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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하)

사마천(하)

  • 가오광
  • |
  • 21세기북스
  • |
  • 2009-07-20 출간
  • |
  • 436페이지
  • |
  • 153 X 224 mm
  • |
  • ISBN 978895091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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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사기史記』를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 번이나 뒤틀리고 꼬였다는 역사가의 집념!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 장편 역사물

◎ 줄거리

이 소설은 한나라 한무제 때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사기史記』를 완성한 역사가 사마천의 이야기다.

사마천은 대대로 나라의 역사를 집필하는 사관(史官) 집안의 출신이다. 아버지 사마담이 죽자 그 뒤를 이어 태사령(역법과 사서를 관장하는 벼슬)에 오른다. 『사기史記』의 열전 중 마지막인 「태사공자서」에서는 “사마담이 죽은 지 3년 후 사마천은 태사령이 되었으며, 석실과 금궤에 있는 책들을 꺼내 모았다”고 쓰고 있다.

그러다 의외의 사건에 휘말린다. 명장 이광의 손자인 이릉이 흉노족과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했다. 이때 사마천은 이릉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옹호하다가 그만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투옥되기에 이른다.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정직하게 기록하고, 옳은 기록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사관이다. 사관이 하는 일은 땅에 발을 디디고 하늘을 떠받치며 제왕의 과실을 바로잡는 것이다.”

사마천에게 세 가지 형벌 중에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50만 전의 돈을 내거나, 참수되거나, 궁형(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는 것. 중인 집안의 출신으로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는 그로선 결국 마지막 것을 선택한다. 48세의 나이에 치욕을 감내했다. 『사기史記』의 완성을 위해 결연한 죽음 대신 비루한 삶을 선택했다.

그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환관처럼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얼굴에 살이 오르고 체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마천은 감옥에서 풀려나 곧바로 중서령(비서실장)의 직책에 오른다.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는 그 자리는 사실 환관의 처지나 다름없었다.

중서령이 된 사마천은 삶의 이유였던 『사기史記』를 완성하기 위해 매진한다. 사마천의 궁형을 지시했던 정위(법무장관) 장탕의 이야기는 「혹리열전」에 넣고, 매사 광대처럼 굴면서 자기주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적을 만들지 않는 동방삭의 이야기는 「골계열전」에 넣는다. 황궁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가들의 암중모색과 세력 다툼은 「전분두영열전」에 담는다.

『사기史記』를 완성하기 위해선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면서, 사마천은 점차 한무제의 폭정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간다.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한 치의 눈앞도 보이지 않는 음모와 정쟁 속에서 사마천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어렴풋이 분간하기 시작했다. 윤리와 먹고사는 문제 속에서 부러질 때와 구부려야 할 때를 힘들게나마 체득해갔다. 『사기史記』 속에 난세를 헤쳐나갈 복안과 사람 읽는 기술이 담긴 것은 이 때문이다.

『사기史記』를 쓰면서 무엇이 옳은 정치이고 바람직한 세상인가를 고민했고, 그 답을 모색했다. “가장 나쁜 정치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속에서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신랄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입을 다물고 황제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었다.

사마천은 한무제와 중신들 사이의 알력다툼에서 네 번씩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긴다. 그러는 동안 황제의 권력을 탐하는 승상과 태위, 정위가 숙청되기에 이른다. 지방 제후 세력이 한동안 잠잠한 사이에 이번엔 태자가 간신의 함정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다. 마침내 황후까지 자결하고 평소 한무제의 총비였던 이부인의 아들이 태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무제는 진시황이 그랬던 것처럼 도사들을 시켜 불로장생약을 구한다.

『사기史記』의 서 중에 하나인 「평준서」에서 한무제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사마천은 한무제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줄을 간파한다. 한무제는 사마천에게 자신의 본기인 「무제본기」(「효무본기」)를 쓰라고 명한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의 마지막 편인 「무제본기」를 쓰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한다. 사마천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죽은 뒤 『사기史記』가 인쇄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사마천은 『사기史記』의 필사본을 남겨서 훗날 후손들이 인쇄할 수 있게 한다. 결국 한무제의 폭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기록한「무제본기」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사마천은 감옥에 다시 갇히고 어린 태자의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사기史記』를 인쇄한 이는 사마천의 외손자 양운이었다. 무제가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른 후 한참이 지난 일이었다.

◎ 이 책의 특징

1. 궁형을 받는 방을 왜 누에방이라 부르는가?
- 탁월한 사실적 묘사

이 소설의 백미로 궁형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궁형, 치욕도 그런 치욕이 없다. 궁형의 방식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데, 옛날 중국의 경우에는 생식기와 함께 고환까지 잘랐다. 궁형을 당하고 나면 몸이 급속히 추워지는데,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형자를 ‘잠실’(누에방)이라는 어두운 방에 넣고 난방을 했다.
「누에방」이라는 장에서 바로 이런 끔찍한 형벌이 진행되는 과정 그리고 지옥의 풍경이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누에방 안에는 형을 집행하는 벌거벗은 노인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머리가 뾰족하게 솟고 몸은 동과처럼 아래로 갈수록 비대해졌다. 또 다른 노인은 얼굴 전체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고 깡마른 몸에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지만, 그 아래 남근만은 우람했다. 사마천은 침상 위에서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엎드렸다. 한쪽 다리는 침상 아래에 있는 밧줄에 꽁꽁 묶이고, 다른 쪽 다리는 번쩍 들어올려져 천장에 매달렸으며, 머리와 팔은 밧줄로 꽁꽁 묶였다. 비스듬히 드러누운 자세가 되고 사마천의 남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___상권 171쪽

“사마천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희고 토실토실 살집이 오른 누에가 된 상상을 했다. 침상 위에서 푸른 뽕잎을 갉아먹으며 살을 찌우고, 몸을 움츠리며 실을 자아내 몸을 칭칭 감았다. 가슴속으로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지만, 얼굴은 평온했다.”___상권 175쪽

2. 과연 사마천은 후계가 없었는가?
- 역사적 상상력의 진면목

사마천이 궁형을 받을 당시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출가한 딸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사마씨는 사마천의 대에서 끊어진 셈이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서 빈틈을 발견하고 전혀 다른 가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어딘가에 사마천의 후손이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래서 미스터리에 가깝다.

현대에도 사마천의 고향인 섬서성 한성시를 가면 사마천의 후손이라며 동씨와 풍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죄인인 사마천의 성을 감추기 위해, 복성인 사마(司馬)를 한자씩 풀어서 다른 성으로 바꾼 것이다. 즉 사마를 떼어 하나는 동씨, 또 하나는 풍씨로 만들었다. ‘사’자에 작대기 하나를 그으면 ‘동(同)’씨가 되고, ‘마’자에 ‘이수변’ 하나만 붙이면 ‘풍(馮)’씨가 된다. 요즘도 동씨와 풍씨는 동성동본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다는 사연이 있다.

소설은 이 사연을 적극 활용하여, 당대에 사마천이 다른 곳에 아들을 숨겨두었다는 단서를 찾아나선다. 이야기는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궁형을 당하기 전 자기 아내의 배려로 여인들과 감옥에서 합방을 하는 순간부터 훗날 살아남아 중서령이 된 사마천이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의 아들과 조우하는 과정이 긴박한 리듬으로 전개된다.

3.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진실은 어떻게 갈라지고 만나는가
- 문학과 역사의 결합 층위에 대한 섬세한 변주

1. 협객 곽해는 원삭 2년 기원전 127년에 죽었는데, 사마천은 이때 십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사마천은 거의 곽해와 동년배의 모습으로 나온다. 협객 곽해는 요즘으로 치면 조직폭력배의 두목 격인데 백성들 사이에서 정의로운 인물로 숭앙받는 인물이다. 한무제가 가장 증오하는 인물로 절대 권력 앞에서도 태평한 얼굴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안티히어로인 한무제에 대항하는 이 인물을 사마천과 동년배로 상정함으로써, 그만큼 사마천의 강직한 태도를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2. 사마천은 왜 세가(세습가문)가 아닌 진섭과 공자를 「열전」이 아니라 「세가」에 넣었는가?
『사기史記』의 독창성은 편년체가 아닌 기전체를 택한 그 구성에 있다. 특히 전기에 해당하는 「열전」이야말로 전기문학의 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개인의 탄생하는 시점, 한나라라는 제국이 틀을 잡아가면서 조금씩 커져가는 개별자에 대한 관심이 바로 「열전」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황제들의 전기인 「본기」에 실패한 제왕인 항우를 집어넣었으며, 진섭과 공자를 세습가문의 전기인 「세가」에 집어넣었고, 극히 드물게 당대의 황제인 한무제의 이야기 「효무본기」까지 집필했다.

소설은 이런 개인의 관점, 구체적인 체험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극도의 치욕을 겪은 몸으로 한 가지 목표에 천착한 인물을 그린 작품이기에 더욱더 개인성, 개별 인물의 형상화에 공을 들였다.

3. 소설에서 사마천 이외에 가장 캐릭터 형성이 잘된 인물을 꼽자면 한무제와 동방삭이다.

한무제: 흉노를 정벌하는 전쟁을 치르고 균수법을 만드는 등 국가 내외로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변에 한 사람의 친구나 동지도 갖지 못했던 인물이다.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린 장본인으로서, 사마천의 마음 속에 가장 빈번하게 출현한다.

둘의 관계가 일방적인 대결에서 애증으로, 유일한 말벗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이로 변하는 국면이 소설의 가장 큰 틀이다.

“무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신하들은 모두 대전 아래에서 그와 마주 보고 있었다. 다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지만, 각자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황제에게 비수를 들이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무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바로 여자와 신하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__상권 140쪽

동방삭: 우리에겐 동방삭이 무병장수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 동방삭은 가장 성공한 캐릭터 중 하나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며, 직설적인 주장을 피하고, 스스로 주변을 자처함으로써 오히려 핵심을 장악할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작품 중에 이만큼 동방삭을 살아 있는 인물로 그린 경우는 없었다.

한무제의 주변에서 온갖 음모와 중상모략을 벗어나서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 동방삭이다.

“사마천에게 한 사람의 빈자리가 크게 와 닿았다. 바로 동방삭이었다. 동방삭은 팽팽히 당겨진 신경줄을 느슨하게 풀어줄 수 있는 완충제이자, 긴장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활력소이자, 피로를 풀어주는 편안한 음악 같은 존재였다.”___하권 116쪽

4. 사마천의 삶 속에서 『사기史記』를 읽는다
- 액자소설 구성

소설의 많은 부분을 사마천이 실제로 『사기史記』를 저술하는 모습에 할애하고 있다. 이때 『사기史記』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역사적 인물 개개인에 대한 사마천의 관점과 해석을 함께 제시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사마천의 전기 내용과 『사기史記』에 대한 내용으로 크게 대별된다. 사마천과 당대 주변 인물들 사이의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실존의 차원에서 읽히는데, 이때 『사기史記』를 저술하는 과정을 삽입함으로써 과거 역사 속 인물과의 관계 또한 구체적 현실과 접속된다.

‘『사기史記』를 쓰는 사마천의 모습’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나온다. 더 나아가 ‘『사기史記』 130권 중 어떤 책이 사마천의 생애 중 어떤 시기에 쓰였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다음은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의 전기인 「회음후열전」 중 ‘과하지욕’ 일화의 부분이다.

“하루는 주을이 정말로 심심했는지 사마천에게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사마천은 때마침 쓰고 있던 ?회음후열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신이 젊었을 때는 가난하고 인품도 보잘것없는 한낱 건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를 허랑방탕하게 떠돌며 밥이나 빌어먹는 밥벌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한신이 남창 정장의 집에 가서 몇 달 동안 무위도식하며 밥을 빌어먹었다. (......) 그런데 한참 동안 건달을 노려보던 한신이 손에 쥐었던 칼을 내려놓고 바닥에 엎드리더니 건달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배꼽을 쥐고 깔깔거렸다.”
__상권 201~203쪽

※ 소설 속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다. 그 연관은 다음과 같다.

사마천-「태사공자서」, 「보임안서」 / 항우-「항우본기」/ 유방-「고조본기」/ 한무제-「효무본기」 / 진시황-「진시황본기」
진섭-「진섭세가」 / 장량-「유후세가」/ 진평-「진승상세가」 / 질도, 장탕, 왕온서, 두주-「혹리열전」
임안-「보임안서」,「전숙열전」 / 형가, 진무양「자객열전」 / 이광, 이릉-「이장군열전」/ 전분, 두영, 관부-「위기무안후열전」
염파, 인상여-「염파인상여열전」 / 장건, 이광리-「대원열전」/ 한신-「회음후열전」 / 유안-「회남형산열전」
동방삭-「골계열전」 / 곽해-「유협열전」 / 위청, 곽거병-「위장군표기열전」 / 도사들(소옹, 이소군, 난대)-「봉선서」공손홍-「평진후주보열전」

◎ 추천의 말

“사마천은 역사학계의 태조대왕이자 역사학의 조물주다.”__양계초
“『사기』는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이자 산문으로 쓴 이소離騷다.”__루쉰


목차


세 번째 생사의 고비 / 스스로 죽을 지경에 놓이면 살아남는다 / 위험한 생일잔치 / 전분의 도전 / 회남왕 사건
불길한 예감 / 처형 /호수 안 누각에 갇힌 유릉 / 용문의 잉어들 / 여태자의 죽음 / 임안의 화 / 네 번째 생사의 고비
『태사공기』 필사본 / 그리운 서역 / 사라진 「무제본기」 / 양창의 배신 / 돌아오지 않는 충신 / 혹리의 최후
다가오는 죽음 / 무릉 가는 길 / 인생의 마지막 순간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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