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살던 고향집이 팔렸다.
나는 그곳과 그곳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나에게 익숙한 글과 사진으로.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고향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설에 만난 엄마는 이제 그만 시골 생활을 접겠다고 하신다. 건강이 좋지 않아 밭일도, 집을 간수하는 것도 버거워서란다. 엄마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고향과 멀어진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쓸쓸했다.
십여 년 전부터 고향집과 동네를 사진에 담았다. 그러는 사이 명주 집 뒤에 있던 커다란 팽나무가 쓰러졌다. 다정한 수동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자전거를 타고 노인정을 오가던 어르신은 요양원으로 옮겨 갔다. 금이 갔던 동창네 담벼락은 보수공사를 마쳤다. 엄마 화단의 수국은 피고 지고를 반복하다 지금은 잘리고 없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옆에서 뛰어놀던 꼬맹이들은 다 자라 대처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크고 작은 변화에도 마을은 여여하고 고요하다. 팔십이 넘은 마을 어르신들은 소라게처럼 좀체 집밖을 나서지 않으신다. 그나마 젊은 축에서 이웃한 밭둑의 풀을 누가 벨 것인지를 가지고 핏대를 세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싸움을 하던 둘 중 하나가 돌아서면 다시 마을엔 정적이 흐른다.
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극히 드문 마을에서 이제 우리도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서랍에 넣어두기만 했던 사진을 꺼내 보기로 한다. 고향집에서의 삶에 한 단락을 짓는 엄마처럼 나 또한 내 사진의 한 단락을 지으려는 것이다.
내 고향 장흥, 특정장소이되, 그곳에 국한되지 않는 곳,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곳을 글과 사진에 담았다.
― 이연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