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
매의 눈으로 뚫어본 한국경제의 실상
산업구조 고도화 외에 길 없어 … 원천기술 축적에 사활 걸어야
사회 혁신 마중물 돼야 할 정치, 경제 혁신 가로막는 구정물 돼
“‘IMF 사태’가 젊은 사람이 등산하다가 넘어져서 입은 타박상 같은 것이라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노인의 당뇨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정치가 국가의 경쟁력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 방향은 정신의 개혁과 지식의 축적이다.”
(저자 머리말)
김상규의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는 저자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근무하던 무렵 터진 외환위기에 대한 반추로 시작한다. 그는 ‘일찍 터뜨린 샴페인론’이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음모론을 모두 배격한다. 외환위기는 자본시장 자유화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섣부른 개방이 초래한 인재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전문가집단의 태만한 정신과 부족한 지식, 둘째 민주화의 덫, 셋째 소재-부품-장비 수입을 통한 완제품 조립에 특화된 대기업 중심 산업구조. 저자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약점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옥죄는 최대의 통점(痛點)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이 문제 해결을 등한시하고 포퓰리즘 논쟁으로 예산과 시간을 허비한 결과, 양극화가 뿌리를 내렸다.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는 거시경제 지표보다 제조업의 체질과 혁신 동력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는 해외의 조류나 유행에는 민감하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내포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는 취약하다. 4차산업혁명이 혁신의 표제어가 된 지 벌써 10년이 됐지만, 이행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놓고서는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관건은 기술과 소프트웨어인데, 아직도 스마트산업단지 같은 하드웨어 구축에 매몰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부동산가격과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와 같은 초우량기업의 선전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다. 수출이 6천억 달러를 넘었지만, 제조업의 허리인 중소기업은 무너지고 있다. 김상규는 우리 사회가 거대한 착시, 착각 그리고 최면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는 경공업의 요람이었던 마산수출자유지역과 기계공업의 메카인 창원국가산업단지의 어제와 오늘을 분석해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는다. 해답은 규제 철폐와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로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가능케 할 파일롯 기업을 민관합동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십수년째 정치공학으로 단물을 챙기는 데 이골이 난 정치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줄지 의문이라는 게 저자의 우려다. 추천사를 쓴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가 “정치꾼들에게 대단히 불편한 책이 될 듯하다”라고 평했다. 김상규의 『경제입니까 정치입니까』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독특하고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