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을 죽인 거죠?” 래리가 물었다. 쿠션 끝에 걸터앉은 그는 두 손을 무릎에 얹고 그녀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산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거예요?”
“아무도 날 죽이지 않았어요, 래리. 그냥 평소처럼 복부 지방 제거 수술을 받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요. 수술 후 합병증으로요.”
“누구에게 살해된 것도 아니면서 왜 나를 찾아온 겁니까?”
멜러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꽤 부풀었다. 얼마나 사랑하면 죽은 자신을 되살려냈을까?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 본문 56쪽, [가슴은 무덤까지 가져간다] 중에서
아이의 목에는 빗물에 씻긴 창백한 상처가 뚜렷이 남아 있다. 튀어나온 광대뼈는 짙은 장미색의 썩은 피부로 덮여 있다. 눈은 꿈속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광경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 불편한 이미지가 서서히 지워진다. 그리고 새까만 화면 위로 세 개의 문구가 떠오른다.
‘시체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 차례입니다.’
‘버튼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십시오.’
- 본문 170쪽, [죽음과 선거권] 중에서
요즘은 시체 소생이 많이 줄었다. 시체들은 주로 자신들의 죽음을 직접 규명하거나 자신들의 재산 관리 내역을 증언하기 위해 법원의 명령에 따라 소생됐다. (중략) 시체들은 항상 산 자들이 원하는 진실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거짓 증언을 한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일생을 부정하게 살아온 이들마저 시체가 되면 병적으로 정직했다.
- 본문 335쪽, [아름다운 것] 중에서
한 달 전쯤 일이었습니다. 아이티 경비대에 한 미친 여자가 에너리 근처에서 관광객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답니다. 그녀는 농장 쪽으로 향했고, 돌아가라는 경비대의 지시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쫓으려는 데 격분해서 더 폭력적으로 변했죠. 결국 그 가족 농장의 주인이 불려왔습니다. 그가 딱한 여자를 흘끔 보더니 이렇게 말했죠. ‘맙소사, 내 동생이에요. 30년 전에 죽어 묻혔는데.’
- 본문 699쪽, [조라와 좀비] 중에서
“그냥 이렇게…… 떠날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신속하고 평온하게.”
“난 두려워요. 이건 살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난 이미 죽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저 완전히 죽지 못했을 뿐이죠. 당신은 살인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연주가 당신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기억합니까? 내가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해요? 내 안에 아직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도 무서워요.”
“난 이제 쉴 자격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가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 본문 813쪽, [좀비가 부른 노래] 중에서
안타깝지만 인류는 이렇게 멸망하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퇴장 말입니다. 죽지 않은 시체들의 이빨에 의해서. 그 과정에서 극심한 통증과 괴로움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적지 않은 재미마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은 이렇게 멸망합니다. 그건 뭔가 엄청난 사건에 의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찍 소리 낼 여유조차 없이 단숨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저예산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암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게 될 뿐입니다.
- 본문 912쪽, [인류가 퇴장하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