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향한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
『영모가 사라졌다』로 비룡소문학상을, 『톡톡톡』으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공지희 작가가 4년 만에 새 동화집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로 돌아왔다. 전작 『안녕, 비틀랜드』 『멍청이』 등에서 도시 재개발 문제, 어려운 현실에 놓인 어린이들의 삶을 깊이 있게 다뤄 온 작가는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에서 재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인 한 동네에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다양한 면면을 담았다. 부모의 다툼으로 집 밖에 혼자 나와 있는 어린이, 새로 생긴 가게에 밀려 어렵게 가게를 운영 중인 자영업자의 자녀, 자식들에게 외면받아 혼자 사는 노인 등 동화집에는 저마다 지닌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생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서로 정을 쌓고 위로를 주고받는 모습은 꼭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더라도 편안한 벤치처럼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이웃의 존재감을 부드럽게 일깨운다.
“새 건물과 잘 닦인 길들 사이에 낡은 집들은 낮게 엎드려 끙끙 앓는 늙은 개 같았다.”
재개발의 화려함에 감춰진 이면을 드러내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오래된 것은 쓸모없으며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수십 년 동안 쌓인 추억이 무색하게 동네는 순식간에 새 건물과 새 골목으로 바뀌고,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물건 역시 쉽게 버려진다.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에는 빠르게 바뀌는 세태를 비판하듯이 상반된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편히 누워 하늘을 볼 여유를 제공하던 벤치는 누울 수 없게 쇠 칸막이를 박은 새 벤치로 교체되고(「벤치 아저씨, 표류하다」), 골목 벽에 정성 들여 그린 예쁜 벽화는 건물이 철거되면서 부서진 잔해로 흩어진다(「b의 낙서」). 수레를 밀면서 좁은 골목을 거니는 할아버지를 배려하지 못하고 자동차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기 바쁘다(「달구는 시속 3킬로미터로 달린다」). 작가는 획일적인 개발로 우리가 지녔던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커피와 단팥죽! 아주 잘 어울려요.”
옛것과 새것이 조화로이 사는 동네, 용호동
동화집은 재개발의 그늘진 이면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옛것과 새것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새 카페 주인이 단팥죽을 맛있게 끓이는 소복 할머니와 동업을 하거나(「안녕, 단팥죽」), 새로 생긴 빵집에서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남은 빵을 내놓기도 한다(「벤치 아저씨, 표류하다」). 옛 철길을 그대로 둔 채 공원으로 조성된 ‘용호동 철길 공원’에서 주민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리는 풍경(「수리수리 가게」)은 작품 전반에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으며 공생의 길을 제시한다. 단편의 각 주인공이 다른 단편의 글과 그림에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점도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한 동네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변 어딘가에도 용호동 사람들 같은 이웃이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을 선물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