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은 오랜 세월 중화사상에 입각한 세계관 속에서 살아온 중국과 산업혁명에 성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에 나선 영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이 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이 바뀌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막상 이 전쟁의 내막을 파헤친 책은 거의 없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강의를 진행하면서 아편전쟁이 중국 문명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볼만한 읽을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편전쟁의 내막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선택하고 정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되어 일어난 전쟁의 성격상 전쟁의 전후 사정을 엮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 책은 중국 문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학자가 아닌 ‘이야기꾼’으로서 아편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사정과 난징조약으로 일단락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엮은 ‘이야기’이다.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서구의 학자들은 아편전쟁의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전쟁으로 중국이 세계 무역질서에 편입됨으로써 16세기 이래 진행된 세계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이 전쟁이 동서 문명 사이의 오해와 경제적 탐욕 때문에 벌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덜 주목한다. 이 책은 아편전쟁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닌 무역, 정치, 외교술, 국제 질서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일어났음에 주목하여, 이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여 전쟁에 이르게 되었으며 전쟁의 결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아편전쟁에 관한 논의는 이분법의 스펙트럼을 가진다. 문명화된 영국과 덜 문명화된 중국, 해양국가와 대륙국가, 개방과 폐쇄, 군사력의 우세와 열세 등이 대표적 이분법이다. 이런 구분은 원래 유럽인이 시작했지만, 중국도 중국은 피해자이고 유럽은 제국주의 침략자였으며, 중국 상인은 규범에 따라 무역을 진행한 반면 유럽 상인은 이익을 노려 밀수를 일삼았다는 시각에서 이분법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런 이분법에 맞추어 아편전쟁을 재단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료들과 여러 연구들을 토대로 하여 전쟁이 어느 시점에,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자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무엇보다도 딱딱한 서술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저자는 재미있게, 쉽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180년 전의 전쟁, 오늘과 맞닿아 있다!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열어젖힌 영국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도 이에 편승해서 이익을 거두었다. 중국은 왕조국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변했고, 서구 지식인들은 서구 문명의 중국 역사에 대한 기여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중국 사회에서 서구는 침략자로 각인되어 강렬한 외국인 혐오증을 배태했다. 21세기 중국에서 아편전쟁은 객관적인 역사 탐구 주제가 아니다. 아편전쟁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증폭시켜 중국인을 거대한 희생자 집단으로 만들어 결속을 강화하고 공산당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보다 180년 후의 세상을 사는 세대가 그 아픔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 아편전쟁의 특수한 단면이다.
2020년 현재 중국을 둘러싼 일이 여럿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갈등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며, 2019년 여름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는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의 무역갈등 상황은 180년 전 아편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센 놈이 상대에게 ‘우리 식으로 해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아편전쟁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출발까지를 100년의 치욕기로 생각하며, 현재의 ‘대국굴기大國?起’를 그 설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목표는 왕년의 가해자가 아니라 만만한 주변국들로, 이들을 대상으로 제한적 천하를 재구성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다. 저자는 이러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으로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아편전쟁은 문명의 충돌이며, 오랜 기간에 걸친 동서양의 접촉에서 한 단계를 접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므로 중국 사회와 문화의 이해, 세계주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아편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