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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을 넘어서

출생을 넘어서

  • 황경문
  • |
  • 너머북스
  • |
  • 2022-07-13 출간
  • |
  • 584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94606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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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제2 신분집단의 부상이 한국사회의 현대적 변혁을 구현했다
『출생을 넘어서』는 조선 사회 유교의 교리와 양반의 지배라는 수면 밑을 조사하여 제2 신분집단이 아우성치는 풍경을 드러내 보인다. 이 신분층은 외국어, 법률, 의술, 회계 분야의 전문가(중인), 지방의 행정구역에서 일하던 말단관리(향리), 첩의 자식과 후손(서얼), 서북 지방의 엘리트, 무반으로 구성되었다. 이 집단들은 수세기 동안 관료적 위계와 사회적 위계 양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면서, 주로 혈통에 입각하여 자신들을 귀족의 아랫자리에 영구히 고정시킨 풍조와 조직 안에서 힘겹게 생활했다. 그 정치·사회적 차별에도 박제가, 허준, 황진이, 김홍도, 신윤복, 신재효, 조희룡 등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집단의 인물들이 한국 문명에서 오랫동안 사회적 신분을 수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던 관료체제의 상층부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우선 관료제로 관심을 돌린다. 관료제는 조선왕조 사회 위계의 척도였고, 이 책이 증명하는 것처럼 관료제는 오랜 규범과 근본적으로 결별하는 데 있어서 가족제도, 혼인 양상, 경제 관계,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사회적 또는 제도적 지표에 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관료제는 세습적인 사회 신분제와 견고한 귀족층의 이익을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중인, 향리, 무반은 낮은 직위로 관직접근권이 한정되었고 귀족과의 세습 분리가 고착화되었다. 문과에 합격한 서북인은 고위 관직으로는 진출할 수 없었고, 서얼은 과거에 응시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조선 후기 제2 신분집단이 통치 질서로 진입을 추구했을 때 그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관직접근권이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의 위협과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이익을 강화하는 지배구조가 모식되는 과정에서 제2 신분집단은 그들의 재능, 재산, 정치적 혼란, 시대에 대한 예리한 인식 등에 기반하여 비약적으로 신분 상승의 경로를 밟아갔다.
『출생을 넘어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식민시기 중반(1930년대)까지 새로운 엘리트 집단의 부상이 가능했던 관료 선발과 승진 제도를 전반적으로 소개한다. 관료제의 구조 변경은 관료 선발과 승진의 오랜 패턴을 빠르고 극적으로 뒤엎는 결과를 가져왔다. 출생 신분의 우월성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1880~1890년대 통리아문, 내무부, 외무부, 갑오개혁 등 한국 관료 체제의 종합적인 구조조정이란 새로운 상황은 제2 신분집단의 관직접근을 촉진했다. 이들은 갑오개혁 무렵에는 정부 최고위 관직도 일부 보유하였고,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 도지사, 도 참여관 등 대부분의 조선인 고위직은 제2 신분집단 출신들이었다. 무반의 후손인 이진호는 1920년대 총독부 각료 반열의 장관직에 올랐다.
이들의 관료적 명성과 지위는 나아가 이후 비관료 부문에서 새롭게 형성된 사회 엘리트로 부상하는 발판을 제공했다. 윤치호, 박영철, 구영서, 현진건, 최남선, 나혜석, 주시경 등 근대기의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그러한 배경 속에서 배출되었다. 그리고 서북 출신의 수많은 인물, 특히 정치·문화계의 안창호, 조만식, 이동휘, 이승만, 박은식, 이승훈, 이광수, 김소월, 김동인, 백인제와 같은 인사들이 그렇다. 조선시대였다면 관리로서 뿐 아니라 다른 사회 영역에서도 그러한 큰 영향력을 지닐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전근대 사회 위계의 전복을 선언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17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근대 시기까지 어이지는 사회구조의 역사, 특히 사회 위계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제2 신분집단의 구성원이 관료제에서 극적 상승을 이뤄낸 다양한 수단,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운명의 반전을 확대하여 수 세기에 걸친 사회 위계의 전복에 이르게 했는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한국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재고하는 데 필요한지 상세히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서북인, 무반 등 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가 돋보이는데, 이 사례 논의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2장부터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쉽고 상세하며 흥미진진하다.
개화, 문화, 지식의 재조정 과정에서 이들의 우세는 분명했다
제2 신분집단의 후손은 근대 초기에 먼저 관료 조직의 상위 계층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다음으로 여타 사회 부문의 엘리트 계층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인과 서북인을 한데 묶는 공통점은 신학문에 대한 접촉과 열렬한 수용이었다. 가지고 있었던 부(富)를 통해 유학 등 신교육을 습득할 기회를 제공받았던 이들은 신학문의 가치와 필요성을 예리하게 인식했다. 따라서 교육과 지식의 방향이 재조정되는 과정에 있어 이들 출신의 우세는 분명했다.
20세기 첫 30년은 새로운 국민적 정체성 출현의 최전선에 있었던 서북 한국인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들이 문학, 역사, 언어, 교육 등의 분야에서 이룬 성취는 이 시기 번창하던 지적 산출물의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이 없는 근대 한국 문화는 생각도 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인을 비롯한 제2 신분집단이 근대 한국의 한글 형성 과정에 등장한 것은 큰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는 만약 이들의 기여가 없었다면 초기 근대 시기에 있어 민족문화의 건설이 매우 상이한, 아마도 변화가 덜한 방향으로 전환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료제 개혁이 귀족의 정치권력을 무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에 대한 귀족 권력의 의례-윤리적 토대를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저명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지속되는 엘리트주의의 뿌리는?
제2 신분집단은 그들의 복잡한 모든 활동 속에 조선의 신분 체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서얼의 서사는 제2 신분집단의 영향력과 포괄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그림을 제공한다. 첩의 후손인 서얼은 조선 초기 귀족이 신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확립하면서 탄생했다. 이 이데올로기의 교의는 본처 자식과 첩 자식 사이의 의례적 위계를 주장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가족 내 차별은 과거 시험 응시권 박탈이라는 국가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더 큰 사회적, 관료적 특권을 얻어내기 위한 수 세기에 걸친 서얼의 호소의 내용들에는 제2 신분집단이 세습 신분 제도의 희생양일 뿐 아니라 그것의 ‘실행자’이기도 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인, 향리, 서북인, 무반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자신들을 옭아맨 차별 구조를 끊어내기보다 스스로 양반이 되고자 한 전체적인 패턴은 같았다.
예를 들어서 법전에서 중인과 함께 분류되는 것에 대한 서얼의 혐오, 혹은 여러 서얼의 근본적인 기원에 대해 중인 집단이 보인 경멸, 그리고 중인이 일반적으로 향리와 함께 엮이는 것을 피하는 것에서 보듯이, 제2 신분집단은 신분과 관직 기회의 배정에 있어 출생과 가문에 기반한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인식하려 했던 것이다. 제2 신분집단 사이의 이러한 지위의식은 근대 시기로까지 이어졌고, 실질적으로 사회적 명망을 달성하자 그들의 엘리트주의를 강화시켰다. 특히 정부 고위 관료의 지위는 관직과 명성의 연계에 관해 여전히 작용하는 사회적 인정에 의존했다. 이 앞에서는 많은 경우 외세 점령 정부에 부역하는 등 문제가 있는 행동까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제2 신분집단 후손에게 출세로 가는 길은 조선 후기와 개화기 초기의 사회 위계에서 그의 가문이 차지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의해 어느 정도 닦여 있었다. 귀족에 의해 지배된 전국적인 위계가 아니라 각 세습 신분집단에 고유한 내적 서열을 말한다. 이것이 근대 시기 후손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다시 말해서 제2 신분집단의 성공 이야기는 이 집단의 모든 후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얼이라는 예외를 제외하고 각각의 제2 신분집단은 내부 과정을 통해 그 자체의 엘리트 가문들을 배출했다. 역관직, 의관직을 지배한 경향이 있는 천녕현씨 같은 중인 가문, 군이나 도 수준에서 가장 높은 서리직을 보유했던 동래의 창원구씨 같은 향리 가문, 지속적으로 무과 급제자를 배출하거나 토지 재산을 축적한 정주의 수원백씨 같은 서북인 엘리트, 그리고 대대로 무과에 급제하여 최고위 무관직에 올랐던 전의이씨 같은 무반 가문 등이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엘리트 제2 신분집단 가계라 하더라도 지배 귀족과 그들을 가르는 장벽을 넘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체 신분집단의 위계 내에서는 지배자였다. 이 제2 신분집단의 엘리트들은 종종 조선 통치체계에 대한 쓰디쓴 환멸을 드러냈지만 그들도 그들 자신의 신분집단, 즉 특정 사회적 권력의 영토 내에서는 그와 똑같은 메커니즘의 지배를 시행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했다. 근대 전환기 새로이 출세한 집단의 엘리트주의의 지속적인 강력함은 전근대적 조건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원했던 것이다.

제2 신분집단과 한국의 근대성의 관계
이 책은 전환기 제2 신분집단의 부상과 사회 위계의 수정이 한국 근대성의 핵심이라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산업화, 도시화가 근대성의 기준점이며 현대 한국 사회의 계층화는 주로 계급 차이에 따라 이뤄진다는 종래 연구와는 전혀 궤를 달리 한다. 또한 국가 개입, 상업활동과 사적 축적에 대한 혐오, 민족적 집단 의식 등 한국 근대성의 중요한 주제들이 수 세기에 걸쳐 한국의 전근대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요지는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보고 근대로 귀결했다는 역사서술과는 상반된다. 따라서 근대 전환기 제2 신분집단의 불만과 능력이 민중 계급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권위나 가치를 창출하는 동력이 되었다는 식의 우리에게 다소 익숙한 주장이 이 책엔 없다.
황경문 교수는 제2 신분집단이 한국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 한다. 이들의 부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출생에서 성취가 가능한 것으로 전환한 것이 근대성의 핵심이며 이는 자본주의, 산업화, 도시화 등 물질적 근대에 선행했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근대성에 관한 재인식을 촉구한다. 식민지 시기 산업화와 한국인 자본가가 등장했고 자본주의 윤리의 일상화라는 것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훨씬 이후에나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돈이 지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20세기 후반, 사회적으로 자본주의가 정착해가고 있던 와중에도 자본가가 지배적 지위로 상승하는 데는 제한이 있었던 것처럼. 또한 저자는 진보의 증대라는 정해진 단계를 밟아가는 것으로 보는 한국사의 지배적인 역사서술에 대해 이는 이미 국제학계에서 폐기된 서유럽사 모델의 반영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은 일본의 결론을 뒤집으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을 반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시대 ‘봉건제 붕괴’라는 전제만 제거하면 한국 고유의 역사적 동학에 기반해서 전근대와 현대 사이의 보다 안정적인 연관성의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며, 제2 신분집단의 지위의식에는 한국만의 고유한 근대성의 특질이 살아있다고 주장한다. 『출생을 넘어서』는 이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며 제2 신분집단의 운명을 추적한다.

민족주의란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었다
제2 신분집단이 그들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일제 식민지 체제와의 일종의 비민족주의적인, 심지어 반민족주의적인 협력에 의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의 근대성이 이들과 일제에 의해 얼룩졌음을 시사한다. 일제와의 합작을 통한 이들의 부상에 대해 황경문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종래 식민지기에 관한 민족주의 역사연구에서 제2 신분집단을 기피했다며, 첫째, 20세기 초 한국인에게 강력한 민족주의적 의식을 전제하는 것은 비역사적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와 다르게 조선후기에 이미 출현했으며, 갑오개혁(1894~96)이나 식민지기 한국 관료들을 무차별적으로 ‘친일’로 명명하는 것은 그들이 복잡한 상황의 상호작용이 낳은 산물이자, 관심과 동기의 복잡한 조합으로부터 행동이 도출되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민족주의 역사서술을 반대한다. 둘째, 개인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면서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권력자에게 달라붙은 악명 높은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관료들에게는 자신들이 한국 군주제에 고용되었는가 아니면 조선총독부에 고용되었는가 하는 것은 위신, 기회, 그리고 관직을 통해 직업 안정성을 확보할 가능성보다는 덜 절박한 문제로 본다. 다시 말해서 이 시기 한국인 관료들은 관직을 통해 인생의 성취를 가늠하는 수 세기 간의 관행을 좇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왜 똑같은 이들 관료 중 다수가 해방 후 미국이라는 또 다른 점령 권력에 기꺼이 봉사했는가도 설명된다. 저자가 한국의 근대적 변화에 대한 탐구에 기초하여 얻은 핵심적인 통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황경문은 민족주의가 실제로도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힘이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근대성에 대한 제고,
사회적 지위가 출생을 넘어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경제적 부나 학력으로 전환되다
이들을 움직인 강력한 무언가는 바로 ‘지위의식’이었다. 지위의식은 제2 신분집단과 그 후손들이 한국의 근대성에 남긴 중요한 자취이다. 지위의식의 지속적 영향력은 단지 전통의 영속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통에 대한 강력한 수정이 반영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큰 영향을 끼친 전근대의 유산은 놀랍도록 많다. 예를 들어 가족 체제나 국가 개입의 두드러짐 같은 것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혈연의 계보적 연결은 20세기의 거의 마지막 10년까지도 강고하게 유지되었지만 일부 재벌 가문의 경우를 제외하면 이제는 조상 배경에 대한 이 같은 집착을 케케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국가의 존재감 또한 민주화 이후 정부 투명성이 증가하고 경제의 자유화와 1990년대 독립적인 시민문화의 성장 등으로 인해 이전 같지는 않다.
반면 지위가 있어야 최상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지위의식은 극도의 내구력으로 지속하고 있다. 전근대 ‘양반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관직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우월성이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지금도 어떤 사람의 졸업장에 적혀 있는 학교 이름은 조선왕조에서 출생과 관료 자격의 상관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최상위 직업에 대한 자격 요건을 결정한다. 엘리트에 가담하기 위한 정열적인 노력은 교육에 관한 몰두 그 자체는 아니다. 한국에서 식견 있는 사람치고 어떤 사람이 받은 교육의 질이 그가 다닌 대학에 상응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을 특정한 위광의 지표를 소유했느냐에 따라 특권과 인정의 서열 속으로 줄 세우려는 집착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사회혁명이 일어났지만 이후 세습 지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이 점은 비극적인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사회혁명이 없었기 때문에 신분의식의 고갱이가 어느 정도 유지되긴 했지만 사회적 지위의 구성 요소는 결정적으로 ‘출생을 넘어’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경제적 부나 학력 등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 의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높은 지위가 주로 출생과 세습에 따른 것이었다면 성취가 가능한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제2 신분집단과 그 후예들이 현대 한국에 남긴 것은 가능성에 관한 의식, 즉 지위를 습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명문대 졸업장을 갖기 위한 열정, 집착은 일반적인 사회의 경쟁 이상의 것이다. 지위의식이 일종의 한국식 개인주의가 된 것인지 혹은 이러한 역동성이 경제 기적을 추동했는지의 여부는 논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위의 작동과 그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의 변화가 가진 함의는 사회 위계의 재배치를 넘어서 한국 근대성의 다른 많은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머리말

서론
한국 근대와 전근대의 제2 신분집단 | 서술 및 접근법

1장 출생과 관료제: 조선 시기의 사회계층
세습, 혼인, 국가 | 제2 신분집단 | 조선 사회구조의 도식

2장 신분의 개방: 관료 엘리트에 임명되다, 1880-1930
선행 연구 | 조선왕조의 관료 선발과 승진 제도 |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정부 조직 | 관료 양성 | 해외 유학 | 일본 망명 | 국내 소요, 1897-1910 | 식민지 관료제 속의 한국인 | 상승 이동의 통로: 지방 관청과 경찰 | 결론

3장 중인
중인 집단의 발전 | 중인 가문 | 논의: 국가, 전문가, 정당성

4장 향리
기원 | 조선왕조에서의 발전 | 근대 관료제에서의 등장 | 사례 연구 | 논의: 지방 사회의 전형적 존재

5장 서얼
집단의 발전 | 개화기의 서얼 관료 | 논의: 모순점과 논쟁점

6장 서북인
조선 초기 서북 사회의 기원 | 조선 후기 서북의 사회계층 | 배제에 대한 서북인의 대응 | 근대 시기의 서북인 | 논의: 민족, 지역, 집단의식

7장 무반
1880년까지 집단의 발전 | 개화기와 식민지기 관료제에서의 존재 | 근대 관료제 속의 무반 후손들 | 논의: 한국사에서 군의 역할에 대한 성찰

결론: 제2 신분집단과 한국의 근대성
한국 근대성에 대한 재고 | 관료제와 국가 | 가문 공간과 사회적 권력 | 자본주의와 계급 | 개화, 문화, 지식 | 민족주의와 반민족주의 | 한국 근대성의 심성 구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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