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본역대지리지장도』
『宋本歷代地理指掌圖』 해제解題
도올(橘机) 김용옥(金容沃)
지리를 모르고 역사를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사학이 식민지사관의 영향의 유무와 무관
하게 좁은 틀의 관점에 얽매이거나 개방적인 포용성을 상실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탁상에서만 역사를 탐구하고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감각, 특히 그 지리의 감각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대사에 나오는 지명은 끊임없는 반추의 대상이며 정합적 구성의
한 요소이지 그 지칭이 누구 한 사람의 생각에 의하여 고착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역사 부도로서는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는 이 『송본역대 지리지장도
『宋本歷代地理指掌圖』는 매우 소중한 선본이다.
『삼국유사』의 말갈발해조에 보면 일연 선사가 "동파東坡의 『지장도指掌圖』를 보면.. '’ 이
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일연 선사는 『지장도』 라는 역사부도를 직접 보았는데,
그 『지장도』의 저자를 송나라의 문호 소동파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역대지리지장도』의 서문을 소동파가 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최초의 역사부도는 서진西晋의 배수裝秀가 만든『우공지역도禹貢地域圖』
18편이라고 하는데 실전하여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역대지리지장도』는 44폭의 지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 폭의 지도에 모두 도설圖說을
첨부하였다. 위로는 제곡帝擧으로부터 송조宋朝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지도를 최소한
한 폭, 많으면 5폭을 할당하였는데, 중국인들의 세계인식을 파악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역사
지리서로서 부끄러움이 없다.
이『역대지리지장도』의 저자에 관하여 여러 가지 설법이 있으나 혹자는 소식蘇軾이라 하고,
혹자는 세안례稅安禮라고 하는데, 최소한 소식이 저자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세안례에
관하여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세안례는 촉인蜀人(현재사천사람)으로서 원부元符(1098-1100)
연간에 이『역대지리지장도』를 저술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경사短史에 능통하였고,
명산대천을 두루두루 편유適游하여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사천미산眉山사람인 소동파와
동시대인으로서 친구였을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 소동파의 이름을 가칭하여 후에 서문을 붙였을
수도 있다.
원래 북송각본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라졌고 남송각본만 전세傳世하였는데, 중국에는 명각
본明刻本 만 남았다. 다행히 남송각본이 일본의 토오요오분코東洋文庫에 보존되어,
1919년에 북경으로 건너왔다. 당시 경사도서관京師圖書館 관장이었던 장쫑시앙張宗祥
이 경사도서관 소장의 명각본과 이 송각본을 대조· 교핵才交核하여 고칠 곳을 고치고, 설명
을 가하였다. 송본이 명본보다는 훨씬 더 좋은 판본이라고 대조자들은 말한다.
1989년에 상해고적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도 일찍이 절판되어 구해볼 수가 없었는데 나의
제자 이동철군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문용길 선생이 영인하여 몇몇 지기들이 나누어보게
되었으니, 우리역사의 바른 그림을 위하여, 보다 개방적인 역사인식을 위하여 도움이 되
기를 바란다.
2015 년10월1 일 『도울의 중국일기』를 집필하던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