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삶과 심리학의 진로구성주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결단을 내린 후 때로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을 가지기도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완벽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자 노력한다. 삶의 행로를 바꾸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성공보다 우선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며 자기 나름의 철학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철학자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시대에 대한 통찰에 바탕을 둔 학문이다. 철학자의 삶에 대한 성찰과 시대에 대한 통찰은 다름 아닌 저마다 진로 고민에서 시작되었고 발전했다. 그래서 철학자의 개념과 학설은 저마다 독특할 수밖에 없다. 소위 철학자만 철학을 하는 능력과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진로문제를 삶에 대한 성찰과 시대에 대한 통찰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모두가 철학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직업심리학자이며 제3세대 진로구성주의 상담이론을 주도하고 있는 마크 사비카스Mark Savickas는 진로에서 일의 유연성과 조직의 유동화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 자기 개념을 유지해나가면서도 직업변화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환경변화에 맞춰 적응해 나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혹은 성숙시켜 나가면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관리하고, 급변하는 직업환경을 조정해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나의 진로결정
동양과 서양, 고대에서 현대까지 시대를 대표했던 철학자들의 진로 유형은 다양하다. 철학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기 위해 생업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장자), 생업을 넘어 전문직마저 포기한 사람도 있고(소크라테스, 니체), 처음에는 철학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기 위해 생업이든 전문직도 포기했지만 나중에는 전문직을 위해 철학하는 일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데카르트), 철학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기 위해 최소한의 생업에만 종사하고 전문직의 기회를 포기한 사람도 있고(스피노자), 철학하는 일이 생업도 되고, 전문직도 되고, 더욱이 천직까지 되는 사람도 있고(붇다, 공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천직으로서 철학하는 일에 이르기 위해 생업에서부터 전문직을 거쳐 온 사람(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의 다양한 철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무엇을 생업이나 전문직이나 천직으로 삼든 그들의 진로 내러티브에는 생애의 원초적 경험에서 비롯된 집념과 그들의 철학이 핵심 주제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비카스의 진로구성주의와 이들 철학자들의 진로 내러티브의 연결고리가 여기에 있다. 사비카스는 다른 직업심리학자나 상담심리학자과 달리 바로 개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해가면서 자신의 삶의 주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12명의 철학자들의 진로 내러티브와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치 자신이 ‘드라마의 작가’처럼 각자의 삶의 ‘진로 내러티브와 철학’을 새롭게 구성하고 싶은 목표를 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자신의 진로 내러티브와 철학 구성하기’는 5가지로 구성된다. 1. 집념 찾기(유년 시절의 강렬했던 기억들), 2. 롤 모델의 특징들을 통해 자아이상 찾기(미해결된 혹은 과잉 고착된 욕구의 이상적 해결모델), 3. 좋아하는 과목, 매체(잡지, tv 논픽션 프로그램,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직업적 흥미, 정체성 찾기, 4. 좋아하는 스토리를 통해 내러티브 정체성 찾기(자신의 생애와 진로와 맞아떨어지는 스토리 찾기), 5. 좌우명 혹은 철학 정립하기(자신이 찾으려는 의미나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정리). 이러한 항목의 진솔한 정리를 통해 자신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작성하여, 자신의 진로 서사적 정체성과 철학을 구성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독서의 의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