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7월 도르나흐 강연에서 밝혀진 인지학(Anthroposophy)의 인간관
루돌프 슈타이너는 1923년 7월 스위스 도르나흐에서 열린 인지학협회의 국제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인지학이란 실제로 무엇인지, 인지학의 임무는 무엇인지에 대해 3일에 걸쳐 강연하면서, 인지학의 길을 세 가지 관점(물질적, 영적, 정신적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크리스토퍼 뱀퍼드는 이 강연 내용에 슈타이너가 정신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간 길을 덧붙여 What is Anthroposophy?를 출간하였고, 이 책이 바로 이번에 번역 출간되는 <인지학이란 무엇인가>의 원서이다.
초자연적인 체험을 통해 초월적인 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슈타이너는 인간의 본질을 정신세계까지 확장시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인간 속에 숨 쉬고 있는 우주의 이치를 이해하고, 인간의 본질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슈타이너의 끊임없는 노력은 인지학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우주 속의 정신세계로 이끄는 인식의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슈타이너는 강연이나 저서에서 “나는 스스로 체험하고 인식한 것만을 말한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즉 “진실된 내용은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지학은 어떠한 견해나 믿음에도 의지하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육신의 체험 못지않게 확실한 정신의 체험에만 기반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사뭇 와닿는다.
인간 실존의 길을 밝히다
발도르프 교육은 100년 넘는 시간 동안 1000여 나라에서 꾸준히 성장한 교육 운동이며, 한국에서도 2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5개의 발도르프 학교와 200여 개의 발도르프를 지향하는 유아기관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미래 교육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발도르프 교육 운동은 그 바탕 철학인 인지학(Anthroposophy)의 이해로부터 목표와 방법을 찾고 있는데, 인지학은 근현대 유물론적 합리주의와는 사뭇 다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정확한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인지학’이라는 개념의 핵심 의미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므로 인지학의 이해는 전적으로 그 인간관 이해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인간의 구조 자체가 3원적임을 제시하면서 각각의 차원에서 정의되고 발현되는 인간 본성을 설명한다. 슈타이너가 직접 말년의 정돈되고 완숙한 인간관을 제시한 강연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사후와 새로운 출생 사이, 영계의 실재를 전제로 윤회하는 인간 삶이 여러 생을 거치며 어떻게 고유한 개성과 삶의 과제를 형성하는지를 인지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여러 종교의 전유물이었던 사후 세계와 현생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통해 인간 실존 과제를 밝히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동양에서 지천명(知天命)으로 일렀던 그 성숙한 의식에 이르는 길을 밝히고 개인 각자의 삶의 과제를 발견하는 능력의 개발을 돕는 것, 그것이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이며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인간’ 형성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화 운동의 보편 가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발도르프 교육의 보편 가치와 이념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