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등단한 수필가 최종崔鐘 씨가 그동안 여러 문예지와 동인지에 발표했던 60편의 글들을 모아 두 번째 수필집 『온종일 비』를 펴냈다.
노년의 일상에서 느끼는 소회를 유머러스하게, 또는 너그러운 시선으로, 또는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내심 그럴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관조로 읽히는 최종 씨의 글들에서 묵향 같은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나의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뒤로 되돌려진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막막한 숲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의식의 저편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그치지 않았다.
너무 절절하면 말이 막혀 조사 없이 단어만 튀어나온다. 가장 짧은 문장으로 필요한 말을 보내는 것, 옛날 전보를 쳤던 기억이 난다. 너에게 전보를 쳤다. 가슴을 건드리는 것들을 위하여, 폭우를 위하여, 무던한 친구들을 위하여….
군더더기를 빼내고 가능한 토씨까지 날려 보내면 기름기 없는 뼈대만 남아 지금을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쓸 것이다. 생각하는 것마저 단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어서 코로나가 끝나면 우리 만나 이 계절 가을 한 병으로 목을 축이고 싶다. 날아가 버린 어휘들은 다시 찾아올 터이다.
― 머리말 「너에게 전보를 쳤다」 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호의가 없으면 웃음이 나올 리 없고, 무표정 무관심한 얼굴을 향해 유머가 있을 자리는 없다. 유머 없는 세상은 지루하고 삭막하다. 인간관계도 윤활유를 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녹슬거나 마모되어 망가지고 말 터이다.
― 본문 「모기 여기 왔어요」 중에서
석양의 운동장에 비가 내리면 달리는 사람도 없는 트랙은 하얀 선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 쾌적함이 왠지 쓸쓸함을 몰고 온다. 아무도 빗속에서 트랙을 돌지 않지만 거기 환호와 탄성, 석패惜敗와 한숨이 메아리치고 있다. 비에 젖어 유리창처럼 번쩍이는 주황색 트랙이 꿈속에서 보았던 전장戰場을 기억나게 한다. 지난 시절 허덕이며 숨 가쁘게 달려온 전장, 지금은 소리 없이 이슬비가 내린다.
― 본문 「온종일 비가 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