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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 주일한국공사 파견과 활동

한국근대 주일한국공사 파견과 활동

  • 한철호
  • |
  • 푸른역사
  • |
  • 2010-07-23 출간
  • |
  • 319페이지
  • |
  • 153 X 224 X 30 mm /560g
  • |
  • ISBN 9788994079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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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일관계사의 새로운 지평선 열기

백 년 전, 우리나라는 왜 일제에 강점되었는가?
올해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지 100년을 맞이하는 해다. 이에 한일 양국에서는 역사의 거울에 비춰 한일강제병합 혹은 한국병탄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일제에 강점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쉽고 분명하다. 일제가 무력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국권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는 어떠한 이유나 명분으로라도 결코 합리화될 수 없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긴 데 대한 책임을 일본에게서만 묻거나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에게 전가하는 데 급급해서 우리의 내적 반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대한제국의 최고통수권자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개항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자주독립을 이룩함과 동시에 국민 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채 무능과 부패로 말미암아 ‘국치國恥’를 당한 잘못도 철저하게 되짚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근대 주일한국공사의 파견과 활동》은 근대 한일관계의 역사적 근원을 이루는 주일공사의 파견과 활동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시각에서 한일관계사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한국병탄의 내적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려는 시도다.

주일한국공사 활동 검토를 통해 한국병탄의 올바른 내적 반성을 모색하다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지 11년만인 1887년, 근대적 외교제도에 입각해 주일공사관을 도쿄에 개설하고 주일공사를 파견함으로써 실질적인 양국 간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 주일공사관은 근대적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역사상 최초의 상주공사관常駐公使館으로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또한 주일공사들은 특정 업무를 수행한 수신사 등의 외교사절단이나 유학생들과는 달리 일본에 장기간 주재하면서 양국 간의 외교 현안을 처리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동향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귀국 후 정부의 각종 개화·자강추진기구에서 근무하거나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정치·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인물들이 많았다.
따라서 일본과 실질적인 국교정상화의 상징인 주일공사관이 1887년 개설된 후부터 1905년 을사늑약으로 폐쇄될 때까지 주일공사들의 파견과정 및 외교활동과 그들의 일본인식을 철저하게 분석·정리하는 작업은 한국 근대의 정치·개혁운동 및 한일관계의 전개과정, 그리고 한국병탄의 내적 원인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주일한국공사로 바라 본 백 년 전의 한국

《한국근대 주일한국공사의 파견과 활동》,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한국근대 주일한국공사의 파견과 활동》은 근대 한일외교사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새롭게 밝히기 위한 일환으로 주일 조선공사관이 개설(1887)된 후 폐쇄될 때까지 그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주일공사의 파견 배경과 목적 및 경위, 외교 활동, 그 한계 등을 고찰한다.
제1부에서 주일공사의 파견 배경 및 과정, 그리고 주일공사들의 임면 과정을 고찰했다. 주일공사들은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내외의 정세 변화에 따라 특수한 목적을 띠고 발탁되었다. 예컨대, 초대 주일공사 민영준의 경우 국제정세에 밝지도 않은데다가 개화에 대한 식견을 갖추지 못한 부적격자였지만, 주미공사를 파견하기 위한 ‘선파후자’의 목적을 띠거나 고영희·이하영·조병식의 경우처럼 갑오개혁·아관파천·의화단사건 등 국내외 정세의 변동에 따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을 띠었던 것이다.
제2부에서는 주일공사들이 재임 시 어떠한 외교활동을 펼쳤는가에 대해 공사관 개설 초기(1887~1894), 갑오개혁기(1894~1896), 아관파천·대한제국 전기(1896~1900), 대한제국 후기(1900~1905) 등 4시기로 나누어 정리·분석했다. 그들은 양국 간에 발생하는 각종 현안을 처리했을 뿐 아니라 근대식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재일 유학생을 통제·관리했고, 일본을 포함한 국제정세의 변동 상황을 분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제3부에서는 앞의 연구를 토대로 주일공사들의 의의와 그 한계를 밝혀보았다. 주일공사로 임명·부임한 인물은 초대공사 민영준을 비롯해서 등 총 8명이다. 주일공사 임명 전 그들의 사회·정치적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첫째, 주일공사들 중에는 외교사절단 혹은 개인적으로 일본·중국·미국을 방문·주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국제정세에 밝은 인물들이 많았다. 반면에 민영준·김사철 등은 외국을 방문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특히 민영준은 국제정세에 밝지도 않은데다가 개화에 대한 식견을 갖추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부적격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주일공사들은 1880년대 전반에 걸쳐 새로 조직된 외아문(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과 내무부, 그 산하의 개화·자강추진기구에 근무함으로써 외교실무 혹은 근대적 시설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었다.
셋째, 주목할 만한 점은 주일공사들 가운데 민영준·김사철·조병식·성기운·조민희 등 과거에 합격한 양반출신 외에 김가진·고영희·이하영 등 서얼·중인·평민 출신들이 전통적인 정치·사회체제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을 뿐 아니라 우호적·긍정적인 일본관을 바탕으로 정계 내 대표적인 일본통 관료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주권에 의거해서 주체적으로 개혁을 추구해야 하며, 적어도 조선의 제도와 헌장에 기초하여 제도개혁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따라서 적어도 을사늑약 이전까지 그들은 ‘매국’의 의미가 짙은 ‘친일파’라기보다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아 개혁을 추진하려고 노력한 ‘일본통’ 관료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주일공사들이 1907년 사망한 조병식을 제외하고 모두 1910년 일본의 국권강탈 후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매국 친일파로 전락했다는 점은 커다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주일공사의 성과와 한계
한편 주일공사는 대외관계상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에 걸맞은 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처럼 주일공사관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이유는 무엇보다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과 주일공사 자신이 그 역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장기간 부재한 데 있었다. 주일공사는 망명자와 연루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처지에 빠질 염려가 있었던 데다가 귀국 후 권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임명을 기피했고, 임명되더라도 부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양국 관계의 중대성에 걸맞은 전문적인 외교력을 갖춘 인물들의 발탁이 사실상 힘들었던 것이다.
또한 공사관원도 적었기 때문에 참서관·서기관마저 부재할 때에는 최하급의 서기생이 대리공사직을 맡아야 했던 상황에서 공사관 자체가 제대로 운용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주일공사관은 운영비 부족으로 공사관의 기본적인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웠던 실정이었다. 따라서 주일공사는 일본 국내의 동향을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하거나 각종 현안에 대해 일본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상을 벌이는 외교관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적도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고종은 임시로 특사를 파견하는 편법을 취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양국 관계가 상호 대등하게 전개되기보다는 일본의 한국정책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되는 상황 하에서 양국 간의 교섭은 실질적으로 일본이 아니라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일공사의 실질적인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주일공사는 양국 간의 현안을 처리하고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는 데에는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일본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올바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주일공사의 파행적인 운영을 초래한 요인들은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화로 삼는 데, 나아가 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데 중요한 빌미가 되고 말았다.

일본 속의 한국, 주일공사를 통해 1910년을 다시 묻는다
저자는 저서를 집필하는 동안 주일공사들이 직접 공·사적으로 작성한 보고서 혹은 일기 등 각종 문헌의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당시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하게 분석·파악했던 주한일본공사관의 기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는 이러한 양국 공사관기록의 질적·양적인 차이가 당시 한국과 일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양국의 명운을 가른 근원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면 무리일까?
이 책이 일본의 한국병탄 100년을 맞이해서 한일관계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고찰함과 동시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과 그 원인의 중요한 측면을 밝히는 데, 나아가 현재와 미래의 바람직한 한일관계상을 정립·모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ㆍ책머리에
ㆍ서설

제1부 주일공사의 파견 배경 및 과정
01장 주일공사의 파견 배경
1― 조일수호조규의 체결과‘파사주경’논의
2― 이헌영의 임명과 이원긍의 파일
02장 민영준의 임면과정
03장 김가진의 임면과정
04장 김사철의 임면과정
05장 고영희의 임면과정
06장 이하영의 임면과정
1― 제1차 임면 배경 및 경위(1896.3~1898.11)
2― 제2차 임면 배경 및 미부임(1899.5~7)
3― 제3차 임면 배경 및 귀국 경위(1900.4~1900.8)
07장 조병식의 임면과정
08장 성기운의 임면과정
09장 고영희의 임면과정
1― 이용태·김승규의 미부임 경위와 일본 측의 항의
2― 고영희의 임면 배경 및 경위
10장 조민희의 임면과정

제2부 주일공사의 활동
01장 공사관 개설 초기(1887~1894)
1― 조·일 양국 간의 현안 처리
2― 근대적 제도와 문물 수용
3― 조오조약의 체결
4― 외교사절단의 접대 및 업무 지원
5― 조선 관련 정보 수집
02장 갑오개혁기(1894~1896)
1― 재일유학생 보호·관리
2― 근대식 기계와 서적 구입
3― 외교사절단의 접대 및 업무 지원
4― 조선 관련 정보 수집
03장 아관파천·대한제국 전기(1896~1900)
1― 정치·경제적 현안 처리
2― 재일유학생 관리·감독
3― 근대식 기계 구입과 기술 습득 알선
4― 일본인의 불법행위 처벌 및 단속
5― 표류민 및 불법체류자 송환
6― 한비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중재
04장 대한제국 후기(1900~1905)
1― 정치·외교적 현안 처리
2― 재일유학생 관리·감독
3― 근대식 기계 구입과 기술 습득 알선
4― 곤란민 및 불법체류자 송환

제3부 주일공사의 의의와 그 한계
01장 주일공사의 구성과 그 성격
02장 주일공사관의 파행적 운영과 그 한계

ㆍ참고문헌
ㆍ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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