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창 유행인 뉴트로 감성과 복고 현상에 대한 변영주 감독의 분석,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어떤 낭만도 쉬이 허락되지 않기에, 그런 낭만이 가능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청춘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 같다고…. 우리가 레트로를 소비하는 방식이 명작의 매뉴얼이기에, 다 좋아 보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전의 시대가 청춘으로 살았던 세대는 뭔가 더 풍요로웠던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역사성으로 돌아보는 추억의 순간들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고….
90년대를 학창시절로 보낸 저자의 뉴트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제를 따른다. 프루스트 소설을 채우는 수많은 미술, 음악, 문학 그리고 여행지를 대신하여, 그 시대의 청춘들이 좋아하고 향유했던 문화들로 채웠다. ‘시간을 이겨 내는 힘은 기억’이라던 프루스트의 말 속에 드리워진 과거는, 기억에 각인되어 현재에 미치고 있는 성격이 아니라, 현재의 해명을 위해 찾아나서는 ‘내일’의 성격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로부터』에 다루는 시간은 그런 기억의 힘이다. 우리가 읽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상이자,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지나간 여름날’이란 문구 속의 여름에는 무더위도 열대야도 없다. 그저 찬란하기만 한 여름빛이 있을 뿐이다. 추억이라는 건 그 순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회상이라기보단, 그것을 회상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이 반영된 해석이다. 그만큼 나의 존재의미가 잘 해명되지 않는 현재라는 반증이기도 할 터. 하여 아득하고 선명하지 않아 되레 더 무한한, 기억 속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 하는 것. 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가. 그것이 지나간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해명되지 않는 지금의 반대급부로 이상화된 기억이기에…. 그 안에서 찾아낸 과거의 자신은, 오롯한 과거의 결과만이 아니라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고 있는 이상의 자아다. 그 시절에는 조금 더 용기가 있었던 것 같고, 그 시절에는 좀 더 열정적이었던 것 같고, 현실에 치이며 살아가는 지금보다야 훨씬 더 꿈과 낭만의 가치를 믿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끔씩은 그때의 내가 나이 들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한, 그날로부터 어지간히 밀려난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을 우리들의 이야기.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간을 달리는 소년소녀
“헛되이 보내 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이다. … 우리의 게으른 삶이 바로 우리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전 생애가 하나의 천칙이다.”
누구보다 프루스트를 사랑했던 철학자 들뢰즈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에 대한 소회를 적어 넣은 부분. 쉽게 말해, 어떤 과거도 지금에 미치고 있는 모든 함수이며,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는 이야기.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는 듯했던 권태의 날들조차도, 결국엔 내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간이다.
그 순간에는 왜 그랬을까? 미래에서 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기억들. 그런데 또 그 순간에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며, 고작 그 정도의 반성적 거리를 확보하는 게 내가 지닌 한계였던 것이기도 하다. 그 기억이 아니었던들, 지금에 어떤 기억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일. 하여 그 과거들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들이 아니며, 미래를 통해 얼마든지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과거라는 것. 이미 벌어진 사건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이 지니는 의미마저 고정되지는 않는다. 미래로써 그 과거의 의미를 바꿀 수도, 과거의 의미를 바꾸어 보려는 노력 끝에 다른 미래가 열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듯 상호적인 시간성 안에서 과거와 미래는 ‘지금’을 통해 변한다. 모든 시제는 순간 속에 모여 있으며, 모든 시간은 현재적이다.
실상 어떻게 지나왔어도 아쉬운 시간이었을 테지만, 그것이 과연 내 최선이었나를 돌아볼 때마다 넘쳐나는 후회들. 내게 남아 있는 날들 중에 가장 젊은 오늘, 몇 년 후에 다시 이 순간을 돌아볼 때에는 최소한의 후회로 회상할 수 있도록, 최대 출력의 아름다움으로 지금을 사는 것. 청춘을 다 소비했을 즈음에 다가온 깨달음이라곤, 이토록 상투적이고도 진부한 것들. 그 흔하고도 닳아빠진 레토릭들을 삶으로 살지 못해서 그토록 후회로 돌아보는 날들.
우리의 꿈이 멈춰 섰던 자리,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또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멈춰 섰던 그 자리를 지금의 시간으로 잇댈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청운의 꿈을 품었던 시절의 자신을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지금 여기’서 다시 열리는 나름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어딘가에 그 정도 열정의 양분은 숨겨 두고 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로써 당장에 삶의 궤도가 바뀌거나,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일이 도래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분명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쓰여지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설령 이제 더 이상 그것들에게 온전한 꿈의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더라도, 그 과거의 의미로부터 지금 스치고 있는 순간들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것. 때로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다. 분명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으로 간직된 날들이 있었을 터. 그냥 그것이 좋아서, 앞뒤 잴 것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던 청춘. 그 짙은 채도의 기억이, ‘다시’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라는 심정으로, 아직 시들지 않은 그 심장으로…. 기억하길. 당신이 그 시절의 그였음을, 그녀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