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형주의 첫 번째 에세이집
소설가 김형주의 첫 번째 에세이집 『모든 날에 로그인』이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작가가 체험한 일상과 문학의 공간이 병행된 이번 작품집에는 특히 숲에 관한 글이 많다. 그만큼 숲은 작가에게 있어서 치유의 공간이자, 글쓰기를 위한 단련장 같은 곳이라는 방증이다. 그런 그가 그동안 써 왔던 글들을 모아 펴낸 이번 작품집의 소재는 각각 다르지만, 주제를 하나로 정한다면 ‘치유’가 될 것이다. 치유란 단어에는 행복, 건강, 원조란 뜻도 내포되어 있듯이 수록된 글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때론 울컥하고, 감동적이며, 매혹적으로 읽힌다. 그만큼 저자 자신의 체험을 독자의 감정에 이입하고, 간접적인 체험을 유도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긴장감 있고, 때로는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읽히기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작가 김형주는 영화관에서 〈러빙 빈센트〉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작 마음에 남은 것은 고흐의 명작들보다는 편지에 남긴 말이라고 썼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저자는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에 따뜻하게 남을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느 순간 초심을 잃었다고 자책한다. 아마도 저자는 슬럼프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심경은 저자의 글 많은 부분에 녹아있다. 특히 「다시 쓸 수 있을까, 나도」에서는 그와 같은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눈에 생긴 이상 증상으로 안과에 갔다가 대기인원이 많아서 잠시 근처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신착도서 서가에 있던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책을 보게 된다.
‘77세에 글을 잃어버린 작가, 테오도르’란 부제가 붙은 그 책은 ‘정신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작가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를 위기에 봉착한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가 인생의 후반기를 담담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저자가 그 책에 끌린 것은 일종의 동병상련에서였을 것이다.
대학병원을 한 달 이상 다녀도 낫지 않는 통증 때문에 유명 한방병원까지 찾은 저자는 근본적인 원인이 ‘스트레스’였다는 걸 알게 된다. 스트레스 때문에 호르몬의 이상이 생기고 몸의 장기에 염증이 생겼으며, 정신적 에너지까지 고갈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비문증까지 생겨버렸다.
하지만 저자처럼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났다던 테오도르는 그조차도 승화시켜서 『다시 쓸 수 있을까』를 썼다. 그건 곧 작가적 생명이 계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 책의 내용 금이 궁한 저자는 검사용 안약을 넣은 채 대기실에 앉아서 책을 본다. 그런 저자에게 간호사는 아픈 눈을 너무 혹사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그 말에 책을 덮던 저자는 뒤표지에 있는 다소 심오한 문장을 보게 된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글을 쓰는 모든 작가의 바람일 것이다. 저자 또한 그에 대한 중압감에 병이 날 정도로 자책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평정심을 되찾는다. 숲을 산책하거나 여행을 통해, 혹은 책과 영화를 통해 스스로 다독이고, 일종의‘새로서기’에 도전한 것이다. 저자가 특히 치유의 공간으로 꼽는 곳은 숲이다. 갈 때마다 비슷한듯하면서도 달리 보이는 숲은 다양한 생명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옛 북유럽의 마녀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매년 하지가 되면 마녀들은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마술약초를 꺾었다고 한다. 그녀들은 홀연히 나타난 양치식물을 꺾기도 했는데, 그것은 단 1초 동안만 씨를 달고 있는 신비의 식물이었다. 더구나 양치식물의 씨는 독특한 성분이 있어서 사람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덕분에 그걸 발견한 마녀는 투명인간이 되어 부자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숲을 산책하는 저자의 눈에 마녀들에게만 보이는 신비의 양치식물이 보일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건 전설이니까. 하지만 숲에 갈 때마다 새로운 걸 보고 느끼면서 적어도 마음을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긴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당분간 숲에 로그인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만 같다. 테오도르가 그랬듯이 이번에 출간된 『모든 날에 로그인』을 통해서 저자의 작가적 생명도 연장될 것이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한 권의 책이 힘든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겐 상처를 치유하는‘마법의 약’이 되고, 좌절감을 딛고 당당히‘새로서기’에 도전하는 이들에겐 응원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