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시대는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하였다. 하나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서 세계적으로 큰 박수를 받은 것이다. 한국의 성취가 지구촌에서 이토록 높이 평가받았던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당연히 크게 놀라고도 남을 일이다. 이제 종래와 같은 선진국 추격놀이는 그만하고 우리 발전 모델에 자부심을 갖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코로나 방역 성공에 힘입어 집권여당은 4.15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또 달리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이 봉쇄 없이 방역에 성공했음에도 취업자 감소폭이 미국보다 더 컸으며, 위기 타격이 약자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재난 불평등은 코로나 위기 속의 한국에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K-방역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K-의료는 부실했는데, 이에 대한 공공의료 강화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띄운 문재인 정부 사회 경제 개혁의 진로도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 위기 및 기후위기가 요구하는 ‘전환적 뉴딜’다운, 새로운 사회생태적 계약으로서의 성격이 미약하고 뿌리 깊은 성장지향적 관성을 짙게 내보이고 있다. 국민들의 가치 지향도 각자도생 성향이 강화되는 쪽으로 변화되었다는 조사가 나왔다. 오늘의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정부 정책이나 국민들의 삶의 태도에서 끝 모르는 성장지향성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한국은 선도국의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이는가 싶더니 안타깝게도 다시 과거에 발목잡히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이 같은 널뛰기식 다이내믹함은 한국형 발전 모델, 그 만들기와 다시 만들기 역사 전반에 대해 새롭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은 만만찮은 나라이다. 현대 한국 발전 모델은 실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림자도 매우 짙다. 코로나 위기 시대가 보여 주는 두 얼굴의 한국 모델은 한국형 자본주의 만들기 전반,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 한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이중운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압축적 산업화와 민주화의 이중전환에 성공한 모델이 사회경제적 규율 기제, 거시적·미시적 규율 기제가 취약하고 무책임 자본주의 성격이 강한 모델이라는 것은 확실히 역설적이다. 이 같은 규율 결핍은 한국 자본주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크게 쏠린, 고집중 불균형 경기장이라는 데 기인한다. 이 책은 이 같은 복안적·통합적 시각을 가지고 광복 이후 현대 한국 자본주의 대전환의 궤적, 압축적 전환과 불균형 발전의 이중주, 그리고 이를 체현하는 갈등에 찬 제도 및 정책 진화의 정치 경제를 탐구하고 새 전환의 기회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압축 근대성의 이중주 또는 복합 발전의 역설이 주는 교훈은 마침내 불평등, 기후위기와 저성장의 악순환에 내몰린, 코로나 시대가 주는 교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지나간 미래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이 역사의 거울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오늘의 전례 없는 위기가 주는 전환과 새판짜기의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형 자본주의 만들기의 빛과 그림자를 직시하는 통합적 시각을 갖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 간 이분법적 진영 논리라든가, 시장주의 대 국가주의의 이분법이라는 학술적 안경이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또 이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 경제의 구체적 연구가 갖는 의미와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구체적 경험 연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론적 눈을 가짐이 없이 거기에만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승전결식 진화론 혹은 근대화의 식민지적 기원이라는 뒤틀린 이데올로기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이 같은 학술적, 이데올로기적 암초들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사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고백하자면, 저자의 생각도 한때의 미망을 벗어던지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여기에는 사상적 변화도 포함된다. 이 책은 저자의 학이사(學而思)의 공부 길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생각을 한번 매듭짓는 의미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