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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하늘을 날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

  • 김신
  • |
  • 돌베개
  • |
  • 2013-11-11 출간
  • |
  • 339페이지
  • |
  • 160 X 230 mm
  • |
  • ISBN 978897199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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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 그의 삶은 곧 우리 현대사였다

이 책은 백범의 둘째 아들 김신의 회고록이다. 이 책은 그가 태어난 1922년부터 『백범일지』 중국어판 출판기념회가 치러진 1994년까지의 일을 담고 있다.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은 고난, 인도와 미국에서 비행 훈련을 받던 시절의 자세한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공군의 활동상과 전쟁의 비극 그리고 비밀작전, 5·16 당시 긴박했던 쿠데타 세력과 미군 측의 움직임, 박정희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의 비밀 메시지를 전하던 대사 시절, 한·중 수교 비선 라인으로 활동한 일 등등. 이렇게 우리 현대사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던 김신의 삶은 현대사 바로 그 자체였다.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아들 김인(金仁)과 김신(金信 1922~ )에게 각별한 부정(父情)을 표했다. 이 중 장남 김인은 1945년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고, 김신은 쿤밍, 인도령 라호르, 미국 텍사스 등에서 훈련받으며 중국 공군군관학교를 마치고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뒤 제6대 공군참모총장(1960)이 됐다. 이후 주 중화민국(타이완) 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백범김구기념관장으로 있다.

현대사의 숨 가쁜 현장을 증언한다

_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의 진실은?
_ 미그기 획득을 위한 미국의 비밀작전은?
_ 5·16 직후 군부와 미국의 움직임은?
_ 북한은 1960년대부터 핵개발을 추진했다?
_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에 장제스 총통이 눈물 흘린 사연은?
_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한 타이완의 의도는?
_ 한·중 수교를 위한 막후의 비선 라인은?

김신은 광복 후에도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러 북으로 향하는 아버지 김구를 수행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쟁 발발 직후 일본으로 가서 F-51기를 인수해온 뒤 많은 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5·16 때는 박정희 세력과 미군 측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공군참모총장으로서 판단해야 했다. 주 중화민국(타이완) 대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장제스 총통의 각별한 신임 속에 박정희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 사이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며 가교 역할을 했다. 한·중 수교가 추진될 무렵에는 막후 비선 라인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동무! 아버님을 모시고 오느라 수고 많았소.”
“아이고, 우리 항일 독립운동의 대선배이신 김구 선생을 뵙게 돼서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김일성은 인사를 마치고, 우리가 오는 도중 여러 질문과 짐 검사를 받은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김일성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버지가 나를 소개하셨다.
“제 자식 놈입니다.”
김일성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동무!, 아버님을 모시고 오느라 수고 많았소.”

이승만 암살 미수사건의 진상
“저는 김일성 장군이 밀파해서 내려왔습니다.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승만을 암살하러 왔습니다. 3, 4일 후에 다시 찾아올 테니 약간의 돈과 권총 한 자루를 마련해 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신성모 장관에게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느낌이 이상하니 나를 좀 보호해 달라 요청했다. 그날 밤부터 사복 차림의 정보 계통 사람 두 명이 우리 집 바로 옆에 상주했다.

‘검은 고양이를 훔쳐라’, 미그기를 손에 넣기 위한 비밀작전
“시골 창고 속에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걸 가져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아주 간단한 작전’이라고 말한 작전은…오키나와에서 잠수함을 타고 요동 반도로 잠입한 뒤 우리 쪽 사람과 접선한다.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중국 사람으로 위장해서 기지 근처로 이동해 기지에 잠입한다. 미그-15기를 몰고 김포 비행장으로 돌아온다.

“『백범일지』를 여러 번 정독했습니다.” 박정희 장군과의 첫 만남
박정희 장군은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아, 김 장군은 저를 잘 몰라도 저는 잘 압니다. 『백범일지』를 여러 번 정독하고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박정희 장군은 미리 연락 안 드린 점은 죄송하다고 했다.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 내가 다시 여러 박해를 받을 것을 염려해서 연락하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다. 박정희 장군은 활주로에 탱크만 갖다 놔도 이착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군에 대해 그리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편지에 장제스 총통이 눈물 흘린 사연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다가 슬쩍 타이완을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장제스 총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공산당의 바다에 갇혀 있는 중국 사람들의 희망의 등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장징궈(장제스의 아들)를 만나 박정희 대통령이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친필로 쓴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며칠 후 총통 부자와 만났다. 닉슨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적혀 있었다. 총통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1960년대 중반 북한의 핵개발 정보를 입수하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는데, 알고 있습니까?”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으로 핵 관련 장비들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즉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정보 당국과 관계자들은 북한 핵 개발 정보를 대단치 않게 여겼다. ‘그게 말이 되느냐’는 분위기였다.

본토 수복을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한 타이완
타이완의 참전 의도는 단순히 몇몇 지역에서 미군을 도와 지하공작을 하려는 정도가 아니었다. 몇 개 사단을 파병해 베트남을 통해 중국 본토 윈난 성까지 밀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미국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이 기회에 본토 일부를 수복하려는 뜻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완은 미국에 참전 의사를 전하기 전에 이미 상세한 계획을 다 세워두었다.

한·중 수교를 위한 또 하나의 비선라인
나는 귀국해서 홍성철 청와대 비서실장을 찾아가 중국에서 겪은 모든 일을 자세히 말했다. 사실 중국 측에서 나를 비밀리에 부른 것도 내가 귀국해서 고위층에 보고하기를 바라고 부른 것이었다. 중국 측이 나를 여러 가지로 테스트한 것은, 한국의 다른 인사들처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가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홍성철 씨는 내가 말한 사항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백범의 아들이 말하는 백범의 뜻

남북연석회의를 위해 북으로 향한 백범의 진심
백범 김구가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고 김일성과 회담한 것에 대해 오늘날 많은 논란이 있다. 당시 정세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평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순진한 발상이었다는 지적 등등. 그렇다면 아버지 김구를 모시고 북한을 다녀온 김신은 백범의 뜻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신은 백범이 일의 성패를 따져 자신에게 유리한 지 불리한 지 계산하는 따위의 행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민족의 분단과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과제에 대해서만큼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백범이 걸은 길은, 이 길을 따라 전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 앞뒤 재면서 나선 길이 아니었다. 김신은 아버지의 뜻을 이렇게 말한다.

혁명의 본래 뜻은 무엇인가? 하늘의 명(天命)을 통째로 바꾸고 시대의 대세를 근본부터 바꾼다는 뜻이니 목숨 걸고 매진한다 해도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분투하는 수밖에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낙숫물로 댓돌을 때려서 바위를 깨고 댓돌을 뚫고자 하는 것이다.

김신은 바로 그러한 본래 의미의 혁명에 나서는 심정, 민족이 살 길을 반드시 열어야만 한다는 마음, 그것이 방북 길에 오른 아버지의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이 갈라져 동족상잔의 암운까지 드리워지면서, 아버지 김구의 참담한 심정은 헤아릴 길이 없었다. 김신은 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평생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는가? 이역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선열들의 영령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을까? 그 심정의 만 분의 일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시비성패(是非成敗)를 논하는 구구한 말들은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다. 아버지는 마땅히 나서야만 하는 길을 나섰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라는 제목이 담은 뜻
김신은 중국 공군군관학교 생도로서 인도령 라호르에서 훈련받고 있을 때 광복을 맞이했다. 곧바로 귀국하려 했지만 아버지 김구는 미국에 가서 비행 조종술을 더 익히라고 명했다. 김신은 아버지의 뜻이 ‘해방된 조국의 하늘에서 태극기를 단 비행기를 몰며 조국의 자유를 지키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김신은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에 휩싸인 조국의 하늘을 날아야 했다.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기는 했지만 조국의 산하에 폭격을 해야 했다. 김신은 이렇게 말한다.

갖은 고난 속에서 익힌 비행 기술을 동족과 싸우는 데 써야만 했던 이 비극은 나 개인만의 비극은 물론 아니었다. 시대가, 역사가 우리 모두를 그 길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주인이 되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슬기롭게 그리고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담겨 있다.

독립운동가 가족의 고난, 백범 가족이라는 숙명

“자네에 대해서 밖에서 말이 너무 많아, 그러니 영국에 가서…” (이승만)
김신은 젖먹이 시절 어머니(최준례)가 돌아가시고 중국의 고아원에 여러 번 맡겨졌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없고, 잠시 잠깐 뵐 수 있었을 뿐인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별로 없다. 광복 후에도 아버지 김구를 모신 것은 채 2년이 못 되었다.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아껴주신 곽낙원 할머니도 전란의 와중에 중국 땅에서 잃어야 했고, 형님도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광복 후 아버지 김구를 흉탄에 잃어야 했다.
백범 서거 이후 이승만 정권은 김신을 늘 감시했고 이승만 자신이 직접 김신에게 외국으로 떠날 것을 권했다.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죄를 덧씌우려는 공작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공군에서도 월북할지 모른다, 비행기로 뭔가 일을 낼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으며 지상 근무만 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백범 서거 이후 한독당이 극심하게 탄압받으며 친공(親共) 세력으로 몰리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김신은 경교장 지하실 창고에 있는 한독당 조직표와 명단 등 조직 관련 자료를 보일러실에서 모두 불태워야 했다. (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가 소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김신이 소각함)
김신은 이러한 개인사와 가족사에 대해 ‘백범 김구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로는 크나큰 자랑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지만, 늘 나와 가족의 어깨 위에 무겁게 드리워진 버거운 숙명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고, 언제 잡힐지 모르는 긴장과 불안이 따라다닌 삶’이었지만 아버지와 선열들에 대한 자부심이 김신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는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선열들이 분투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경험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을 얻는 막막한 심정 속에 불안과 외로움에 떨어야 했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그래도 의로움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많은 어르신들과 선배들이 있었기에 나 또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곽낙원 할머니(백범의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추상같은 기개
김신이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할머니’였다. 젖먹이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 김구는 뵐 기회가 없었으니, 할머니 곽낙원 여사가 김신을 키워주셨다. 김신이 중국의 고아원에 여러 번 맡겨졌을 때 다시 찾아온 것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어린 김신을 키우려면 너무도 힘드실 것을 걱정하여, 어머니(최준례)는 어린 김신을 양육하는 것을 단념하시라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어미가 자식 아끼는 마음이 세상 그 어떤 마음보다 크고 강한 법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 말씀하신 어머니의 심정을 그 얼마나 처절했을까. 어미 없는 젖먹이 막내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곽낙원 여사는 황해도 안악에서 지내던 시절 일본 경찰들이 끊임없이 회유했지만 늘 당당히 맞섰다. 일본 경찰은 나중에 김신을 제국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회유하고, 명절이나 일본 경축일에 떡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들(김구)에게 귀국하라는 편지를 써서 아들이 돌아오면 총독부 고위직을 주겠다는 회유도 했다. 그러나 곽낙원 여사의 기개는 늘 추상같았다.
일본 경축일에 모든 집이 일장기를 달아야 했지만, 곽낙원 여사는 한 번도 달지 않았다. 일본 경찰이 계속해서 찾아와 일장기 달 것을 재촉하자 곽낙원 여사는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신문지에다가 먹으로 동그랗게 해 가지고 대문에 붙여라.”
김신이 그렇게 해놓자 일본 경찰이 그걸 보고 직접 떼어낸 뒤 자신들이 일장기를 가져다 걸었다.
임시정부에서 곽낙원 여사는 ‘호랑이 할머니’로 통했다. 이동녕, 이시영 선생 같은 원로들에게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영감들, 그만 놔두고 다들 나가시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하게 놔두란 말이오. 영감들이 뭐 하러 이러쿵저러쿵 자꾸 간섭하는 거요?”
원로들도 곽낙원 할머니의 말씀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곽낙원 여사는 1939년 4월 26일 운명하면서 마지막까지 “신아! 신아!”하며 손자의 이름을 불렀다. 곽낙원 여사의 유해는 1948년 8월에 고국으로 모셔와 서울 정릉에 모셨다가 1982년 남양주 송정리 묘역으로 옮겼고, 다시 1999년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형 김인의 유해와 나란히 안장되었다. 곽낙원 여사의 유골 단지 안에는 은수저를 보자기에 싸서 넣었다. 평생 마음 편히 수저를 드시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 편안히 모시지 못했다는 죄스런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추천의 말

제1부. 이산의 땅에서 자라는 나무
1장. 망명지사의 젖먹이 아들
2장. 난징 시절과 중일전쟁 발발
3장. 아! 나의 할머니

제2부. 창공에 띄운 민족의 꿈
4장.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
5장. 미국에서 혹독한 비행 훈련을 받다
6장. 조국의 하늘에 드리운 암운

제3부. 전쟁의 비극,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7장. 국방경비대에 입대, 육군항공대에서 활동하다
8장.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슨 말을 하오리까
9장.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되다
10장. 검은 고양이를 훔쳐라
11장. 공군 참모총장 재직과 5·16군사쿠데타

제4부. 중화민국 주재 대사의 사명
12장. 외교 무대의 막전 막후에서
13장. 박정희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
14장. 신, 당신은 한국 대사야!

제5부. 다시 시대를 생각한다
15장. 국회의원과 교통부 장관 시절
16장. 백범기념관, 우뚝 서다
17장. 한중수교, 막후에서
18장.『 백범일지』중국어판을 출간하다

후기
김신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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