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하지만 왕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왕실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권력의 중심에 선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에 기록되지만 그 주위는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이,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어머니로 기억된 많은 왕족의 여성들에게도 분명 자기 이름과 이야기가 있다.
저자인 정유경은 유럽의 왕족들에게 큰 관심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어릴 때 읽은 동화책의 “아주 먼 옛날, 어느 왕국에 공주님(왕자님)이 살았습니다.” 라는 도입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동화는 늘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구로 끝나기에, 과연 실제 왕자님과 공주님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이 갔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들 실제 삶은 동화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서로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고, 시집 식구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했고, 처가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당연히 자식들이 속을 썩이기도 했을 테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 왕족도 있지만, 행복하지 못한 결혼을 정치적 이유로 그저 참고 살거나, 끝내 파국에 다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에서는 팔츠의 조피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그리고 둘의 후손인 덴마크의 소피 마그달레느,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아우구스테, 영국의 샬럿,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카롤리네 이렇게 여덟 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18세기를 거쳐서 살았던 이들은 모두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다. 물론 이들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특히 이들 여덟 명은 모두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고부 관계, 시누와 올케거나 자매이기도 하다. 저자 정유경은 이런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에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불행한 상황이 겹쳐지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지금의 잣대로 바라보면 ‘왜 저러고 살아 당장 이혼하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이야기도 있다. 영국의 금지옥엽 ‘프린세스 로열’이 그럴듯한 신랑감들을 줄줄이 놓치고 서른이 다 되어 결혼한 남자가 결국 배불뚝이 가정폭력범이었다는 사실이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게는 그 시대와 자신들의 지위와 역할에 부합하는 각자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었다.
이들 여덟 명의 ‘공주님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