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떠났거나 멀리 있는 대상을 내게 머물게 하는 글쓰기
떠남과 머묾의 철학자 배채진의 네 번째 사색
어디론가 떠나는 행위와 어딘가에 머무는 행위는 모두 사색을 얻기 위해서이다. 떠남의 사색은 새로운 만남과 다시 떠남을 반복한다. 길 위에서 마주친 만물에 대한 철학자의 시선은 현존하는 모습에 충만한 사색을 담았는데, 곳곳에 보이는 아름답고 예리한 문장들이 그 증표다.
“개펄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침 술 마시고 취한 부랑인의 얼굴처럼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사람이나 바다나 하늘이나 개펄이나 흥분하면 저렇게 붉어지나 보다.”(해와 드레스 - 남해 3)
머묾의 사색은 책과 예술, 과거의 자신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은 철학자는 작가와 예술가의 삶을 작품 속에 영롱하게 투영한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철학자의 음악에 대한 사색도 흥미롭다. 과거의 자신을 사색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머묾을 의미한다. 철학자는 길뫼재를 통해 과거와 공존하며 머무는 동시에 다시 현재의 집으로 떠남을 받아들인다. 결국 떠남과 머묾은 우리의 존재를 사색하게 만드는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