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책 소개
저자인 최기영 서강대 교수는 중국 관내(만주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 특히 그 활동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그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 진력해 왔다. 그중에는 현재 잘 알려진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친 많은 지사들이 후대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할수록 후대의 연구자들이 그들을 바로 드러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반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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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 소개
저자인 최기영 서강대 교수는 중국 관내(만주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 특히 그 활동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그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 진력해 왔다. 그중에는 현재 잘 알려진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친 많은 지사들이 후대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할수록 후대의 연구자들이 그들을 바로 드러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반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조차 묻혀 버린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들이 독립운동사에서 마땅히 차지하여야 할 위치를 찾아 주는 것이 역사학자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지키고자 10여 년간 분주히 쌓아 온 결과물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채호나 이회영, 변영만같이 널리 알려진 이들뿐만 아니라 이복원, 이두산, 이상정처럼 그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유기석과 김학무처럼 연구자들에게는 익숙하지만 개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을 아울러서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저자는 이들의 움직임과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제1부 ‘1910~1930년대 북경의 독립운동가’에서는 변영만, 신채호, 이회영, 유기석을 다루었다. 이들은 대체로 북경을 주 무대로 하여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이다. 활동한 시기도 연령대도 다르고, 이들이 북경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들을 빼놓고 당시의 독립운동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제2부 ‘관내에서의 무장투쟁과 독립운동가’에서는 이상정, 이복원, 이두산, 김학무를 논의하였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경로로 군사교육을 이수하였다. 대한제국 하급 무관 출신인 이복원은 미국 군사학교에서, 이상정은 일본 예비군사학교에서, 이두산은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에서, 김학무는 중국군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 전사한 김학무를 제외하면, 중국 관내에서 활동한 이들의 무장투쟁은 직접적 무장투쟁보다는 중일전쟁 이후 중국 군사조직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제3부 ‘중국 유학생과 독립운동’에서는 1910~1920년대 화중 지역 한인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항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1930년대 중산대학 유학생들이 중일전쟁 이후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보론’에서는 중국 천주교 지도자 우빈 주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1940년 전후부터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한 우빈은 독립운동의 영수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고 오랫동안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종교 지도자이다. 특히 임시정부 승인문제와 샌프란시스코회의 참가문제에 있어 협조와 지원을 해준 바 있다.
책속으로 추가
1927년 12월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으로 발발한 ‘광주봉기’ 이후 중산대학에 유학한 한국인들이 거의 없다가, 1931년 이른바 만주사변이 일어난 뒤에 다시 그 수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중산대학에 유학한 인물들의 상당수가 중일전쟁 발발 전후 한국독립운동의 선봉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산대학이 군사교육기관이 아니었음에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점이 주목된다. 최근 중국학자들이 중산대학 한국 유학생들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303쪽, 「1930년대 중산대학과 한국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