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기독교를 생각한다

기독교를 생각한다

  • 브라이언맥클라렌
  • |
  • 청림출판
  • |
  • 2011-01-03 출간
  • |
  • 322페이지
  • |
  • 150 X 224 mm
  • |
  • ISBN 9788935208562
판매가

14,500원

즉시할인가

13,05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3,05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기독교가 옳은 태도와 분명한 비전을 품을 때 모두가 이긴다!
기독교의 여러 전통과 역사를 가로질러 발견한 예수의 단순하고도 불가사의한 길

루터에 비견되는 21세기의 종교개혁가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화제작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대문에 못 박았을 때, 혁명을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루터의 망치질은 서구 사회 변화의 불길을 종교계로 확산시켰고. 뜻하지 않게 당시 교회가 정체되었다는 사실, 새로운 세계질서를 담기에는 너무 작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필리스 티클은 추천의 글에서 이 21세기의 변화 발전의 속도와 범위는 루터 시대의 사회ㆍ경제ㆍ문화적 변화에 비견할 정도이며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으로부터 태동한 이머징 교회는 유럽의 기독교를 뒤엎은 종교개혁에 맞먹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맥클라렌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관대한 정통신앙generous orthodoxy"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95개조 반박문이라 주장한다.
출간하는 책마다 열렬한 환호와 혹독한 비판, 양 극단의 반응을 몰고 다니는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기독교를 생각한다》는 그의 저작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간 화제작으로, 맥클라렌은 이 책으로 소위 스타덤에 올랐다. 유례없이 같은 달에《크리스채니티 투데이》와 《크리스천 센추리》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하기도 했고, 빌리 그레이엄, 릭 워렌 등과 함께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CNN 유명 토크쇼 <래리 킹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이 책은 이머징 교회 운동의 ‘매니페스토’로 불리면서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이머징 교회 운동을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책으로 꼽히고 있다.

정통이면서 관대한 신앙
맥클라렌은 관대한 정통신앙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기보다는 이미 우리에게 정통으로 알려진 과거의 전통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기독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과거와 단절된 기독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기독교인은 기독교 전체의 역사를 알고 받아들이며, 현재와 과거의 모든 기독교 교파의 장점을 통합하여 미래로 전진하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기독교는 동시에 ‘오래된’ 기독교요 기독교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기독교계의 보수성 안에서 오해받기 십상이다. 스스로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자, 근본주의자인 동시에 개혁주의자라니, 그는 좌우를 분변 못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이것저것 무조건 옳다 하는 다원주의자가 아닌가 말이다. 정통은커녕 이단이 틀림없다. 실제로도 그는 열혈 지지자들 못지않게 적수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며, 특정 교파 소속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계에서 마치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박쥐 대접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의 여러 전통과 역사적 흐름 중 장점들을 수용하고 통합하여, 부분들의 총합보다 더 좋고 새롭고 관대한 접근법을 버무려내려는 이 책의 지향점이야말로 관대한 정통신앙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이야기하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은 기독교에 실망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95개조 반박문
여러 교파와 정통을 만나면서 신앙 지평이 넓어졌다는 사실은 브라이언 맥클라렌 스스로가 산 증인이다. 소위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로 성장한 그는 청년 시절 오순절파를 만나고, 또 대학 시절 가톨릭 작가 워커 퍼시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통해 동방 정교회 신앙을 접하면서 자신의 신앙이 더욱 풍성해진 것을 경험한다. 또 30대가 되어서는 자유주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유주의 신앙에 대한 기존의 깊은 편견마저도 깨지게 되었다.
이렇게 서두에서 본인의 신앙 여정을 소개한 그는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현재 자신의 신앙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독교 전통의 장단점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인식을 넓히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체스터튼, C. S. 루이스, 파스칼 등 유명인의 저작을 인용하고,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다양한 교파의 사람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각 교파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고 장단점을 명료하게 지적한다. 또 환경이나 평화, 관상, 신비주의 등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들에게 전반적으로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런 영역들을 회복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머징 교회 운동의 태동과 ‘이머전스’라는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관대한 정통신앙과 이머전스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은 정통에 대해 편협하고 좁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관대한 정통은 각종 교파와 교리를 초월하여 열린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예수님이 기독교를 창시하러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다. 예수님의 궁극적 목표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니 소모적인 교파 싸움일랑 그만두고, 과거 기독교의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고 회개하며, ‘기독교’보다 더 큰 현실, 즉 관대한 정통 기독교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추천사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진정으로 관대한 기독교 정통신앙을 매력적이고도 도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모던하고 에큐메니컬하고 선교적인 기독교 신앙을 얻고 실천하려는 모든 이에게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_존 R. 프랑케 | 하트필드 신학교 교수

지금 이 시대는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다. 나는 마르틴 루터에게 16세기 유럽을 꿰뚫어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우리를 위한 망원경이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손에 들려 있다.
_필리스 티클 | 《탐욕 :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저자이자 강연자

절대주의자와 상대주의자 중에 누가 옳은가? 누가 틀렸는가?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두 관점 외에도 다른 관점들을 인정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좋아할 사람도 있고, 싫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생각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_로버트 웨버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 저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기독교를 생각한다》는 흔히 올바른 사고를 논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독단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 중심의 진정한 신앙을 제시한다.
_라이언 베일러 |《소저너스》 웹 에디터

책속으로 계속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주님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님 없이 그저 구원자 예수님만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 주님이 혁명적 왕이자 스승이요 선생으로 오셔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면 필시 우리는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그분을 가짜 예수님 취급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 ‘친구 예수님’은 이미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우리의 필요’를 꼬박꼬박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들여지고 낭만화되고 추상화된 예수님을 정통적인 예수님으로 삼았다. 그래서 다른 예수님은 이단적이고 낯설며, 심지어 위험하고 무가치하게까지 보인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예수님은 물론이고 많은 비기독교인이 무용지물로 여길 법한 종교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말씀하신 바 있다(마 5:13~16; 7:21~23).
_3장_예수라면 기독교인이 되었을까

이런 선교적 접근법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솔직히 이 접근법이 일으키는 변화를 나도 다 모른다. 아직 이 접근법을 파악하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 접근법을 따르면 ‘복음주의’와 ‘사회적 행동’ 같은 낡은 이분법이 불필요해진다. 두 요소가 세상에 구원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로 통합된다. 기독교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하면 된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은 사랑하고 섬겨주면 된다. 하나님과 함께 그 사람의 선과 복과 평안을 추구하면 된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목회’(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는 일)와 ‘선교’(우리가 교회 밖에서 하는 일)의 구분이 사라진다. 사실, 목회와 선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격을 기르려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해보다는 선을 끼치기 위해서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선교사’와 ‘선교 현장’ 같은 단어도 불필요해진다. 따지고 보면, 모든 기독교인이 선교사며 모든 곳이 선교 현장이다.
_5장_나는 왜 선교적 기독교인인가

관대한 정통을 상상하려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의 영웅적 모습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모두 되고 싶다. 한편으로 두 진영의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그들의 실수를 생각하면 어느 범주의 틀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 두 진영은 더 높은 길을 찾기 위해 위를 바라보고, 현 상태를 넘어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땅을 발견하기 위해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포스트 보수주의나 포스트 자유주의 같은 용어가 당분간은 유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이면 양극화된 용어가 아예 사라지는 날을 상상해 본다.
_8장_나는 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가

기독교 역사에 수없이 많았던 딱딱하고 편협하고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정통신앙들과 달리, 관대한 정통신앙은 교만하지 않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겸손하며 너무 많은 것을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정통을 산문 학자들(신학자들)만의 배타적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체스터튼처럼 시인과 신비주의자들을 포용한다. 심지어 거의 입을 열지 않거나 아예 침묵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환멸이나 의심에 빠진 사람들까지도 포용한다. 이들의 침묵은 하나님의 위엄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오히려 인간의 그 어떤 말보다도 낫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사랑과 연민을 품은 행동가와 인도주의자들을 포용한다.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에 관해 글이나 설교, 개요, 심지어 시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_9장_나는 왜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성경적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시기는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는 목적으로 성경을 사용했을 때다. 남을 지적하고 위협하는 무기요 세상살이에 필요한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성경을 사용했을 때 우리는 쇠퇴하고 방황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가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길 원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성경을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성경의 본래 목적은 까마득히 잊은 채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가톨릭·정교회·자유주의·보수주의·은사주의·그 어디에 속했든) 진정으로 성경적인 기독교인들, 성경의 올바른 목적을 이해한 기독교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은 안락한 고향과 고국을 떠나 세상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들은 몸을 치유하고 마음을 강건하게 해줄 병원과 학교를 지었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면서 자신은 기꺼이 수입의 90퍼센트, 아니 그 이하로 살아갔다. 그들은 인종과 국적, 계급의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을 형제요 자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믿음을 배반하거나 남들을 고통에 빠뜨리느니 스스로 고난을 받는 편을 택했다. 그들은 헨델의 <메시아>에서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과 유럽의 대성당, 셰이커 교도의 주방 의자에 이르기까지 고상하면서도 실용적인 예술을 창조해 냈다. 그들은 교사와 농부·벽돌공·간호사·학자·자동차 정비공·판매원·공무원·과학자·건축업자·택시 운전사·요리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이처럼 그들이 평범한 삶에서 충실히 해낸 일들도 ‘선한 일’에 속한다. 그들이 농장이나 사무실·집·교실·공장 등지에서 한 일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하고 신성한 소명의 엄연한 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성경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복음을 전했다. 물론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내가 성 프란체스코·마더 데레사·빌리 그레이엄·우리 할아버지와 부모님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적인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_10장_나는 왜 성경주의자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길은 출발하기도 전에 철학 조건과 정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심지어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더라도(히브리서 11:8에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모험을 실제로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그 모험을 떠나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도서관이나 교회당에 앉아서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먼저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실제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과 교회당을 찾게 된다. 사랑의 모험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말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기술한다 해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_12장_나는 왜 근본주의자이자 칼뱅주의자인가

관대한 정통신앙이 이와 같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깊은 회개로 나아가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를 얻는 것이다. 관대한 정통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은 씨앗을 뿌릴 때마다 원수가 잡초의 씨앗을 뿌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잡초를 뽑으면 좋은 식물도 뽑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단을 보류하고 그저 좋은 씨앗이 자랄 때마다 기뻐하는 것이 관대한 정통신앙의 길이다.
_15장_나는 왜 가톨릭교도인가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의 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친구가 되어야 한다. 다른 종교들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에 맞서는 동지요 다른 유산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원래 예수님은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오셨다. 나는 오늘날 예수님이 (악 말고는) 그 무엇도 파괴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오시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구속하거나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뭐든 구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
당신의 반문이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잖아. 다른 종교에는 악이 너무 많잖아.”
맞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종교에도 악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0장에서 말했듯이) 다른 종교들의 눈에서 티끌을 빼려고 하기 전에 우리 종교의 눈에 박힌 들보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마 13:24~30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를 근거로) 세상 종교들의 가라지를 모두 뽑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좋은 씨앗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말하고 싶다. 곡식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게 어떤가?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둘을 분간하실 수 있으니까.
_17장_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을 대접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이라도 장점은 인정하고 배울 점은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내 종교의 좋은 점을 제시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은 믿음의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표현이다.
_17장_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관대한 정설을 추구하는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자신이 불교도나 이슬람교도 ‘위’가 아닌 ‘아래’ 있는 종이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그들은 ‘동등한’ 이웃이요 형제다.
나는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사랑하고 이해할 것이다. 내가 발견한 좋은 것들 중에서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들을 전해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준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세상을 즐기고 그들과 함께 웃고 먹고 일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서로의 아기를 안아주며 서로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고 서로의 만찬을 즐길 것이다.
나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의 이웃이 될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그들이 내 메시지를 믿기는커녕 존중할 이유도 없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 나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세상에 더 많은 복을 전해주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할 뿐 강제로 세울 생각은 없다.)
_17장_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앞 장에서 말했듯이 예수님은 기독교 종교를 포함해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러 오시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분명 그렇게 믿는다. 물론 기독교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독교는 분명히 필요하며 여러 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 나는 기독교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며, 나 역시 기독교 안에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기독교 종교’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며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이요 소원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꿈과도 같다.
_18장_나는 왜 낙심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가

관대한 정통신앙의 길을 걷는 것은 마침내 진리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윤리)의 공동체 안에서 진리(교리)를 찾아 선교(맥클렌돈의 표현을 빌리자면, 증거)의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를 이 모험의 길로 보내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진리를 완벽히 얻었는가? 물론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리를 찾고 있다. 우리가 전진할 의욕을 잃지 않도록 늘 충분한 진리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통이다. 보고 찾는 과정, 사는 과정, 생각하고 사랑하고 배우는 과정, 진리 곧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에 점점 더 근접해 가는 과정이 바로 정통이다.
‘최종 결론’을 얻고자 이 책을 폈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의 정통신앙은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옳은 교리의 목록이 아니라 ‘생각’이나 ‘의견’을 찾고자 이 책을 폈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에 관한 생각과 의견의 범위와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기쁨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_20장_나는 왜 끝을 모르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통은 단순히 올바른 결론이 아니라, 늘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 곧 올바른 과정을 의미한다. 정통은 옳은 목적지가 아니라 옳은 수단과 태도다. 그것은 옳은 답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이런 종류의 정통은 열정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_20장_나는 왜 끝을 모르는가


목차


필리스 티클의 추천사 우리 시대의 95개조 반박문
존 프랑케의 추천사 변해버린 세상과 교회의 변화

프롤로그 당신은 어떤 기독교인인가

0장 이 위험한 책을 읽기 전에

1부 왜 나는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1장 내가 만난 일곱 교파 예수
2장 예수를 통해 경험되는 새로운 하나님
3장 예수라면 기독교인이 되었을까
4장 예수는 무엇을 구원했는가

2부 나는 어떤 기독교인인가
5장 나는 왜 선교적 기독교인인가
6장 나는 왜 복음주의자인가
7장 나는 왜 포스트 프로테스탄트인가
8장 나는 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가
9장 나는 왜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가
10장 나는 왜 성경주의자인가
11장 나는 왜 은사주의자이자 관상가인가
12장 나는 왜 근본주의자이자 칼뱅주의자인가
13장 나는 왜 재세례파이자 성공회교도인가
14장 나는 왜 감리교도인가
15장 나는 왜 가톨릭교도인가
16장 나는 왜 환경주의자인가
17장 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18장 나는 왜 낙심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가
19장 나는 왜 이머전트 기독교인인가
20장 나는 왜 끝을 모르는가

에필로그 솔직하게 털어놓는 신념이자 이야기이며 심정
옮긴이의 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아찔한 균형 잡기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 070-4821-5101
교환/반품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856 303호 / (주)스터디채널 / 전화 : 070-4821-5101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