옥자는 5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데 학자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이 책의 1권 ‘경인지역’ 편에서는 일본군이 러일전쟁 때 활약했던 군함과 수뢰정을 동원하여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을 왕래하는 의병의 나룻배나 어선을 공격한 내용을 담은 「일본 군함ㆍ수뢰정과 맞선 김용기 의병장」 등 17인의 의병장이 이끈 의진(義陣)의 삶을 실었다.

 

2권 ‘영남지역’ 편에서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니 국왕은 온 백성을 불러 성을 등지고 한 번 싸울 것”을 강력히 상소한 「1만 경남의병 이끈 노응규ㆍ정한용 의병장」, 경남 안의군 서상면장 최영내가 문태서 의병장을 붙잡아 초주검에 이르게 하여 일본군 헌병대에 인계한 후 ‘구타치사죄’로 재판을 받은 사실을 밝힌 「13도창의대진 호남창의대장 문태서」 등 16인의 의병장이 이끈 의진의 삶을 실었다.

 

3권 ‘중부지역’ 편에서는 1907년 7월 심상훈이 ‘이강년에게 도체찰사 제수’의 광무황제 비밀칙령을 가지고 온 내용 등을 정리한 「대한제국 도체찰사 이강년 의병장」, 1907년 겨울 13도창의대진이 서울진공을 할 때 몸소 2천 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출한 「13도창의대진 총대장 이인영」 등 13인의 의병장이 이끈 의진의 삶을 실었다.

 

4권 ‘호남지역’ 편에서는 일본군 수비대ㆍ중포병대대와 연곡사에서 격전을 치르고 순국한 「일제침략기 호남의병장 녹천 고광순」, 전남에서 가장 맹렬한 의병장을 붙잡기 위해 기병ㆍ특설순사대의 8개 부대가 동원된 「일제침략기 호남의병장 김준ㆍ김율 형제」, 광무황제의 비밀조칙을 받고 호남 연합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재판정 최후 진술에서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눈을 떼어 동해에 걸어두라. 너희 나라가 망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라고 준엄하게 호통친 「호남연합의진 호남동의단 대장 전해산」, “섬나라 도적을 섬멸하지 않으면, 죽어 혼백조차 돌아오지 않겠다.” 하고 2년여 의병투쟁을 전개해 오던 1909년 1월, 일본군이 “총탄 996발을 소모했다”라고 한 어등산전투에서 전사 순국한 「일제침략기 어등산 의병대장 조경환」 등 19인의 의병장이 이끈 의진의 삶을 실었다.

 

5권 ‘국외’ 편에서는 치하포 주막에 있던 사람들에게 ‘의병좌통령’ 첩지를 보이고,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왜인을 죽이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는 글을 써서 방을 붙인 「의병좌통령 김창수(김구)와 인천ㆍ강화」, 하얼빈의거 계획을 유인석에게 보고하고 돌아가는 나룻배에서 자신이 소지한 헌 권총과 이진룡이 소지한 새 권총을 바꾼 「하얼빈의거와 안중근 의병장」, 등 8인의 의병장이 이끈 의진의 삶을 실었다.

 

화승총으로써 대포와 기관총, 6연발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재산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의병의 삶을 통하여 그 숭고한 얼을 기리고,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 책은 2008년 「부산일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순국』, 2020년 「인천일보」 등에 연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제침략기 전국 주요 의병장 73인이 이끈 의진의 의병투쟁 내용을 살펴본 것으로 국내외 원전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은 그 출처를 밝혔으며, 번역이나 해석이 잘못된 것은 바로잡았다.

 

이 책의 출간에 많은 도움을 주신 순국선열유족회 김시명ㆍ이동일 회장님, 국립인천대학교 최용규 학교법인 이사장님, 박종태 총장님, 조봉래 인천학연구원장님, 광문각 박정태 대표이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목차

『제1권 경인지역』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강기동

 

 헌병보조원 출신 의병장

 서울 태생의 기병대 참교 출신

 헌병보조원의 연원과 인원수

 헌병보조원 중, 의병 참여자

 이은찬 의진에 참여하다

 창의원수부 중군장이 되어

 돌압산 전투에서 승전하였으나

 경술국치 이후까지 독자 의진 이끌다

 원산에서 피체, 용산에서 총살, 순국

 

13도의병 총도독(總都督) 김수민 의병장

 

 김수민 의병장은 어떤 분이었나?

 대·소포로 무장하여 의병투쟁에 나서다

 13도창의대진 총대장 이인영 직할대와 합진

 13도창의대진 활동 이후의 의병투쟁

 과감한 서울 잠입과 서울진공작전 모색

 공훈록의 오류, 바로잡아야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김연성

 

 성균관 박사로 벼슬길에 나아가다

 권중설 의진에 참여하다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다

 서울진공작전 전개 후 임진강 유역으로

 허위 의병장 도와 2차 서울진공작전 꾀하다

 창의군수부 참모장으로 활약하다

 김연성 의병장은 교수형으로 순국했나

 

일본 군함·수뢰정과 맞선 김용기 의병장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 의병투쟁 기록

 배를 이용한 의병장 실체 드러나다

 일제, 러일전쟁 때의 군함과 수뢰정 동원하다

 피체와 순국

 

남한산성 점령했던 김하락 의병장

 

 갑오왜란 일어나다

 갑오왜란에 반발, 의병 일어나다

 을미왜란으로 전국에서 거의하다

 김하락, 대규모 의병 일으키다

 남한산성 점령하다

 의병 해산령 내리다

 남한산성 내주고 영남으로 향하다

 경북지역의 의병 상황

 경북지역 여러 의진과 함께하다

 이천의진의 최후와 김하락의 순국

 

강화분견대 병정 출신 의병장 박계석

 

 의병장이 된 강화분견대 병정

 의병투쟁과 고분 도굴범·밀정 처단

 강화도의병 진압과 공훈록 유감

 

강화도까지 진출한 평산의병장 심노술

 

 박정빈 의진에서 의병활동 시작

 강춘삼·이근수 의진 등과 연계하다

 일제의 귀순 공작, 논리적으로 반박하다

 강화도 지역까지 진출하다

 13도창의대진 서울진공작전 전개 후 재거의

 독자적인 의진 형성하여 명성 떨치다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다

 

13도창의대진 대대장 연기우 의병장

 

 강화의병장이 되어

 강화 출신 및 강화도에서 활동한 의병

 강화도는 의병이 만든 의병 세상

 강화분견대 봉기에 참여한 후 장단으로

 13도창의대진 대대장으로서 서울진공작전

 서울진공작전 때 부상당해 피체 후 탈출

 다시 강화도에서 의병투쟁

 경술국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의병투쟁

 길이 빛나는 충혼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왕회종

 

 숭의전 참봉에서 의병장으로

 일제의 초토화 작전

 거족적인 반일 의병투쟁

 500~1,000명 대규모 의진 형성하다

 전 의정부 참찬 허위를 초빙하다

 1907년 9월, 5차례 일본군과 접전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고, 간도로 향하다

 

강화분견대 봉기의 주역 유명규 의병장

 

 군대 없는 나라가 되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강화도 군인

 강화분견대 봉기 과정과 결과

 강화분견대 의병투쟁 기록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윤인순

 

 ‘한말의병(韓末義兵)’이란 용어의 모호함

 경기 북부지역에서 의병투쟁 벌이다

 창의원수부 진무영대장·우군장이 되어

 창의원수부와 경기 북부지방 의진들과 연합

 의병들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하다

 윤인순 의진 포상자는 아직도 미진하다

 

연평도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이근수

 

 연평도 역사

 경기·황해도 섬 지역 의병활동

 신비의 인물 이근수 의병장

 이진룡 의진에서 시작한 의병투쟁

 황해도 해안과 섬 지역에서 활동

 5시간 격전의 연평도전투

 

강화 대동창의진 대장 이능권

 

 이준 특사 호위무관 이능권 귀가하다

 이능권, 이준 특사 호위무관으로 선발

 헤이그 특사 파견은 언제부터였나?

 헤이그 특사 호위무관의 막중한 책무

 『대한매일신보』 호외

 이준 특사의 자결과 광무황제 퇴위 소식

 강화분견대 군인과 강화군민의 분노

 이능권, ‘대동창의진’ 대장에 올라

 이능권의 피체와 순국

 

경기 중남부 의병장 옥여(玉汝) 임경재

 

 광무황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 거의하다

 이천의진 좌익장으로 의병투쟁

 붙잡혀 피살, 순국하다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정용대

 

 군대 해산 후 낙향해서 아동 가르치며

 창의원수부 좌군장으로 활약

 막강한 의진 이끌고 김연성 의진과 연합

 창의원수부 의진의 활약상

 창의군수부 돌격장, 창의원수부 대장으로

 피체, 경성감옥에서 순국하다

 

경기도 북부지방 의병장 조인환

 

 군대 해산 직후 의병의 모습

 양주·파주·적성에서 1천여 의병 이끌다

 조인환 의병장에 대한 일제 기록

 『독립운동사』 경기의병 편 첫 번째 등장

 의병들의 피로 물든 산하

 조인환 의병장에 대한 공훈록과 신문기사

 조인환 의병장의 피살과 일제의 만행

 

황해도까지 진출한 강화의병장 지홍윤

 

 지홍윤 의병장의 피체와 진술

 강화지역에서의 의병투쟁

 지홍윤의 행적과 공훈록

 

찾아보기

 

『제2권 영남지역』

 

양산 만석꾼 김병희·교상 부자 의병장

 

 황산역에 나타난 이상한 무리들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고 피체되다

 『폭도에 관한 편책』의 내용

 김병희·김교상 부자의 관직

 아홉 살 꼴머슴, 만석꾼 되다

 ‘노블레스 오블리즈’ 실천과 농경 선구자

 

전기 안동의진 소모장 김준모 의병장

 

 을미왜란·단발령 이후 안동·예안 유림

 안동의진 구성되다

 안동지역 의병투쟁

 안동의진의 소모장으로 활약, 전사 순국

 고난 속에서 조국 광복 도모한 김준모 후손

 

1만 경남의병 이끈 노응규·정한용 의병장

 

 진주 관찰부, 의병 수중에 들어가다

 정한용, 진주의병 일으키다

 매우 절박하여 극언에 가까웠던 창의소

 거의 밀조 봉독 후 부왜관리 참수하다

 경남의병, 부산 진공에 나서다

 선유사의 선유문에 의병 해산하다

 안의 서리배에 부형이 희생되다

 『지부자현소(持斧自見疏)』 올리다

 벼슬길에 올랐다가 재거의하다

 독립유공자 포상되지 못한 정한용 의병장

 

13도창의대진 호남창의대장 문태서

 

 문태서 의병장 행적 찾아 나서다

 문태수 장군의 삶에 대해 살펴보다

 문태수 장군의 활약상

 

화천지수(華泉之水) 충절 산남의진

 

 ‘짐망 화천지수(朕望華泉之水)’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들 뒤를 이어 의병장에 오른 아버지

 산남의진 3대 대장 최세윤 의병장

 부자 의병장의 거룩한 순국

 

경북 전기의병 이끈 서상렬 의병장

 

 선전관 벼슬 버리고 유중교 문하생으로

 제천의진과 호좌의진에 참여하다

 안동의병

 서상렬, 경북의병 맹주되다

 제천으로 돌아오다

 낭천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하다

 

이강년과 연합작전 펼쳤던 신태식 의병장

 

 신태식 의병장 후손을 찾아서

 다시 거의하다

 피체와 옥중생활

 출옥과 귀향

 지칠 줄 모르는 반일투쟁

 적선지가 필유여경

 

일제침략기 안동의병장 유시연

 

 유시연 의병장은 어떤 분이었나?

 안동지역 의병투쟁의 특징

 다시 후기의병 일으키다

 서간도행 좌절되고, 순국하다

 

삼남지역 의병 이끈 육남소모대장 유종환

 

 일제침략기 후기의병 경남 서부지역 의병

 『독립운동사』·『독립유공자 공훈록』 기록

 유종환 의병장의 삶과 의병투쟁

 순국과 허리띠 속의 광무황제 비밀조칙

 일제침략기 국왕(황제)의 비밀조칙

 

의병장·자정순국 의사 이만도·이중언

 

 의병 궐기 기폭제 『예안통문(禮安通文)』

 이만도, 1차 예안의진 대장에 추대되다

 이중언, 2차 예안의진 전방장이 되어

 을사늑약에 반발, 서울로 향하다

 숙질(叔姪)의 거룩한 자정순국(自靖殉國)

 

경북 중북부지역 의병장 한용수

 

 한용수 의병장, 그는 누구인가

 전국 주요 의병장의 순국

 경북지역 주요 의병장 순국과 의병투쟁

 경술국치 전후 경북 중북부지역 의병

 한용수 의진의 활약상

 탈옥, 그 후의 삶

 

찾아보기

 

『제3권 중부지역』

 

지평의병 이끈 호좌의진 선봉장 김백선

 

 국수보복(國讐報復) 전기의병 일어나다

 원주에서 지평의병 결성하다

 지평에 이어 각지에서 일어나는 의병

 처변삼사와 지평의병 봉기

 충북 제천으로 나아가다

 단양 장회협곡에서 관군과 싸워 승리하다

 호좌의진 선봉장이 되어

 충주성 점령하다

 충주성에서 격전 치르고

 가흥전투와 김백선의 처형

 김백선 의병장을 기리다

 

중부지방 최후의 의병장 백우 김상태

 

 『독립유공자공훈록』의 오류, 바로잡아야

 백우와 운강은 어떤 사이였나

 운강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의병투쟁

 운강 피체 후 호좌대장군(湖左大將軍)으로

 백우의 피체와 순국

 

13도창의대진 관동창의대장 민긍호

 

 군대 없는 나라가 되다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

 일본 군경도 벌벌 떨었던 민긍호 의진

 13도창의대진 관동창의대장으로 활약하다

 관동창의대장 민긍호, 겨레의 별이 되다

 만리타국에서 애끊는 호곡, 들리지 않는가?

 

일제침략기 전기 관동창의대장 민용호

 

 가계와 의진의 특징

 여주 청심루의 격문

 의진 형성과 강릉 진출

 강릉부 점령과 관동 9군 의병천하

 원산진공작전

 회군과 재정비

 의병 해산령과 의병 증모

 한성진공 계획과 『독립신문』 기사

 관군과의 싸움

 관군의 압박과 악천후 속의 전투

 관북지방으로 의진 이동

 복재의 귀국과 후손의 삶

 

후기 홍주의병 이끈 전 이조참판 민종식

 

 을사늑약 직후 충남 사대부·유생의 모습

 홍주의병 일어나다

 홍주성 점령과 격렬한 전투

 민종식 의병장 피체와 형벌

 

춘천의병아리랑에 살아있는 성익현 의병장

 

 춘천에서 전기의병 일으키다

 벌업산 패전과 관동의진 참여

 강원·경북 지방에서 의병투쟁에 나서다

 봉화지역에서 연합작전 펼치다

 춘천의병아리랑에 살아있는 성익현

 

러일전쟁 직후 강원의병장 원용팔

 

 국모의 원수를 갚아야

 원용팔의 묘소와 생가를 찾아서

 삼계가 의병을 일으킨 역사적 배경

 러일전쟁 당시의 의병 기록들

 삼계의 의병투쟁과 순국

 

대한제국 도체찰사 이강년 의병장

 

 선전관에서 물러난 후 전기의병 일으키다

 호좌의진의 유격장·우익장·후군장이 되어

 후기의병 다시 일으키다

 운강, 도체찰사로 제수되다

 도창의대장에 추대되다

 13도창의대진 호서창의대장이 되어

 까치성전투에서 피체되다

 대한제국 도체찰사 순국하다

 운강의 얼 기리다

 

가명 5개 중부지방 의병장 이교영

 

 이교영 의병장은 어떤 분이었나?

 의병투쟁에 나서다

 3년 의병투쟁, 의병모집 꾀하다 피체되다

 통감부 통감의 사형집행 명령으로 순국

 아내와 후손의 간고한 삶

 

13도창의대진 견인차 이은찬 의병장

 

 13도창의대진 견인차

 국수보복 위한 거병

 13도창의대진 결성, 서울진공작전 펴다

 경기 북부 연합의병장으로 활약하다

 밀정의 간계에 피체, 경성감옥에서 순국

 

13도창의대진 총대장 이인영

 

 이인영,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

 13도창의대진 설치하다

 서울진공작전, 중단되다

 이인영, 13도창의대진 총대장이 된 이유

 2천여 명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진출

 중남과 함께했던 의병·의병장과 그 후예

 

‘거괴’로 불린 관동·대동창의대장 정경태

 

 과소평가된 포상과 초라한 공훈록

 성익현 의진의 도총장·중군장으로 참여

 성익현과 함께 북간도에서 국권회복 회담

 관동창의대장·대동창의대장으로 활약하다

 소백산·일월산 ‘거괴’의 거룩한 순국

 

경기남부·충남서부 누빈 정주원 의병장

 

 광무황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거의하다

 경기도 대표적인 의진을 형성하다

 1년여 의병투쟁 후 피체되다

 교수형에 이어 종신유형으로 고초 겪다

 

군부참서관 출신 충남의병장 최구현

 

 충남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가는 길

 러일전쟁 치르기 위한 일제의 흉계

 최구현 의병장의 행적

 충남지역 의병과 소난지도 의병투쟁

 유곡 최구현 의병부대의 특징과 묘지

 

찾아보기

 

『제4권 호남지역』

 

대장장이·포수 출신 전남의병장 강사문

 

 김준 의진에서 활약 후 독자 거의

 강사문 의병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

 1908년 전남지역 의병투쟁의 개요

 강사문의 의병투쟁

 피체와 탈출 시도, 그리고 순국

 

일제침략기 호남의병장 녹천 고광순

 

 왕대밭에 왕대 나다

 을사늑약 직후 호남의병

 녹천의 의병투쟁과 그 영향

 겨레의 등불 녹천의 거룩한 얼

 

호남창의회맹소 대장 기삼연 의병장

 

 을사늑약 이후 호남의병

 호남창의회맹소 의진 결성되다

 호남창의회맹소와 모양성전투

 무동촌전투의 승리

 순창에서 피체, 광주 서천교 아래에서 순국

 

일제침략기 호남의병장 김준·김율 형제

 

 김준·김율 형제 의병장 등장

『전남폭도사』 총설에 나온 김준·김율 형제

 면암 거의 이후 전남지역 의병

 김준, 호남창의회맹소 선봉장으로

 ‘호남의소’, 본격적인 의병투쟁에 나서다

 김준·김율 체포 위한 8개 기병·특설순사대

 김준·김율 형제 의병장 순국

 김준 부인 낙안오씨의 장엄한 자결

 

후기 대동창의진 대장 박영근 의병장

 

 호남창의소에 참여하다

 대동창의진 호군장으로 활약하다

 후기 대동창의진 이끌다

 재판 및 순국 과정

 

전남 중남부 떨친 호남의병장 심남일

 

 바람재 석굴에서 붙잡힌 두 의병장 부부

 호남동의단 제1진 의병장으로

 『접전일기』 속에 나오는 의병투쟁

 일본군의 공격은 계속되고

 의진을 해산하고 바람재로

 

머슴 출신 호남의병의 용장(勇將) 안계홍

 

 동소산 기슭 머슴, 거의하다

 보성지방의 의진들과 연계 투쟁

 일본 군경이 두려워한 안계홍 의진

 피체와 심문 과정

 재판과 순국 과정

 

전남 중서부 의병장 양진여·상기 부자

 

 양진여·상기 부자 의병장과 1909년 8월

 양진여·상기 부자, 의병 일으키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연합의진 형성, 줄기차게 싸우다

 국운도 기울고, 의기도 꺾기고

 일가족 5명의 고귀한 희생 앞에 우리는 …

 

능주 쌍산의진 이끈 양회일 의병장

 

 목사고을 능주 선비 거의하다

 을사늑약 직후 호남의병

 쌍산의소 설치하고 의병 일으키다

 쌍산의진 격전 치르다

 쌍산의진의 해산과 행사의 순국

 쌍산의진에 빛나는 제주양씨 가문

 

전남 서부지역 의병장 이기손

 

 이기손, 유학자로 두각 드러내다

 금재 거의 이전의 호남의병

 용진산에서 거의하다

 본격적인 의병투쟁에 나서다

 금재의 망명과 가족의 수난

 

목숨보다 충의를 중시했던 이석용 의병장

 

 이석용, 전북의병 일으키다

 후기 전북의병장으로 명성 떨치다

 일제 앞잡이 전북관찰사 이두황의 만행

 의진 해산하고 경남 거창으로

 청산하지 못한 적폐와 후손의 삶

 

전라북도창의소 대장 이장춘 의병장

 

 무주와 덕유산 자락 의병장

 일제침략기 의병, 무풍으로 몰려들다

 연합의진 형성하여 의병투쟁 전개하다

 고향 마을에서 장렬히 전사 순국하다

 포상 및 공훈록 내용과 유족의 한

 

전남 중남부 의병장 임창모·학규 부자

 

 대한의사 임창모 의병장

 쌍산의소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쌍산의진에서 격전 치르고

 피체와 유배

 다시 거의하여 안계홍 의진과 연합하다

 임창모 아들도 의병장으로 활약

 임창모·학규 부자의 거룩한 순국

 

호남연합의진 호남동의단 대장 전해산

 

 ‘한일합병조약안’ 체결 이튿날 순국하다

 이한룡(李漢龍) 문하에서 학문 연마

 대동창의단 대장에 오르다

 호남연합의진 호남동의단 대장에 오르다

 의진 해산과 피체

 요천 징검다리와 쌍상여

 

일제침략기 호남 최초 순국의병장 정시해

 

 송사 기우만의 문하에서 유학자 길로

 면암 최익현, 충남에서 전북으로

 임병찬의 처지와 입장

 최제학과 함께 면암을 모시고

 순창의진 소모장이 되어

 순창의진 중군장으로 활약

 관군과의 대치, 거룩한 순국

 대한의사 일광 정시해

 충효의식 높은 지역민에게 존경을 보내며

 

일제침략기 어등산 의병대장 조경환

 

 대천 조경환의 가문과 거의

 대천의진의 활약상

 대천의 활약상, 전국에 알려지다

 일본 군경의 총탄 996발, 거룩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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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국외지역』

 

의병좌통령 김창수(김구)와 인천·강화

 

 일제침략기 의병 봉기 기폭제

 팔봉접수에서 의병좌통령 되다

 의병좌통령으로서 일본인 처단

 피체와 해주감옥·인천감리서 고초

 김창수의 은인 강화 김주경·인천 유완무

 김구를 민족지도자로 길러준 강화·인천

 

하얼빈의거와 안중근 의병장

 

 안중근에 대한 연구

 안중근의 생애

 국권회복 위해 망명

 대한의군 참모로서 활동

 하얼빈 의거

 안중근의 피체 후 조사

 일제 관헌의 철저한 조사

 안중근 뤼순 호송과 철저 수사 지시

 일제의 교활한 신문과 공판 과정

 거사 자금과 총의 출처에 대한 기밀 유지

 하얼빈 의거 거사 자금과 총의 출처

 거룩한 순국과 일제의 만행

 

민족지도자 의암 유인석 의병장

 

 의병 거의의 사상적 배경

 의암 선생, 호좌의진 이끌다

 반일의식 고취와 의병투쟁에 나서다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 계획, 격려하다

 민족지도자의 마지막 투혼

 

주러공사 이범진과 연계투쟁한 조운식

 

 경북 순흥에서 거의하다

 연해주의병과 연계투쟁을 도모하다

 속리산에서 피체되다

 경성감옥에서 순국하다

 서훈 유감

 한봉수 공훈록을 살펴보면, 가히 놀랍다

 

면암 최익현의 순창의병과 유소

 

 의병을 일으킨 배경

 면암의 사상적 배경

 국권회복 위한 의병장의 길로

 순국과 유소에 대한 평가

 

연해주 민족지도자 최재형 선생

 

 연해주 지신허, 연추로 이주

 연추 도회소 도헌(都憲)이 되어

 러시아 국적 취득과 러일전쟁 참여

 동의회(同義會) 조직하여 의병투쟁

 단지동맹과 동의회 활동 중지

 하얼빈 의거 후 의병활동 활기

 경술국치 후 반일활동에 적극 나서다

 반일 무장단체 독립단 조직하다

 연해주 민족지도자의 순국

 연해주에서 최재형의 영향

 

함경도·간도·연해주 누빈 의병장 홍범도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다

 의병투쟁과 부인과의 상봉

 교활하고 악랄한 일본군의 만행

 경술국치 전후 활동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에서 대승

 자유시 참변과 강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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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태룡 (엮은이) 

경상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현)

의병정신선양중앙회 의병연구소장(현)

전해산기념관설립위원회 자문위원장(역임)

신암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역임)

 

주요 논저

「운강 이강년의 도체찰사 제수와 순국과정 연구」

「의열단 창단과정과 김상윤 의사의 반일투쟁」

『의병찾아가는 길』(Ⅰ·Ⅱ)

『한국의병사』(상ㆍ하)

『우리의 역사, 이것이 진실이다』

『이성기·용기 형제와 남원3·1독립만세의거』

『일제침략기 의병장 73인의 기록』(1~5)

* 논문 30여 편, 단행본 44권

 

세계인명사전 등재

2011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 ‘올해의 국제교육자 100인’

미국 인명정보기관(ABI) ‘21세기 위대한 지성’

2012년 IBC ‘세계 톱 교육자 100인’

ABI ‘세계 훌륭한 지도자 5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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