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차이를 즐겨라』는 상상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이끈다는 생각 아래, 우리의 삶과 의식을 옭아매는 위계의 문제들을 상상 권력이라는 관점으로 풀어간다. 상상 권력은 상상이 마치 실재인 것처럼 인간을 지배하는 힘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상상의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실재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을 지배하는 각종 사회적 관습들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자명한 실제의 현실로 여기며 그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수시로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우리를 지배하는 상상 권력은 위계와 그 위계의 모방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작동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의 존재들에 가치의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르게 상대를 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다. 가치의 위계란 곧 힘의 위계다. 이 세상은 각종 위계적 분류에 의해 발생되는 미시 권력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을 촘촘하게 옭아매는 미시 권력들의 세계에서 상상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죄의식에 갇힌 약자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지를 들여다본다. 인간의 욕망은 위계의 현실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모방함으로써 생겨난다. 사회적으로 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삶과 사물을 소유하려는 것은 인간이 지닌 욕망의 본질이다. 그 욕망의 이면에는 낮은 가치를 갖는 삶과 사물들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태도가 내재해 있다. 위계의 가치들은 그에 대한 모방의 욕망을 부르고 모방의 욕망은 위계의 가치들을 재생산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상상 권력의 세계다.
이 책은 위계적 상상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서양의 철학 이론 및 영화와 미술 등의 예술 작품들을 활용하여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풀어간다. 다루어지는 예술 작품들은 책의 의도와 관련해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판단된 작품들이다. 이 책이 이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추상적인 논의에 대한 접근성을 보다 높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예술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보다 큰 이유는 권력과 예술이라는 두 층위에서 상상의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의도 때문이다. 예술은 이 책이 위계적 상상에서 벗어난 상상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가장 매혹적인 세계다. 그 가능성을 위해 이 책이 주의 깊게 천착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 가상, 닮음이 아닌 차이, 틀림이 아닌 다름, 모방이 아닌 모의(simulacre), 위계가 아닌 연대, 지층이 아닌 표면, 재현이 아닌 생성(devenir), 부정이 아닌 긍정 등의 가치들이다.
힘 있는 타자에 대한 순종과 스스로를 약자로 만드는 죄의식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보편적인 내면 풍경일 것이다.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억누르는 우리 사회 특유의 위계적 정서는 개인들의 내면에 자신을 부정하고 남들과 닮아지려 애쓰게 만드는 심리적 억압을 낳는다. 현실을 만드는 것이 상상이라면 현실을 바꾸는 것 또한 상상이다. 이 책은 우리 안의 상상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상상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개인들이 자신의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버리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연대하며 스스로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내는 상상의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의 차이를 즐겨라’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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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장에서 고다르의 작품에 나타난 시선과 감정이입의 문제를 통해 인간이 상상을 실제의 현실로 믿게 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살핀 후, 2장과 3장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 상상 권력의 철학적 모델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하며, 앤디 워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탈플라톤적 현상들을 분석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사랑과 제도의 문제, 진실과 거짓이라는 도덕의 이분법,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 유사의 억압과 시뮬라크르 놀이, 기호와 몸, 시간과 공간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위계적 권력을 실재화하는 상상의 관습이 어떻게 개인들의 차이를 지우고 인간을 모방의 욕망에 종속된 닮은꼴들로 만드는지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이 책은 플라톤이 속한 절대적 동일성의 철학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내적 역량과 차이들의 역동성을 철학의 무대로 이끌어낸 철학자들의 이론을 논의의 자료로 적극 활용한다. 특히 열등한 가상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내면의 죄의식을 만들고 인간에게서 인간을 몰아낸 서양의 철학에 누구보다 신랄한 이론으로 대응했던 니체, 초월적 신이 아닌 내재적 신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스피노자, 플라톤주의의 극복과 전도를 주장했던 질 들뢰즈, 마그리트의 그림을 칼리그람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분석한 미셸 푸코, 시간의 문제를 철학의 주요 의제로 끌어낸 베르그송, 몸과 기호의 문제를 반플라톤적인 사유로 풀어나간 장 뤽 낭시 등은 이 책의 논의에 많은 영감을 준 철학자들이다. (……)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즐거움은 사회적이거나 물질적인 조건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위계적 상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는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계의 틀로 개인들을 억압하는 문화가 아닌,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와 연대하는 문화가 개인이 지닌 상상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보다 역동적인 힘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 이 글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