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일제 강점기지만 일본글을 알면서부터 책을 알게 되었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책을 갖고 싶어졌다. 만화책부터 동화책들을 사모아 놓고, 읽고 싶은 책을 이것저것 읽었다. 그러면서 책을 한없이 소유하고 싶었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것이 바라는 꿈이었고 소망이었다. 학교 교과서부터 대본점에서 빌려보는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학을 하느라 잡지사 견습기자가 되어 책을 만드는데 교정을 보고 제작을 배우고 책을 읽는 것을 권하는 영업도 하고 한때는 고서점 점원도 하였다. 책과 더불어 시간과 세월을 보내며 살아온 것이다.
나는 책으로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다. 독일이 레클람문고를 비롯한 책을 앞세워 통일을 이뤘듯이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으로 단일 언어인 한글을 기본으로 통일을 이룩해보겠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나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출판입국(出版立國 ; 출판으로 나라를 세운다)이라는 액자와 독민제세(讀民濟世 ; 글 읽는 백성이 세상을 이끈다)라는 액자들을 걸어놓고 책과 더불어 한 평생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지금도 책의 길, 출판의 길을 걸어가며 출판과 관계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 길이 나의 소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훌륭한 출판사를 갖고 책을 만드는 것이 나의 소원이요, 귀한 우리 고전을 찾아내서 그것을 갖고 자랑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며,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담소하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 많은 책을 읽은 것 중에 내가 살아가는데 참다운 도리(道理)를 계시한 글은“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이다. 또한 출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마음 속 깊이 새겨놓은 좌표가 있다면,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백범일지』 속의 ‘나의 소원’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소원은 늘 책 속에 있다. 그 소원을 하나하나 이룩해보고 싶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 문화의 바탕이며 근원이 되는 것이 출판이다. 나는 출판의 길 책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의 소원을 이룩하고 있다. 그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고 또 말하고 써야 할 일들 중에서 남겨진 글들을 여기에 모아 보았다. 이것은 출판과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다짐의 증표이며 상징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며 사회를 정화하고 통일 국가를 이룩하여 선진국가의 문화인이 되겠다는 나의 신념과 소망이며 걸어온 길이요 걸어갈 길이다.
― 2020년 독서의 계절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