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연세 치의학의 연원과 윌리엄 샤이플리

연세 치의학의 연원과 윌리엄 샤이플리

  • 김준혁 ,김수연 ,신유석 ,이주연
  • |
  •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 |
  • 2022-04-15 출간
  • |
  • 440페이지
  • |
  • 197 X 267 X 36 mm /1387g
  • |
  • ISBN 9788968506468
판매가

28,000원

즉시할인가

27,16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27,16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1915년, 세브란스에서 대한민국 치의학의 시작을 밝힌 샤이플리 선교사의 여정
윌리엄 샤이플리는 필라델피아 치과대학을 1913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 개업한 치과 의사였지만, 오랜 선교 사역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샤이플리가 선교의 방식으로 생각했던 것은 현지인 치과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기관의 설립 이었다. 중국 파송을 바라던 샤이플리에게 조선 서울에 위치한 세브란스의학교가 치과의료선교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지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서울 행을 택했다. 그는 조선에 치의학 교육시설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었으며, 조선인 치과 의사 로 하여금 자국민을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 목표로 삼았다. 1915년 텐요마루 호를 타고 일본을 경 유, 서울에 닿은 샤이플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꿈과는 사뭇 다른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샤이플리는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짧다면 짧은 시간 서울에서 치과의료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했다. 그런 그에게 세브 란스의학교 이사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치과 치료를 감당할 것을, 선교본부는 조선에서 사역하는 선 교사들과 그 가족의 치과 치료에 집중할 것을 원했다. 과중한 진료를 감당하면서도 샤이플리는 치의학 교육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식민지에 치과 교육 기관을 만들어 현지인 치과 의사를 만들 계획 같은 것은 없었고, 식민지에 와 있는 일본인들을 가르치기 위한 기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총독부에게 샤이플리의 교육 계획은 눈엣가시였고, 그 의 노력은 번번이 방해에 부딪혔다. 샤이플리는 백방으로 노력하며 심지어 자신이 훈련시킨 조선인 치과 의사를 일본에 보내 치과 면허를 취득시키는 계획까지도 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20년 샤이플리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조선인 치과 의사를 배출하려는 소망도, 조선에 치의학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것 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맥안리스 선교사와 부츠 선교사의 노력으로 세브란스의학교 치과학교 실은 점차 규모를 갖추어 치과 의사 훈련 기관으로 성장해갔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과대학병원의 전신인 이 기관은 이 땅 에 근대 치의학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 이미 107년 전에 시작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 출발은 현지인 치과 의사 교육을 향한 샤이플리의 열정이었으며, 그가 높이 들었던 치의학이라는 봉화(烽火)는 여전히 연세를 통해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의 107년 역사 출발점을 사료로 증명하다
이 책은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샤이플리 선교사의 친필 일기를 번역하여 그의 열정과 숨결, 기쁨과 고난을 소개하 였다. 당시 촬영된 사진 중 샤이플리의 사역이나 상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선별, 복원 작업을 거쳐 권두에 실었다. 또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이 2015년 발간했던 『연세 치의학 100년사』 중 세브란스의학교 치과학교실 설립 전 조선에서 치과 진료 의 수행 및 샤이플리의 선교 사역에 관한 부분을 추려 여러 자료로 보강, 재서술하였다. 샤이플리가 졸업한 필라델피아 치과대 학은 종합대학과 합병, 현재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템플대학교 치과대학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 책의 자료 중 일부 는 템플대학교 치과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여러 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연구는 치과 의사로 치과의학사(齒科醫學士)를 연구한 이주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 실 겸임교수가 수행하였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신유석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보존과학교실 교수 가 자료 수집을 맡았다. 의료윤리학, 의료인문학을 전공하고 다수의 저서를 발간한 김준혁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 교실 교수가 책의 서술을, 영어교육을 전공한 김수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연구교수가 번역 검토와 수정을 주로 담당하였다. 특히 이 책의 핵심인 샤이플리의 일기는 네 명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내용을 점검, 이미 작성된 지 100년이 넘은 필기 원고로 많은 부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당시의 기록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 식민지 조선 당 시의 치과적 상황에 관심 있는 의사학 및 치과의사학 연구자에게도, 당시 의료 선교 상황을 살피고자 하는 신학 연구자에게도 학술적 가치를 지닌 책이지만, 무엇보다 연세 치의학의 찬란한 역사를 증명하며 교육을 향한 열정이 후대에 전달할 수 있는 가 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으로 우리 모두에게 의미를 지닌다.

‘하루 종일 일했다’
샤이플리 선교사의 일기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까? “하루 종일 일했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병원 진 료, 치의학 교육, 영어 교육 및 선교 사역, 방문 진료, 선교 회의 참석 등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했다. 선생님들을 위해 1, 2월 잔액을 러들로와 함께 상의하였다. 1월~3월 학기 일정을 잡았다.
저녁에는 게임을 했다. 예배에 참석했다.
- 1917년 1월 10일(74쪽)

종일 열심히 일했다. 밤에는 집에 있었다.
- 1917년 11월 19일(137쪽)

대학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저녁에는 집에 있었다.
- 1918년 11월 5일(196쪽)

이런 샤이플리의 한국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는 것은 어떨까.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의 경주를 다함, 이라고 말이다. 그가 가진 조선 치과 교육 기관의 설립이라는 비전이 어떤 형태로 실현되었는지, 후대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러나, 당시의 샤이플리는 그런 결과를 전혀 알지도, 보지도 못했으며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조선총독부는 세브란스의학교의 교육을 방해하기 위해 강의를 일본어로 해야 한다는 지침까지 내렸다. 조선에 오기 전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던 샤이플리는 일본어 공부를 추가하면서까지 치의학 교육을 하겠다는 목표를 놓치지 않 았다.
1915년 3월 개정 사립학교 규칙과 전문학교 규칙이 공포되었고, 이 조항들은 사립학교를 옥죄었다. 교과서는 총독부가 편 찬하거나, 총독부의 검정·인가를 받은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세브란스연합의학교가 이전에 편찬한 한글 교과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어 의학 교과서만 교재로 사용해야 했다. 또한, 모든 강의를 일본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추가 되었다. 세브란스 연합의학교의 교수는 서양 선교사들이었으므로, 이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
- 〈4장 샤이플리의 선교 사역〉 중(324쪽)

오전 7시 30분에 남바 씨와 어학 공부를 시작했고, 10시 40분까지 공부했다. 그 후엔 대학에 있었다. YMCA에서 배구랑 농구를 했다. 저녁에는 집에 있었다.
- 1917년 12월 9일(142쪽)

당장 결과가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결과가 지금 나오지 않아도, 사역 이후에 맺은 결실을 보면서 자신의 노력이 의미 있었음을 반추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대의 어둠에 가려, 자신의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맺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묵묵히 계속 해 나아가는 것은 무척 어렵고 고된 일이다. 샤이플리의 사역은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결과가 삼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을 우리는 직접 보았다.

샤이플리의 열정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우리가 샤이플리를 우리의 출발점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뜻을 이어 실천해야 합니다. 21세기, 샤이플리의 뜻을 구 현하기 위해선 그가 했던 일을 다시 구현하면 될 것입니다. 즉, 아직 현대 치의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 로 교육 기관을 세우고, 현지 교육을 지원하여 현지의 치과 의사가 그곳의 필요를 감당하도록 훈련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학교에서 제도로 구현하기 위해 저는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기관이 샤이플리의 뜻을 잇고 있 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치과대학병원이 한국 최초의 치의학 교육 기관임을 명확히 하고, 다른 치과대 학 및 부속병원과 연세를 구별하는 지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감사의 글〉 중(10쪽)

그런 샤이플리의 노력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 그의 이름을 역사책에 새 겨 잊지 않는 것? 모두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지녔던 마음을, 그 열정을 지금 다시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샤이 플리가 107년 전 조선 땅에 와서 치의학 교육 기관을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다른 곳에 치의학 교육 기관을 만들 고 아직 치의학 교육과 제도가 미흡한 지역의 발전을 도울 때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샤이플리의 뒤를 잇고 있으 며, 그가 현지인 치과 의사를 통해 구강 건강을 개선하고 치의학을 전달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우리가 다시 반복하고 있다 고 말이다. 그때,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치과대학병원이 한국 최초의 치의학 교육 기관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 있으며, 그 출 발점인 샤이플리를 계속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윌리엄 샤이플리의 삶과 기록 ⅰ 발간사 3
추천사 5
감사의 글 9

1장 _ 샤이플리 다이어리 15
2장 _ 서양 치의학의 한국 전래와 연세 치의학의 연원 269
3장 _ 윌리엄 샤이플리, 치과 의료 선교사가 되다 285
4장 _ 샤이플리의 선교 사역 313
5장 _ 샤이플리의 진료와 연구 337
6장 _ 샤이플리의 삶과 사역 의의 353
7장 _ 윌리엄 샤이플리의 개인 및 공식 보고서 365
주석 427
서지 433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