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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1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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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출간
  • |
  • 408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9116791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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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서양사, 동양사, 외교사 등의 책을 읽다가 당시 조선은 어땠는지 해당 부분의 조선근대사 책이나 논문을 보면,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보다는 실망을 한 경험이 많다. 조선근대사의 책이나 논문들은 거의 모두 오로지 조선의 내용만 다루고 있고, 그 당시 국제 정세나 당시 조선의 대신들이나 리더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이나 백성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었다. 이처럼 이들 서양사, 동양사, 외교사, 경제사 등의 책의 내용과 깊이에 비해 조선근대사 책이 오히려 입체적이지 못하고, 서로 중복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거나 특정 사항은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똑같았다.

그래서 조선근대사 책에서 말하는 조선근대사의 모습은 서양사, 동양사, 외교사 등에서 언급하는 조선근대사의 모습과 매우 달랐다. 조선근대사 책에서 말하는 조선근대사의 내용이 훨씬 깊이 있고 체계적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엉성하고 조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론에서는 아주 거창하게 언급할 것처럼 하지만 본론이나 결론을 보면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거나 기존의 것과 차이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왜 그런가 하는 의문 내지 의심을 매우 오랫동안 해왔다.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가, 왜 이렇게 연구의 깊이나 폭이 오히려 30-40년 전의 연구 논문보다 깊고 예리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참고한 자료 중에는 1962년에 발간된 책도 있고, 1959년에 나온 논문도 있다.

조선근대사의 책이나 논문의 공통점은 1차 사료를 충분히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글로 번역되어 있는 고종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에도 그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일성록(日省錄)’을 자신이 번역하여 굳이 인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그 내용을 저자가 제대로 번역한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철종실록과 고종실록 56년 치와 승정원일기 56년 치, 비변사등록 38년 치 등 총 150년 치의 1차 사료를 출력해서 읽고 컴퓨터에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노동이었다. 책과 학술논문, 석박사 학위 논문 등을 찾아서 읽고 정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에 입력한 원고의 분량은 A4용지로 약 4,300페이지에 달한다. 두 번의 축약 과정을 거쳐 이것을 A4 용지 500여 페이지로 줄여서 두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고, 사진도 지도도 싣지 못했다. 그랬다면 책이 아마 세 권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세 권 보다는 두 권이 독자들에게는 경제적이라 판단하여, 매우 무미건조하지만 두 권의 책이 되었다.

1차 사료 분석에서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숫자이다. 각종 비용과 인구, 회계부 자료 등이 있는데, 그 중 비용 지출에 관한 내용은 당시 조선의 재정 규모, 정책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 판단하여 중시했다. 주요 경비 지출 내역은 왕실 행사 비용, 왕릉 이전 및 보수 비용, 장례식 비용, 궁전 건설 및 보수 비용, 군비 지출액, 홍수 · 가뭄 때 내려준 구휼금, 전염병 퇴치를 위해 내려준 금액, 청나라 칙사 대접 비용, 각 부처의 예산 규모, 금 · 은 · 돈 · 쌀 등 주요 자산의 전년도 이월 규모 등의 내역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수치 자료 분석은 조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결코 하룻밤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하고, 그렇게 이 책을 본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분명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이 시기의 역사를 잘 모르면서 가르치려 들지 못할 것이고, 영화나 역사물, 소설 등을 보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국제법, 경제학, 헌법학, 물리학 등의 교과서와 책을 참고한 이유 또한 한 줄을 쓰더라도 추측으로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석을 달 때는 석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항상 생각하면서 그들의 귀중한 시간과 돈을 뺏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목차


서문

1800년 ~ 1849년 조선의 역사
10세의 순조 즉위와 수렴청정/“장차 몇 시절이나 지탱”할지 걱정한 대왕대비/‘애절양’/1810년의 굶주린 백성의 수/홍경래의 난/“소방의 미약한 힘으로 어떻게 제때에 초멸할 수 있었겠습니까?”/세자 책봉에 관한 청 황제의 ‘칙서’와 ‘고명’ 내용/급격히 줄어든 강화부의 군량/과거제의 폐단/“얻은 것은 항아리 하나의 저축”/“반드시 망하게 될 뿐입니다”/왕이 불태우게 한 흉서/“속국 중에서 가장 공순하다”/왕세손 책봉의 칙서와 조서/궁중의 사치와 탐관오리/순조가 지적한 과거제의 문제점/7세의 헌종 즉위와 수렴청정/헌종 책봉의 칙유/프랑스 신부 처형/아편전쟁 정보를 입수한 조선/1848년의 과거제 실상/18세의 철종 즉위와 수렴첨정

1800년 ~ 1849년 일본의 역사
막부, 쇼군, 번, 번주/‘산킨고타이’/조정과 막부의 관계/서양 지식에 개방적이었던 막부/인구조사/인체 해부도 ‘해체신서’/국방강화와 해외진출/오사카와 에도 농민들의 생활/종합세계지리서와 대백과전서/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청국의 외국 정보 수준/‘대일본연해여지전도’/《신론》/쇄국책/지볼트 사건/해외팽창론/아편무역이 중요한 영국과 인도/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모리슨호 사건/데키주쿠/아편전쟁/고도칸/백과사전 《후생신편》/포술교육, 반사로, 내화벽돌/덴포개혁/신수급여령/난징조약/‘해방팔책’/네덜란드 국왕의 개국 권고/대형 선박 건조허가 요청/미국 함대의 에도 출현/석탄 중간 공급지/혁명의 해 1848년/조선의 연호 사용

1850년 조선
암행어사도 눈물을 흘렸다/“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백성/
왕릉과 묘지 수리비

1850년 일본
대총제조방/함풍제 즉위와 태평천국의 난/빛의 속도 측정

1851년 조선
인구의 3%가 죄수/“고리대금업자가 이자놀이” 하는 것 같은 세금징수/조운선 고의 침몰/이명섭 모반사건

1851년 일본
사쿠마 쇼잔/일본 최초의 신문/해저 케이블, 지구자전 증명, 세계 박람회

1852년 조선
우의정과 좌의정의 호소/“당장 무슨 변이 일어날 듯” 불안해하는 좌의정

1852년 일본
슈세이칸/요시다 도요/미국함대의 방문 계획을 통보받은 막부/러시아의 사절단 파견/나폴레옹 3세 즉위/《해국도지》

1853년 조선
“궁핍한 백성을 보는 것은 어찌 그리도 야박하단 말입니까”/“모두가 죽음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하는 영의정/경상북도에서 발견된 흉서

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출현한 ‘구로후네’/미국 대통령의 국서/총의 도면을 그리게 한 번주/번주들의 의견을 물어 개항을 결정한 막부/인재육성과 해군건설론/이사가와지마 조선소/대형 선박 건조 허용/러시아 사절단의 방문/요시다 쇼인의 밀항 실패/대외교섭 사료집 완성

1854년 조선
영의정의 호소/고향을 떠나는 백성들/“백성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병조가 한심한 병조판서/싸움판이 된 과거장/러시아 제독의 조선 방문 보고

1854년 일본
일미화친조약/페인트, 증기기관차, 전신/밀항에 또 실패한 요시다 쇼인/일영화친조약/함선 제조 기술 습득 노력/러시아와 국경선 확정/네덜란드 국왕의 해군교육 제의/네덜란드 장교의 일본해군 창설 건의/후쿠자와 유키치와 사카모토 료마

1855년 조선
신하를 만나지 않는 왕/돈이 없는 병조와 경기도/호조의 재정난/옛날과 싸우는 유생들

1855년 일본
해군교육 시작/‘양학소’

1856년 조선
탐관오리의 처벌을 호소하는 대신들/호조판서와 병조판서의 상소/능을 옮기는 비용/가구당 2냥 이하의 구휼금/조선 점령을 건의한 프랑스 제독

1856년 일본
33세에 곱셈, 나눗셈을 배웠다/지중해 진출이 좌절된 러시아/애로우호 사건/미국총영사 부임/‘쇼카손주쿠’/네안데르탈인 화석

1857년 조선
“미치광이” 좌의정의 절규/궁전 수리비 등/칙사 대접에 군량미까지 동원

1857년 일본
아무르 지역을 탐내는 러시아/일미화친조약 개정/통상조약 체결 의사를 표명한 막부/제2차 네덜란드 군사교관단

1858년 조선
여전히 곤궁한 병조와 호조/재산을 뺏기는 부자들/궁전 수리비와 구휼비

1858년 일본
안세이 5개국 조약/안세이 대옥/암살 시도, 에도 유학, 영어 공부/일미수호통상조약/톈진조약/아이훈 조약

1859년 조선
“조석을 보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철종/“극한 지경”에 이른 진주/침묵하는 언관과 신하를 만나지 않는 임금/조선인 범죄자는 조선에서, 일본인 범죄자는 쓰시마에서 처벌/상소하면서 돈을 뜯는 유생들/군량미까지 동원한 궁전과 왕릉 수리

1859년 일본
네덜란드 해군교육 완료/초대 주일 영국공사 부임/톈진조약 무효를 선언한 청/《종의 기원》

1860년 조선
“매질하고 긁어내어 흩어지고 쓰러지는” 백성들/군기고에 화약이 없었다/전국 관청의 돈을 동원하여 궁전 수리/안세이 5개국 조약 체결 통보/‘열하문안사’ 파견 결정

1860년 일본
미국방문 사절단의 충격/사절단의 기록과 건의/‘사쿠라다문 밖의 변’/함풍제의 피신과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만엔킨’

1861년 조선
“피맺힌 간절한 마음을 토로”한 좌의정/왕의 문란한 생활을 직언하는 영의정/“흉년이든 풍년이든 불쌍한 사람은 백성”/병조의 1천 냥도 궁전 수리비에/“참으로 예의의 나라이다”/러시아와 조선의 국경선 확정

1861년 일본
해군의 해외 유학 건의/러시아군의 쓰시마 점령/‘항해원략책’과 존황양이파/‘도사근왕당’/외국군의 요코하마 주둔/‘총리아문’/동치제 즉위와 서태후/남북전쟁, 농노해방

1862년 조선
진주민란/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민란/“눈물을 닦아도 그칠 줄을 모릅니다”/“그토록 맹목적인 헌신과 존경, 복종을 배우지 않았더라면”/창고가 빈 호조와 병조

1862년 일본
분큐사절단과 런던각서/분큐사절단의 문명 탐방/네덜란드에 최초의 유학생 파견/계속되는 암살. 습격. 방화 사건/비스마르크 수상

1863년 조선
경상도의 가장 작은 고을/사망 3개월 전 “다급해하는” 철종/좌의정의 사직상소에 나타난 실상/프랑스 선교사가 본 조선인의 정신 상태/고종 즉위와 수렴첨정/동학의 실상과 최제우의 체포/1863년의 회계부

1863년 일본
‘상락’과 시모노세키 포격 사건/‘조슈 파이브’의 영국유학/사츠에이 전쟁/8.18사변/사카모토 료마의 각오/이홍장의 편지

1864년 조선
1월부터 돈이 없는 호조/대왕대비가 본 조선/도고를 폐지하라/조운선 고의 침몰/나태한 무관과 잡과의 실상/27만 냥을 횡령한 관리/최제우 사형

1864년 일본
‘이케다야의 변’과 ’금문의 전투’/제1차 조슈정벌/사쿠마 쇼잔의 암살/시모노세키 전쟁과 히코시마/가이텐 궐기/27세 외교책임자의 헌책/‘막부는 유한하지만 일본은 무한하다’/《만국공법》

1865년 조선
대보단과 만동묘/“생산이 모조리 텅텅” 비었다/경복궁 중건 결정/원납전 515만 냥/장부에는 16만여 석, 실제는 1만여 석/강화부의 군사 대비 태세

1865년 일본
시바타사절단과 조선소 건설 계약/주일 영국공사의 포함외교/사츠마번의 유학생 파견/‘만국공법’ 학습 열풍/청국 세관 총세무사의 상주문

1866년 조선
수렴첨정 철렴/병인박해/병인양요/왕비 책봉 의식/제너럴셔먼호 사건/“상국(上國)”의 공문이 있어야 교역을 할 수 있다/전선(戰船) 수리 비용/강화도 백성들에 1만 냥/원납전 액수와 수령직, 초사직/전선수리비와 강화도 구휼금의 규모

1866년 일본
《서양사정》/삿쵸동맹/요코스카 제철소 건설 시작/개세약서/민중들의 봉기/제2차 조슈정벌/막부 내부의 ‘대정봉환(大政奉還)’ 의견/“이 한 목숨 이슬같이 사라진다 한들 무슨 한이 남으랴”/붕괴되기 한 해 전에도 유학생을 보낸 막부/빈춘사절단/보오전쟁과 북독일 연방 탄생

1867년 조선
슈펠트 제독의 방문/야도 마사요시의 정한론/문을 무보다 더 중요시하는 왕과 대신들/원납전과 무기 수리비/구휼금 1만 4천 냥/당백전 주조 중단과 호전의 폐해

1867년 일본
파리로 간 시부사와 에이이치/프랑스 장교의 부국강병 건의/조선과 프랑스, 미국 간의 화해를 추진한 막부/삿도맹약/대정봉환/‘왕정복고의 대호령’/미국, 알래스카 매입

1868년 조선
미국 군함 쉐난도호의 방문/포격을 받은 쉐난도호/5개월간 원납전과 인건비 비교/사형 집행의 사례들/국경선에 대한 고종의 지식/일본 외교문서 접수 거부

1868년 일본
도바-후시미 전투/열강의 신정부 승인/조약 체결권자는 천황/조선의 ‘인신무외교’/쇼군의 항복/‘정체서’와 태정관 제도/에도 무혈 입성/‘5개조어서문’/막부 지지세력의 저항/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저항/청의 벌링게임 사절단/조선, 청, 일본의 인재육성

1869년 조선
“나라가 나라로 유지되지 못한다”/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처참한 주거환경/함경도 백성들의 러시아로의 집단탈주/종친의 과거 특채와 난장판이 된 과거장/경상도와 전라도의 민란/외교문서 접수 거부 이유/정현덕과 안동준

1869년 일본
판적봉환/전신 부설과 전신망/‘쇼콘사’와 ‘야스쿠니 신사’/국력배양 우선론/일본 최초의 주식회사와 ‘엔’/관제 개혁, 징병제/대륙간 철도, 수에즈운하, 주기율표

1870년 조선
왕릉과 종묘 수리비와 조총 제작비/“서양오랑캐”들도 “중국 성인의 가르침에 다 감화될 것”/월급도 못 주는 경상감영/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러시아로 넘어간 백성들, 잘 살고 있었다/서계를 수정한 일본 외무성/조선과의 조약 체결 의사를 표명한 미국

1870년 일본
공부성, 공부대학교/가쓰라 다로/대(對)조선 강경론/청국과의 수교 결정/미국의 재정 · 통화정책 조사/농민봉기/보불전쟁

1871년 조선
신미양요/로우 공사의 철수 결정/척화비 설치와 우의정의 ‘정신승리’/서원 철폐와 유생들의 저항/영해민란/군기조성소에 10만 냥/‘외무성’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조선

1871년 일본
해외유학생 규칙과 우편제도/조폐공장, ‘신화조례’, 금본위제, ‘엔’/폐번치현/‘일청수호조규’와 조선의 지위/류큐인 피살 사건/이와쿠라 사절단의 출발/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탄생한 독일제국/‘파리 코뮌’

1872년 조선
외무성 관리 접촉을 거부하는 조선/계속되는 일본 외무성의 회견 요청/‘관왜난출’/외무성 관리들의 조선 철수/외무성의 왜관 접수와 ‘대일본공관’/경복궁 중건 비용 783만 냥/9개 고을 수재민에 3천 냥

1872년 일본
기상관측 시작/프랑스 군사고문단, 도미오카 제사장/백성들 간에 도는 소문/‘학제’/일본 최초의 철도/‘국립은행’ 조례/이와쿠라 사절단의 미국 방문/일본의 반성을 촉구/정치제도, 운하와 물류비, 마찰과 도로/영국 방문 기록/일본의 낙후 원인/이홍장의 중국 사대부 비판

1873년 조선
궁전공사에 반대하는 상소/사신들의 허위 보고/일본을 모멸한 동래부사/최익현의 대원군 비판 상소/“이미 300년 동안을 신하로서 섬겨” 온 조선

1873년 일본
징병령/농민폭동/잿더미가 된 황궁/심각한 재정적자/청국 대신의 답변 내용과 양계초/목례로 청 황제를 알현한 외무경/조선에 군대파견과 특사파견의 대립/사이고 다카모리의 낙향/비스마르크의 충고

1874년 조선
역관 오경석과 영국 서기관의 대화/중국어를 모르는 사신들/백만 냥이 드는 전각 세 채 건설/“시를 지어서 적을 물리치겠습니까?”/군인명부는 빈 장부/수재민 구휼금 규모/세금이 아니라 약탈이었다/아내를 팔고 아들을 팔게 만드는 환곡제도/우의정의 일본에 관한 인식과 정보 수준/고종과 암행어사의 대화/일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일본에 서계 수정을 요청

1874년 일본
일본군의 대만 출병/대만 출병에 대한 일본 측 논거/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한 청/‘민선의원설립 건백서’/‘사가의 난’/육군사관학교, 의사시험제도 등/서계를 수정한 외무성/광서제 즉위, 몰트케의 연설, 캐번디시 연구소

1875년 조선
연호를 ‘광서’로 사용/“작은 나라”의 감격/청국 황제에게 곡하고 “만세”를 외치는 고종/서양대례복과 행사장 정문 출입을 거부/서계 접수 거부 결정/일본공관원의 귀국/운요호 사건/일본 전권대신의 부산도착/강화도 복구비 75%는 현지 조달/세입의 3배를 지출하는 호조/방납과 도고의 문제점/“모든 법도가” 무너졌다는 고종

1875년 일본
대조선 정책/‘입헌체제 수립에 관한 조칙’/사할린과 쿠릴열도/거문도 점령을 건의한 주일 영국공사/조선에 특사 파견 결정/조선 정벌을 주장하는 건백서들/폐도령/이홍장의 중국 유학자 비판

1876년 조선
강화도조약 체결에 대한 청의 충고/세 차례의 회담/‘서술책자’에 나타난 조선의 입장/강화도조약/서계 접수거부에 대한 조선의 해명/일본의 무기류 기증/고종과 신헌의 대화/조약 책자 전국에 배포/최익현의 강화도조약 반대 상소/고종도 개탄한 무기상태/수신사 김기수 임명/김기수의 귀국 보고/〈무역규칙〉 조인 및 수출입세 면세/“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러시아로 흘러들어가는 사람들”/가뭄, 경복궁 화재

1876년 일본
조선의 ‘속방’ 논쟁/김기수의 방문 일정/외무성이 준비했던 일정/김기수의 조선 내 위치/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마음껏 시찰하라는 일본과 곧 돌아가야 한다는 김기수/김기수의 고뇌/이노우에의 충고/김기수의 방문 소감/수신사의 귀국/회계학 연구서, 서양식 부기법/오가사와라제도 편입/헌법기초제정 칙어 발표/‘질록처분’과 사무라이들의 불만/사무라이들의 반란/일본, 청, 조선의 철도/민간기업 독려/과학사/타자기, 탄산음료

1877년 조선
궁궐의 절제를 호소하는 영의정/1876년의 회계부/거지에게 5전씩/서울 관아에 곡식이 바닥났다/계속되는 조운선 침몰/급여를 못 받은 훈련도감 병사들/일본의 개화 지원 의사

1877년 일본
세이난전쟁/박람회, 전화, 콜레라/공부대학교, 동경대학 등/이홍장과 곽숭도의 사대부 비판/러터전쟁과 일본의 정보력

1878년 조선
서원 복설을 요구하는 유생 1만 명/“머리끝부터 다 병들었다”/리델 신부 석방을 명령한 청 황제/“상국 지휘”/리델 신부가 본 조선 감옥/군의 실상과 치안 상태/암행어사가 보고한 삼남 지방/일본 수입품에 대한 과세 시도/이동인

1878년 일본
농민반란/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일본공사의 시베리아 횡단 기록/다케바시 사건과 ‘군인훈계’/《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러시아의 지중해 진출 좌절/곽숭도의 한탄

1879년 조선
“단 하루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부자와 부부가 하염없이 서로 바라볼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백성들/사신과 고종의 ‘정신승리’ 대화/일본군함 시찰을 거부한 훈련대장/“차라리 외교란 말을 하지 말고 앉아서 제 나라나 지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고종이 본 위급한 조선

1879년 일본
콜레라로 10만여 명 사망/홍콩과 일본 신문 내용/청에서 나온 조선의 개국 문제/전 미국 대통령의 청과 일본 방문

1880년 조선
미국의 조선과의 조약 체결 시도/수신사 김홍집의 출발/무기제조술을 배우려는 “작은 나라”/김홍집의 복명/고종과 영의정의 《조선책략》 대화/《조선책략》 비판 상소/함경도 백성들에게 내린 교서/열 집에 아홉 집은 빈 북방/“상하가 빈곤에” 허덕였다/일본공사의 부임과 무기류 기증

1880년 일본
미야코제도와 야에야마제도/‘흥아회’/김홍집의 일본 도착과 외무경의 조언/《조선책략》의 내용/재정악화와 마쓰가타 마사요시/참모본부장의 군사력 증강 강조/이홍장의 슈펠트 초청

1881년 조선
유생 1만 명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김홍집의 사직상소/황재현과 홍시중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홍재학, 신섭 등의 《조선책략》 비판 상소/청국 칙사에 은 7천 냥/별기군/수구파비판 상소/조사시찰단의 귀국 보고/“가난을 편안히 여기게 만드는” 안빈낙도/이재선 사건/김윤식의 상소/세자 결혼식비용은 12만 냥/“나라 일은 날로 잘못되고”/대궐 내의 문제점과 기강. 치안

1881년 일본
국회 개원 조칙 발표/가네코 겐타로와 우에키 에모리/조선의 방문단/‘마쓰가타 디플레이션’/미국과의 협상을 피한 조선/이리 지방을 획득한 청/알렉산더 3세

1882년 조선
조미수호조약 체결/조미수호조약의 내용/‘속방조회문’/속방조회문을 무시한 미국/임오군란/어윤중과 김윤식의 대원군 제거 건의/대원군 납치/“대국과 너희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청국군, 왕십리와 이태원 습격/제물포조약/묄렌도르프, 마건상/30세 고종의 결의/척양비 제거/27세 지석영의 상소/“마음으로는 옳게 여기면서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조중상민 수륙무역장정〉/고종의 하유

1882년 일본
이토, 헌법연구를 위해 유럽 방문/“귀국 일은 언제나 토할 듯 토하지 않을 듯하니, 이러고서 일이 될 것인가”/‘속방’ 조항을 둘러싼 이홍장과 슈펠트의 대립/불공정조약 개정 회담과 주일 영국공사/일본의 조선 파병 결정/청국의 조정 제의를 거부한 일본/미국, 조선이 독립국임을 일본에 통보/군비확장 논의/청 내부의 대일 주전론/임오군란 사죄사 파견/무라타 총과 탄약 5만 발 기증/37세의 ‘일본은행’ 초대 총재/군비확장 계획과 증세/박영효를 만난 주일 영국공사

1883년 조선
무너지는 공권력/배로 귀국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조선 사신/보빙사 파견/‘조일통상장정’과 관세권 회복/청국인이 남대문에 내건 ‘방문’/‘조영수호조약’/“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므로 본토와 같이 본다”/한성순보, 전환국, 혜상공국, 해관

1883년 일본
4년 전 유학생과의 약속을 지켜 세운 회사/22세의 기술자가 입안한 비와호 건설/주청 영국공사 파크스/‘조일통상장정’에 대한 유럽 공사들의 불만/보빙사의 미국 시찰과 귀국/배에서 유교 서적만 읽은 민영익/영국, 조선에 총영사 파견 결정/‘만국공법’ 번역가가 본 청과 일본의 차이점

1884년 조선
‘한성순보’ 사건/세계표준시 확정 국제회의/청국군 1,500명 철수/민영익의 귀국 보고/“광명세계로 들어갔다가 이제 또다시 암흑세계로 돌아왔다”/좌절된 고종의 의복간소화 시도/거의 공석이 된 주진독리/변리공사로 강등된 미국공사/2천 년 전 중국 사람에 대한 시험을 치는 조선/호조판서와 영국 총영사/갑신정변/청국군과 일본군의 교전/부친들의 자결/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졌던 김옥균/한성조약/고종의 결의/유학을 떠난 윤치호

1884년 일본
1년간 유럽시찰에 나선 육군경/헌법제정을 위한 조직 구축/화족령/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청불전쟁/세계표준시 확정/주청 영국공사와 갑신정변 해결 방향/주청 영국공사, 거문도 점령을 건의/청국의 갑신정변 해결 방침/일본의 갑신정변 해결 방침/조선의 개혁을 주장한 주청 영국공사/조러조약과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일본 해군 식단에 고기, 빵, 우유 등장

1885년 조선
거문도 점령/이홍장과 일본 공사의 서한/조선의 영국 비난/청국과 일본 군대의 철수/민란과 활빈당의 준동/월급이 없는 지방 하급관리/“세상에 우리나라처럼 가난한 나라는 없습니다”/당오전 문제와 조운선 고의 침몰/“군량이 없는 몇 길이나 되는 빈 성을 지키며”/대원군 귀국 저지와 이홍장/제1차 조러밀약설과 원세개 파견/대원군이 귀국하던 날에 사형집행/대조선 강경책으로 전환한 이홍장/원세개와 메릴, 조선 해관

1885년 일본
NYK, 무라타 총, 하와이 이민/반청 감정과 ‘오사카 사건’/예조참판의 일본 방문/‘탈아론’/펜제 점령과 거문도 점령/주청 영국공사의 청국 설득/톈진조약/제1차 조러밀약설과 일본 외무성/청불전쟁의 종식과 손문의 결의/내각제도 실시/서아프리카 회의

참고 사항
조선과 일본의 연혁/1800년 ~ 1891년 조선의 남녀별 인구 및 가구 수, 가구당 인구/1800-1905 회계부 내역 중 주요 항목/ 원납전 내역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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