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함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이 거대한 이야기!
아마존과 나일강이 한 바다로 흐를 수 있을까? 그 바다가 바로 한율의 『오딧세이』이다. 『오딧세이』는 200자 원고지로 9,300매의 분량이다. 작가 한율의 말에 따르면 『전쟁과 평화』에서 「에필로그 제2편」을 빼면 길이가 똑같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고는 길이가 똑같다고 한다. 우선 그 양이 놀랍다. 14년을 썼다고 한다. 장편소설이다. 대하 장편소설이다. 총 18부로 구성된 『오딧세이』는 총 7권으로, 이번에 4권까지 출간되었고, 나머지 3권도 출간 예정이다.
『오딧세이』는 「서문」에 이은 「1부 전주곡」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도 도마에 대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그동안의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편집증 강박증이란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속에 믿음을 추구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노력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편집적 강박적으로 잃어버렸던 20세기에 대한 비유적 성찰로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려는 사전 정지작업, 바로 ‘전주곡’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2부 도화선」부터, 탐험선 ‘험난한 모험의 긴 여정’, 바로 소설 제목 그대로인 우리의 『오딧세이』호가 근해(近海)를 벗어나 원양 항해로 막 접어들게 되었음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오딧세이』의 집필에 매달렸을까? 대단한 미학적 목적의식이 내재되어서일까? 아니면, 개인적 인생체험 때문일까? 그건 본인이 아닌 이상 제 3자 입장에선 완전히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소설 첫머리 「서문」의 문장 몇 가지로도 작가의 속셈을 어슴푸레하니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중하면서도 신비로움에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현실엔 흔치 않은 법이다.’
‘진실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란, 그 자체로 내재된 복잡다단한 모순과 다층적인 구조들 덕분에, 겹겹이 둘러쳐진 황금의 베일들 속에 내밀히 숨어 있다 하겠지만,’
‘신의 이야기란 언제나 인간에게 옷깃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어 내야 하는, 긴장과 경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장중함과 신비로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 ‘다층적인 구조들’, ‘황금의 베일들’, ‘신의 이야기’, ‘긴장과 경건’, 이 단어들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들을 모두 견디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소설이 풍부해야 한다. 소설의 길이도 길이겠지만, 구조와 형식, 플롯과 내용의 다양함과 방대함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즉 소설이 ‘거대한 고래 한 마리’처럼 풍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 한율은 무엇보다도 풍부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오딧세이』의 「서문」을 읽다보면, 작가가 로망스 서사(Romance Epic)의 풍부한 장식성과 거침없는 자유로움에 끌려 있는 것과, ‘독자 제위께서는······.’하고 소설가의 말투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전소설의 어투를 은근히 사랑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너무 좋아하면 먹기에 딱딱해질 거야.’라고 되뇌는 것처럼, 대단히 장식적인 문어체를 간간이 의도적으로 구사하며, 묘사적 생기발랄함으로 작가적 주관과 지면(紙面) 위 객관 사이를 넘나들며 문장을 흔들어대기도 한다. 『오딧세이』를 수사학적 입장에서, 때로는 바다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듯한 ‘고래’ 같은 풍부함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의지가 선명하다. 바로 ‘고래’와 마찬가지인 소설되기이다. 대양을 헤엄치고 있는 ‘하얀 고래’처럼, 완전히는 알아챌 수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그 무엇으로 『오딧세이』를 만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문체에서도 나타난다.
‘고래’ 같은 풍부함이라! 풍랑을 헤치며 ‘하얀 고래’ 한 마리 잡겠다고 머릿속이 분주해지는 순간, 작가는 상징주의, 심리주의, 탐미주의, SF, 밀리터리, 역사, 환상, 미스터리 등등의 각각 구분 지워 놓은 ‘무슨 무슨 글쓰기’의 요소를 모두 다 통합하여,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게 된다. 통짜배기 ‘사실주의’ 말이다. 그래야 진짜 고래 한 마리가 진짜 바다에서 제대로 헤엄칠 테니까!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맨날 듣던 ‘포스트모던’이니 ‘해체’니 하는 말투들이 자신의 소설에 들러붙는 것도 싫었나 보다. 자신의 고래가 무의미한 환영(Illusion)으로 끝장나 버리는 게 작가에게는 용서될 일이 아니니까! 따라서 작가 한율은, 원래부터 싫어했던, ‘해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제들이 더욱더 싫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시작할 즈음에 혹자(或者)께서 한 마디 던진다. “신은 죽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 같이 외친다. “절대적인 건 없어. 상대적이야!” 이 외침을 들으며 식자(識者)들은 부채질하듯 한 마디 더 붙여 준다. “진위(眞僞) 구별은 없고, 기원이 불명료한 의미들이 표류한다네.” 그러자 모두가 인간적인 것들은 실패했다고 머리를 감싸 안고 좌절한다. 그런데, 언어는 의미를 잃고 차이만 표류하고 지연되는 중이라 지적한들 그게 어쩌자는 거냔 말이다. 결국, 세상 삼라만상이 다 말장난이고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 극단적인 사설이 되는 판인데, 그것을 계속 강조한들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그러니 어쩌라고!” 그래서 다시 로고스(Logos)를 복귀시키기로, 신을 다시 부활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작가는 ‘해체’를 해체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된다. 소설 만들기가 시작되던 14년 전 그 당시, 다른 모든 것들이 너무도 힘든 상황이라 마음 놓을 데가 없었기에, ‘내가 지금 쓰는 것만이라도 내게 유의미한 것이 되어야 한다!’라는 절박감에 작가는 사로잡혀 있었다. 이렇게 ‘해체’를 해체하고자 결심하고 나니, 이런 말들이 작가 한율의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게 되었다. ‘인간의 선한 의지, 굴복하지 않은 용기’ ‘의지’, ‘용기’, ‘굴복하지 않는’, ‘선하다’ 이런 말의 의미들로,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는 갈망을 작가 한율은 결국 자신의 소설 속에 담고 있는 셈이었다. 당시에, 불혹(不惑)을 갓 넘긴 작가의 마음속은, ‘절망’이란 단어가 만들어낼 ‘표류하게 되어버림’이 너무나도 싫었다.
‘표류하게 됨’이 싫었던 작가 한율은 소설 속 모험의 방법을 ‘상상’으로 하기에 이른다. ‘상상’이란 것의 의미는, 텅 빈 허공을 굳건하게 걸어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발걸음을 의미하므로……. ‘상상계 여행’이란 새로운 방법론을 구상했는데,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란 책의 제목에서 영감 어린 단어를 빌려와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는 쥘베르 뒤랑(Gilbert Durand)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오딧세이』에 나오는 모험의 방법은 절대로 시간 여행이 아니다. 다중우주니 평행우주니 하는 약방의 감초마냥 SF소설에 나오는 합리화를 쓰지도 않았다. 새롭다. 인간 의식의 저편 너머로, 거울 반영의 대칭적 심리적 세계 속으로, ‘상상계’를 통하여, 뿌리가 서로 얽혀 있듯이 상호 만나고 있는 ‘세계’에서의 모험들이다.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아가야 하는 여행, 신비한 모험, 그리고 이 비천하고 비열할 수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정중함과 장엄함에 참예하고픈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 『오딧세이』가 매력적으로 읽혀질 것이라 작가 한율은 확신하며 글을 써 나갔다.
어쨌든, 워낙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들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니, 읽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지식을 나누어 줌이 필요했다. 매우 다양한 소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이 『오딧세이』에 들어간 소재들을 대충 읊어 보아도, #테마파크계획 #경주양동마을 #향단고택 #스튜디오 #펜타곤 #스타워즈계획 #맨해튼프로젝트 #프로젝트 X #특수전 #과학화전투훈련장 #공중강습작전 #초대형 부유체식 해상구조물 #대공간건축 #파력발전설비 #해중림(海中林) #폰노이만 #기독교 #신플라톤주의 #가야전설 #홍옥석(紅玉石) #한국고건축 #정원 #인류학 #신화학 #기호학 #허수차원 #상상계 #융 심리학 #양자역학 #일반상대성이론 #동역학(動力學) #중세전쟁 #중장갑기병 #장창부대 #철갑기병 #잉카 #삭사이우아만 #에스파냐 꽁뀌스따또르 #향나무 #침향목 #입지분석 #매력물 #라이드시설 #대극장무대 #영화드라마세트 #테마파크 디자이너 #발레 #한국고전무용 등이 소설 안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특수하고 다양한 소재들이 엮어져 거대한 모자이크화를 이룬다. ‘하기아소피아(Hagia Sophia)’의 돔 천장을 덮고 있는 황금바탕 모자이크화처럼 말이다.
일례로 ‘테마파크’가 어떤 건지, ‘부유체식해상구조물’이 어떤 건지를 알고 있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 테마파크가 무언지를, 부유체식해상구조물이 어떤 건지를 작가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계 여행’을 만들어 내려면 새로운 현실적 방법론이 나와야 했고, 그럴싸한 과학적 근거들로 독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했다. 또한, 허구를 사실화하는 각주가 아주 풍부해야 했다. 작가 한율의 표현을 빌리자면, “헛소리로 보이긴 싫으니까!” 각주가 소설의 한 구성요소로 만들어져 있다. 사실을 입증하는 각주도 있지만, 허구의 내용으로 채워진 각주도 있다. 이걸 잘 분별하며 읽는 일도 독자들에게는 큰 재미를 줄 것이다. 어쨌든 작가의 입장에서 말해 보면,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이 『오딧세이』 읽기의 한 단계 또 한 단계를 밟아가도록 구성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자 정중한 방법이었다.
요약하자면 한율의 『오딧세이』는, 다른 예를 찾기 힘들 정도의 풍부함과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갖가지 다채로움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킬, 한 세계를 구축하는 방대한 작업인 것이다.