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그렇다. 쓰고자 달려드는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 떠나지 않으면 평생 직장으로 이만한 게 없다. 퇴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못 쓴다고 눈치를 주지도 않고 드문드문 쓰는지 마는지 게으름을 피워도 구박하지 않는다. 많이 썼다고 칭찬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끄적거려도 그냥 기다리고 지켜볼 뿐이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터를 내어주는 땅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싶을 때까지 업으로 삼으면 그뿐이다.
그러고 보면 시를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정년이 없어 참 좋은 직장이다. 가슴이 뛰는 순간까지, 그 일을 즐기며 살 수 있으니 참 괜찮은 일이다. 손가락 움직일 때까지, 아니 마지막 정신이 남아있을 때까지 쓰는 일을 놓지 않으면 되니 참 고마운 벗이다.
- 서문 중에서
작가 박혜선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멈추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모범으로 그들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글을 사랑하고 쓰는 것이 좋은 평범한 사람들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작가가 되어 가는 과정 또한 여타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갖게 되는 과정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결국 글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 언니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면서 시의 맛과 의미를 알았던 이묘신 시인이나, 시골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지내면서 시인이 된 송명원 시인이나, 간호사의 바쁜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려 했던 한상순 시인이나,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그 흔적을 남기고 싶은 정진아 시인.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 그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 몸이 불편한 어머니,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오빠 등의 결핍사유 속에서도 배움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것이 날개가 된 문영숙 작가, 한없이 부지런함으로 손에 땀띠가 날 정도로 글을 쓰는 이금이 작가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을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이웃의 누군가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그리고 풀리지 않는 삶의 모습을 꾸준히 글로 써왔으며, 글쓰는 일을 결코 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 그런 작가의 모습을 『그리고 행복한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