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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 캐롤스클레니카
  • |
  • |
  • 2012-07-06 출간
  • |
  • 960페이지
  • |
  • 148 X 218 X 40 mm /1350g
  • |
  • ISBN 978898218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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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여행.”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
십 년이 넘는 자료조사, 수백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된 거대한 ‘카버 연대기’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가 쉰 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세상은 전성기에 도달한 한 뛰어난 작가의 목소리를 잃었다. 카버는, 영국의 『타임즈』가 명명한 바에 따르자면, “미국 중산계급의 체호프”였다. 그가 한 세대의 작가들과 단편소설이라는 문학적 형식에 끼친 영향은 폭넓게 이야기되어 왔다. “카버는 가장 광범위하게 모방된 작가로서, 한 세대 전체의 인솔자였습니다. 카버가 단편소설에서 해낸 작업은 실제보다 훨씬 쉬워 보입니다.”(『뉴요커』 편집자 찰스 맥그래스) 하지만 카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는지, 그의 개인적인 삶의 행로는 어떠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흡사 세밀화처럼 카버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의 야키마에서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예민한 감성의 뚱보, 레이먼드 카버의 성장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레이는 열아홉 살 때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온 두 살 아래의 메리앤 버크와 결혼했다. 동네 의사가 사무실 청소를 조건으로 빌려준 지하 아파트에서 결혼 전에 임신했던 첫애를 기르면서(이때 둘째 밴스는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레이가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카버의 재능에 대한 메리앤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었고, 본인이 기꺼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자신의 삶이 카버의 소설에 투영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의지 또한 확고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격정적이고 몹시 불안정했던 결혼생활과 카버의 작가 이력이 뒤얽혀가며 만들어간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저자는 또한 카버가 문단에 진입하는 과정을 다양한 계기와 사건들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카버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소규모 잡지들’과의 인연, 메이저 문학잡지들의 기약 없는 외면, 문학적 스승 존 가드너 및 그 유명한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만남, 기적 같은 『에스콰이어』의 응답, 두 번의 경제적 파산과 거의 죽음 직전까지 그를 데려갔던 중증의 알코올중독…… 그리고 이 책은 카버가 리처드 포드, 토바이어스 울프, 조이 윌리엄스, 알 영, 윌리엄 키트리지, 레너드 마이클스, 척 카인더, 그리고 ‘존 치버’ 등 일군의 작가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우정도 그려낸다.
대개 실업, 음주, 부부간 갈등, 이혼, 문제 많은 아이들 등 도시 변두리 주택가에 불길하게 감돌고 있는 여러 일상의 이야기들을 다룬 카버의 작품을 두고 당대의 평론가들은 스타일에 강조점을 두어 “미니멀리즘”이라고 잘못 이해된 이름을 붙였지만, 저자는 정작 카버의 작품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적확하면서도 온기 있는 서술 때문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카버의 첫번째 결혼이 와해되어 가는 과정과 말년에 짧게나마 카버가 자신의 문학적 성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시인 테스 갤러거와의 동반자적 관계를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자신이 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카버는 1988년 폐암으로 인해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말한다. “나를 위해 울지 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저자가 카버의 사생활이 안고 있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피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기를 통해 그려진 카버의 초상은 충분히 관대하고 현명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카버의 굴곡 많은 삶이나 사후의 문학적 광휘에 압도된 전기 작가라면, 자극적이거나 찬사 일색의 전기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저자인 스클레니카는 이런 길들을 택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술에 취해 있던 복잡하고 나약한, 그러나 끊임없이 작가로서 자신을 발명해나간 모순투성이의 한 인간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려냈다.

이 책은 카버가 작가로 성장해온 과정을 재구성해낸 뛰어난 연대기로서, 특히 ‘캡틴 픽션’으로 자임하던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스티븐 킹, 『뉴욕 타임즈 북 리뷰』

레이먼드 카버와 고든 리시의 만남

2007년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레이먼드 카버의 초기 작품들은 편집자 고든 리시가 개작에 가깝게 손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카버와 리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고든 리시는 『에스콰이어』의 소설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197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중흥기를 이끈 대표적인 편집자이다. 소설에 관한 한 엄청난 식견과 열정, 비판적 안목을 두루 갖춘 인물로, 편집자로 일하는 한편 소설가로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카버와 리시의 첫 만남은 1967년 소규모 잡지 『디셈버』의 편집자였던 커트 존슨(커트 존슨은 카버의 작품을 최초로 게재한 편집자이다)을 통해 이루어졌다. 카버의 단편 「제발 조용히 해줄래, 제발?」이 『1967년 전미 최우수 단편 선집』에 실리고 얼마 후였다. 당시 카버의 아내였던 메리앤이 리시를 만났던 날의 기억에서 2007년 미국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시초를 엿볼 수 있다.

리시는 “그 작품을 극찬했어요. 아주 열광적이었어요.” 메리앤의 기억이다. 그러고 나서 리시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만약 자기가 그 작품의 편집자였다면 (등장인물인) 랄프 와이먼은 그의 아내 옆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리시는 또한 만약 자기가 썼다면 그 작품의 결말이 달라졌을 거라고도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봤죠.” 메리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러니까요, 그게 바로 핵심이에요, 고든. 그건 당신 작품이 아녜요. 그 작품은 당신 게 아녜요.’” ―p. 278

작품 수정에 관한 문제가 가장 두드러진 것은 1981년 크노프 출판사에서 출간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준비하는 동안이었다. 카버가 타자로 친 원고(판본 A)를 리시는 펜으로 수정했고 이 수정 원고(판본 B)를 카버에게 확인받았다. 하지만 며칠 후 카버가 다시 받아본 원고(판본 C)는 판본 B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새로 타자를 친 판본 C는 판본 B에는 없던 변경사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판본 B는 남아 있지 않아 리시가 카버의 확인 이후에 얼마나 더 수정을 가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판본 A와 C를 비교해보면 한 작품에서 몇 페이지가 통째로 삭제된 경우도 있다.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리시의 이같은 공격적인 편집에 반발했던 카버가 바로 며칠 뒤에 태도를 바꿔 리시의 편집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역사학자 캐롤 폴스그로브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진실은 알 수가 없다. 두 사람은 분명 좋은 친구였지만 시인 테스 갤러거의 지적대로 리시가 “문단 진입에 필요한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캐롤 스클레니카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둘의 관계를 면밀히 살피는 한편, 카버와 리시 각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스클레니카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에스콰이어』를 통한 전국적인 데뷔 초기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출간 무렵까지 카버가 리시의 영향력에 어느 정도 굴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굴복조차도 카버가 창조해낸 문학적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카버의 재능과 창의성을 변형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그 이후 카버는 리시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면서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진정한 문학적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인정받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다

“진실을 알고 싶으시다면,” 카버는 여섯 권의 책을 출판한 유명 작가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술을 끊었다는 사실이 내가 살면서 해낸 어떤 일보다 더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일은 하룻밤 새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레이먼드 카버가 술을 끊는 데에는 거의 삼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이것은 이 일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레이가 어린 소년 시절 처음 술을 마신 이래 마지막으로 마실 때까지, 술을 끊는 데 삼십 년이 걸렸다고 볼 수도 있다. ―p. 494

1977년 6월 2일은 카버의 인생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날이다. 알코올중독 말기까지 갔던 그는 이날 이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카버의 아버지도 알코올중독으로 고생했다)를 따라 제재소에 가거나 낚시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카버는 술을 마셨고 경제적ㆍ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첫번째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내내 엄청난 술꾼으로 살았다.

노엘 영에게 보낸 편지에서 레이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이고 12월이면 “자유의 몸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집은 어디에 있는가? 집어들 새 술병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그곳이 그의 집이었다. ―p. 454

카버는 스스로를 ‘나쁜 레이’(술을 마시던 시절의 레이)와 ‘좋은 레이’(술을 끊은 후의 레이)로 구분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나쁜 레이’ 시절에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술을 마셨으며 자신의 낭독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도 술병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카버는 자신이 술에 취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빚어내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알코올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망쳐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카버는 요양소를 드나들며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전화를 거는 곳」(1982)이라는 단편을 완성하기도 했다.
카버가 이 뿌리 깊은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글을 써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자 한 그의 순수하고 집요한 열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때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함께 강사로 있었으며 당시 카버가 가장 존경하던 존 치버가 중증의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다시 소설을 발표하고 언론에 주목받는 모습을 지켜본 카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결국 카버는 글을 쓰기 위해 금주를 실천하게 된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레이가 금주를 시작한 시기와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가 서로 맞물린다는 사실이다. 맥그로­힐 출판사에서 출간된 소설집 『제발 조용히 해줄래, 제발?』이 1977년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같은 출판사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계약금으로 5,000달러를 보내왔다(당시 카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 1981년에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출간되었고 이 책이 크게 성공하면서 카버는 드디어 유명 작가가 되었다. 이후에도 놀라운 일은 계속되었다. 1983년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에서 선정하는 스트라우스 기금 수혜자가 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로써 카버는 오 년간 매년 35,000달러를 받으며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1984년에는 소설집 『대성당』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는 등 카버의 작가 경력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해에는 특별한 손님이 카버를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 손님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젊은 일본 작가였다. 카버의 소설을 번역한 뒤 그를 찾아온 무라카미는 카버 부부를 동경으로 초대했고 대형 침대를 준비했다. 그러나 카버는 그 침대에 누워보지 못했다. 작가로서의 성과들과는 반대로 카버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1987년 폐암 초기 증상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폐 절제수술을 받았다. 같은 해에 카버는 뉴욕 공립도서관으로부터 ‘문학의 사자’ 칭호를 받는 명예를 누렸다. 1988년 카버는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정식회원이 되는 영광의 순간을 또 한 번 맞이했지만 그때는 이미 암이 재발한 후였다. 더 이상 카버에게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1988년 8월 2일 레이먼드 카버는 이 모든 영광 한가운데서 쉰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원했던 것은, 카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사랑 받았다 아들과 형제, 친구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두 번, 그리고 마침내 작가로서. ―p. 866


목차


프롤로그

1부 시작

1 레이먼드 주니어
2 야키마 계곡
3 쓰기 위해 살 것이다
4 담배, 맥주, 재즈
5 사랑에 빠지다
6 분노의 시절
7 그와 그녀의 이야기
8 중서부의 아테네

2부 모색

9 갈고 다듬으며
10 이거 실제 주행거린가요?
11 행운
12 텔아비브에서 마크 트웨인을 읽다
13 60년대가 끝나다
14 뉴욕에 있는 친구

3부 성공 그리고 불만

15 『에스콰이어』에 실린 단편
16 자유의 환상
17 경악과 감동의 시절
18 익사
19 제발 조용히 해줄래, 제발?

4부 회복

20 유명해지고 집을 잃고
21 금주
22 헤어짐
23 시작, 또다시
24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25 불

5부 영광

26 대성당
27 하나의 물이 다른 물과 만나는 곳
28 울트라마린
29 내가 전화를 거는 곳
30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에필로그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
후주
레이먼드 카버 연보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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