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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모차르트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 이재규
  • |
  • 21세기북스
  • |
  • 2010-03-31 출간
  • |
  • 291페이지
  • |
  • 250 X 305 mm
  • |
  • ISBN 978895092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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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모차르트의 음악여정에 동참해보세요
모차르트가 정상적인 음약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천상의 영감을 받아 작곡을 했다거나,
머리에 떠오르는 악사을 척척 악보에 옮겼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정된 것이다.
모차르트는 매우 훌륭한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했다.
그리고 부친 레오폴트의 ‘여행’이라는 전략도 한몫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는 아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모차르트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철저하게 가르쳤다.
모차르트는 35년 ㅃ개월의 생애 중 10년도 더 되는 3,720일을 유럽 10개국과 204개 도시를 여행했다.
따라서 모차르트에게 ‘무엇이 당신을 만들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나를 만든 것은 여행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모차르트 선생, 무엇이 당신을 만들었습니까?”
“나를 만든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18세기 유럽 문화의 절정을 꽃피웠던 이탈리아로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당신을 초대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차르트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약 30년 동안 천상의 선율을 오선지에 척척 옮겨 적고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간 천재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틀린 것이 아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모차르트를 신동으로 여기는 것은 본질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모든 기법을 배우고 그것을 끊임없이 연습했으므로 음악기법으로 청중을 짜증스럽게 하지 않았으며, 음표 하나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반복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높은 존재로 묘사했다.
“만약 내가 죽어 하늘나라에 간다면 우선 하느님께 경배 드리고 다음에는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중략) 그리고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즐겨 듣습니다. 그것이 젊은 모차르트이건 나이든 모차르트이건 상관없이 오직 모차르트만을 듣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기독교적 윤리성으로까지 묘사했다. 그는 베를린 유학 시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열광했는데, 1843년 자신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돈 조반니>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는 주장하며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성당의 성물 관리자에서부터 추기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직자들을 부추겨서,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모차르트를 최고의 인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기독교에서 탈퇴하여 오직 모차르트만을 최고로 또 유일하게 숭배하는 신흥 종교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인간 모차르트에 관한 많은 것들은 거의 왜곡이거나 허구이다. 모차르트는 증류수처럼 불순물 없이 투명하고 전혀 흠이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정상적인 음악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음에도 천상의 영감을 받아 작곡을 했다거나, 머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쉽게 악보에다 옮겼다거나, 작곡을 자신의 내적 만족이나 후대를 위해 했다거나 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과장된 왜곡이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가난했다거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천박했다거나 하는 것 또한 허구이다.
이 책은 무엇이 “모차르트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매우 훌륭한 음악교육을 받았고, 한 시민으로서 좋은 훈육을 습득했으며, 타고난 재능도 컸지만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성공은 부친 레오폴트의 전략이 주효했다.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는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야심 많은 계몽주의 음악가였다. 레오폴트는 아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모차르트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를 철저하게 가르쳤다. 레오폴트의 전략은 바로 여행이었다. 모차르트는 35년 11개월(1756. 1. 27~1791. 12. 5), 즉 13,097일을 살았는데, 그 가운데 10년도 더 되는 3,720일을 유럽 10개국, 그리고 204개 도시를 여행했다. 1769년 12월 13일을 시작으로 1773년 3월 13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의 도시 51개를 여행했다. 모차르트가 당시 유럽에서 가보지 않은 국가는 예카테리나 2세가 다스리던 러시아와 에스파냐 정도였다.
모차르트는 전업 작곡가 겸 연주자로서 자신의 음악을 팔러 다녔고, 배움을 위해 스승과 선배 작곡가들을 찾아가 만났다. 따라서 모차르트에게 "무엇이 당신을 만들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그는 “나를 만든 것은 여행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책속으로 추가

<145~147쪽>
5월 14일 모차르트 부자는 한 줄기 소나기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드디어 나폴리에 도착했다. 나폴리로 가는 길은 일찍 닥친 더위로 숨이 턱턱 막혔다. 곳곳에서 강도가 출몰했고, 게다가 지방 도시들을 통과할 때마다 여권 심사 등으로 여정이 늦어져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가는 데 닷새나 걸렸다. 도중에 모차르트는 몇 편의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들을 작곡했고, 도중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연주도 했다. 그 덕에 레오폴트는 때아닌 수입으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잠을 좀 더 많이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오늘날 기차역에서 가까운 비아 산 조반니 아 카르보나라(Via San Giovanni a Carbonara)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원에서 묵었다.
나폴리에서 모차르트 부자는 어딜 가나 대단히 쾌활한 모습들에 커다란 공감과 만족감을 얻었다. 이곳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한 계절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나폴리 사람들은 먹는 일 자체를 즐길 뿐 아니라, 팔려고 내놓은 상품을 곱게 단장하는 일도 즐긴다. 자연이 만들어낸 다채롭고 화려한 꽃들과 과일들은 마치 인간과 모든 사물들을 최대한 화려한 색채로 장식하는 일에 인간들을 초대하는 듯이 보인다. 1786년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폴리를 보고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떤 말도, 어떤 그림도 이 경치의 아름다움에는 당하지 못한다. 나폴리에 오면 사람들이 들뜬다고 하더니 헛말이 아닌 것 같다.

나폴리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이오니아의 그리스 사람들이 와서 살기 시작했고, 기원전 8세기에는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식민지였다. 기원전 400년경에는 3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말과 함께 괴테의 찬사도 있지만, 모차르트가 보기에 나폴리는 지저분했고 시끄러웠으며 또 위험했다.
모차르트는 로마에서 만난 고위 사제들이 써준 추천장을 발판으로 나폴리의 명사들을 두루 만났고 곧 초청 연주회가 잇달았다. 모차르트는 나폴리에서 콘세르바토리오 알라 피에타(Conservatorio alla Pieta)에서 연주를 했는데, 청중은 모차르트가 끼고 있는 반지에 마술적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반지를 벗고 연주하라는 주문도 했다. 청중의 요구대로 반지를 빼고도 멋진 연주를 끝내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차르트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세상의 비방이나 칭찬은 가볍기가 먼지 같아.”
......
5월 19일 부친의 편지 말미에 모차르트는 난네를에게 편지를 썼다. 난네를이 모차르트에게 보내준 책과 악보들을 잘 받았다거나, 나폴리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농담도 잘 했다.

사랑하는 누나
편지 받거든 곧 답장해줘, 누나. 셈법 책을 보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내가 두통을 앓게 하고 싶으면 셈법 견본책을 종종 보내주면 돼. 농담이야. 사실은 실제로 머리가 좀 아파. 그래서 편지가 형편없는 걸 이해해줘.
하이든의 미뉴에트 12번을 보내준 것 정말 고마워. 베이스 부분에 너무나 완벽한 가사를 붙여놓았어. 누나 정말 대단해.
(중략)
그리고 내 친구들 모두한테도 안부 전해줘. 여성 동지들, 남성 동지들, 모두에게. 누나의 건강도 잘 챙길 것, 그리고 죽지 말 것. 계속해서 내개 편지를 보내줘야 하니까. 나도 줄곧 누나에게 편지를 쓸 것이며, 우리 둘 다 계속해서 편지를 써서 더 이상 쓸 것이 없을 때까지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요.
_ 1770년 5월 19일 나폴리에서
볼프강 모차르트

<268~271쪽>
모차르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군주와 귀족과 부르주아 앞에서 연주를 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또 18세기의 훌륭한 음악가들을 만나 배웠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마르티니 신부에게서 대위법을 배웠고, 삼마르티니, 파이지엘로, 요멜리, 마요 등 당대의 대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오폴트가 물었다.
“볼프강, 이탈리아 여행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니?”
모차르트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빠,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레오폴트는 달래는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 그렇지,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단다.”
레오폴트는 본인도 신앙심이, 특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깊었고 또 아들을 가톨릭적으로 키웠다. 레오폴트가 또 질문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번에 모차르트는 또렷이 대답했다.
“청중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뮌헨, 만하임, 파리, 런던, 그리고 빈에서 만난 음악가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음악이 좀 더 밝고 코믹하고 가볍고 화려했어요. 그리고 아빠, 시대가 달라지면서 건축물이 달라졌어요. 나의 음악도 그래야 되겠지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청중, 즉 고객에 따라, 장소에 따라, 가수에 따라 달라졌다. 궁중이나 귀족의 연회에서 사용되는 음악, 일반 대중을 위한 예약연주회용 작품, 초기의 메타스타시오형 오페라, 다폰테 3부작, 그리고 마술피리 등 상황에 적합한 음악으로 나타났다.
“그렇단다. 그리고 건물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본 것은 무엇이지?”
“사람의 마음은 처음부터 선하다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의뢰자의 주문에 따라 작곡된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 자신이 작곡을 먼저 하고 출판사에 판매를 의뢰했지만, 모차르트는 먼저 작곡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주문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작곡을 하다가도 중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차르트는 고객이 듣고자 하는 음악을 생산하는 음악기술자였다. 그 반면 베토벤은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곡을 작곡하는 음악전도사였다.
그날 저녁, 그러니까 1773년 3월 13일 모차르트 부자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왔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가슴 밑바닥 가득히 쌓아 가지고 말이다. 레오폴트 부자와 안나 마리아 모녀는 깊은 포옹을 했다. 찬란했지만 고통스러운 모차르트의 소년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목차


제1장 첫 번째 이탈리아 여행(1769.12.13~1771.3.28)
---1769년
1월 5일, 잘츠부르크 / 12월 13일, 바트 라이헨할, 로퍼 / 12월 14일, 뵈르글 / 12월 19일, 인스부르크 개선문을 지나 남쪽으로 /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12월 20일, 브렌네르 패스 혹 은 파소 델 브네레로 / 12월 21일, 볼차노 혹은 보젠 / 12월 23일, 에냐 혹은 노이마르크 /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 / 트렌토 공의회 / 12월 24일, 트렌토, 로베레토 / 12월 25일, 크리스마스 / 12월 27일, 베로나(첫 번째)
---1770년
1월 5일, 공개연주회 / 1월 10일, 만토바 / 1월 19일, 보쫄로 / 1월 20일, 크레모나 / 스트라디바리, 아마티, 과르네리 / 1월 23일, 밀라노 /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음악 전쟁 / 피치니와 글루크의 음악 전쟁 / 라 스칼라 / 2월 7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를 주문받다 / 3월 15일, 로디 / 메디치 가문의 창업과 대립교황 요한 23세 / 레오폴트 모차르트 / 3월 16일, 피아첸차, 파르마 / 바오로 3세 이야기 / 스탕달 / 3월 22일, 모데나 / 파바로티의 고향 / 3월 24일, 볼로냐(첫 번째) / 학문의 모교 볼로냐대학 / 3월 30일, 피렌체 / 르네상스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 / 카트린데 메디치 / 피아노와 메디치 가문 / 베키오 다리 / 4월 1일, 팔라초 피티 / 메디치 가문의 몰락으로 탄생한 우피치 미술관 / 오페라 시장과 오페라의 종류 / 차이코프스키의 <피렌체의 추억> / 4월 6일, 시에나 / 카테리나 성녀와 비오 2세 이야기 / 토스카나 와인 / 4월 11일, 로마 / 성주간과 가상칠언 / 최초의 불법 악보 복사 사건 / <미제레레>와 시편송 / 스페인 광장과 빌라 메디치 / 비운의 왕자 보니 프린스 찰리 / 5월 8일, 마리노, 테라시노, 세사 아우룬카, 카푸아 / 5월 14일, 나폴리 / 나폴레타나 / 페르골레시와 스타바트 마테르 / 치마로사 / 산 카를로 극장 / 괴테와 나폴리 / 6월 13일, 폼페이 / 6월 26일, 로마(두 번째) / 황금박차 훈장 / 7월 10일, 치비타 카스텔라나, 테르니, 스폴레토, 폴리뇨 / 7월 16일, 로레토 / 산타 카사 디 로레토와 대성당 / 전설 혹은 과학 / 로레토 성모 호칭기도 / 7월 17일, 안코나 / 프랑코 코넬리 / 7월 18일, 세니갈리아, 페사로, 리미니 / 말레스타나 가문 / 강가넬리 교황 / 7월 19일, 포를리, 이몰라 / 7월 20일, 볼로냐(두 번째) / 마르티니 신부와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 / 10월 18일, 밀라노(두 번째) / 12월 26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초연 / 레지오 두칼레 극장 / 사육제와 사순절
---1771년
1월 14일, 토리노 / 파이지엘로 / 2월 4일, 밀라노, 캐노니카, 브레샤, 베로나, 비첸차 / 2월 11일, 파도바 / 2월 20일, 베네치아 / 카페 플로리안 / 바흐의 컨피 칸타타 / 아틸리아를 사랑한 바그너,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두다 / 3월 13일, 파도바에서 <베툴리아 리베라타>를 주문받다 / 3월 14일, 비첸차 /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 /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 / 3월 16일, 베로나(세 번째) / 3월 20일, 로베레토, 트렌토, 볼차노, 브레사노네 / 3월 25일, 인스부르크, 바트 라이헨할 / 3월 28일, 잘츠부르크의 사랑하는 가족 품에

제2장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1771.8.13~1771.12.15)
너희는 싸워라, 행복한 오스트리아는 결혼을 하리라
---1771년
8월 13일, 카이틀, 바이드링, 상트 요한 인 티롤 / 8월 14일, 뵈르글, 쿤들, 인스부르크, 볼차노 / 8월 17일, 알라 / 8월 18일, 베로나(네 번째) / 8월 21일, 밀라노(세 번째) / 세레나타 / <알바의 이스카니오> / 보상 받지 못한 기대 / 12월 6일, 두 번째 귀향길 / 12월 16일, 슈라텐바흐 대주교 사망하다
---1772년
3월 14일, 콜로레도 대주교 잘츠부르크 영주로 부임하다 / 예수회 / 세레나타 <스키피오의 꿈> / 8월 15일, 모차르트 유급 콘체르트마이스터가 되다

제3장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1772.10.24~1773.3.13)
10월 24일, 오페라 대본만 들고 또 다시 밀라노로 / 10월 25일, 인스부르크 / 10월 28일, 다시 볼차노에서 / 아이스맨 외치 / 10월 29일, 다시 로베레토, 알라, 베로나를 지나서 / 메타시타시오형 오페라 / 11월 4일, 밀라노(네 번째) / 12월 26일, <루치오 실라> 초연
---1773년
1월 17일, 모테트 <엑술타테 유빌라테> 초연 /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 1월 27일, 피렌체 (두 번째) / 3월 4일, 굿바이 밀라노 / 3월 13일, 모차르트의 소년 시대가 끝나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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