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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중국근대사

인물로 읽는 중국근대사

  • 신동준
  • |
  • 에버리치홀딩스
  • |
  • 2010-10-04 출간
  • |
  • 608페이지
  • |
  • 152 X 225 X 35 mm /802g
  • |
  • ISBN 9788992708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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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중국 근대사는 임칙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양계초, 손문과 원세개의 이야기다
1840년 아편전쟁을 시발점으로 태평성대의 청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트린 내분과 외침 속에는 사상은 달라도 존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 한 양무자강파와 변법자강파, 그리고 혁명파가 있었다. 중국 근대사는 청대의 패멸에서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이 된 중국을 만든 임칙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강유위, 양계초, 손문과 원세개의 이야기다. 중국은 21세기에 들어와 실패로 치부했던 양무운동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근대’에 대한 집중조명을 통해 ‘중체서용’의 정신을 되찾아낸 중국은 이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차원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창조 국가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 책은 최근 중국 역사학계에서 나온 재조명 시각은 물론 기존의 평가와 함께 아편전쟁에서부터 태평천국의 난, 양무운동, 청불전쟁, 청일전쟁, 무술변법, 의화단운동, 신정개혁, 중화민국의 건국, 군벌할거, 신문화운동과 5.4운동까지 중국 역사상 최고 격변기를 지낸 임칙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강유위, 양계초, 손문과 원세개를 재평가했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부국강병의 방략을 제시한 임칙서
중국 근대사의 시발점인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편의 늪에 빠진 중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 임칙서다. 그는 아편 밀수의 중심지인 광동에서 강경 진압책을 써 무역 적자를 아편 밀매로 호전시킨 영국을 격노케 했다. 결국 아편전쟁이 발발해 청국이 패하고 임칙서는 파면 당했다. 그는 유배지인 신강으로 가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의 위협을 간파하고 장차 청조의 최대 위험으로 러시아를 주목했다. 해양세력인 영국을 상대했던 그를 양무자강파 중에서도 해상방어를 중시하는 해방파가 아닌 육상방어를 중시한 새방파로 분류하는 이유다. 당시 청조는 홍콩 등지를 잃었으나 외침이 계속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낙관적인 청조와는 달리 임칙서는 자신이 모은 구미 자료를 전부 친구인 위원에게 넘겼다. 이를 근거로 위원은《해국도지》를 썼다. 그를 통해 수많은 한족 관원이 청조의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부국강병의 개혁 정신은 강유위 등 변법자강파로 이어졌다. 또한 서양의 기술을 배워 중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려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으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오늘날 반제국주의의 선구자라는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중국 근대사의 효시로 불리고 있다.

최초의 해군인 상군으로 난을 평정하고 부국강병을 주창한 증국번
그동안 증국번을 한민족의 반역자인 소위 ‘한간漢奸’으로 매도하는 견해가 대종을 이뤘다. 만주족 정부에 충성하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농민운동으로 평가받는 태평천국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 중국은 새로운 중화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가경영 리더십의 표상으로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탁월한 경세지략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자 청조는 한인 관원을 적극 활용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게 증국번이다. 그는 태평천국의 난을 농민혁명으로 보지 않고 비적 집단으로 매도했다. 일단의 승전과 주위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청조에 충성을 바쳤다. 그의 양무운동은 단지 사상에서 그친 것이 아닌, 청조의 승인을 받아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그를 비롯한 양무자강파는 근대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관독상판을 내세웠다. 관독상판은 정부의 감독 하에 회사 경영을 민간인에게 맡기는 반관반민의 기업 형태다. 오늘날의 중국이 채택한 기업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새방을 주장해 신강 수복에 성공한 양무자강파, 좌종당
태평천국의 도성인 천경이 무너지는 동치 3년(1864) 신강의 쿠차庫車에서 시작된 무슬림의 반란은 100여 년에 걸친 청조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듬해에는 서쪽 변경의 코칸트한국汗國에서 침공한 야쿱 벡이 일리伊犁를 제외한 신강의 전역을 정복해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야쿱 벡의 정권은 2년 만에 좌종당이 지휘하는 청의 원정군에 의해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좌종당의 신강 수복과 이슬람 정권의 붕괴는 전한제국 이래 2000년 동안 서역西域을 판도에 편입시키고자 한 중국의 끈질긴 시도가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좌종당은 임칙서의 관점을 이어받아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프랑스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 복주에 조선소를 설립하는 등 해방파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음에도 궁극적으로는 러시아 방어에 주력했다. 그는 생전에 새방파의 실천적 지도자가 되어 서북지역의 염군과 회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신강을 수복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의 신강수복은 아편전쟁 이후 줄곧 열강의 압력에 굴복해 땅을 할양하며 미봉책으로 일관해오던 청조에게는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이이제이의 방략으로 양무운동을 주도한 개화론자, 이홍장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홍장은 시종 굴욕적인 매국조약의 원흉으로 지목된 까닭에 근 100여 년 동안 ‘한간’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나아가 그는 청검한 삶으로 일관한 스승 증국번과 달리 생전에 뇌물수수 및 부정축재 의혹으로 숱한 비난을 샀다. 그러나 그는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과분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서구 열강의 끝없는 외침에 그는 대담하게도 청국이 비록 현재는 많은 손실이 있을지라도 문호를 열고 세계와 교역하면 언젠가는 부강을 이뤄 천하를 호령할 날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그가 구사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책략은 당시 청국의 피폐한 상황에 비춰볼 때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이홍장을 애국자로 평가하고 있다. 예컨대 당시 그가 영국에 홍콩을 할양하면서 99년간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땅을 완전히 베어주지 않는 한 언젠가는 후손들이 되찾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길게 호흡하는 사람만이 능히 생각해 낼 수 있는 셈법이다.

변법유신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한 개화론자, 강유위
강유위의 유신변법운동은 19세기 말 청국 지식인이 주도한 대표적인 근대화운동이다.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한 양무운동의 실패와 더불어 서구의 기술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체제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면서 변법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저서《대동서》에서 자신의 이상을 구가했다. ‘대동大同’은 유가가 그리는 이상향으로 공동체적 합일合一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다. 그는 자신의 변법을 합리화하기 위해《공자개제고》에서 공자를 혁명가로 규정했다. 그가 만일 공자를 개혁가로 규정해 변법을 추진했다면 점진적인 개혁에 우호적인 입장을 끌어들여 이홍장을 설득하고 이내 서태후까지 개혁에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인 방안 대신 광서제를 끼고 혁명적인 방법으로 변법을 이뤄내고자 했다. 그는 모든 고통이 계급적 억압과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차별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대동세계’의 이상향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집단적 구분을 폐지한 가운데 전 세계가 평등하게 통합하는 ‘세계통일정부’ 수준의 만민공동체를 이뤄야 대동세계의 구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상적이기는 하나 당시의 제국주의 세계질서와 맞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탁월한 논리로 새 국가를 만들고자 한 당대의 논객, 양계초
양무운동과 변법운동, 의화단운동, 신해혁명, 복벽, 5·4운동, 북벌 등을 잇달아 겪은 양계초는 혁명가이자 사상가, 문학가, 언론인 등으로 활약하면서 평생 중국의 변혁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는 스승인 강유위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유위는 학자형으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깊이 파고드는 스타일이었으나 양계초는 언론인답게 관심의 대상이 매우 넓었다. 양계초의 삶은 크게 과도過渡와 다변多變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선변’은 기본적으로《주역》에서 역설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또 다른 표현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은 과감히 파괴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자강불식의 자세를 뜻한다.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도 과거의 것을 묵수墨守하는 것은 보수가 아닌 수구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청조의 복벽을 찬성한 자신의 스승 강유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가 추구한 궁극적인 목표는 ‘빈국약병貧國弱兵’으로 인해 열국의 침탈대상이 되어 있는 중국을 부국강병의 나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멸만흥한을 기치로 내건 공화주의자, 손문
현대 중국의 출발점인 신해혁명을 이뤄낸 손문은 원래 의사였으나 청일전쟁 전후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자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민주공화국 체제인 타이완은 물론 인민공화국 체제인 중국에서도 청조를 무너뜨리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만든 그를 높이 평가하면서 국부國父로 칭송해왔다. 신해혁명은 안팎의 패망위기를 극복키 위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국민적 각성 위에서 성취된 까닭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최근 신해혁명은 신사층이 자신의 보신을 위해 일으킨 정권 교체적 정변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반대하는 명확한 강령을 제시하지 못하고, 민중을 광범하게 동원하지 못하며, 강력한 혁명정당을 형성치 못했기 때문이다. 변법을 이뤄 군주입헌제 국가를 만들면 적어도 러시아와 일본을 막을 수 있었는데 신해혁명으로 오히려 그것마저 무산되었다는 논거다. 그러나 신해혁명이 없었다면 그 이후 1919년 5.4운동을 비롯한 20세기 전반에 전개된 중국 및 아시아 민중의 반제투쟁은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선 공사에서 초대 총통이 된 야심가, 원세개
원세개는 일개 무부武夫가 중화제국中華帝國의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가 세인들의 지탄 속에 죽음을 맞이한 비극에 해당한다. 그에 대한 기존의 평가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 평면적인 접근에 있다. 당시 원세개가 ‘남북화의’를 통해 초대 대총통의 자리에 오른 것은 오직 그만이 막강한 무력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볼 때 불가피했다. 게다가 말만 대총통이었을 뿐 권한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가 대총통의 권한을 강화코자 한 것 역시 불가피한 면이 있다. 비록 세인들의 비난 속에 삶을 마치기는 했어도 예리한 상황판단과 능수능란한 처세술로 난세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지존의 자리에 오른 그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다. 21세기 동북아시대를 맞아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그의 행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동북아질서의 기본 틀을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차


서문
들어가는 글
제1장. 임칙서
제2장. 증국번
제3장. 좌종당
제4장. 이홍장
제5장. 강유위
제6장. 양계초
제7장. 손 문
제8장. 원세개
지은이 후기
참고문헌
부록1. 청조 세계표
부록2. 청말민국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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