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라는 사별을 겪고 나서
눈물을 이겨낸 방법과 과정에 대한 뜨거운 기록들
사별과 이별, 상실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러니 어떤 불행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 김삼환 시인은 말한다. 이 책은 먼저 아팠던 시인이 앞으로 아플 수도 있는 모든 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진실의 일기다. 그 팔에는 상처와 멍이 가득하다. 상처에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를테면 진실과 사랑, 영원 같은 것들이다.
남편, 아버지, 가장으로서 모범적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은 아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한차를 타고 함께 여행 가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를 남편은 여행복 차림 그대로 배웅한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나서 남편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가, 한 번도 가까이한 적 없던 낯선 나라로 훌쩍 떠난다. 살아생전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함께했으면 좋겠다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은행에서 오래 근무했고 외환은행 지점장을 지낸 후 은퇴한 저자는 1991년 한국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글을 써온 시인이기도 하다. 한 직장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성실한 사회인이자 중앙시조대상과 한국시조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문학적 재능 또한 뛰어나다.
이 책은 그가 아내와 사별 후 걷고, 떠났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눈물을 이겨낸 방법을 뜨겁게 기록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막도시 누쿠스로 떠난 저자는 코이카KOICA 국제봉사단으로서 카라칼파크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을 통해 인생의 꿈을 노래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청춘들을 통해 살아갈 힘과 활력을 얻는다.
먼저 아팠던 시인이
앞으로 아플 수도 있는 모든 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진실의 일기
1장 <나는 떠났다>에서는 아내와 사별한 후 무작정 길을 걸으며 사무치는 아픔을 잊어보려던 저자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 낯선 이국의 땅에서 적응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동해안 해파랑길을 비롯한 많은 길을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걷는다.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해외봉사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함께 하자고 말한, 그립고 그리운 아내의 꿈이 담긴 일이었다.
마침내 그는 단 한 번도 그 땅에 닿으리라 생각해본 적 없는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다. 생소하고 낯선 사막의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는 한국에서 누렸던 많은 편리함을 내려놓아야 했다. 우즈벡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두운 밤중에 길을 걸을 때는 곳곳에 패인 맨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도.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 마른 먼지를 피하는 방법도 익혀야 했다. 밤에는 벽과 대화하는 시간이 점차 길어질 만큼 고독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어느 순간 벽의 말을 받아 적으며 그리움을 한몸처럼 끌어안고 사는 방법도 알게 된다.
2장 <나는 그리워했다>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향한 저물지 않는 사랑이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사별한 아내가 있는 곳을 ‘북극성’으로 표현한다. 맑은 가을날 꽃과 바람과 가을 햇볕이 서로 어우러진 장면 몇 장을 사진 찍어 북극성으로 보내는 편지에 동봉한다고 말한다. 바람의 주머니에 편지를 넣어 북극성으로 보낸다는 그의 애절한 마음은 생사를 뛰어넘는 사랑의 영속성을 보여준다.
남편은 아내의 치아 세 개를 수습한 후 3일 지나면 어딘가에 묻자고 결심했으나 3일이 지났을 때 묻지 못한다. 49일이 지나도, 어느덧 1주기에 이르러도 그의 상의 안주머니에는 여전히 아내의 치아 세 개가 있었다. 우즈벡으로의 출국을 이틀 앞두고서야 그동안 한 몸이 되어 지내던 치아 세 개를 마침내 아내와 자신이 모두 좋아하던 특별한 장소에 묻고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저자는 노래를 정말 잘하던 아내, 어르신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 즐거운 웃음을 선물하던 아내, 타클라마칸사막으로 여행 갔을 때 얇고 흰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사막을 뛰어다니며 좋아하던 아내를 떠올린다. 낯선 이국의 밤, 환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를 서성이며 공허한 마음을 다잡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북극성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삶과 죽음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무늬를 짜며
다시 태어난다”
3장 <나는 걸었다>에서는 무너진 마음을 끌어안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갖가지 풍경들로 가득한 길을 걸으며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 나아가 세상에 관한 깊은 사유에 이르는 저자의 모습은 삶이 지닌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누쿠스의 도슬릭 강변을 산책하며 누군가의 설움에 겨운 눈물로 인해 도슬릭 강의 높이가 한 뼘쯤 높아졌다는 시인만의 감수성과 사유가 돋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누쿠스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과 무늬를 받아들이는 한편, 아내와 함께했던 오지 여행의 추억들을 풀어놓는다. 고산병을 앓았지만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은 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눈 앞에 펼쳐진 차마고도의 장엄한 풍경 앞에서 넋을 잃었던 일 등 우즈벡 현지의 생활뿐만 아니라 과거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지난 여행의 기억들을 전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4장 <나는 가르치고 배웠다>는 저자가 누쿠스의 카라칼파크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슬픔과 그리움을 녹이는 모습을 담아냈다. 실크로드의 중심에서 섭씨 45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와 영하의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시간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빛이 완연해질 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기습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며 마음에 평온과 함께 아픔이 아무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수십 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꿨던 자신처럼 희망을 품은 눈망울로 코리안드림을 꾸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청춘들을 바라보며 다시, 가슴이 뛴다. 겉으로는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 있지만 아내를 떠나보낸 그 날 이후 겨우 숨만 쉬던 일상에 다시 훈김이 새어 나오고 숨결의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말에 생기가 돌고 행동에 에너지가 솟구치는 걸 느낀다. 그런 한편, 낯선 해외에서도 밤이면 벽이 말을 걸어오고 북극성으로 떠난 아내 생각에 가슴이 저미지만 아픔을 드러내놓고 목 놓아 울지 않는 성숙하고 의연한 자세가 심금을 울린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이라는 사별을 겪고 나서 저자는 걷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영원히 출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에서 마침내 빛의 세상으로 걸어나온다. 앞으로 주어진 삶은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숙고하겠다는 저자의 담담한 결심이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