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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고

복희고

  • 원이둬
  • |
  • 소명출판
  • |
  • 2013-05-10 출간
  • |
  • 173페이지
  • |
  • 148 X 210 X 20 mm
  • |
  • ISBN 978895626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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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복희고』는 외세에 침탈당한 조국에 대한 원이둬의 애정과 학자로서의 열정, 유년시절부터 쌓여온 방대하고 깊은 학식 등이 결합하여 탄생한 걸작이다.

원이둬는 분명 이 논고들이 위기에 처한 중국을 지탱하고 다시금 딛고 일어서게 할 버팀목이 되기를 절실히 원했을 것이다. (…중략…) 마지막 연설을 하던 1946년 7월 15일, 그리고 숙소 앞에서 어쩌면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총탄을 맞으며 쓰러지던 그 순간, 그는 알았을까?

그의 혼이 담긴 이 글들이 이리도 오래도록, 이리도 강렬하게 중국신화학계에 영감을 불어넣으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순간 이국의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_ 중국의 신화학과 『복희고』 中에서

애국시인이자 대표적 신화학자, 원이둬(聞一多)
20세기 전반, 중국의 대표적 애국시인인 원이둬(聞一多, 1899~1946)는 신화학사에 있어서도 1930~40년대까지 항전기 중국신화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어릴 적 쑨원을 중심으로 한 신해혁명을 보며, 민국이 수립되었으니 노쇠해진 중국이 이제는 강성해지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다고 한다. 또한 혁명당의 활동을 보고, 자신도 더 이상 돼지꼬리 같은 변발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위안스카이에게 정권이 넘어간 후 원이둬는 소학교를 마치고 1912년 가을 북경의 청화학교(淸華學校)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원이둬는 학업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거두었지만, 학내의 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활발한 실천을 하였다. 학내에서 간행되는 『청화주간(淸華週刊)』이나 『청화학보(淸華學報)』의 편집일을 맡거나 학생회 서기로서 『청화주간(淸華週刊)』에 군벌정권을 비판하는 글들을 발표하기도 하고, 새로운 형식의 신시(新詩) 창작, 연극활동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다 1921년 북경의 교수들과 북양군벌 사이에 유혈충돌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청화학교를 비롯한 북경의 많은 학교 학생들이 수업 거부를 결의하며 항의하였다. 학교 당국은 수업 거부하는 학생들을 모두 1년 유급시키기로 결정하였고, 끝까지 수업을 거부한 원이둬는 결국 유급을 당하였다.
졸업 후 원이둬는 1922년 여름 청화학교 졸업생 50여 명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처음 시카고대학 미대에서 서양화 공부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고, 1년간 미술 공부와 시 창작에 전념하였다. 한편 그곳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과 차별을 접하며 정신적인 갈등과 좌절을 느끼기도 하였다. 1년 후 그는 콜로라도대학으로 전학하여 그곳의 미술학과 교수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뉴욕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람회에 출품하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신시 창작도 꾸준히 하여 1923년에는 그의 첫 번째 시집 『홍촉(紅燭)』이 출판되었다. 콜로라도에서 1년을 보낸 그는 1924년 다시 뉴욕의 한 예술대학으로 전학하였다. 뉴욕에 와서도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연극에 참여했다. 그가 이 시기 시 창작에 더욱 정열을 쏟게 된 데에는 미국에서 겪었던 민족적 자존심의 상처와 고난의 시기를 보내는 동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원인이 되었다.
3년간의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얼마 후 국립북경예술전문학교(國立北京藝術專門學校)의 교무장으로 초빙되어 가족과 함께 북경으로 간다. 당시 북경은 문학가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시기였다. 1926년 4월 원이둬는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쉬즈모(徐志摩), 라오멍칸(饒孟侃) 등과 함께 『북경신보(北京晨報)』의 부간으로 『시휴』를 창간한다. 1927년 남경 중산대학(中山大學)에 교수로 초빙되었고 1928년 3월에 창간된 『신월(新月)』의 편집인으로 적극 참여한다. 또한 두 번째 시집인 『사수(死水)』를 출판한다. 같은 해 그는 국립 무한대학(武漢大學) 문과대학 학장 겸 중문과 주임으로 가게 되는데 중문과로 옮기게 되면서 그의 관심사가 중국 고전문학 연구로 확장된다. 이전의 원이둬가 주로 시인이었다면 이후의 원이둬는 시인이자 중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청도대학(靑島大學)을 거쳐 1932년 모교인 청화대학 중문과 교수로 가게 되었고, 청화대학에 있는 5년간 광범위한 중국문학 연구를 하게 된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원이둬가 속한 대학을 포함한 세 대학(청화대학, 북경대학, 남개(南開)대학)이 전화를 피해 운남성 곤명으로 옮겨가 서남연합대학(西南聯合大學)을 이루게 된다. 이 시기는 그에게 학문적, 사상적 전회의 시기가 되었다. 학문적으로는 민속학과 문화인류학, 신화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중국의 신화학, 인류학이 그 당시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며 학문적 축적이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서남연합대학이 자리 잡게 된 운남성과 그 일대의 중국 서남부가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던 지역이라는 것도 원인이 되었다. 항전기 중국신화학을 대표하는 걸작 『복희고』는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다.
한편 그에게는 사상적 전회도 찾아온다.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정부가 대립하기 시작한 1940년 이후 그는 민주동맹(民主同盟)에 가입하는 국민당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른바 민주혁명투사가 되어 외부 집회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그의 시는 강한 사회성과 풍자성, 투쟁의식을 띠며, 잡문 창작 역시 그의 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46년 7월 15일, 원이둬는 국민당에게 암살당한 리궁푸(李公朴) 추모대회에서 국민당을 통렬히 비난하는 유명한 연설 ‘마지막 강연(最後一次的演講)’을 발표한다. 그날 오후 연설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원이둬는 서창파의 숙소 입구에서 국민당 곤명경비사령부 하급군관인 탕스량(湯時亮)과 리원산(李文山)이 쏜 총에 맞아 암살당한다. 이렇게 그는 4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중국신화학의 경전, 『복희고』
『복희고』는 ‘중화민족 용 토템론’을 제시한 원이둬의 대표작이자 중국신화학의 경전적 저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지는 홍수남매혼 신화를 한족의 복희·여와 신화와 연결시키고 있어서,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신화연구자들에게도 자주 거론되는 저작이다.
『복희고』가 이 제목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은 원이둬가 세상을 떠난 후에 출판된 『원이둬전집』(1948)을 통해서였다. 원래 『복희고』를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독립된 네 편의 논문이었다. 1940년대 초부터 원이둬는 「인수사신상을 통해 용과 토템을 논하다」, 「전쟁과 홍수」, 「한족과 묘족의 종족관계」, 「복희와 조롱박」 등의 논문들을 썼다. 이 중에는 그의 생전에 발표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미완성 원고도 있다. 1946년 원이둬가 국민당 특수요원에 의해 암살당하고, 2년 후인 1948년에 그의 친구였던 주쯔칭(朱自淸)이 그의 글들을 다 모아 『원이둬전집』을 펴낼 때 이 원고들을 모아서 ‘복희고’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후 『복희고』는 중국신화사에서 항전기 신화학을 대표하는 역작으로 자리 잡고, 이후 중국 신화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으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복희고』는 현대 중국신화담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하나는 홍수남매혼 신화와 복희·여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이고, 다른 하나는 중화민족과 용 토템에 관한 논의이다.

옛날 옛적에 큰 홍수가 일어나 세상 사람들이 다 물에 빠져 죽고, 남매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 망연자실한 두 사람에게 신은 계시를 내려주었고, 둘은 신의 뜻에 따라 부부가 되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각국, 각 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전해진다. 특히 중국에서는 56개 민족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민족에게서 전해지는 모티프이며, 소수민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운남, 귀주, 사천 등 중국 서남부는 홍수남매혼 신화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주요 전승지역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중국에서는 이들 남매를 ‘복희와 여와’라고 부른다. 복희씨라면 중국 신화에서 삼황(三皇) 중 하나이며,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발명하고 팔괘를 만들었다고 하는 문화영웅이 아닌가. 여와라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무너진 하늘을 보수했다고 하는 태초의 위대한 여신이 아닌가. 복희와 여와는 한나라 때에 이르러 사람의 상반신에 뱀의 하반신을 한 신의 모습으로 한 쌍이 되어 왕이나 귀족의 무덤을 장식하지 않았던가.
원이둬는 바로 한족 신화속의 문화영웅이자 인류창조의 신인 복희·여와를 서남부 소수민족들의 인류기원 시조인 남매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복희여와도」에 나타나는 뱀의 하반신에 근거하여 중화민족은 용 토템부족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복희고』는 옛 역사서나 『산해경』, 『초사』 등에 등장하는 갖가지 뱀과 용 이야기, 개의 모습을 하였다는 요족의 반호왕 이야기, 조롱박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이야기들을 두루 섭렵한다.
『복희고』는 외세에 침탈당한 조국을 향한 원이둬의 애정과 학자로서의 열정, 유년시절부터 쌓여온 방대하고 깊은 학식 등이 결합하여 탄생한 걸작이다. 항전기 중국지식인들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민족의 뿌리를 찾고, 민족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자 했다. 이러한 요청은 인류학의 현지조사 방법론에 입각한 민족지학, 서남소수민족 문화에 대한 새로운 포착, 1930~40년대에 활발하게 일어난 변강 연구열풍 등과 맞물리며 당시 중국의 민족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항전기 신화학이 이전의 신화학과 성격을 달리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고 이 시기에는 소수민족 신화와 한족 신화의 동일기원론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 『복희고』는 이런 시대의 흔적이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신화연구에 영감을 불어넣는 역동성을 담아
『복희고』는 꽤 일찍부터 국내연구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중국어 독해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 책을 원문으로 읽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원이둬가 워낙 중국의 옛 문헌에 해박했던 인물인데다가, 언어학·고고학·인류학·신화학적 방법까지 총 동원하여 이 책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간 국내에서 이 책의 번역본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출간된 『복희고』(소명출판, 2013)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문화동역학 라이브러리의 두 번째 책이다. 중국신화 연구자인 역자가 상세한 역주와 해설을 더하며 우리말로 옮기고, 독자가 학문적으로 접근할 때 다시 원서를 확인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하여 원전에서의 인용이나 고유명사 등에 꼼꼼하게 원어를 병기하였다. ‘문화동역학 라이브러리’는 한국과 그 주변문화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한국문화는 물론 인류문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그 다양성의 증진에 기여하고자 하는 책들을 엄선한 총서인 만큼, 이 책은 한국의 신화연구에도 큰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의 학자들뿐 아니라 신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복희고』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중국 신화이야기로 밤을 지새워 봄도 좋을 것이다.

■ 문화동역학 라이브러리 문화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구성물이다. 한국 문화는 안팎의 다양한 갈래와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변화해 갈 것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이 주관하는 이 총서는 한국과 그 주변 문화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추적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는 물론 인류 문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그 다양성의 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 문화동역학(Cultural Dynamics)이란 이러한 도정을 이끌어 가는 우리의 방법론적인 표어이다.


목차


책머리에: 중국의 신화학과 "복희고"

1장 서론

2장 인수사신상을 통해 용과 토템을 논하다
1. 인수사신의 신
2. 두 마리 용의 전설
3. 토템의 변천
4. 용 토템의 우세한 지위

3장 전쟁과 홍수

4장 한족과 묘족의 종족관계

5장 복희와 조롱박
1. 홍수와 인류창조이야기에서 조롱박
2. 복희.여와와 포호의 어음관계

부록: 원이둬, 치열했던 47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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