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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 임종업
  • |
  • 소동
  • |
  • 2021-11-21 출간
  • |
  • 288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9475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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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대성동의 과거와 현재
대성동마을은 정전협정이 결과 탄생했다. 남북한 양측이 비무장 지대에 마을 하나씩만 남긴다는 정전 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가 1953년 8월 3일에 조성을 시작했다.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선전마을이었다.

대성동은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다. 마을의 행정구역은 ‘파주시(옛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다. ‘대성동’은 47세대가 밀집된 주거지와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인근 영농 지역을 일컫는다. DMZ 안 분계선 남북쪽 마을 하나씩을 두기로 하면서 유엔군에서 ‘TAE SUNG DONG’ FREEDOM VILLAGE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마을 앞에 있는 둔덕인 ‘태성’에서 따와 ‘태성 부근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영자 표기를 다시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대성동’이 됐다.
대성동, 즉 장단면 조산리는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의주로 상에 있었다. 의주로는 조선 시대 서울과 전국 각지를 잇는 9개 간선로 중 하나로 서울-의주를 연결하는 길이자,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오랫동안 장을 보러 다니던 그 길이 하루 아침에 끊겼다. 지금 대성동으로 가려면 임진강, 민간인통제선(국군의 검문), DMZ 남방한계선( JSA 유엔사 검문) 등 삼엄한 차단선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있다. 대성동의 지리적 배경, 대성동 들어가는 길과 마을 풍경, 대성동 탄생의 역사, 대성동 주민의 삶, 대성동 인근의 관광지 등을 소개한다.

1장 대성동 누구의 땅도 아닌
판문점과 대성동의 이름 유래와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개괄해 소개한다. 대성동은 주민들이 자리 잡아 누대 살아온 그들의 향토다. 주민들 대부분의 농사를 짓는다. ‘바깥’에 비하면 대농이다. 그러나 ‘시절이 좋아지면’ 계속 이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주민들이 고민이 깊다.
유엔사는 대성동 주민이 바깥으로 이주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외부의 남성 세대주가 대성동으로 이주하는 것은 불허했다. 대성동 여성과 결혼한 외부 남성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경쟁 없이 대성동 주민끼리 농지 점유권을 확보하는 게 가능했다. 그로 인해 정전협정 이래 대성동은 마을 규모의 변화 없이 영농지만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8쪽)
현재 대성동 가구당 평균 농지 면적은 3만 평(약 10헥타르). 많이 짓는 사람은 최대 8만 평까지 짓는다. 주민들 가운데 2만 평(약 7헥타르) 보유 농가를 ‘소농’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통계청 2019년 자료를 보면 전국 평균 벼 경작지 면적은 가구당 약 2헥타르이다. (38쪽)

주민들은 몇 가지 고민이 있다. 농사철에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싶은데 승인이 나지 않는 것이다. 민통선 마을인 통일촌처럼 대성동에서도 허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아이들이 농사를 이어서 지을지 모르겠다는 것. 아직 대성동은 다른 농촌에 비해 평균 연령이 낮은 편이지만 고령화 추세는 여기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43쪽)

“애초 이곳 사람들이 딱히 먹고살 게 없으니 농지 개간을 다 허용했어요. 정부에서 도와주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돈을 들이고 피땀 흘려 일군 거죠. 근데 땅문서가 없어요.
만일 개방되어 원주인이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면 막막하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농사밖에 모르는데 어디에 가서 뭘 먹고 사나 걱정이에요.”
DMZ라서 곡창이 된 대성동이 DMZ인 탓에 존폐 위기에 놓인 것이다. DMZ가 열쇠인 동시에 족쇄인 셈이다. (44쪽)

2장 DMZ 첫 마을
대성동 가는 길에 대한 안내와 마을 풍경을 소개한다. ‘용무가 없다면’ 아직 일반인은 마을에 들어갈 수 없는데,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한 해 졸업생이 5명인 대성동초등학교은 전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시설이 좋다.

대성동 마을에 닿으려면 임진강을 건너 북상해야 한다. 임진강은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천연 장벽이자 민통선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장벽과 겹친다. 임진강에 걸친 다리 가운데 가장 왼쪽에 놓인 통일대교가 대성동 관문이다. (59쪽)

이곳 학생들은 한해 한차례 단체사진을 찍는다. 졸업 앨범용이다. 한해 졸업생이 5명인데, 5명으로 썰렁하게 찍느니 전교생이 함께 찍는 오붓함을 선택한 거다. 해마다 즐겨 찍는 장소는 운동장. 학교 본관 건물을 끼고 대성동 마을의 상징인 태극기 게양대가 배경으로 보이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누구나 대성동초등학교와 그 학생들임을 알 수 있다. 졸업 연도만 다를 뿐. (106쪽)

3장 대성동의 탄생
대성동은 마을이 만들어진 후 크게 두 번 개발이 되었다. 이 장은 1950년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최덕빈 중령이 주도한 대성동마을 조성, 1970, 80년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대성동 개발 과정을 다룬다.

1959년 유엔사와 정부에 의해 추진된 크리스마스 전까지 낙후된 자유의 마을을 근대화한다는 계획에 따라 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미군이 기증한 발전기가 도입되었고 블록주택(문화주택) 3동이 지어졌으며, 공회당과 동사무실, 의무실, 목욕탕 등 공공시설이 지어졌다.
최덕빈 중령이 그린 이상촌은 자치 조직을 기반으로 한 주민 공동체다. 이를 위한 기반 시설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회당을 세웠다. 현재는 마을의 동쪽 구릉 위 한적한 곳이지만 당시는 뒤쪽에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며 아우르는 곳이었다. (130쪽)

현재의 대성동 마을은 1979~1980년 ‘대성동 종합 개발’에 따라 갖춰졌다. 대성동 종합 개발은 정부의 첩보 기관인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주도로 이뤄진다. 중앙정보부는 1979년 1월 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한테 ‘판문점 지역 종합 개발 건의’ 제하의 문건을 올려 재가를 받았다. (109쪽)

4장 대성동 주민으로 살아가기
대성동 주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요, 충분 조건을 다룬다. 대성동에서는 이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TSD Mayor라 불리는 이장의 역할과 권한도 알아본다.

대성동 주민은 주민등록증 외에 또 다른 신분증을 갖고 있다. 빨간색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그것이다. 주민증과 형식은 비슷한데 주소 표기와 발행 기관이 다르다. 예컨대 주소가 14-2라면 14번 주택에 거주하는 세대주의 아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상 1번은 세대주, 2번은 배우자, 3번은 첫 번째 자녀 식으로 번호가 매겨진다. 발행자는 유엔사 공동경비구역 대대장. (156쪽)

대성동에 관한 한 이장이 경비 이외의 모든 사안을 관리한다. 그가 ‘아니오.’ 하면 안 되고, 그가 ‘네.’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인가, 그의 의사 표현은 된다, 안 된다가 분명하다. 주민 대표로서 유엔군 사령관, 대성동 민정중대장, 공동경비구역 한국군 경비대대장, 공동경비구역 유엔사 경비대대장 및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을 상대로 대등하게 현안에 대해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외부인의 대성동 방문은 사실상 이장이 관할한다.
자신의 농사일을 겸하기에 2배 이상 바쁘다. 통화도 힘들다. 그와의 스케줄은 두어 달 전에 잡아야 할 정도다. (169쪽)

5장 대성동 사람들
한국전쟁 후 민간인 마을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대성동 주민들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대성동 마을은 유엔사 관할이다. 주민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 자유의 마을 출범 당시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 1969년 주민등록증이 발급돼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유엔사의 역할이 한국군에게 이양되어 한국군이 그 실행을 대행하고는 있지만 최종 권한과 책임은 유엔사에 있다. 대성동 경비가 한국군으로 이양된 것은 2004년, 불과 16년 전이다. 하지만 이곳을 출입하려면 대한민국 장관도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216쪽)

6장 대성동 인근 돌아보기
제3땅굴,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돌아오지 않는 다리, 판문점(JSA), 임진각 등 전쟁 혹은 평화와 관련된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아울러 이들을 품고 있는 의주로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유로와 통일로는 그 이름과 달리 대성동 못 미쳐서 끊겨 있다. 문 대통령 역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자유로를 달려 판문점에서 멈췄다. 그에 반해 의주로는 분단 이전에 남북을 잇는 길이었고, 통일이 되면 서울과 평양을 잇는 길이 될 터이다. 그 점에서 의주로는 우리 한반도의 과거이자 미래다. (274쪽)


목차


저자의 글 _ 비무장지대 첫 마을, 대성동 _2
프롤로그 _ 정상회담을 엿들은 주민 _16

1장 대성동, 누구의 땅도 아닌
ㆍ 이름 없는 마을 _23
ㆍ 전쟁 중에도 떠나지 못한 땅 _32
ㆍ 열쇠이자 족쇄인 DMZ _45

2장 DMZ 첫 마을
ㆍ 대성동 가는 길 _59
ㆍ 태극기 휘날리며 _73
ㆍ 동네 한 바퀴 _84
ㆍ 마을의 유일한 학교 _96

3장 대성동의 탄생
ㆍ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대성동 개발 _109
ㆍ 남향에서 서향으로 재배치된 자유의 마을 _122
ㆍ 대성동 마을을 기초한 인물 최덕빈 중령 _128
ㆍ 마을의 수익 기반이 된 사천강 습지 _140
ㆍ 동의 대성동과 서의 기정동 _145

4장 대성동 주민으로 살아가기
ㆍ 까다로운 거주 조건 _155
ㆍ TSD Mayor 대성동 이장 _162
ㆍ 대성동 헌법이 된 유엔사 규정 _ 174
ㆍ DMZ 주민, 미군 _184
ㆍ 늙어가는 마을 _195
5장 대성동 사람들
ㆍ 자기 땅에 유배된 난민 _ 201
ㆍ 걸어 다니는 옥편 김씨 _ 218
ㆍ 도토리 줍다가 북에 다녀온 홍씨 _ 223

6장 대성동 인근 돌아보기
ㆍ 지척에 있는 제3땅굴 _231
ㆍ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돌아오지 않는 다리 _ 238
ㆍ 공동경비구역 판문점 _244
ㆍ 무장된 비무장지대 _258
ㆍ 건물명에서 지명이 된 임진각 _ 263
ㆍ 오래된 미래 의주로 _274

에필로그 _ 하나 된 나라를 지향한다면 _283
참고문헌 _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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