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그 한 단어!
나를 더 사랑하고 아끼게 해준 인생의 키워드를 찾아서
‘Love My Life’, 에디션L 시리즈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중요한 구심점이 있다. 어떤 이는 바느질을 하면서 인생은 긴 달리기임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도배 일을 하면서 세상으로 난 다양한 창들을 내다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아픈 몸을 토닥이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에디션L 시리즈는 바삐 살다 잠시 여기서, 각자가 골똘하게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살면서 생기는 응어리들을 풀고 싶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저는 바느질을 하며
인생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큼직하고 시원스런 계획을 세우기보다 하루하루를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것에 더 열중하지요. 모든 일들을 좀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해내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껴안으며 살고 있습니다. 엄마가 하던 것처럼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닦고, 엄마가 하던 것처럼 구멍 난 양말을 기우고 옷을 고쳐 입으면서요. 새것을 덥석 사지 못하고 오래된 것을 닦고 고쳐 쓰고, 매끈하고 세련된 것보다 못나고 투박한 것에 마음을 뺏기는 것도 그렇지요. 생각해보니 저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처럼 궁상맞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살던 것처럼 살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바로 그 ‘한 단어’가 있나요?
2020년 가을 궁리출판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에디션L 시리즈’는 오랜 시간 한 가지 주제를 골똘히 생각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록이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책은 천승희 작가의 『나의 바느질 수다』. 그는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해, 지난 40년 동안 자신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로 함께 지내오고 있다. 어른들한테 잘한다고 칭찬받으면서 바느질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학교 다니고 직장생활 하면서도 꾸준히 바느질을 했다. 방학 때 만들기 숙제도 별 고민 없이 바느질을 해서 가지고 갔고,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친구들 줄 가방과 이불 등의 선물을 준비하기도 했다.
바느질이 더 각별한 친구가 된 것은 아이를 낳게 된 후부터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느질할 시간이 생겼고, 육아를 하느라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바느질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바느질을 하면서 자연스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어요. 물건들을 재활용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존재감을 주고 싶거든요“
저자는 바느질해 물건을 만들어 쓰다 보니, 그것들이 낡아도 쉽게 버리질 않는 편이다. 밖에서 사온 물건들도 누군가 애써 만든 것들이며, 가난한 나라 소녀들이 밤잠 못 자고 재봉틀을 돌리고 실밥을 정리하는 모습이 떠올리기도 한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해내는 옷에도 사람 손길이 꽤 들어가며.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환경이 오염될까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 정성껏 만든 물건들이 오랫동안 잘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건을 오래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쑥쑥 크면 안 입는 옷들을 뜯어서 다른 걸 만들고, 아이들 원피스가 작아지면 밑단에 다른 천을 대 길이를 늘려서 더 입기도 한다. 천을 네모나게 잘라 다른 것들을 만들기도 하며, 헌 여름 옷을 잘라 머리끈도 만들고, 보자기도 만들어 쓴다. 만약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리게 되면 단추와 지퍼를 떼내고 천들을 오려내 상자에 담는다. 이 천들은 나중에 다른 물건들을 만들게 될 소중한 재료들로 변신한다.
“여럿이 함께하는 바느질도 재미가 꽤 쏠쏠하답니다.
언젠가 모두 만나 바느질하며 수다 떠는 날을 고대할게요“
저자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여는 장터, 그리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함께 바느질을 하는 시간들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먼저 처음 장터를 열 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펠트 천에 ‘모두장터’ 글자를 칼로 파서 가랜드도 만들고, 알록달록 여러 색깔로 만들어서 장터가 열리는 놀이터 곳곳에 걸어두었다.
가게에서 맞춘 현수막 외에도 직접 손으로 하나 더 만들어보려고 광목천에다 자투리 천들로 ‘모두 장터’ 네 글자를 아플리케 해서 붙이고 ‘우리 동네 생기발랄 벼룩시장’이라는 글씨를 수를 놓았다.
장터와 책모임에서 만났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모여서 함께 바느질을 하기도 했는데, 컵받침도 만들고, 브로치에 자수도 놓아보며, 동네 노인들께 나누어드릴 천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서도 모인 사람들은 쉬지 않고 사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또 다른 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 바느질 수다에는 정겨운 인생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언젠가 자신처럼 바느질을 좋아하고 만드는 일을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는 ‘바느질 기행’이라는 꿈도 꾸어본다. 이 책은 그 여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