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라니에로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인 그를 끝장낼 수 있는 건 성녀뿐.
“그를 만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러나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의 진리가 어그러지고 마는데.
이게 틀릴 줄 알았다면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하지 않았다.
라니에로를 배신하지 않고 그의 품에서 안일하게 살았을 텐데!
좌절한 와중, 성녀가 내게 청천벽력처럼 속삭인 말.
“악틸라의 대자를 죽일 수 있는 건 이제 제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던 나의 등을, 세계가 떠밀기 시작한다.
무기로서의 운명에 순응하여 전쟁신에게 반역하라고.
“이런 건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데.”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주친 맹수의 눈이 번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