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을 비참한 처지에서 구해낼 것이며
그것은 나 개인의 노력과 저작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1835년 처음 집필을 시작하던 당시 이 작품은 19세기 초 여성소설에 흔한 소재였던, 귀족 부인의 목숨을 구해준 사춘기 소년과 그 부인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로 기획되었다. 비평가 클로드 시카르에 따르면, 초기에는 루소의 『누벨 엘로이즈』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가 이를 장편소설로 발전시키던 중 글쓰기를 멈추었다가 2년 후 다시 재개하면서 최초의 진부한 성격에서 탈피하여 독창적인 표현과 주제로 작품을 구성해나가며 모험소설, 교육소설, 연애소설, 전원소설, 사회소설 등으로 읽을 수 있는 독특한 소설로 탄생시키게 된다.
상드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원만치 않은 결혼 생활 이후 사랑과 결혼에 대한 성찰 끝에 집필하게 된 『모프라』는 구체제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새로운 민중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의 일화들을 씨줄로 하고, 베르나르 모프라와 에드메 모프라의 운명적 만남과 결합의 과정을 날줄로 한 이야기다. 따라서 에드메의 주도 아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베르나르가 겪는 갈등과 고난, 깨침과 변화는 완벽한 여인에게 맞는 이상적 남편이 되기 위한 성장이라는 개인적 차원과, 1789년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준비와 기여라는 사회적 차원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애원할 때 거절한 것을 힘으로 누른다고 굴복하는 것은
노예근성, 비겁한 성격에 속할 뿐이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란 베르나르는 첫눈에 반한 에드메의 생명을 구해주며 미래를 약속받지만, 에드메는 교육받지 못한 야만인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문명인 신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요구한다. 그러나 루소의 교육관에 입각한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교육을 받았음에도 베르나르가 여전히 에드메를 쟁취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둘의 결혼은 계속 유예된다. 결국 베르나르는 에드메에게 어울리는 현대의 기사가 되고자 아메리카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이라는 대의를 위해 식민지 사람들의 편에 서는 길을 택한다. 미국독립전쟁 참전은 베르나르가 아메리카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영국에 대항하여 자유와 평등의 수호자 대열에 선다는 의미와 함께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정서적 교육의 완성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그러나 성찰에 의해 그리고 거친 전쟁 경험에 의해 성숙한 지금의 나 같은 남자가 한낱 어린애처럼 여인의 변덕에 복종하는 게 조금도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 내가 말했다. “응.” 아서가 대답했다. “조금도 창피한 일이 아니지. (…) 상처받은 정숙함이 자신의 권리와 본래의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 자네는 알비온처럼 굴었군. 그러니 에드메가 필라델피아처럼 행동해도 놀라지 말아야지.” _271쪽
그러나 알비온이라는 옛 이름이 상징하는 영국이 식민 지배의 옛 영광에 연연하며 아메리카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듯 베르나르 또한 남성 우위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며 사랑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에드메는 이에 맞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모프라이고 불굴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남자의 독재를 참지 않을 거예요. 연인의 폭력은 물론이고 남편의 모욕도 마찬가지죠. 애원할 때 거절한 것을 힘으로 누른다고 굴복하는 것은 노예근성, 비겁한 성격에 속할 뿐이죠.” _198쪽
따라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로 대표되는 미국이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듯이 에드메도 평등한 관계의 수립을 위해 독립을 말하면서 베르나르와 갈등을 겪고 그의 변화를 요구해야만 했다.
“상상이건 실제건 계층과 교육이 갖는 모든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는 상황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들을 완벽하게 평등하게 대했다. 그때부터 그들이 우리와 다른 식탁에서 식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에 놀라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우리는 뭐라고 하든 내버려두었다. 상상이건 실제건 계층과 교육이 갖는 모든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는 상황이 있는 법이다. _476쪽
소설의 말미에서 계층과 교육으로 인한 모든 차별이 사라진 소공동체가 구축된다. 귀족인 베르나르와 에드메, 평민인 파시앙스와 마르카스, 사제인 오베르 신부가 완벽한 평등의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체제의 폐허 위에 평등하고 빛나는 새로운 세계, 서로 간의 사랑에 의해 상호 화합하는 신뢰의 세계를 세우려는 상드의 비전을 볼 수 있다. 상드는 여성들도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고 지성을 키움으로써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평등을 실현하며 나아가서는 평등사회의 구현에 기여할 수 있다는, 19세기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페미니스트적 비전을 제시한다. 이와 더불어 권력이 몇몇 사람의 수중에만 들어 있지 않고 관계와 선택이 자유로우며 모든 인간이 평등을 구가하는 사회, 사람들의 삶이 우주의 조화를 재현하는 사회의 이상을 제시한다.
“하늘을 보시오. 별들은 평화롭게 살고 아무것도 그 영원한 질서를 방해하지 않아요. 큰 놈들이 작은 놈들을 잡아먹지도 않고 옆에 있는 놈에게 쳐들어가는 일도 없지요.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질서가 지배하는 시절이 올 거요.” _184쪽
상드는 『모프라』에서 구체제가 시효를 다하고 대혁명의 기운이 무르익던 시대를 배경으로,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과 남녀 관계, 나아가서는 계층을 초월한 평등사회를 그려내고자 했다. 봉건시대의 습속을 유지하려는 무리들과 계몽의 빛을 받아 인권에 눈을 뜬 인물들의 갈등과 변모를 통해 가정에서의 부부 간의 평등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이상적 관계, 그리고 귀족과 평민이 격의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라는, 혁명이 약속했으나 실현하지 못한 유토피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