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아이러니, 웃음
『머피』는 주인공 머피가 어둠 속 축사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알몸인 머피의 몸을 목도리 일곱 장이 정자세로 붙들어 매고 있다. 머피는 자신과 세상이 한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종의 명상을 통해 “내면의 삶”(10면) 즉 “자기애가 가능한 작은 세계”(13면)로 진입하면서 정신과 물질(신체)을 철저히 구분하려 하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근거한) 머피의 사고는 소설 전반에 걸쳐 행동으로 실행되며, 자기 자신의 정신에 대한 그의 집요한 진지함은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오가며 종종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덕분에 독자는 의외의 지점에서 허를 찔려 가며 웃게 된다. 애인 실리아와 정신적 지주 니어리, 또 다른 애인 카우니핸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을 뒤쫓는 이들을 멀리한 채 시인의 안내에 따라 또한 별점에 입각해 요양원에 다다른 머피가, 이제 자신 아닌 환자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며 일하다 맞이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자기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머피를 뒤따르다 보면 그의 남다른 선택이 납득되는 순간이 찾아든다. 이를테면 애인 실리아의 채근에 못 이겨 고용길에 오른 “머피가 찾는 한 가지는 (…) 그가 한순간도 수색하기를 포기한 적 없는 대상, 곧 자기 자신의 최상의 모습”(58면)인데, 이는 실은 누구든 수색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할 모습일 수 있다. 머피는 “딱히 하는 일이 없”음에도 “제 앞날에 중대한 일들이 펼쳐지리라 믿”고 있고, “지난 이야기라고 찢어 버리는 일이 없”다(20면). 백지 상태의 현재에서 미래를 믿고 과거를 기억하는 그는 계속 나아간다. 일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정신을 넘어 다른 이들의 정신에 매혹되기 시작한다. 광기라고 알려진 약자들의 정신을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딜레마와 아이러니 사이에 산재한 웃음과 함께 전개되는 “머피의 정신”(85면)을 따라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등장인물
머피 - 주인공.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마땅한 직업 없이 지내다가 요양원(매그댈런 멘털 머시시트)에서 일하게 된다.
실리아 켈리 - 머피의 애인. 부모를 여의고 거리에서 일하다가 머피를 만났다.
윌러비 켈리 - 실리아의 할아버지. 종종 연을 날린다.
니어리 - 머피의 정신적 스승. 아내를 떠났고, 카우니핸 양을 흠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