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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천재들

한국사의 천재들

  • 김병기 ,신정일 ,이덕일
  • |
  • 생각의나무
  • |
  • 2010-02-01 출간
  • |
  • 349페이지
  • |
  • A5
  • |
  • ISBN 9788984985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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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위인전이 아닌 천재열전! - 역사를 읽는 두 겹의 시선

이 책은 위인전이 아니다. 천재 열전이다. 한국사를 관통하는 주요 인물을 선별 기술한 책들은 이미 서점에 빼곡하다. 하지만 관점이 없는 역사 읽기는 무의미하다. 이 책은 단순 나열식의 위인전기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천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그 정의에 맞는 진정한 천재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적극적인 의도가 피력된 교양역사물이다.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인물은 필연적으로 시대적 조건과 한계에 가로 놓여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탈시대적인 열망과 비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인물 한 명의 이력을 따라감으로써 그가 지나온 시대와 그로 인해 변화될 새로운 시대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고, 결국에는 그가 놓여 있던 시대사적 흐름을 읽게 된다. 역사라는 비교적 긴 시간의 길 위에 ‘천재성’을 겹쳐 놓음으로써 우리는 한국사의 인물에 대한 편식을 교정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좀 더 깊은 시선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왜 천재를 논하는가? - 시대를 만든 문제적 개인들을 찾아서

한국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뤘던 왕조 중심 정치 사관의 폐해에 맞서 이름 없는 민초들의 집단 심성과 생활사를 역사학의 한 대상으로 승격시키려는 의미 있는 노력이 최근 있어 왔다. 그와는 별개로 역사적 도약은 그 변화의 물꼬를 튼, 이름을 가진 ‘문제적 개인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그 문제적 개인들을 “당대의 현실에 맞서는 발상의 전환을 했던 사람들. 그들의 앞선 생각이 현재에까지 유의미한 시대 정신이 되었던 사람들”로 보고, 당대를 넘어 사회 질서의 해체와 구축을 꾀한 진정한 역사의 천재들이라고 여기고자 한다.
어느 시대에나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타고난 천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천재들의 삶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고, 그에 걸 맞는 업적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조선 후기 선구적 실학자 성호 이익은
“오랫동안 증험한 결과 어려서 총명하고 영리했던 수재가 차츰 장성해서는 도로 그 빛나던 재질이 줄어든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어려서는 신동소리를 들었지만, 커서는 범재만도 못한 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진정한 천재는 단순히 머리 좋은 사람만을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이상의 소설 「날개」 서두처럼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세상에 무수히 많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그저 좋은 머리로 자신이나 가족의 영달을 도모할 뿐이지만, 시대의 천재, 곧 역사의 천재는 시대와의 불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들을 뜻한다. 시대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곧 시대를 앞서갔다는 말이다.

한국사에서 진정한 천재는 누구인가? - 오늘의 천재를 부르는 이름들

그렇다면 우리 역사의 진정한‘천재’는 누구인가? 철벽 같이 단단한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뛰어난 과학기술능력 하나로 신분을 뛰어넘은 관노 출신 장영실은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거란에게 항복하거나 땅을 떼어주자는 주장이 대세일 때 냉철한 국제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거란으로부터 오히려 땅을 늘려 받은 서희도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신라만을 우리 민족의 정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한 유득공 역시 그런 의미의 천재이다. 성리학만이 정학(正學)이고, 다른 모든 것은 사학(邪學)으로 공격 받던 시절에 자생적으로 천주교 조직을 만든 이벽 역시 천재가 아닐 수 없다. 교종이 불교의 주류이던 시절에 선종으로 교종을 통합했던 지눌 역시 이런 의미의 천재이며, 주희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만든 율곡 이이 역시 이런 의미의 천재이다. 그 좋은 머리로 시대를 건지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상설 역시 천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시대를 잘못 타고나 은둔의 길을 걸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자신의 꿈꾸던 정치이념을 펼친 최치원이나 방랑 가객의 전형이 되어 자유로움의 경쾌함과 쓸쓸함을 노래한 김시습 역시 당대에는 불우했지만 시대를 초월한 천재들이었다.

3인의 독립 사학자의 우정 어린 공동 작업!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의미는 우리 역사학의 영역을 축소시킨 기존의 주류 실증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한 세 명의 독립 사학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 작업으로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잊혀버린 인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 온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교양역사저술가 이덕일, 지난 20여 년간 전국의 350여 개의 산을 오르내리고 일곱 개의 큰 강을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발로 걸어 왔던 답사가이자 황토사학자 신정일,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였던 조부와 부친의 뜻을 이어 민족주체성에 입각해 우리 역사에 덧씌워진 중화사관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벗겨내는 일에 투신한 김병기. 이들 셋이 모여 지난 2년 간 우리 역사의 문제적 천재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13인의 천재 열전 - 그들은 누구인가
1부 -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지눌
고려는 불교 국가였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과 법문의 해석이 참된 가르침이라 믿는 교종은 고려 초부터 왕실과 문벌귀족들이 선호하는 종단이었다. 점차 교세가 커지자 교종은 지배 세력의 한 축이 되어 많은 땅과 권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불교계의 혁신을 절감한 지눌은 진정한 불교개혁을 위해서는 외향적 행위가 아니라 참선이라는 내재적 수양에 기반을 두어야 깨닫고, 정혜결사문을 통해 불필요한 의식에 치우치고, 사리사욕에 물든 당대 불교의 현실을 질타한다. 그러면서도 경전 연구에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결국에는 부처님의 마음[佛心, 선종]과 부처님의 말씀[佛語, 교종]이 애초부터 다를 수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 선과 교를 사상적으로 통합한다. 그리하여 지눌에 이르러 엄격한 형식과 신비주의의 단점이 서로 보완되고 있는 독창적인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종 종단 조계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희
조선의 양반들은 승경도 놀이라는 것을 즐겼는데, 역사상 인물 중 특정 관직에 적임자를 써넣는 놀이였다. 이 놀이에서 외교를 다루는 예조판서 자리에 압도적으로 선임되던 인물이 바로 서희였다.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한 거란군을 담판을 통해 물리친 서희의 천재적 외교 전략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조선조 내내 지식인 계층에게 역사적 쾌거로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왕을 비롯한 관료 모두가 거란에 항복을 하든지, 서경(지금의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거란을 달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서희는 우선 냉철하게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살폈다. 서희가 봤을 때 거란은 고려와의 전면전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 틈을 타 송나라가 거란의 후면을 치게 되면 거란으로서는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서희는 거란의 침범 목적이 고려의 땅을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라 ‘송과의 국교 단절’과 ‘요와의 국교 수립’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되레 거란과의 국교 수립에 방해가 되는 압록강의 여진을 탓하며 여진족 토벌의 명분을 얻는다. 서희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접점에 놓인 한국의 지리적 여건상 주변 세력에 대한 냉철하고 정확한 정세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었던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였다.

장영실
조선과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관노 출신이 한 나라의 과학 기술을 관장하는 벼슬에 올라 당대 세계 최고의 과학기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으로 태어나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장영실이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의 융통성과 신분보다는 능력을 우선했던 시대를 초월한 현군의 존재를 증명한다. 남쪽 끝 동래성 관아의 이름 없는 기술자를 중앙으로 발탁한 태종의 혜안이나 신분의 제약에 구애 없이 장영실을 중국 유학까지 보내어 그 재주를 귀하게 쓰도록 한 세종의 인재 관리 방식은 탁월한 것이었다. 장영실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군주와 백성을 위해 자격루와 옥루를 만들어 당시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을 선물로 보답했다. 또한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발명국의 전통을 이어 인쇄술의 혁신을 이루었다. 장영실은 조선 시대 과학계의 ‘대장금’이었던 것이다. 또한 장영실과 세종의 만남은 천재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국가 경영자의 행복한 조우였다.

유득공
조선 역사 중후기에 시대의 장벽에 갇혀 있던 천재들과 똑똑한 군주의 행복한 인연이 또 한 번 펼쳐진다. 서얼 출신으로 벼슬길이 막혀 시문이나 짓고, 책무덤에 둘러 쌓여 학문에 골몰했던 불우한 독학자들을 개혁 군주 정조가 발탁한 것이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선대에는 그저 자그마한 서고 역할을 했던 규장각을 명실상부한 왕립도서관으로 개편하고, 서얼 출신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서이수를 검서관으로 등용한다. 최근 들어 역사계에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한 사검서관이 그들이다. 그중 유득공은 박제가나 이덕무에 비해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적 안목을 가진 천재였다. 그는 신라 주도의 한반도 통일만을 강조하여 한국사의 판도를 한반도 안으로 위축시킨 당시까지의 역사인식을 뒤집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 적자로서 남쪽의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이룬 분명한 한민족의 주체임을 밝힌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역사적 무대가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인 만주 일대로 확대되는 것이다.

2부 - 하늘이 내려준 천재
이이
율곡 이이는 아홉 번 과거에 응시하여 아홉 번 모두 장원을 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릴 정도로 특별한 머리를 타고난 천재였으며, 퇴계 이황과 더불어 주희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체계화시킨 조선조 최고의 사상가였다. 더구나 현모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두었고, 관운도 좋아서 자신의 사상을 실제 정치에서 펼칠 수 있는 기회도 모자람 없이 누린 행복한 천재였다. 임금이 스승으로 삼고, 동료 중신들이 존경하며, 후학들이 오래도록 그의 학문과 덕을 받들어 모신, 가장 이상적인 조선조 사대부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큰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열여섯의 영민한 소년에게 닥친 어머니의 죽음이 준 충격은 컸다. 최고의 어머니였기에 그 상실의 아픔은 더 컸던 것이다. 삼 년상을 마쳤으나 생과 사가 한순간에 갈리는 실존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당시 사대부 출신에게는 금기시되었던 불교에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마음을 두었다. 더구나 새로 맞이한 계모와의 현실적인 갈등은 오랜 세월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를 포기할 정도로 깊이 빠졌던 실존적 고민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끌었고, 그의 이기론을 정치하게 만들게 된다.

이가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천재 실학자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천재가 있었으니 그가 이가환이다. 정약용은 “뱃속에 저장된 것이 땅과 바다의 포용함과 같았다”고 이가환의 박학에 경탄했는데, 고대 경전은 물론이고, 역사와 지리, 신학문인 기하학 등 모든 지식에 막힘이 없었다. 정조는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사 지금의 서울대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하고, 채제공의 뒤를 이어 자신의 개혁 드라이브를 진두지휘할 재상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개혁 군주 정조마저 좌초시킨 시대적 장애물, 당파가 그의 재능을 가로 막는다. 집권당이었던 노론 벽파에게 남인 출신이었던 이가환은 자신들의 생사를 좌우할 눈엣가시였다. 노론은 이가환이 사학(邪學)인 천주학에 빠져 있다는 것을 빌미로 탄핵을 시도하고, 새로운 개혁 조선을 주도했을 시대의 천재는 그 덫에 걸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시대의 질곡은 그렇게 역사를 뒤바꿀 수 있었던 이가환을 빼앗았지만, 천하가 인정하는 독서가였던 그가 남긴 독서에 대한 짧은 글은 오래도록 큰 울림을 남긴다.

“천하에 독서인은 있지만 독서처(讀書處)는 없다. 만약 독서하고자 한다면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나 부뚜막 위, 부서진 의자 위, 헤진 담요 위도 모두가 책이 서림(書林)인 것이다. 반면에 독서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시원한 누각이나 따뜻한 고대광실, 둥근 연못 옆이나 네모난 우물가, 찾아오는 이 없는 조용한 집이나 얼음처럼 시원한 대자리와 따뜻한 담요가 왕왕 바둑 두고 술잔치 벌이는 장소가 되기 쉽다.”-이가환, 「독서처기讀書處記」

이상설
이상설은 고종에 의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불우한 독립열사 3인 중 한 명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신구학문에 통달한 희대의 천재이자, 해외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한 일제하 독립운동계의 마당발이었다. 어려서 배운 유학의 경지는 넓고 깊어 구한말의 대유학자 이건창은 그를 “율곡을 이을 대학자”로 인정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이미 성균관의 교수 겸 관장에 등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 법률, 정치, 경제, 사회, 수학, 과학, 철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당대 최고 수준의 학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어, 러시아어, 영어, 불어에 능통한 언어의 천재였다. 하지만 나라 잃은 슬픔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을 독립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만주, 러시아, 유럽과 미주 지역을 넘나들며 교육기관 설립, 망명정부 수립,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게릴라식 외교, 해외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화에 힘쓰지만, 조국의 독립을 너무나 멀리 둔 1917년 차가운 시베리아 땅에서 운명을 다한다.

3부 - 시대와의 불화
최치원
9세기 경 당나라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떠난 최치원은 요즘으로 치면 조기 유학생이었다. 그 배경에는 육두품 출신의 말단 관리였던 아버지 최견일의 선견지명이 있었다. 골품제의 나라 신라에서 영특한 아들이, 지닌 능력을 펼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치원은 그 어렵다는 유학생 대상의 빈공과에 단 한 번에 합격해서는 관리로 등용되고, 탁월한 문장으로 당나라 전역에 문명을 떨친다. 하지만 막상 당나라에서 출세할 요건을 갖추게 되자 마음은 고향 신라로 쏠린다. 당에서 배운 학문과 경험을 조국 신라 사회의 발전에 써 먹을 열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렇게 큰 뜻을 품고 되돌아왔건만, 그가 피해 떠나왔던 골품제가 다시 그의 발목을 잡는다. 당나라에서의 관리 경험과 중국을 감동시킨 문장이 ‘진골’이라는 신분의 힘만 못했던 것이 신라의 현실이었다. 신라 사회의 미래를 바꿀 종합적 개혁안 시무책을 만들어 왕에게 건의하지만 진골의 도움 없이 실질적 개혁은 불가능했다. 세상에 좌절한 최치원은 은둔의 길을 택하고, 죽음의 경위와 시기마저 불문명하게 생애를 마친다. 하지만 그가 신라 사회에 적용하고자 했던 유학정치 사상은 뒤이어 개국한 고려에 이르러 정치이념으로 채택되었고, 이후 1,000년의 세월동안 이 나라의 주류 정치사상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한국사의 인물이었다.

김시습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깨쳤다는 김시습은 세 살 때 이미 시를 짓고, 온 장안에 타고난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다섯 살 때는 그 영특함이 임금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 친히 50필의 비단을 내린다. 그것을 혼자 어떻게 가져가나 봤더니 어린 시습은 비단의 끝과 끝을 이어 집에까지 끌고 갔다고 한다. 그 일은 전국에 알려지고, 사람들은 이름 대신 ‘신동김오세’란 별명으로 불렀다. 그의 이름 ‘시습(時習)’도 ‘배우면 곧 익힌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재가 마주한 현실은 글을 읽으며 꿈꿔온 이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에 천재는 3일 동안 문을 굳게 닫고서 크게 통곡하고, 책을 불태우고서는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한다. 조선 천하 곳곳을 제집 삼아 유랑의 길을 나선 그는 세조 아래서 관직에 들어선 어릴 적 친구들의 몰염치를 조롱하고, 수천 편의 시를 길 위에 남긴다. 그는 또한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남겼다. 그것을 써서는 석실에다 감추고는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헛되지 않았다.

이벽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 이승훈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천주교 입문을 이끌고, 영세를 권유했던 배후 조종자가 누군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직 성리학만이 정학(正學)이고, 다른 모든 것은 사학(邪學)으로 공격 받던 시절에 혼자 힘으로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기꺼이 천주교에 귀의한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스도교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승훈을 배후 조종한 이벽이다. 이벽이 천주교를 접하게 된 것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를 모셨던 6대조 이경상이 귀국하면서 아담 샬 신부에게 받아온 천주학 서적을 통해서였다. 무릇 종교의 전파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보통인데, 조선 후기 이벽을 비롯한 남인 계열의 학자들은 천주학 서적을 자발적으로 강독해 교리를 받아들인 종교 전래사에 유래가 없는 인물들이었다. 천주교를 버리라는 문중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이벽은 14일간의 단식 끝에 죽음에 이른다. 이벽이 죽음으로써 지키려했던 신앙을 받아들인 오늘날의 한국 사람이 천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시대를 앞선 선각자의 생각이 우리 시대의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이규보
이규보는 평생에 걸쳐 8,000여 편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붓을 달려 시를 쓴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고려 시대 최고 시인이었다. 글을 잘 짓는 사람이 최고의 지식인이요, 최고 정치가의 기본 덕목이 탁월한 문장력이었던 시절에 이규보는 높은 벼슬에 올라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고픈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응시한 과거에 세 번이나 거푸 떨어지고, 네 번째에 합격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벼슬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 한직이었다. 술과 시에 의지하여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를 탓하던 그에게 무신정권의 등장은 새로운 기회였다. 최씨 정권에 의해 발탁된 그는 그로 인해 어용문인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지만, 비로소 문재로 세상을 이롭게 할 위치에 올라선다.
그가 남긴 수많은 시 가운데,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표현한 「동명왕편」은 이규보 시문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해 중화 중심의 역사의식에서 탈피하여 고려가 위대한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는 고려인의 자부심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 하였다. 이는 당시 거란과 여진, 몽고 등의 이민족에게 시달리고 있던 고려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던 시대적 산물이기도 했다.

정철
송강 정철은 양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한문학과 한글문학(가사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시대를 초월하는 빼어난 절창을 남긴 성공한 시인이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로 인해 조선 시대 누구보다도 더 많은 욕을 먹은 실패한 정치가였다. 동서붕당의 한가운데 서서 300여 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 시대를 연 대표적인 장본인이 정철이었다. 정여립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위관이 되어 1,000여 명이 넘는 동인 계열의 반대파를 숙청한 조선 시대 최악의 역옥 기축사화를 조종한 주역도 정철이었다. 정철은 ‘상대방을 없애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왕자의 친구로 궁궐을 드나들다가 하루아침에 역적의 아들이 되어버려 시골을 떠돌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가 평생 동안 권력을 향한 편집증 환자로 살게 한 강력한 정신적 외상으로 남는다.
그가 정치가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주를 긍정적으로 발휘한 가객으로 평생을 살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철의 문장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꿰뚫은 힘을 지녔지만, 정작 정철 자신의 천재성을 엉뚱한 곳에 써 역사를 불행하게 만든 불우한 천재였다.

황현
나라가 망했을 때, 글깨나 읽었다는 지식인 노릇의 진정한 길은 무엇일까?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직접 가담했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지식인들이 속으로만 분노하는 세월을 보내다가 자연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속민의 길을 걸었다. 나라가 망한 것을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고자 죽음을 택한 지식인도 있었다. 왜 죽을 결심으로 싸우지 않냐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부정과 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3,000여 권의 서책과 함께 초야에 묻혀 독서와 저술에 힘쓰던 조선 조 마지막 선비 황현은 아편덩어리를 삼킨 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꼭 죽어야할 의리義理는 없지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하늘로부터 받은 떳떳한 양심을 져버리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어온 책을 져버리지 않았다. 이제 길이 잠들려하니 참으로 통쾌하다”


목차


서문 -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

1부 -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지눌 - 독창적인 한국 불교를 창도하다 _ 이덕일
서희 - 싸우지 않고도 이긴 역대 최고의 외교가 _ 이덕일
장영실 - 신분제의 질곡을 뛰어넘은 관노 출신 과학자 _ 이덕일
유득공 - 최초로 발해를 우리의 역사에 편입시키다 _ 김병기

2부 - 하늘이 내려준 천재
이이 - 주희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만들다 _ 신정일
이가환 - 정약용이 혀를 내두른 조선조 최고의 천재 _ 이덕일
이상설 - 신구한문에 통달한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_ 김병기

3부 - 시대와의 불화
최치원 - 골품제의 덫에 걸린 당대 최고의 문장가 _ 이덕일
김시습 - 어긋난 세상일의 번민을 노래한 비운의 아웃사이더 _ 신정일
이벽 - 한국사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_ 김병기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이규보 - 한국적 한문학을 창조한 고려 최고의 시인 _ 신정일
정철 - 한문학과 한글문학을 넘나든 당대의 시인 _ 신정일
황현 - 나라 잃은 지식인 노릇의 괴로움을 죽음으로 증거하다 _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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