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착하고 조금 불량하고 조금 많이 꿈꾸고 더 많이 그늘졌던 그때
― 이운진 청소년시집 『셀카와 자화상』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 독립된 삶을 살아내야 하면서부터, 방심하면 도태되고 마는 치열한 현실을 버텨내야 하면서부터 그만 잊어버린 기억이 있다. 우리는 누구든 청소년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는데, 삶에 치이다보니 어느새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어른들도 분명 과거의 청소년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른 것인데, 어느새 그 시절을 다 잊어버리고 그들의 절망과 좌절, 슬픔과 희망 따위를 모른 척하고 있거나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운진 시인의 청소년시집 『셀카와 자화상』은 시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조금 착하고 조금 불량하고 조금 많이 꿈꾸고 더 많이 그늘졌던” 십대 청소년 시절의 자신을 따듯이 어루만지고, 나아가 현재 청소년들의 절망과 좌절, 슬픔과 희망을 따듯이 어루만지고 살피고 위로해주는 시집이다. 이운진 시인은 이 시집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인생에 대한 빛나는 호기심으로 큰 꿈을 꾸라고 말하면서도, 가슴속에 어떤 물결이 지나가고 어느 곳에 상처가 생겼는지 언제 슬프고 외로운지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묻혀버린 마음들이 긴 그림자가 되어 나를 뒤따라 다녔다. 십대 때보다는 인생의 모순이 훨씬 받아들이기 쉬워진 그 후로도 그림자의 무게에 걸음이 느려지곤 했다. // 이 시집의 글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래전 아무도 다독이지 않았던 내 마음들을 조용히 포옹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소녀였던 나처럼 나무를 안고 우는 이가 있다면 먼저 지나간 내 그림자에 마음을 기대어보라고 귓속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가장 애틋하게 간직한 기억들이 서툰 위로의 말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또 오래 견딜 힘을 얻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안에는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남상순 소설가는 이번 청소년시집 『셀카와 자화상』에 대해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안의 다양한 감정들을 괜찮다는 말로 눌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동생 편만 들어도, 누군가 애지중지하던 내 물건 위로 우유나 커피를 쏟아도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무조건 참아야 했다. 이제 전도되었던 ‘예’와 ‘아니오’를 바로잡을 때다.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고 혼자 걷는 하굣길의 명랑한 슬픔의 맛을 느껴보자. 그러다가 욕만 잔뜩 먹고 혼자가 되더라도 의기소침하지 말자. 혼자가 아니라면 내 안의 봄볕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이운진의 청소년시집 『셀카와 자화상』은 어른의 시각이 아닌 청소년의 눈으로 청소년의 마음으로 그들의 슬픔을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는 명랑한 슬픔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시인의 말
조금 착하고 조금 불량하고
조금 많이 꿈꾸고 더 많이 그늘졌던
나,
그때도 혼자
지금도 혼자
슬픔이 나를 돌본다.
2020년 가을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