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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규 평전

시인 이상규 평전

  • 량짜오
  • |
  • 리음북스
  • |
  • 2021-04-05 출간
  • |
  • 420페이지
  • |
  • 152 X 220 mm
  • |
  • ISBN 978899406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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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들어가며]

이상규 시인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이제 갓 문학의 길에 들어선 필자로서는 주제넘는 일일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인의 정서를 토대로 글을 쓸 수 없는 중국인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상규 시인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어쩔 수 없이 평전을 쓰기로 했다.
매년 중국을 방문해 조선족뿐만 아니라 한족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많은 일을 하던 이상규 시인은 건강 문제로 중국에 더 이상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건강도 문제지만 한국과 중국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이상규 시인이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등 악의적인 비난 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규 시인은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가 김학철 선생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기성 문학인들이 외면하거나, 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던 한중 문학교류 활동에 불을 지폈다. 이상규 시인의 이러한 활동은 중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중국 공항검색대에서조차 이상규 시인은 특별 대우를 받았을 정도다.
당시 중국인 유학생으로서 한국의 이상규 시인의 활동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이상규 시인만큼 국가관이 뚜렷한 분은 만날 수 없었다. 시인 자신이 젊은 시절 왕성하게 성장시켰던 사업의 자금으로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다. 마치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위해 처절한 전투를 펼칠 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준 것처럼 그는 한국 내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발 벗고 나섰다.
국가를 위해 활동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전화(戰禍)와 같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다, 화상을 입은 수많은 투사들에게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지원하는 등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쉼 없이 지원해왔다. 심지어 촛불시위로 엉망이 된 광화문 거리의 모 신문사 간판을 다시 설치하라고 후원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상규 시인은 1996년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첫 한글 시집 ‘순정의 고백’ 등 자신의 시집을 필두로, 한국 문학을 중국 문학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시와 문학이 얼마나 우수한지 깨닫게 하는 동시에 중국에 뿌리내린 조선족의 시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출판작업도 직접 지휘하며 후원하기도 했다.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전 10권), 인물조선족사(1권), 조선족역사사료전집(2권)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상규 시인은 이 책을 출판한 후 한국의 전국 대학에 300여 질을 증정해 조선족 문학의 존재성과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그들의 문학적 열정을 알리는데 앞장 섰다.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규 시인은 수년간 연변의 자치주에서 학문과 문학에 뜻을 둔 한국 동포 형제와 후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학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해오던 이 활동마저 건강이 악화되어 중국 왕래가 어렵게 되자, 이에 포기하지 않고 한국 내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2009년 11월 혜화동 이화예식장에서 거행된 제1회 소정문학상 시상식이 그것이다. 당시 날씨가 싸늘해지기 시작한 즈음, 조선족 3명 한족 3명 등 총 6명에게 소정 이상규는 장학금을 시상하는 시상식을 가졌다. 이는 한중 역사에서 매우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구 상으로 볼 때 중국이 쌀가마라면 한국은 쌀 한 톨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한 시인이 공산당 사회인 중국의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은 근현대에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문학의 위대성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위상, 한국의 우수성 등을 일거에 선보인 사건이랄 수 있다. 언감생심 한국인이 중국 한족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이 행사에는 중국 내에서의 이상규 시인의 위상을 크게 인정해 중국대사관 참사관도 참석하는 등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교류에도 교량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조선족, 한족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상식을 가졌는데 이날 수상한 수혜자들은 무턱대고 선발한 장학생들이 아니었다. 이 역시 이상규 시인의 분명한 국가관이 작용했다. 조선족이 문학 작품을 한글로 발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한족 역시 한글로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국수주의를 고집하기 위해 한글로 작품을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작품을 써낼 때 한국과 중국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한족이라도 한글로 창작할 줄 알아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는 뜻이다. 이 시상식은 인민일보 등 당시 중국의 신문과 방송 매체는 물론 조선족 신문과 TV 등에서도 비중 있게 다룰 만큼 한중 모두에게 화제가 되었다.
물론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 모든 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잔칫집에는 늘상 좋은 일만 가득한 게 아니라 때로는 훼방꾼, 또는 모사꾼들이 드나들기도 한다. 국가관이 투철한 이상규 시인과는 달리 자신의 정치적 세러머니를 위해, 또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참석한 손님들이 갑자기 들러리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한중 문화교류에 찬물을 끼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파견된 모 정치인은 한중문화교류의 바로미터로 성장할 소정 문학상 시상식의 진행을 두루 살핀 후 이듬해 2회 때는 외교센터의 동포문화회관에서 거행하자고 건의했다.
실제 제2회 때는 동포문화회관에서 거행되었다. 한국과 조선족의 문화예술인들을 후원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당시 경실련 임원을 비롯, 청와대 관계자, 국회의원 등이 두루 참석했다. 이 행사는 그러나 변질되고 말았다. 한중 문화교류의 소정의 문학적 호혜주의에 입각한 행사로 시작했지만 이때부터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정치행사로 부패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정 이상규는 본인의 의사와 반해 변질되는 현상을 목도한 후 크게 실망, 이 행사를 더 이상 이어갈 동력과 명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상규 시인이 이 행사를 국내에서 거행한 주된 이유는 건강의 악화에 있었다. 척추 수술에다 만성적인 희귀병 때문에 중국에 더 이상 왕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소정문학상 시상식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바는 적지 않았다. 바로 표피적인 한중 관계가 핀셋으로 내적인 관계를 헤집어보면 중국내에서 조선족과 한족이 얼마나 서로를 괄시하는지 피부로 알게 됐다는 점이다.
“당시 조선족 3명과 한족 2명을 시상하는 자리였는데 조선족 학생들이 한족 학생들을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 거예요. 이래서는 정말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들 학생들이 얼마나 서로를 등지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거든요.”
결국 한족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는 사실을 축하해주러 와야 할 한족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만 참석했을 뿐이다. 이상규 시인의 마음은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우리 동포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중국 내에서 받았던 설움과 핍박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2011년 해군호텔에서 열린 소정문학상 시상식 행사에는 이상규 시인은 겨우 참석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 행사장에서 물병을 들고 다닐 정도로 허약했다. 필자는 당시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한족을 대표해 수상자로 뽑혀 장학금을 받게 되엇다.
3회 때는 2회 때보다 행사의 성격이 더욱 변질된 듯싶었다. 이미 2회 때부터 행사명에서 소정문학상 시상은 뒷전으로 밀렸는데 이번에는 행사명 자체를 바꾸었다. 소정 이상규 시인의 뜻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월드코리안교류행사’로 바뀐 데다 1부와 2부는 행사의 본질과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정치인들의 송년 파티가 되었고 3부에서야 겨우 소정의 인사말 기회가 주어졌다. 소정 이상규는 단상에 올라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 행사의 인사말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사말을 생략하고 오늘 수상할 분들만 올라오세요.”
수 많은 정치인들, 경제 관료들을 앞에 두고 초청 인사말을 생략한 채 곧바로 시상식에 들어갔다. 사실 그날 참석한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지만 소정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 행사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확장하고 과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사할 필요는 없으며 본질적인 시상식만 하겠다는 표명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날 행사에 온 사람들은 소정 이상규 시인이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이었다. 이상규 시인의 일갈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당초 1부에 소정 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하는 한편, 이상규 시인이 중국 내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한국문학을 알림과 동시에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중국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빛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소정 이상규 시인은 이미 정치 모임 행사로 탈바꿈된 소정 장학금 행사를 더 이상 개최할 의의를 찾지 못했다.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과 역사성, 우수성, 순수 한국 문학의 가치 등을 인식시키고 중국과의 문학적 교류를 위해 시도했던 소정 문학상 시상 행사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소정 이상규 시인은 내가 겪어보고 만나본 한국인들, 특히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너무도 순수한 분이다. 중국동포들이나 한족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려고 하면 거간꾼들이 등장해 중간이득을 취해도 나무라거나 꾸짖기보다 연민의 정을 품었던 분이다.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반평생을 희생해도 한국 정부는 그를 사회주의 국가와 내통하는 것 아니냐는 등 갖가지 오해를 했지만 이상규 시인은 그마저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오히려 중국의 ‘당위’ 등에서는 이상규 시인을 존경하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은 필자도 어찌 존경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시인의 올곧은 국가관을 인정해 외교통상부에서는 국민훈장을 수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갖가지 훼방꾼들이 등장해 칭찬보다 왜곡된 비평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또 소위 민족주의 성향의 문인들마저 이 시인에게 접근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았으면서 중대한 발언을 할 때에는 슬그머니 내빼는가 하면 술집에 외상값 떼먹듯이 잊어버리곤 했다. 그럴 때도 이 시인은 껄껄 웃고 말았다.
이 시인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은 그를 ‘성빈’으로 맞이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도 소정을 극진히 대했다. 전인대 상무위원은 중국의 서열상 100위에 포함되는 인물이다. 이외에 연변대 총장과 부총장, 조선족 신문출판부 출판국장, 연변조선족 자치주위원회 상무위원, 조선족인민정부 부서기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인의 문인으로서의 청렴과 순수, 중국과의 교류 활동, 조선족을 위한 숱한 장학활동 등을 높이 평가해 시인이 책을 쓸 때마다 축사를 전송해주기도 했다.
이 시인이 중국에 방문할 때마다 성빈으로 맞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공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기 때문이다. 조선족 작가들이 문집을 출판할 때마다 가산을 털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심지어 필자와 같은 한족 출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그 공로로 연변작가협회 10대 사건 중 이상규 시인의 비조선족 중국인 장학금 수여식이 선정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인이 중국인들에게 장학금을 준 역사는 5천 년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장학제도 자체가 없기에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중국인들끼리도 장학금을 주고 받는 일이 중국 내부에서는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이 중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격(國格)상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학금 수여를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조선족 자치주는 물론 중국 신문 등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이런 점에서 아마 소정 이상규 시인의 장학금 수여는 한중 교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이상규 시인과의 인연은 경북대 재학시절 장학금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정작 그를 자세히 알게 된 것은 중국에 갔을 때였다. 필자의 부친은 장학금을 수여한 분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중국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이 아닌 중국 인명사전에 이상규 시인이 등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인을 제외한 인물이 여간해서는 등재될 수 없는 인명사전으로 유력인물들만 올려진 사전이다.
필자는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 이상규 시인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출간뿐만 아니라 이상규 시인의 삶과 작품을 두루 연구해 경북대학교에서 연구논문을 쓰기도 했다.
반면 중국의 하북대학은 이상규 시인의 수필집과 시전집 등 두 권의 책을 출판해주기도 했다. 사실 하북대학에서도 이상규 시인이 중국에서 얼마나 위대한 시인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필자가 소개하자 깜짝 놀라 출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소정 이상규 시인을 중심으로 쓰되 이상규 시인이 어떻게 해서 중국과 인연을 맺었는지에서부터 그의 작품 연구에 이르기까지 긴 문학 여정을 그려 넣었다. 이상규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국량과 안목, 세계사적 한국과 중국에서의 역할과 위치, 세계관 등 그의 문학의 세계는 너무 넓고 깊어서 이 책 한권으로는 전체를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쓸 수 있도록 승낙해주신 이상규 시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한국 문인들과 한국인, 나아가 중국 문인들과 중국인들도 이상규 시인의 문학과 철학, 사상에서 삶의 자양분을 얻기를 기대하며 서론을 마친다.
량짜오 씀


목차


들어가며_5

이상규의 한·중 문화 교류사
1. 1992-2002년: 고민과 희망 _ 23
2. 2002-2012年: 견지와 태연 _ 41
3. 2013년 이후 : 동경과 꿈 _ 52
詩文合一 : 시와 문의 융합
1. ‘詩文상호텍스트성’ 개념의 정리 _ 58
1) 철리(哲理)와 시의(詩意)의 공존
_이상규의 의상(意象)에 대한 선택과 구성 _ 63
2) 산문을 위하여 비상의 날개를 달아주다
_ 이상규의 연상(聯想)과 상상(想像)에 대한 동원 _ 71
3) 동(動)과 정(靜)의 결합(結合), 성(聲)과 색(色)의 구비(具備)
_ 이상규의 의경(意境)에 대한 과장과 구성 _ 81

2. 역사와 현실
1) ‘역사재부(歷史財富)’를 어찌 순순히 양보하겠는가? _ 91
2) 전통 역시 비판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문화권’에 대한
추소(追溯)와 반성 _ 97
3) ‘나눔의 철학’의 실천-이상규의 사료에 대한 중시와 보호 _ 110

3 모순과 조화
1). “동물 서사” 배후의 이상적인 인격 기탁 및 인도주의 정감_ 121
2) 이상규의 교육열 배후의 냉정함(冷思考) _ 133
3) 교육의 ‘밑받침(底座)’을 공고히 하다
_ 이상규의 직업도덕관 _ 143

4. 기행과 철학적 사고
1) 해외 여행 체험과 국민성 의식 반성의 생성 _ 154
2) 연변으로의 여행과 계몽자 신분의 도치 _ 162
3) 현실 도피의 환병지계(?兵之計)
_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다. _ 169
이상규의 기업 경영윤리
1. 한국 기업 경영윤리 발전의 배경 _ 187
2. 당대 한국 경영윤리의 발전 맥락
1)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에 한국 사회의 전통 윤리 사상_ 190
2) 20세기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상품경제의 회복 발전 및
경영윤리의 첫 걸음 _ 192
3) 20세기 70년대: 주체의식 각성(覺醒)과 새마을 운동의 융합 _ 196
4) 20세기 80년대 이후: 소외문제 및 ‘나를 위해’ 사상 _ 200

3. 이상규 경영윤리사상의 특질
1) 신용의 경영 및 타인의 경애함 _ 209
2) 인본(人本) 사상과 수정출기(守正出奇) 관례를 지키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승리한다. _ 211
3) 자립(自立) 정신 및 단결 협조 _ 213
4) 근검절약 및 낭비를 거부함 _ 216
5) 이타(利他) 사상 및 사회봉사 _ 218
6) 가국정절(家國情節) 및 기업발전 _ 221

原文 ???人李?圭?究 _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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