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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조선 영인본 CD

성서조선 영인본 CD

  • 편집부
  • |
  • 부키
  • |
  • 2003-07-04 출간
  • |
  • 1페이지
  • |
  • 153 X 224 mm
  • |
  • ISBN 9788985989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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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CD롬 형태로 제작된 『성서조선 영인본 CD』

일제 시대 민족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부르짖다 폐간 처분된 『성서조선(聖書朝鮮)』 전권(全卷)이 담긴 『성서조선 영인본 CD』(이하 『성서조선 CD』로 약칭)가 발간됐다. 창간호(1927년 7월호)부터 폐간호(1942년 3월호)까지 158권 전권이 한 장의 CD에 수록된 『성서조선 CD』는 제목 및 필자 이름으로 검색이 가능하여 책자 형태의 영인본보다 이용에 편리하다. 또 책자가 아닌 CD롬 형태의 제작 방식을 취함으로써 제작비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90,000원)에 공급할 수 있어 일반 독자들도 조금이라도 덜 부담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이번에 발간된 『성서조선 CD』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한 1927년부터 더욱 노골화된 1940년대 초반까지 15년 동안에 발간된 『성서조선』 전권이 발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수록된 만큼 일제 시대 기독교 관계 연구자는 물론이고 국어 관계 연구자, 한국사 관계 연구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초고라 할 수 있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 역사」와 같은 함석헌의 글(117편)을 비롯해 남강 이승훈의 종증손으로서 풀무학교를 세우는 등 기독교적 이상사회 건설을 지향했던 이찬갑의 글(22편), 다석 류영모의 글(10편) 등을 당시의 원문 그대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시대 민족 기독교의 증언록 『성서조선』

성서조선』은 그간 기존 교회의 제도와 교리적 모순을 비판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주창자들이 발간하던 동인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에게 사사(師事)한 김교신(金敎臣),함석헌(咸錫憲),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勳),류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 등 6명이 창간한 관계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다만 우리 염두(念頭)의 전폭(全幅)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朝鮮) 이자(二字)이고 애인(愛人)에게 보낼 최진(最珍)의 선물은 『성서(聖書)』 1권뿐이니, 양자(兩者)의 일(一)을 버리지 못하여”에서 택한 제호가 『성서조선』이고,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骨筋)을 세우며 그 혈액(血液)을 만들고자” 하는 동시에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이상 『성서조선』 1927년 7월호 「창간사」에서)고자 발간하기 시작한 만큼 『성서조선』에서는 민족적 색채가 두드러졌다.

민족 기업가이자 오산학교 설립자로서 나중에 고당 조만식이 “조선이 낳고, 조선을 위하여 울고 웃고, 조선을 위해 죽었으며, 시신(屍身)까지 민족교육을 위해 바쳤다”고 추도한 남강 이승훈이나, 복음병원을 세워 행려병자의 치료에 나섰으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라는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는 등 성공한 의사이면서도 만년에 집 한 채 없이 병원 옥상에서 지낼 정도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장기려 등 고정 독자들 가운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이다.

‘성서조선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압수.소각.폐간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국판 36쪽 안팎에 발행 부수가 300부를 넘지 못하는 수준의 잡지였음에도 『성서조선』은 발간 초기부터 일제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급기야는 1942년 3월호의 권두언 「조와(弔蛙)」가 개구리의 소생을 통해 조선 민족의 소생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관계자가 전원 검속되고, 관련 간행물이 일체 압수?소각 처분을 받는가 하면 최종적으로는 김교신?함석헌을 비롯한 관련자 18명은 1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고, 잡지에 대해서는 폐간 처분이 내려지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성서조선』 동인들은 발간 초기부터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1927년 7월 창간 당시 초대 발행인과 편집인을 일본에 있는 류석동과 정상훈으로 하고, 발행소를 도쿄의 성서조선사로 한 것도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또 1930년대 후반 이후로는 발행인이자 주필인 김교신이 자신의 일본 벗들 중에서 발행인을 내세우고, 비용은 더 들망정 제작 자체를 일본에서 하는 것을 여러 차례 고민한 것도 모두가 조선총독부의 검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성서조선』에 대한 일제의 감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기만 했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7월호가 8월이 되어서야 발간되는가 하면, 글의 중간 부분이 빈 상태로 발간된다든가 혹은 전연 엉뚱한 글이 채워져 나오는 일이 거의 매달 거듭되는 식이었다.

기독교에서 한글 표기법, 생활 풍속까지 - 당시 삶의 모습 보여 줘

『성서조선』은 또 이름 그대로 철저하게 성서적이었다. 무교회주의적 관점에서 성서 각 권을 철저히 해석하고, 성서 연구에 필요한 희랍어?성서 동물학 등의 기초 분야를 고정적으로 다룬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의 생활 에세이도 성서와 기독교를 찬양하는 간증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였다.오늘날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초고라 할 수 있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 역사」와 같은 함석헌의 글(117편)이 그렇고, 남강 이승훈의 종증손으로서 풀무학교를 세우는 등 기독교적 이상사회 건설을 지향했던 이찬갑의 글(22편), 다석 류영모의 글(10편) 등이 그렇다. 그 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병환자로 『성서조선』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문신활(11편), 문둥이에 장님이라는 이중고를 겪던 윤일심(6편) 등 『성서조선』의 필자들은 한결같이 예수와 기독교를 이야기했다.

『성서조선 영인본 CD』발간 후기

도서출판 부키에서 『김교신 전집』을 완간한 것은 지난 2002년 2월이었다. 하지만 『김교신 전집』을 최종적으로 완간한 것 같은 기분을 제대로 느낀 것은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발간과 함께이다. 그렇다고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발간 과정에서 무슨 특별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일제의 압수?소각으로 세상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성서조선』을 부활시킨 것은 김교신 선생의 후배와 제자들이다. 그들은 2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에 『성서조선』이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검찰청 창고까지 뒤졌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성서조선』 전권 2질 중 1질은 지금 독립기념관에 가 있고, 나머지 1질은 20여 년 전 영인본으로 소량 제작되어 사전 주문자들에게만 배포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CD 영인본의 편집에 참여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다룰 줄도 모르는 우리가 『성서조선 영인본 CD』의 제작과 관련 한 일이라고는 『김교신 전집』의 편집 당시 원문 복구를 위해 기증 받은 2질의 『성서조선 영인본』을 CD개발업체에 갖다 주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성서조선 영인본 CD』가 발간된 지금에야 『김교신 전집』을 완간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 김의경이라는 사람이 『향린』 30호(출처 : (http://hyanglin.org/moksun/hyanglinji/31/106.htm)에 다음과 같이 쓴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애국자 김교신 … 선생님은 그렇게 뜨겁게 예수를 믿었으나 일본인들이 아닌 우리나라 기독교들로부터 악마처럼 위험시되었고 미움을 받았습니다. 『한국 문화사 대계』안에 김선량(金善亮)이 쓴 한국 기독교사에는 선생님의 이름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을 만큼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에 제가 천안 옥천에 자리 잡고 있는 독립기념관에 기독교 사적을 전시한 기간에 들렀을 때 주기철 목사님의 항일 ‘순교 사적’과 나란히 김교신 선생님의 『성서조선』원본 한 권과 사적을 전시한 것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없었던 일이 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서조선』 안에는 기독교나 성서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황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가령 『성서조선』 자체는 일제 시대 한글 표기의 변천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교신 자신이 조선어강좌를 수강하며 ‘우리말 바로 쓰기’에 열의를 보인 결과이다. 또 글 중간 중간에는 당시의 생활 풍속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성서조선』 발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일지(日誌) 형식으로 전하는 ‘성조통신(聖朝通信)’은 필자인 김교신의 신앙생활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학교생활은 물론 세상인심의 변천과 자전거 수리비, 목욕비의 추이 등 일상의 여러 풍경을 전해 주는 만화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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