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내 운명의 별 김진규

내 운명의 별 김진규

  • 김보애
  • |
  • 21세기북스
  • |
  • 2009-12-10 출간
  • |
  • 304페이지
  • |
  • 153 X 224 mm
  • |
  • ISBN 9788950921439
판매가

14,000원

즉시할인가

12,6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2,60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한국영상자료원 선정 ‘한국영화 100선’에
가장 많이 오른 배우, 김.진.규.

아내 김보애가 털어놓는
배우 김진규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스크린의 신사’-부드럽고 어진 이미지의 배우
김진규는 타고난 미남이기도 했지만, 분위기로 모든 말을 하는 배우였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한없이 선량하고 신중하고 믿음직해서 지극히 중독성이 강했다. 당시 남성에게 의지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여성 팬들에게는 가히 최고의 남성상이었다.

배우 김진규(金振奎, 1923~1999)는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에서 지적인 빨치산 역으로 데뷔한 이후, 〈아빠 안녕〉 〈이 생명 다하도록〉 〈새 엄마〉 등에 출연하여 흥행을 성공시켰다. 1960년대에는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보여준 탁월한 연기력으로 대중적 지명도를 얻으면서 스타로서 화려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하녀〉를 비롯하여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카인의 후예〉 같은 문예영화에서 특유의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스크린의 신사’로 통하던 그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어진 남성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중년층 여성에게 인기를 끌었다. 나중에는 〈종자돈〉의 연출까지 영역을 넓혔다가, 직접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성웅 이순신〉과 〈난중일기〉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파산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두 번째 부인인 김보애와 헤어지는 불행을 겪는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생긴 스타 시스템 1세대의 주역으로 7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이민, 최무룡, 신영균과 경쟁했으며, 최은희, 김지미, 조미령 같은 여배우의 상대였다. 다음 세대인 신성일과 엄앵란의 선배 연기자였고, 문희, 윤정희, 남정임 트로이카에게는 아버지뻘 연기자이면서도 여전히 상대 남자배우였다. 감독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은 그보다 한두 살 어렸으며, 그들의 대표작에는 그가 어김없이 ‘출현’했다.

구체적인 자료와 인터뷰를 통한 탐사와 검증
1) 그동안 불확실하고 미진하게 알려져 왔던 김진규의 생몰연대와 출연작, 학력과 경력, 사망 원인 등을 자료의 검증을 통해 바로잡았다. 배우 김진규의 명실상부한 전기(傳記)가 되게 실증적 자료를 갖추었다.
2) 당시 함께 활동한 배우들의 증언과 인터뷰: 저자는 당시 김진규가 함께 작업한 감독들과 동료 배우들 그리고 후배들을 찾아가 육성 증언과 인터뷰를 채록했다. 유현목, 임원식, 편거영 감독, 배우 최은희와 윤인자,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 작가 황석영 등이 들려주는 배우 김진규에 대한 증언과 회고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3) 영화계 데뷔 이전 시기의 행적: 일본에 양자로 들어갔던 시절, 악극단에서 처음 무대를 익히던 시절, 영화계 데뷔 이전 10년 동안의 이야기 등이 새롭게 밝혀진다.
4) 그의 첫 번째 부인 이민자에 대한 새로운 조명: 당시 ‘한국의 에바 가드너’ 또는 ‘미망인 전문 배우’로 불리던 여배우 이민자를 새롭게 조명한다. 김진규와 이민자가 헤어지게 된 배경, 6?25 전쟁 때 두 사람이 겪은 고통과 가난 등.
-“원효로 근방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의 처마 밑 방 한 칸을 겨우 얻었는데, 비가 오면 방이 물바다가 되었다. 부엌도 따로 없어서 밖에 풍로를 놓고 밥을 지어야 했다. 그러다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설익은 밥을 들고 들어와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오죽하면 그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한 이민자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넋두리를 했을까. “난 이 지긋지긋한 가난만 면할 수 있다면 몸이라도 팔겠어. 나도 이젠 지쳤어. 가난이 너무 싫어.””
5) 김진규의 말년과 병상 기록: 1980년대 중반부터 그는 배우로서의 활동을 접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표 배우라는 자부심과 평생 주연만을 맡으며 스타로 떠받들어져 온 자존심 때문에 노년이 되어서는 조연을 맡기를 거부하며 영화판의 현장을 떠났다. 제주도에 내려가 호텔 사업을 시작한 사연, 골수암으로 투병하던 마지막 순간들이 가족들의 육성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다.

한국영화계의 살아 있는 역사가 풍경처럼 펼쳐진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과 출연작들이 소개되고 그때의 일화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아들면서, 1960~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풍경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김진규가 광복 이후 한국영화계에서 스타 시스템의 1세대로 떠오른 배우인 만큼, 당대의 라이벌들인 이민, 김승호, 최무룡, 신영균과 얽힌 이야기, 신성일과 엄앵란 같은 후배 배우들, 문희, 윤정희, 남정임 여배우 트로이카와 함께 작업한 사연이 나온다.

1) 겹치기 출연-‘일명 가께모찌’ 이야기
정당한 출연료(개런티)를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시 배우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흥행업자가 주는 대본들을 일단 주는 대로 받아둘 수밖에 없었다.
김진규라는 배우 한 명이 1960년 한 해 동안 출연한 영화는 무려 22편!
-“그 시절에는 흥행업자가 전해주는 대본은 일단 무조건 받아두는 것이 상식이었다. 일은 많을수록 좋다는 통념에서였다. 대본의 내용을 꼼꼼히 챙겨볼 겨를이 없었다. 촬영장을 오가는 차량 안에서 대본을 읽거나 심지어는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 앉아서야 겨우 표지를 들춰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거실에도 대본이 있고 안방에도 대본이 펼쳐져 있고, 2층 거실과 베란다에까지 대본이 흩어져 있었다.
김진규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대본 사이를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다녔다. 촬영지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가늠하면서 다음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늘 시간에 쫓겨야 했다. 그것은 초특급 배우인 그의 개런티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 B급이나 C급 배우들은 거의 개런티 없이 출연했다. 그저 차비에다가 식사만 해결해주면 아낌없이 몸을 던지던 시절이었다.”

2)후시녹음(後時錄音)-일명 ‘입맞추기’
동시녹음기가 없던 시절, 유명 배우 별로 전담하는 성우들이 따로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야 했다.
-“그때는 (배우가) 대충 입을 벌려 대사를 외고 나면, 편집 과정에서 성우가 배우들의 입모양을 따라 대사를 입혔다. 그것을 ‘입맞추기’라고 했다. 배우가 대본을 따라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라 주연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 성우가 대사를 창조하는 방식이다.”
-“(성우 중에서) 고은정 씨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목소리를 도맡았고, 특히 생동감 있고 섹시한 엄앵란의 목소리 역시 그녀가 전담했다. 김진규의 목소리는 성우 박영민 씨가 전담했다. 중후하고 안정된 박영민 씨의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와 많이 닮았던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영화배우들의 연기가 불을 뿜었지만, 녹음 스튜디오에서는 성우들이 화면을 보며 주인공보다 더 뜨거운 목소리로 경연장을 만들었다. 화면의 주인공보다 더 슬프게, 현장의 장면보다 더 뜨겁게 장면 장면을 엮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협업 체제였고 공동의 예술 작업이었다.”

3) 매니지먼트가 없던 시절의 연예계 풍경과 배후의 권력
요즘처럼 영화대본이 나오면 섭외할 배우들에게 보내고, 배우는 기획사와 소속 에이전시 회사와 협의하여 일정을 정하는 식이 아니었다. 당시 스타들의 열악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소속사와 매니저 같은 연예인 관리 체계나 보호 장치가 없었다. 배우 혼자 기획하고 혼자 뛰고 혼자 결산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배우들은 인기가 있든 없든, 연기력이 출중하든 시원찮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으로 규모가 없고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4.19 혁명 이전: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임화수가 연예계를 좌지우지했다. 임화수가 자유당 정권의 재집권을 위해 정권홍보 영화로 제작한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에 당대의 유명 배우와 감독이 총출동한 이야기, 소신을 굽히지 않던 코미디언 김희갑을 구타한 일명 ‘합죽이 사건’, 배우 김승호를 선거운동에 끌어들여 동대문운동장에서 자유당 정권 지지연설을 하게 한 이야기, 권력자들의 축하 파티에 여배우들을 화초기생으로 보내던 이야기 등이 소개된다.
1960~1970년대: 근대화의 열풍이 거세지고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이 늘어나면서 연예계는 밤의 세계와 더 깊이 결탁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인숙 사건과 배우 방성자가 파멸을 맞게 되는 이야기가 다뤄진다.
-“1970년대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산업화의 입구에 나타난 여성들은 어떻게든 이 세계와 모종의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 지망생, 모델 지망생, 가수 지망생 그리고 대학가의 반반한 여대생까지 밤의 세계가 쳐놓은 덫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때 연예계의 꽃들은 밤의 세계가 매기는 서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최고 권력자의 파티에 다녀오고, 그 다음에는 실력자들이 드나드는 요정에 다녀오고, 그러고는 이름난 마담들이 운영하는 요정으로 출근했다. 그 시절 밤의 세계를 지배하던 큰손은 장충동에서 요정을 벌이고 있던 민 마담과 지금의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요정을 열었던 정 마담이었다. 만약 잘 나가던 연예인이 두 거물 마담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었고 그 연예인이 장수할 수 없다는 걸 반증하는 이야기였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에게 스타란 무엇이었는가
1) 배우의 신비성: 대중들은 인기 명배우의 얼굴을 단지 스크린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TV 프로그램이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어서, 당시 배우의 신비성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배우 김진규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켜보았을 아내 김보애의 눈으로 그 실상의 정도가 밝혀진다. 한 극성팬이 김진규가 만나주지 않자 스님이 되어 출가하면서 자른 머리카락을 소포로 보내온 이야기, 집으로 찾아온 과거 동거녀 등.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는 극성팬들 때문에 충정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은 언제나 북적거렸다. 김진규의 얼굴을 한 번 보려고 온종일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속옷이라도 한 번 빨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팬도 있었다. 한과, 엿, 호두, 곶감 같은 향토 명물을 부쳐주는 팬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우체국 집배원과 배달원들이 수시로 집을 드나들었다.”

2) 일급배우라는 중압감: 김진규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스크린의 신사’라는 마스크를 써야 했다. 인기가 오를수록 그 마스크가 주는 스트레스와 무게는 대단해서 동시에 그것으로부터의 탈출도 격렬하고 요란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는 가히 배우 김진규의 시대였다. 그의 인기는 〈아리랑〉의 주인공 나운규가 1920년대에 누렸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렇다. 남편은 인기 절정을 달리는 영화배우였다. 저녁이면 청운각이나 삼청각 같은 고급 요정의 마담들이 그를 초대해서 질펀하게 먹고 마셨으니, 그인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는가. 가난에 쪼들려 어렵게만 살아온 그는 술과 일류 기생들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고관대작의 부인들까지 배우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이었다. 재벌 회장 부인과 신문사 사장 부인을 비롯해서 몇몇 유력인사의 귀부인들까지 그와 식사를 하려고 줄을 섰다. 그가 피우다 만 재떨이의 담배꽁초까지도 누구에게 빼앗길세라 얼른 집어다 피웠다고 한다. 솔직히 그 시대의 유명배우들은 요즘 배우들보다 더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훨씬 좋은 대접을 받았다.”

3) 탈선과 외도: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대중 앞에서 빈틈을 보이기를 극도로 꺼렸던 완벽주의자 김진규는 사생활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번번이 술에 의지했고, 주사가 그토록 심했다. 자애스러운 눈빛과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한국의 신사에게 누가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당시 아내였던 김보애와 문하생이었던 양성우 등의 고백을 통해 한 배우의 아픈 진실을 듣게 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선정 ‘한국영화 100선’에
가장 많이 오른 배우, 김진규와 연기력
김진규는 상업성과 예술적 성취도(작품성) 두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이룬 배우다. 그런 성공은 특히 두 거장 감독, 신상옥과 유현목의 대표작에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고 호평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책은 두 가지 위상을 모두 점검함으로써 한 배우의 총체적 모습에 육박하고자 노력했다.
1) 신상옥 감독과의 인연-흥행 보증수표 김진규:
지금으로 치면 할리우드 식 대형 블록버스터를 지향했던 신상옥과 작업하면서, 한국 현대영화사의 굵직굵직한 흥행 대작에 모두 출연했다. 1961년의 〈성춘향〉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4년 〈벙어리 삼룡〉에서 호흡을 맞춘 최은희-김진규 콤비는 당시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1961년 ‘춘향전 대결’이라 불리던 〈성춘향〉과 〈춘향전〉, 두 영화의 흥미진진한 대결의 전모가 소개된다.
2) 유현목 감독과의 인연-문예영화 전문 배우 김진규:
당시 양산 체제로 접어들면서 영화계에는 쓸 만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들은 문학작품을 각색하여 영화화하는 문예영화를 선호했는데, 이 문예영화의 한복판에 있던 배우가 김진규였다. 〈성춘향〉이 절찬리에 흥행하던 같은 해 그는 다른 한편에서 〈오발탄〉이라는 리얼리즘 수작에 출연해 배우로서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출연료를 받지 않으면서까지 매달렸던 〈오발탄〉에 대한 김진규의 애착, 소위 작가주의 감독에 대한 그의 사랑이 새롭게 조명된다.
3) 현실과 캐릭터 사이의 착종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지근거리에 있는 이들마저도, 김진규를 보면서 스크린의 캐릭터와 혼동했다. 연기자로서 절정을 달리던 시절, 김진규 자신도 종종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헷갈려 했다. 이 책은 당대 명배우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하는 전기란 점에서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이 착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진규 앞에 서면 그 누구도 스크린 속 배역과 실제 인물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김진규는 배우이자 캐릭터 그 자체였다. 그 본인도 자주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을 정돈데, 그의 여성 팬들은 오죽했으랴.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스타란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막상 그 앞에 서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그게 스타였다.” -“실제로 그는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나 또한 취기가 돌면, 현실의 그가 한순간 영화 속 주인공으로 착각되곤 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겪은 과거와 영화 속 인물이 겪는 상황을 분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본 그의 고뇌하는 얼굴과 찌푸리는 미간에는 내가 보았거나, 아니면 보지 못했던 그의 과거들이 잔뜩 엉켜 있었다.”

2009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대상 수상작!
〈선정 기준〉
단순한 자료 수집이나 감상을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춘
논픽션을 선정한다.

〈심사 총평〉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모든 작품 속엔 자기 그릇만큼
운명을 거두어 안간힘으로 피워낸 삶의 꽃들이 있었다.
꽃은 아름다웠고 생은 신비했다.”

추천의 말
이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뒷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사위원 모두가 놀란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힘은 바로 정직성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뭔가 지키고 싶은 유명인일수록
정직해지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__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심사위원회
(한영우, 이덕환, 이지상, 공병호, 이주향, 이인화, 표정훈)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땐 말이 스타지 생활은 정말 비참했어요. 적선동 골목에 있던 작은 한옥집의 쪽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지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살림을 차렸는데 금 한 돈이 3000원 하던 시절에 월급으로 1만 원을 받아오더군요.”
__김보애, "수상소감"

김보애 선생은 나와 같은 시대를 보냈지만, 나이도 서너 살 위인 데다가
겪은 사회 경험으로 치면 여자라서 그런지 훨씬 누이 같이 여기게 된다.
우리네야 영화에서나 보며 자랐지만 전후 한국영화 개척기의 김진규 선생은
주변의 영화인들이 모두 인정하는 점잖고 재능 많은 연기자였다고 한다.
그 시절의 어느 누구에겐들 우여곡절과 여한이 없으랴마는,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과 마지막 재회의 사연은 김보애 선생의 평소 성격으로 보아 짐작할만한 일이다.
내가 선생의 진솔한 글에 천거의 글이랍시고 덧붙이는 것은 내 뉴욕 망명 시절에
함께 추진했던 남북 영화합작으로 비롯된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솔직하고 소박한 마음과 정치적 편견 없이 남과 북의 인사를 대하면서
온갖 손해와 불이익을 견디던 한결같은 인정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한국영화계의 어느 장면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잊혀진 사람들을 기억하게 해준다.
-작가 황석영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그는 고독하고 과묵한 사랑방 손님 역을 맡았다.
나는 그때 대청마루에 앉아 쇼팽의 야상곡을 치는 미망인 역을 했다.
정말 가슴이 뛰었고 연기 이상의 그 무엇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배우 최은희


목차


글을 시작하며

1부. 운명의 강을 건너다
1장. 그가 남기고 간 글
2장. 남도의 눈
3장. 첫 만남
4장. 김진규의 첫 결혼
5장. 김진규의 여인, 이민자
6장. 만난(萬難)을 무릅쓴 결혼
7장. 1960년대 르네상스, 신상옥 감독과의 인연
8장. 1960년대 르네상스, 유현목 감독과의 인연
9장. 1960년대 중후반 영화계 풍경-상(上)
10장. 1960년대 중후반 영화계 풍경-하(下)
11장. 김진규의 아이들
12장. ‘스크린의 신사’의 그림자
13장. 그를 나눠 가진 여인들

2부: 운명을 살다
14장. 세보, 정치인들의 사랑방-상(上)
15장. 세보, 정치인들의 사랑방-중(中)
16장. 세보, 정치인들의 사랑방-하(下)
17장. 내리막길, 유신과 한남동 시절
18장. 배우의 대물림
19장. 별이 지다
20장. 새로운 시간, 새로운 일-상(上)
21장. 새로운 시간, 새로운 일-하(下)
22장. 처음처럼

글을 마치며
배우 김진규의 주요 출연작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