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수 없는 일들은 생각보다 쉽게 벌어진다 ― 생존하며 공존하는 이야기
작은 시골 마을에 헛된 꿈을 꾸지 않고 성실하게 십대를 보내며 부모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을 소임으로 아는 사람들이 살았다. 헌신하고 인내하며 지킨 자신의 터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일종의 유전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러나 소설 『다정한 유전』은 이 마을에서 누군가가 떠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어느 날 이 마을이 사라지게 될 미래를 전망하며 시작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뉘며 이어진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민영과 진영은 그들의 윗세대가 물려준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대학 입시를 좌우하는 백일장에 단 한 명만이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영과 진영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의 아이들은 모두 한 편씩 글을 쓰고 그중 더 나은 작품을 뽑은 뒤, 그렇게 뽑힌 사람이 대회에 나가게 해주는 데 합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이야기들이 묘하게 연결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같은 소재로 함께 써가는 이 이야기들 속에는 남편 혹은 아버지, 이웃집 남자에게 살해당한 여자들,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여자들, 뜻밖의 사고를 당한 여자들, “슬프고 기괴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세상을 견디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상처에 파묻혀 바깥의 삶을 꿈꾸지 못하는 이 여자들의 삶은 이야기로 승화돼 다른 사람에게 읽히며 새로운 문을 여는 통로가 되어준다. 어렵게 생존하지만 달갑게 공존하는 이야기들은 새로운 문을 열고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꿈꿀 수 없을 것 같던 일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갈망하는 순간 달라지는 세계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 하나의 소재, 여러 편의 이야기
작가는 지난 몇 년간 하나의 세계관을 생각하며 짧은 소설들을 써왔다(「작가 노트」). 소설 『다정한 유전』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이러한 소설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의 토대가 되고, 새로운 연결을 이루는 과정에서 불쑥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경험을 하는 일이다. 등장인물들이 써내는 「이명」, 「황녀」, 「옹주」, 「빈집의 목소리」, 「다락」, 「사과」, 「손」…… 같은 소설에는 어렴풋이 그려내는 분명한 형상이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 사이에 “이름이 뭐였더라” “누구 이야기 같아”라는 질문을 남겨두는데, 그 답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 있던, 알고 있던 이야기들, 반복되는 이야기들로 나의 이야기이고, 내 친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소설들은 이렇게 변주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래서 이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의 이야기는 그다음의 이야기를 부르는 자생적 힘을 가졌다. 작가는 이 책 마지막에 붙인 ‘작가 노트’에서 “마지막 이야기는 없다”고 말한다. 서로의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켜낸 소녀들을 그리면서 작가 스스로 큰 위안을 얻고, 다시 한번 이야기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것이 이제 새로운 유전”이 된다. ‘다정한 유전’이 된다.
작가의 말 中에서
그러니 마지막 이야기 같은 건 없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