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근대 이후의 국어학 업적을 섭렵하여 우리말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이들을 위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국어학 업적을 정리하고 그 흐름을 보이는 연구사적 서술을 탈피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구사적 서술을 탈피한다는 것은 우리말 연구의 의미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이는 데 주력한다는 뜻으로,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고 있다. “국어학계는 우리말을 연구하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
‘인식의 흐름’에 초점을 둠으로써 이 책에서는 근대 이후 국어 연구의 흐름을 시대정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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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대 이후의 국어학 업적을 섭렵하여 우리말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이들을 위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국어학 업적을 정리하고 그 흐름을 보이는 연구사적 서술을 탈피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구사적 서술을 탈피한다는 것은 우리말 연구의 의미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이는 데 주력한다는 뜻으로,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고 있다. “국어학계는 우리말을 연구하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가?”
‘인식의 흐름’에 초점을 둠으로써 이 책에서는 근대 이후 국어 연구의 흐름을 시대정신과 관련지어 거시적 차원에서 조망하는 서술 방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특정 시대에 공유되던 우리말 연구의 문제의식이 무엇이고, 한 시대의 문제의식이 해소되며 연구 방향이 전환되는 계기는 무엇인지를 포착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대정신과 국어학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인물들 간의 영향 관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근대 국어학의 논리와 계보’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근대 국어학사로서 이 책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근대 이후 국어 연구의 흐름을 시대정신과 관련지어 거시적 차원에서 조망
지금까지 근대 국어학사의 서술 방법론을 관통해 온 일관된 문제의식은 학설사로서의 국어학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근대 국어학사 논의는 언어이론의 수용과 적용이라는 틀로 국어학 논의를 정리하는 것, 연구 자료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연구 자료를 발굴하여 연구의 흐름을 실증하는 것 등으로 제한되었다. 이로써 연구 대상과 목표는 명확해졌지만, 이러한 서술로는 국어 연구의 흐름을 시대정신과 관련지어 거시적 차원에서 조망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으로, 이 책에서는 국어 연구의 흐름을 거시적 차원에서 조망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근대 국어학의 좌표를 그림으로써 국어 연구의 현재적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는 특정 시대에 공유되던 국어학 연구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해소되며 연구의 방향이 전환되는 계기는 무엇인지 살피는 데 중점을 둠으로써 가능해졌다.
이 책에서는 근대 국어학사의 기점을 한국어와 한글의 정치사회적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하는 갑오개혁 이후로, 갑오개혁을 통해 제기된 국어 정립의 과제가 완결된 시점을 한반도의 국가 체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되며 국어 규범의 근간이 마련된 1960년대 중반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근대 국어학사를 제1기 1894~1910년, 제2기 1910~1945년, 제3기 1945~1965년로 구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국어 정립기가 한일병합, 해방, 분단, 한국전쟁 등 역사적 격변으로 점철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어 정립 활동에 임하는 주체들의 현실 인식과 국어관이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의 국어 정립 과정을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서구의 국어 정립 과정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한국의 국어 정립기는 근대적 언어관과 탈근대적 언어관, 관념론적 언어관과 유물론적 언어관이 혼재되어 나타난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관에 따라 국어 정립 활동 주체들의 현실 대응 논리도 다양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국어 정립과 관련하여 나타난 다양한 논리들이 ‘일제강점기의 민족어 정립’과 ‘남북 분단기의 국어 정립’ 과정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어 정립의 논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 근대 국어학의 특수성을 파악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기획한 것은 2009년으로, 기존 국어학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술방법론을 구상하고 이를 심화하여 2011년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갔다. 저자는 근대 국어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력을 기울였던 십여 년 동안 이룬 성과물을 바탕으로 수많은 논저를 참고하여 근대 국어학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졌다. 서론을 포함하는 제Ⅰ부에서는 서술 태도, 서술 대상, 시대 구분의 기준 등과 같은 서술 방법론을 재검토하면서 이 책의 서술 방향과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의 특징이 서술 방식에 있는 만큼 제Ⅰ부의 논의에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본론에 해당하는 제Ⅱ, Ⅲ, Ⅳ부는 우리말 연구의 시대적 전환점을 포착하여 구획했다.
제Ⅱ부에서는 근대 초기(1894~1910)의 문법 연구가 언문일치 실현과 국어 정체성 규명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의식하며 문법 기술 내용을 결정했음을 가정하고, 이를 입증하는 차원에서 이 시기의 국어관과 국어정책, 문법서의 상호텍스트성, 서구 문법학과 전통 문법학의 수용과 계승 문제를 다룬다.
제Ⅲ부에서는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리말 연구의 논리와 성과를 서술하는데, 조선어학회의 구심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들에도 주목하며 우리말 연구의 논리가 다변화되는 맥락을 살핀다. 이에 따라 서구 언어학 이론을 수용한 맥락과 논리, 다양한 언어관이 대립·공존했던 당시 조선어학계의 양상 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제Ⅳ부에서는 해방 이후 국어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대 상황에서 조성된 우리말 연구의 논리와 성과를 서술하는 한편, 이러한 근대적 과제에서 벗어나 학문으로서의 국어학을 모색하던 전환기의 논리와 연구 양상을 더불어 살핀다. 그리고 국어학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 1965년 이후의 상황을 서술하면서 현대 국어학의 전개 과정에서 대두된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의 특성을 이전 시기의 것과 대비한다.
책속으로 추가
조선어학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과정으로의 변화든, 조선어의 위상이 떨어지는 과정에서의 변화든, 조선어 연구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핵심은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대한 모색이 두드러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조선어 연구에 과학적 연구 방법론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 후반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정교하고 수준 높은 고어 연구가 나왔으며, 1942년에는 기념비적인 저서가 출간되었다. 이는 1940년대 들어 조선어 연구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말해 준다. ― 280~281쪽 ―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의 실체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불분명한 실체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의 문제의식은 근대 국어학의 전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남북이 이념의 대립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 국어학이 이념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이념성이라는 것이 불분명한 만큼 언어학의 이념성 또한 불분명할 수밖에 없지만, 해방 이후 국어학의 모색 과정에서 슬로건처럼 제기된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이기에 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313쪽 ―
해방 이후 국어 재정립 활동은 ‘우리말 도로찾기’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국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이처럼 어문민족주의의 논리가 어문정책의 논리가 되는 상황에서 국수주의적 국어관을 경계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한자, 외래어, 학교문법 등과 관련한 문제는 양 진영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규범사전과 규범문법의 제정이라는 근대 국어학의 과제를 완결 지어야 했던 국면에서 이러한 대립은 주도권 경쟁의 성격을 띠었다.
― 323쪽 ―
해방 이후 국어학 연구는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급격하게 늘어난 대학의 수만큼 국어국문학과의 수도 증가했으며, 교수의 수요를 충당하는 과정에서 국어학 전공자의 수도 늘어났다. 따라서 해방 이후 국어학의 지향과 성과를 판단하는 데에는 각 국어국문학과의 학문적 지향점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 363쪽 ―
해방 직후 전개된 국어 정립 활동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유보되었고, 1953년 이후에야 남북한 국어학계는 사전 편찬과 표준문법의 정립을 위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었다. 남한에서는 1957년 『큰 사전』이 완간되었고, 1963년 학교문법통일안이 마련된다. 북한의 경우에도 1960년 사전 편찬이 종결되고 1964년 표준문법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어 규범화가 일단락되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한국어의 범위와 특성을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 40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