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보던 일본, 가까이서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면서
어느덧 묵직한 한 덩어리로 자리 잡았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 말이 내 인생에 그대로 적용될 줄은 몰랐다. 정서적 간격만큼이나 바다 건너 먼 나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그곳이 내 생활공간이 될 줄이야.
국경을 넘나드는 정서의 간격은 크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정서가 굳어져 차이를 벌린다. 역사적인 갈등 관계가 있었다는 보이지 않는 거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가치관을 고정시킨다. 어차피 물리적 거리가 방어벽이 되기에 감정 조절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일본 유학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일본 유학이 결정되자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정치적·역사적으로 은미하게 퍼져있는 보이지 않는 간격을 몸소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에서였다. 아이들과 함께할 이국에서의 유학 생활이기에 부담감은 더했다.
일본에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 즉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유학 생활 동안 스치고 지나간 인연도 있었고, 끊임없이 이어진 인연도 있었다. 내 마음을 괴롭힌 인연도 있었고 생면부지의 고마운 인연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었고, 의도치 않은 결과도 있었다. 그 인연들을 거치면서 그간 굳어져 있던 내 가치관은 휘청거리기도 했고 방향 전환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점점 겸손해져 갔다.
멀리서 바라보던 일본은 가까이서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만져 보고, 느껴 보면서 어느덧 묵직한 한 덩어리로 자리 잡았다. 내 가슴에 슬며시 끼어들 수 있도록 빈틈을 허용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