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일 연예계와 운동계 스포츠 스타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청소년 시절에 일어난 학교폭력의 상처에 대해 뒤늦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피해 호소가 터져 나오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더 이상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 사안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입장에서 그들이 겪는 실상과 실질적인 대응 방식을 반영한 마땅한 지침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본 『아빠가 되어줄게』는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아버지인 저자가 학교폭력 피해 경험과 가족의 상처 치유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으로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에 부응하며 높아진 학교폭력에 대해 관심을 사회적 문제로 환기할 수 있는 사례집으로 손색이 없다.
기존에 출간된 학교폭력과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변호사가 학교폭력예방 법령이나 사안처리에 관한 절차적 지식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저술했거나 아니면 장학사나 교사 등 일선의 선생님들이 학교폭력 사례를 풀어쓴 것으로 제 3자가 조언해주는 형식이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아빠가 되어줄게』에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당사자 아버지가 일기 형식으로 하루하루 사건일지를 써내려 간 153일간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학교의 사안 조사부터 학폭위 준비와 참석, 최종 결과를 통보 받는 과정 등 지금까지 한 번도 세상에 출간된 적 없는 날것의 학교폭력 피해학생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자녀들을 키우는 많은 학부모 독자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학교폭력에 무너져버린 가정과 피해 자녀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40대 가장의 노력이 큰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막상 내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일시적으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무엇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고 막막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변호사를 대신해 침착하고 이성적인 논리로 학폭위 심의위원들을 설득하거나 진정성 있는 호소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학교 선생님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교육지청 장학사의 소극적인 관료주의와 안일한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저자의 냉철하며 집요하고 포기를 모르는 활약 앞에 저도 모르게 감탄의 박수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에서 변호사와의 상담부터 각 부처(교육청, 교육부, 검찰청, 경찰청)에 민원을 넣는 방법, 학교에서 학폭위에 올린 보고서와 가해학생들의 진술서 등의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행정 정보공개 제도 활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지만, 학교폭력 피해 가족들이 학교폭력 사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정보들에 해당한다. 게다가 책 곳곳에는 각 담당자들과의 통화 녹취록을 기반으로 학생부장-아버지, 장학사-아버지, 경찰 수사관-아버지, 교육부 담당 사무관-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들이 현장감 있게 재현되면서 독자들이 당시의 상황에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한다.
2020년,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되면서 기존에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학교폭력 사안 처리가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위임된다. 따라서 『아빠가 되어줄게』는 2020년부터 바뀐 학교폭력예방법과 학폭위의 실효성을 검증해볼 수 있는 실례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책에는 저자가 학교폭력 사안처리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현 학교폭력 대응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또한 반성하지 않는 가해학생과 부모의 뻔뻔한 태도, 교육당국의 기계적 중립 등 실제 피해학생과 가족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적인 한계와 예기치 못한 상처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따른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일선 담당자와 교사들에게도 경청하여 참조할 만한 학교폭력 대응 방향을 제시해 준다.
현 우리 사회의 제도권 내에서 과연 학교폭력에 대한 응당의 정의구현은 가능할까? 『아빠가 되어줄게』는 독자들에게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인식을 재고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몇 가지 담론을 던진다. 일단 저자는 가해자의 인권을 명분으로 가해학생을 용서하고 선처하기에 앞서 학교폭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기반으로 한 피해학생의 보호와 구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벌보다는 교화에 초점을 맞추는 현 학폭위의 경미한 선도조치와 소년법의 보호처분 앞에서 피해학생과 가족이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온정주의와 엄벌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피해학생 가족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슬기롭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
학교폭력 피해 당사자인 아들과 가족들이 받은 고통만큼 가해학생과 그 가족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다짐하는 아버지의 뜨거운 분노와 외침에 이제 사회가 답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