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격월간 『에세이스트』에 수필로, 2016년에 계간 『인간과문학』에 평론으로 등단했으며 2013년 첫 수필집으로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2017년 『지중해의 여름』(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2019년 꽃 에세이집 『꽃을 품다』(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를 선보였던 한복용 수필가가 세 번째 수필집 『청춘아, 아프지 말자』를 출간했다.
10년 전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수필집을 냈다. 한복용 수필가는 지금도 아픈 청춘들에게 “아프지 말자”고 호소한다. 자신은 공부도 부족하고 문재(文才)도 없고 살아오면서 많이 아팠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부족함과 아픔을 딛고 살아낸 자신의 삶을 이번 수필집에 진솔하게 드러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것, 청춘들에게 아프다고 포기하면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아프지 말자고 권유한다. 인생은 아프다고 주저앉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니 말이다. 그는 “아파야 할 청춘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한다.
한복용의 수필집 『청춘아, 아프지 말자』의 서문에 해당하는 「아픔이 끝날 때까지, 나는 아직 청춘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 오래 전 타개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지적한 문학의 가치란 실용적 가치의 무용성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자본 혹은 부조리한 세계에 길들여지지 않는 문학이라는 인상을 느낄 수 있다. 겸손으로 일관된 작가로서의 태도는 자신의 상처를 넘어선 융숭한 정서적 응집을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일찍이 윤오영 선생은 「수필문학 입문」이라는 글에서 소재 선택에 대해 “생활의 실감만이 참스러운 정서를 담을 수 있고 독자에게 절실한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일갈했다. 한복용의 수필집에서 생활의 실감은 분명한 하나의 틀로 자리잡고 있다. 「버려진 식탁」, 「언니의 방」, 「어떤 풍경」, 「청춘아, 아프지 말자」 등의 작품이 그러한 예이며, 더욱이 소외되고 약화된 대상들에 그 시선이 오래 머문다는 점에서 강한 휴머니즘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또한 손바닥만 한 크기, 매우 짧은 산문을 이르는 장편(掌篇) 수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개 인생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리며 유머, 풍자, 기지를 담고 있는데 「각설탕」, 「모성」, 「생명」, 「살구」와 같은 작품들이 장편 수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성(母性)」이라는 작품에서 목숨을 놓으면서도 새끼를 살리려 몸을 떠는 파리에 대한 형상화는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문체인 설(說)을 연상케 하였다. 고려 때 문인 이규보의 「슬견설(?犬說)」이나 「경설(鏡說)」을 읽어보면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복용의 다채로운 수필의 무늬는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수필문학의 다양성에 대한 제시가 작품으로 구체화되어갈 때 수필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다.
한복용 수필집의 한 쪽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탐구와 오마주 형식의 글이다. 연극인 박정자를 비롯하여 오르한 파묵, 알베르토 자코메티,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등 자신의 자리에서 죽음을 불사하는 자세로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뜨거움을 넘어서 예술혼을 자기화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또 「자코메티의 시선과 상처」에서 한복용은 자코메티의 창작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방식”이란 사실 죽음의 형식과 가깝다. 자코메티의 방법론이 본질을 찾기 위한 작가 나름의 모색법이라는 것 역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고자 한다는 점에서 초월의 성격을 띤다.
한복용의 이러한 예술혼에 대한 오마주는 투사라는 형식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반영될 것이 암시되어 있다. 사실 이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는 ‘한 자존적 인간의 절체절명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한복용 수필가는 끝까지 글쓰기에 몰입할 것이다. 글쓰기가 하나의 치장이 아니라 생의 절대조건이기 때문이다. 쓰지 않으면 죽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수필집 『유리문 안에서』처럼 한복용의 화원 안에서의 글쓰기는 죽음까지 껴안으며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