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로 10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선고를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것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붓글씨를 배우러 다녔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초조해졌다. 시간이 가면서 의술이 발전하는 듯, TV에서 간이식 성공 사례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간이식을 받게 되었고 후유증으로 6년이라는 세월을 병원을 오가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싸워야 했다. 그 기나긴 시간을 남편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나는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지막 수술을 하고 깨어나자 남편은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이제는 당신 살았다고 외치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려온다. 그 후 남편은 내가 아플 때 도와준 고마운 분들을 모시고 백담사를 다녀온 뒤로 한 달 만에 갑자기 먼 길을 홀로 떠나버렸다.
후유증은 무서웠고 남편이 떠난 뒤 2년 동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힘들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지인을 만났다. 그분은 나에게 ‘붓 펜’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이토록 힘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전에 나에게 붓 펜을 배웠던 사람들도 찾아와 다시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내 사정을 일일이 얘기할 수도 없어 일단 그러겠다고 해 놓고 부지런히 챙겨 먹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매주 금요일마다 붓펜 활용법을 가르쳤다. 준비하느라 시집도 읽고 체본(體本)을 쓰면서 기운이 없어 손을 떨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건강도 점점 좋아졌고 그중 한 사람이 나한테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지인에게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글로 쓰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그 고통을 다시 들춰내어 어떻게 견디려고 그러느냐고 말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살아온 세월은 고통일지는 몰라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행복해지려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아온 인생은 내세울만한 의미 있는 내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잘 써서 남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지나온 삶의 울퉁불퉁한 흔적들을 잘 다듬어 정리하고 더 힘들어하지 않으며 앞만 바라보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오늘도 지나온 추억을 곱씹으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