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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집단 기억의 파괴

  • 로버트베번
  • |
  • 알마
  • |
  • 2012-01-27 출간
  • |
  • 395페이지
  • |
  • 149 X 217 X 30 mm /557g
  • |
  • ISBN 9788994963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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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그들은 왜, 어떻게 건축 유산을 파괴했는가
전장의 후방에서 벌어지는 건축물과의 또 다른 전쟁!
집단 기억의 말살을 위한 문화 파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455년 지어진 요크의 길드 집회소
·유대인 문화의 상징 보우파 마을의 목조 시너고그
·드레펑 사원과 간덴 사원
·히츠콘크를 비롯한 아르메니아의 수도원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
·모스타르의 역사적인 다리 스타리 모스트
·세계문화유산 지정지인 두브로브니크의 항구 도시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바르샤바에 있던 782곳의 역사 기념물
·신고전주의 건물인 더블린 법원 건물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야만적인 파괴의 참상을 고발하다
위에서 열거한 문화유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테러나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거나 원형이 훼손된 역사적인 건물이라는 점이다. 국가나 민족 혹은 종교 간의 마찰로 인한 전쟁에서는 건물이 무너지거나 도시가 파괴되는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파괴적인 무기가 개발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그런데 이와는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전쟁이 전장의 후방에서 종종 벌어진다. 바로 건축물과의 전쟁이다. 국가나 민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이 전쟁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1938년 크리스탈나흐트에 나치스가 독일 안에 있는 시너고그(유대교에서 집회와 예배의 장소로 쓰는 회당)를 파괴한 사건이나, 몇 년 전 탈레반이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폭파한 사건, 오스만 군대가 아르메이나인을 학살하면서 아르메니아 교회와 기념물, 거주 지구와 도시를 모두 파괴한 사건,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가옥과 건물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사건 등 한 집단의 현전現前을 상징하는 장소나 건축물에 대한 파괴 행위는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문화 말살이라는 정책 아래 경복궁, 경희궁, 경운궁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조직적으로 파괴되거나 해체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복자들에 의한 이러한 파괴는 왜 일어나는 걸까? 그것은 문화유산이 토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과 그 집단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질을 말살하는 행위는 민족 자체를 말살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런 이유로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발생한 민족 및 국가 간의 분쟁에서 각각의 집단을 상징하는 수많은 장소와 건축물들이 정복자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다시 말해 전쟁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적극적이면서도 조직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파괴 행위로 정복당한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기억을 말살하려 했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역사를 고쳐 씀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 책 《집단 기억의 파괴》는 이처럼 건물을 표적으로 한 테러 활동과 정복 활동, 사람들을 분산시키거나 결집시키기 위해 구조물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행위, 과거의 잔해 위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혁명적인 새 질서로 인해 파괴되는 건물들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건축물 재건과 문화재 복원을 둘러싼 논쟁을 밝히다
저자는 파괴에 대한 참상을 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해 억지 효과를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파괴 행위로 사라진 건축물의 복원과 관련한 문제에서도 망각이 강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쟁 전 모습으로 충실하게 복원한 폴란드 바르샤바를 예로 들면서 재건의 주체가 가해자든 희생자든 역사의 증거인 균열과 빈 공간, 잔해를 제거함으로써 과거를 은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건축물을 파괴 이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아픈 기억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옛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문제에서부터 서울시청 철거를 앞두고 등록문화재 지정 문제, 경복궁 및 서울성곽 복원 문제 등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괴되었던 건축유산에 대한 복원 및 철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명확한 철학 없이,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문화재 복원에 관한 후진국임을 자처하는 행위다. 철저한 고증과 복원도 중요하겠지만 문화유산에 일어났던 역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과거의 건축적 유물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한 과거의 흔적들 틈에서 사회 안의 이질성을 긍정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흔적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저자는 이데올로기와 인종과 민족주의의 싸움으로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금도 파괴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20세기 이전의 역사가 21세기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건축물에 대한 탄압을 다룬 유일한 책!
이 책 《집단 기억의 파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건축에 가해진 탄압, 다시 말해 ‘문화청소cultural cleansing’를 깊이 있게 연구한 책이다. 소수민족의 문화, 즉 그들의 언어와 문학과 예술과 관습을 의도적으로 탄압한 사례를 다룬 책은 많지만 건축에 가해진 탄압을 다룬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에 저자는 인도에서 보스니아까지, 요르단 강 서안에서 아일랜드까지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정복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그들의 건축물을 파괴해왔으며 지금도 파괴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 세계 저널리스트들의 기사와 전공 분야의 학자, 역사가, 운동 단체, 인권 단체의 저작을 참고해 이 같은 행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책속으로 추가>
2장 테러: 사기와 메시지 그리고 선전
2001년 9월 11일, 주도면밀하게 선택된 목표물인 세계무역센터의 파괴는 미국은 물론 이슬람 세계에도 분명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알카에다는 왜 자신들이 세계무역센터를, 펜타곤을, 그리고 아마도 (추락한 네 번째 항공기가 향했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 뉴스 해설자와 세계 지도자들은 알카에다의 행동이 ‘자유’와 ‘민주주의’ 또는 ‘문명’ 그 자체에 대한 ‘야만인’들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 상대편 폭격기를 묘사하며 이 호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이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의 상징을 겨냥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_105~106쪽

건축적인 측면에서 또 역사적인 측면에서 더블린의 법원 건물 포 코츠Four Courts보다 더 비극적인 손실은 없었다. 제임스 갠던이 리피 강변에 지은 이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물은 1922년 부비 트랩으로 설치된 지뢰가 폭발하며 파괴되었다.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을 위한 조약 체결에 반대해 포 코츠 내부에 숨어 있다가 포위된 IRA 대원들이 설치한 지뢰였다. 지뢰는 공화국군이 마이클 콜린스의 자유국군에 투항한 다음 터졌는데, 자유국군은 이 기념비적 건축물을 부수기 위해 영국군의 대포까지 동원했다. 같은 건물에 있던 국가기록보관소가 파괴되면서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수세기에 걸친 귀중한 기록들이 날아갔고, 이 폭발은 아일랜드 내전에 불을 댕겼다_118쪽

3장 정복과 혁명: 야만과 야욕
나치스는 동쪽 점령지에 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런 태도는 폴란드를 침략한 초기 단계부터 명백히 드러났다. 총력전에서 이뤄진 야만 행위는 비단 군사적 목표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불필요하게 주택가를 무너뜨렸고 기념물을 파괴하고 박물관을 약탈하고 바르샤바를 무참히 공격했다. 점령 이후 파괴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폴란드는 사라졌고 폴란드 국민으로서의 폴란드인, 집단 정체성과 역사를 지닌 민족은 망각될 위험에
처했다. 전쟁에 앞서 위험을 감지한 폴란드인들은 지하 저장고의 입구를 벽돌로 막았고 귀중한 미술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아예 국외로 빼돌렸다. 교회와 시너고그, 수도원과 박물관도 제각각 소장하고 있던 귀중한 예술품들을 숨겼다. 하지만 그중 많은 곳이 발각되었고 나치스는 조직적으로 폴란드인들이 아끼는 보물을 약탈한 뒤, 마지막 남은 것들까지 철저히 파괴했다._165~166쪽

전쟁 전에 작성된 공식 목록을 보면 바르샤바에는 총 957군데의 역사 기념물이 있었다. 이 중 782군데가 완전히 무너졌고 141군데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오직 34군데만이 화를 면했는데 이유는 소련군이 다시 진군하는 바람에 폭약을 설치할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전투가 모두 끝났을 때 구시가지의 거리는 어디가 어디인지 알아보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가장 유서 깊고 미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불타거나 폭파되었다. 손실된 기념물 중에는 국가기록보관소와 국립도서관,
성 요한 성당, 성 야체크 교회와 성 삼위일체 교회, 드우가 거리, 그리고 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브라니츠키 궁전과 크라신스키 궁전, 라지비우 궁전, 와지엔키 궁전도 파괴되었다. 지하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재무부와 대학 건물 역시 무너졌는데, 독일의 침략 기간에 큰 피해를 입었던 국립박물관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_169쪽

4장 울타리와 이웃: 분할이 낳은 파국
분할은 건축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여기서 분할, 분리 또는 ‘경계 긋기’란 이스라엘식으로 물리적 ‘기정사실’을 만들거나 두 공동체가 맞닿은 경계를 벽, 울타리, 중립지대로 표시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베를린에는 155킬로미터에 이르는 ‘반파시스트 보호벽’이 있었고, 벨파스트에는 ‘평화의 벽’이 있으며, 이스라엘 역시 최근 ‘경계 지역Seam Area’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분리를 낳는 정치적 동기와 분리를 시행하는 군사적 방법론은 상대편 군사보다 민중을 향하는 예가 많다. 최초로 희생되는 건축물은 대개 민가로, 파괴에 동원되는 방식은 방화나 폭파 같은 단순한 기술부터 장갑裝甲 불도저나 아파치 헬리콥터 같은 첨단 기술 또는 도시계획 규제와 건축 허가라는 법적 수단을 이용한 관료적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리와 차별은 종종 예루살렘의 바위의 돔이나 인도 아요디아의 바브리 모스크처럼 토템의 성격을 띤 개별 건축물을 중심으로 이뤄지기도 하는데, 특히 바브리 모스크의 파괴는 인도가 50년 전 아대륙subcontinent을 거칠게 두 조각 낸 분할의 긴장을 아직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_233쪽

2002년 4월, 이스라엘군은 역사적인 도시 나블루스를 침공해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래 팔레스타인 유산에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 기원전 7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도시에는 로마 시대, 비잔티움 시대, 십자군 시대,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제국 시대에 지어진 벌꿀빛 석조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도시인구는 15만 명에 달했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미너렛이 촘촘히 얽힌 중심부에는 유서 깊은 전통 시장 수크가 있었으며, 로마 시대의 수조부터 19세기 지어진 모스크까지 총 2,500개에 이르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등록되어 있었다. 나블루스는 요르단 강 서안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접근이 금지된 유대인 정착민 전용 도로에는 이곳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하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나블루스 외곽에 있는 수천 년 역사의 성서 속 도시 세겜 유적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들어서 있었다. 팔레스타인 도시의 존재는 디아스포라 이전에도 이 땅에 존재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를 삭제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닌에서처럼 나블루스의 밀집한 도심은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을 방해하는 물리적 장벽 구실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강탄 교회와 달리 팔레스타인 유산의 국제적 중요성은 이 도시를 보호해주지 못했다._260쪽

5장 기억하고 경계하라: 재건과 기념
재건은 그 재건을 가져온 파괴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건설은 파괴된 건축 환경을 이어 붙이거나 예전 삶의 결을 하나로 엮는 데 사용된다. 집단 기억에는 새로운 시금석이 놓인다. 한때 비의도적인 기념물, 곧 일상의 예배 장소와 도서관과 분수였던 것은 재건을 통해 파괴를 야기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의도적인 기념물이 된다. 역사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대내적, 대외적 평화를 위해 어디까지 기념하고 어디까지 기억해야 할까? 용서와 망각의 범위는? 고통의 기억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이를 구체화한 장소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재건의 또 다른 측면은 재건의 주체가 가해자든 희생자든 역사의 증거인 균열과 빈 공간, 잔해를 제거함으로써 과거를 은폐한다는 점이다. 재건이 파괴 이후의 전후 맥락을 반영한 역학 관계 아래서 이뤄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_309쪽
폴란드는 수백 년 동안 정복되고 분할되기를 거듭하다가 1918년에야 독립국가를 재수립했다. 양자 세계대전 사이에 폴란드인의 관심은 자국의 건축 유산을 찾아 보존하는 일에 쏠렸고, 결국 남겨진 역사적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한 보존 제도와 법안이 고안되었다. 폴란드 건축가와 미술사가는 독일 점령군이 코앞에 있을 때조차 후일에 대비해서 건축물들에 대한 기록을 해나갔다. … 전쟁 동안 바르샤바 시민 80만 명이 죽고 봉기 실패로 주도면밀하게 수집한 건축 기록들까지 포함해 파괴된 도시 면적은 85퍼센트에 이르렀지만 1945년 소련이 독일군을 몰아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건이 시작되었다. … 도시 중심부의 성곽과 교회, 궁전과 거리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전쟁 전 모습에 충실하게 복원되었다. 스탈린식의 기괴하고 웅장한 건물과 폴란드와 소련의 형제애를 기리는 흉측한 기념물이 군데군데 섞이기는 했지만, 폐허가 된 수도를 옛 모습 그대로 재탄생시킨 폴란드인의 집념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_316~317쪽

6장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라: 보호와 기소
문화유산의 보호를 규정한 국제법이 실제 유산을 보호하는 데 명백히 실패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명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무력으로 인해 세계 건축 문화가 파괴되는 무수한 방식들을 개괄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러시아에서 수단까지 파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모두가 협약에 서명한 국가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문화유산이 대거 파괴되자 그 대비책으로 1954년 헤이그협약이 등장했다. 헤이그협약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규약을 통해 국가들에 문화재 보호에 관한 법률 조항을 제정하게 하고 자국의 군대를 교육하게 하면 도덕적 압력을 받은 국가들이 파괴를 삼가리라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실패했다. 헤이그협약의 조치는 가입국 대다수의 군대 지침서에 포함되었으나 그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이행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_354~355쪽

건물을 세운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해도 죽은 건물은 사어死語처럼 슬픈 웅변이 될 수 있다. 파괴된 건물은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조각된 석조 칸막이와 목재 파편에 뒤섞여 포차 공동묘지에 묻힌 보스니아 무슬림의 고통을 대변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의 유산에서 발전한 공동의 세계유산이라는 관념은 물론거니와 평등과 정의와 이성이라는 계몽주의의 가치와 객관적인 역사에 대한 열망까지 위험에 처했다. 분쟁의 한복판에서 보호에 대한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진 20세기의 역사가 21세기에 또다시 되풀이될지 아닐지는 다음 몇 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공동체의 건축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가 용납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구유고슬라비아 전범 재판과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재판에 중형이 선고되어 억지 효과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_369쪽


목차


서장 건축과 기억의 적|1장 문화청소: 누가 아르메니아인을 기억하는가?|2장 테러: 사기와 메시지 그리고 선전|3장 정복과 혁명: 야만과 야욕|4장 울타리와 이웃: 분할이 낳은 파국|5장 기억하고 경계하라: 재건과 기념|6장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라: 보호와 기소|감사의 글|참고문헌|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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